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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의 본질은 계급투쟁 아닌 내면의 혁명중앙일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8. 30. 13:48

                                                       동학의 본질은 계급투쟁 아닌 내면의 혁명
중앙일보
입력 2024.08.30 00:44

백성호 기자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구독


“천도교의 한울님은 우주를 뜻한다.”

19일 서울 종로구 경운동 수운회관에서 천도교의 수장인 윤석산(77) 교령을 만났다. 그는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등단 당시에는 고3이었다. 당선작 상금으로 대학 입학금을 냈다. 한양대 국문과에 들어갔고, 나중에는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됐다. 청록파 박목월 시인의 제자이기도 하다.

그는 박사 학위 논문으로 『용담유사』를 택했다. 『동경대전』과 함께 천도교의 양대 경전인 『용담유사』는 한글로 된 가사문학 작품이다. 수운회관 교령실에서 마주 앉은 그에게 ‘동학이란 무엇인가?’를 물었다.

천도교 윤석산 교령은 "동학의 본질은 사회체제를 바꾸는 외적 혁명이 아니라 내면의 혁명이었다"고 강조했다. 장진영 기자

“사람들은 ‘동학’하면 3ㆍ1독립운동이나 6ㆍ10 만세운동, 동학 혁명 등을 떠올린다. 종교단체인지, 사회단체인지 헛갈리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동학의 본질은 그런 게 아니다. 계급 투쟁이라든가, 외적인 사회 구조를 바꾸는 혁명에 있지 않다.”

-그럼 동학의 본질은 뭔가.

“자기 안에서 우주의 근원을 만나는 내면의 혁명이다. 그래서 천도교에는 수도원이 있다. 사회 혁명이 목표인 종교라면 굳이 수도원이 필요하겠나.”

이말 끝에 윤 교령은 동학이 꿈꾸었던 새로운 세상에 대해 말했다. “외적인 사회 혁명은 한계가 명백하다. 피지배자가 지배자에 저항해 사회구조를 바꾸었다고 하자. 그다음에는 어떤가. 또 다른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생겨난다. 소련의 사회주의 혁명도 그랬다. 혁명 후에는 공산당이라는 새로운 지배계급이 생겨났다. 외적인 혁명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다들 ‘동학’ 하면 ‘동학농민혁명’ ‘동학농민전쟁’ ‘동학농민운동’ ‘갑오농민전쟁’ 등으로 부르지 않나.
“진보 진영의 역사학자들이 자신들의 프레임으로 동학을 보았기 때문이다. 동학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 동학 학회를 만들어 동학이 혁명인지, 전쟁인지, 운동인지 따져보는 토론의 장을 제안한 적이 있다. 일부 학자들이 발을 빼더라. 이제는 동학 혁명 자체를 새로운 눈으로 봐야 한다. 동학 혁명을 일으킨 가장 근원적인 힘이 뭔가. 그건 수운 선생과 해월 선생의 가르침이었다.”

수운 최제우는 수도를 통해 하늘의 마음을 회복한 뒤 가르침을 펼쳤다. 수운의 메시지를 담은 천도교 경전인 '동경대전'. 중앙포토

-수운 최제우(동학 1대 교주)와 해월 최시형(2대 교주)의 가르침. 그 핵심이 뭔가.

“내면의 혁명이다. 다시 말해 나의 마음이 한울님 마음을 회복하는 일이다.”

-동학(천도교)에서 말하는 ‘한울님’이란 뭔가.

“천도교의 한울은 우주를 말한다. 이 우주가 지기(至氣ㆍ지극한 기운)라는 생명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우주가 살아 있다. 우주는 의인화의 대상이 아니다. 사람 같이 생겼다느니, 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한울님도 의인화시킬 수가 없다. 왜 그런가. 한울님은 이치와 기운으로 스스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동학 교도들도 이 한울님 마음을 회복하고자 했나.

“물론이다. 수운 선생은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이라고 했다. 오심(吾心)은 한울님 마음이고, 여심(汝心)은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의 마음과 한울님 마음은 처음 태어날 때는 같은 마음이지만, 살아가면서 달라진다. 그래서 수련을 통해 한울님 마음을 회복하는 거다. 동학 운동은 원래 그런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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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1920년에 지어졌다. 당시 교당 건축을 이유로 모금하며 천도교는 일제의 눈을 피해 비밀리에 독립운동 자금을 모았다. 장진영 기자

-해월 선생은 ‘사인여천(事人如天)’이라고 했다.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라는 뜻이다. 왜 그런가.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동학 교도들은 자기 마음 안에서 한울님 마음을 회복하고자 했다. 그게 동학이 꿈꾸었던 새로운 세상이다.”

실제 양반 출신인 수운 최제우는 신분이 천한 사람이 동학 교도가 되고자 찾아와도 대문 밖까지 나와 허리 숙여 인사했다. 또 집에 있던 두 여종의 종문서도 태워버렸다. 한 사람은 수양딸로 삼고, 나머지 한 사람은 자신의 며느리로 맞았다. 윤 교령은 “그 바탕은 사회적 계급을 타파하는 외적 혁명이 아니라 하늘의 마음을 회복하자는 내적 혁명이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수운 선생은 “불택선악(不擇善惡)”이라고 말했다. 무슨 뜻인가.

“기독교에는 천사와 악마가 있다. 천도교는 악심과 선심이 따로 있지 않다고 본다. 내가 사악한 욕심으로 빌면, 사악한 욕심으로 한울님이 들어온다. 또 올바른 마음으로 빌면 선한 마음으로 한울님이 들어온다. 선심이든 악심이든, 둘 다 한울님의 작용이다. 그래서 나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내 마음이 바를 때 한울님도 바르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윤석산 교령은 "만약 천도교가 외적인 사회 혁명을 추구하는 종교라면 굳이 수도원이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 천도교에는 수도원이 있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마지막으로 윤 교령은 ‘기(氣)’와 ‘심(心)’을 말했다. “천도교는 결국 기와 심이다. 기(氣)는 맑은 기운이고, 심(心)은 바른 마음이다. 우리는 흐린 기운을 없애고, 맑은 기운을 키워야 한다. 그걸 어린아이 기르듯이 잘 길러야 한다. 왜 그런가. 맑은 기운과 바른 마음을 회복해야 나의 마음이 한울님 마음에 가까이 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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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백성호
중앙일보 종교전문기자
중앙일보 종교 담당 기자입니다. 일상의 禪, 생활의 영성이 소중하다 생각합니다.

vangogh@joongang.co.kr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4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