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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

바르셀로나의 관광객 거부 시위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8. 23. 16:08

[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바르셀로나의 관광객 거부 시위

입력 2024.08.22. 23:58
 
 
 
                                                                                           일러스트=양진경

 

최근에 스페인 바르셀로나 일부 시민들은 관광객들에게 물총을 쏘면서 관광을 오지 말라는 시위를 벌였다. 바르셀로나에서는 1년에 2600만명의 관광객이 숙박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많은 관광객이 호텔 대신에 에어비앤비를 이용한다. 자연스럽게 임대 시장에서 임대주택의 공급이 줄어들고 가격은 오르게 된다. 바르셀로나는 지난 10년간 임대료가 68% 상승했다. 이 현상으로 바르셀로나에 거주하는 저소득층 시민들이 피해를 보게 되었다. 이들이 관광객 거부를 외치는 이유다. 이와 비슷한 관광객 거부 운동은 몇 년 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도 나타났다. 바르셀로나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에어비앤비를 통한 단기 임대 사업을 금지했다.

 

1980년대 사람들은 앞으로 정보화 사회가 오면 인터넷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여행은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다른 세상을 보게 되자 이들은 그곳에 가고 싶어 하게 되었다. 때마침 소련이 붕괴하고 냉전 시대가 끝났다. 중국도 자유 시장 체계에 편입했다. 사람들은 지난 수십 년간 철의 장막 뒤에 가려져 있었던 세상도 가볼 수 있게 되었다. 여행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두 배로 확장된 것이다. 수요가 늘어나니 항공사도 발 빠르게 여객기 숫자를 늘리고 비행기 표값을 떨어뜨렸다.

 

인터넷이 발달하자 에어비앤비를 통해서 저렴하게 숙박을 해결할 방법이 생겨났다. 지금은 전혀 모르는 해외에 가도 구글맵으로 길을 찾기 편하다. 주변 음식점의 별점도 확인하고 음식의 사진을 보고 골라서 갈 수 있다. 동시통역 기술은 점점 발달해서 의사 소통도 쉬워졌다. 더 이상 세상은 위험하고 불편한 곳이 아니라 여행하기 편하고 안전한 세상이 되었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가 발달하자 공간을 경험하고 소비한 것을 소셜미디어로 보여주고 과시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는 내가 소유한 물건을 통해서 과시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내가 먹는 음식, 여행지, 호텔 등 내가 경험하는 것들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서 인터넷 공간을 통해서 전 세계인들에게 자랑할 수 있게 되었다. 공간의 소비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때 자유롭게 이동하는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은 사람이다. 이들은 전 세계의 공간을 더욱 쉽게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냉전 종식과 같은 정치적 이유와 비행기와 같은 기술적 발달 등으로 이동의 자유가 늘어나게 되면, 경제적 능력이 되는 20세기 후반의 한 명의 사람은 지난 시대의 한 명의 사람보다 더 많은 공간을 소비하게 된다.

 

이때 이들이 원하는 공간은 누구나 원하는 좋은 곳들이다. 국내에서 보면 수도권이 되고, 세계적으로 보면 주요 관광도시가 된다. 특히나 정보에 노출이 잘되는 젊은 사람들일수록 이러한 욕구는 커진다. 드라마나 영화의 배경이 되는 장소들은 모두 주요 도시들이다. 내가 어렸을 적에 즐겨 보던 드라마는 ‘블루문 특급’이나 ‘베벌리힐스의 아이들’이라는, LA가 배경으로 나오는 드라마였다. 나에게 LA는 선망의 도시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LA에서 온 미국인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교통체증과 매연의 도시라고 LA를 폄하해서 놀란 적이 있다. 아마 지금도 K드라마를 보는 많은 외국인도 비슷한 경험을 할 것이다.

 

미디어 콘텐츠를 통해서 세상을 경험하게 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그 사람은 미디어 속의 라이프 스타일을 동경하게 되고 도시로의 인구 집중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전원일기’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양촌리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사는 대가족을 중심으로 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러다가 ‘질투’라는 드라마가 나왔다. 대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미혼의 청춘 남녀가 주인공이 된 최초의 히트 드라마로 기억한다. ‘질투’를 본 우리 세대는 도시에서 사무직 일자리를 가진 싱글라이프를 동경했다. 전원일기의 배경이 되었던 양촌리는 수도권이 확대되면서 도시화되었다.

 

이처럼 미디어 콘텐츠에서 나오는 공간은 더 많은 소비자가 원하게 되는데 이런 추세는 더 지속될 것이다. 한마디로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서 선망되는 공간은 수요가 더 늘어나는 ‘공간의 빈익빈 부익부’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기술이 발달하면 새로운 부가 창출된다. 하지만 그 와중에 피해자도 나오게 된다. 보통은 사회적 약자들이 피해를 보게 되는데 이를 보완할 행정적 시스템은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나 나온다.

 

바르셀로나와 베네치아에서 나타난 현상은 인터넷이 만든 여러 공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인터넷보다 더 큰 파도인 인공지능과 로봇의 시대가 열린다. 이전의 인터넷 혁명 때와 가장 다른 점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주체로서의 인간이 필요 없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도시는 돈을 쓰는 소비자가 있고, 노동자들은 그 소비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돈을 번다. 그렇게 그 둘은 같은 도시에서 공존한다.

 

그런데 인공지능과 로봇이 노동력과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면 누구나 오고 싶어 하는 도시에는 노동자 없이 소비자들만 남게 되는 현상이 생겨날 것이다. 우리가 지난 5000년간 보아왔던, 다양한 사람들이 융화되어 어우러져서 사는 도시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공동체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 이어지고 하나 된다. 그런데 사람이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세상에서 도시가 어떻게 될까? 비슷한 종류의 계층끼리 모여서 사는 현상은 심화되고 사람들은 더욱 분열될 것이다. 이미 각종 멤버십 클럽과 초고가 주거 단지들이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내가 될 수도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강력한 공권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이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또 다른 거대악이 될 수도 있다.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 적절한 공권력, 시장경제가 서로 견제하며 균형 잡힌 대안을 만들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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