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선 끝과 끝 4시간30분…왜 좌측통행
중앙선데이
입력 2024.08.10 00:07
순간 시속 110㎞를 찍었다. 수도권 전철 1호선(이하 1호선) 구간 막바지. 전곡역을 지나자 전동열차가 막판 스퍼트를 냈다. 서울 지하철 주행 평균 속도인 시속 50㎞의 두 배가 넘었다. 짙푸른 들판과 그늘 드리운 산이 휙휙 지나갔다. 조금 뒤 “이번 역은 우리 열차의 마지막 역인 연천, 연천입니다”라는 기관사 방송이 흘러나왔다. 1호선의 북쪽 끝 연천역이었다. 연천군을 지키는 5사단 장병들이 줄지어 철로를 건너고 있었다.
지하철 1호선 전곡역을 지나며 속도를 높인 뒤 연천역으로 들어서고 있는 전동열차. 김홍준 기자
지하철 1호선 연천역 근처에는 옛 경원선 연천역이 있다. 1912년부터 영업한 옛 연천역에는 증기기관차에 물을 대던 급수탑과 급수정이 있다. 1호선 연천역에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5사단 장병들 너머 창문 밖에 급수탑이 보인다. 6.25 전쟁 당시 총탄이 곳곳에 남아 있다. 김홍준 기자
지난해 12월 동두천~연천 구간 20.9㎞가 연장되면서 1호선 열차 머리에 ‘연천행’ 표시가 새로 생겼다. 총연장도 218.9㎞로 200㎞를 돌파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장거리 노선이다. 인천·수원 방면에 비해 경기도 북쪽의 전철 연장은 더디게 진행됐다. 북쪽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었다. 좌측통행을 고수하던 일제가 만든 경인선·경부선과 이어지도록 하면서 1호선 복선 전 구간이 다른 지하철과 달리 좌측통행인 점도 특징이다.
연천군 인구는 4만1000여 명으로 경기도 31개 시·군 중 가장 적다. 그런데 의외로 방문객이 많다. 지난해 913만 명이나 찾았다. 연천군 관계자는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오히려 관광객이 늘었다”고 전했다. 그러다 보니 연천역에서 시티투어버스도 운행한다. 연천에는 재인폭포·고대산·전곡리유적 등 전통의 관광 코스와 미라클타운·댑싸리공원·당포성 등 ‘인생샷’을 건질 수 있는 젊은 감성 코스가 섞여 있다.
2023년 12월, 지하철 50주년을 앞두고 개통한 지하철 1호선 최북단 연천역을 이용해 연천 곳곳을 찾는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다. 관광객들은 ″연천의 재발견″이라고 입을 모은다. 재인폭포에서 관광객이 뜨거운 햇볕을 우산으로 막으며 시원한 폭포를 감상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2023년 12월, 지하철 50주년을 앞두고 개통한 지하철 1호선 최북단 연천역을 이용해 연천 곳곳을 찾는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다. 관광객들은 ″연천의 재발견″이라고 입을 모은다. 재인폭포와 고대산, 동막골 같은 전통의 관광지와 당포성(사진), 주상절리 등 2030이 인생샷으로 꼽는 곳들이 뜨고 있다. 김홍준 기자
연천역부터 흥미진진하다. 관광안내소로 사용 중인 옛 경원선 연천역엔 증기기관차에 물을 대주던 급수탑과 급수정이 남아 있다. 6·25 때의 총탄 흔적도 그대로다. 전쟁 당시엔 연천역이 38선 이북에 있어서 남침의 최전방 기지가 되기도 했다. 서울 송파구에서 20대 딸과 함께 온 김모(54)씨가 “연천의 재발견”이라며 반긴 이유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급증한 연천 방문객
연천역의 반대편, 1호선 남쪽 끝인 충남 아산시 신창역. 여중생 네 명이 찾았다. 사진 동아리 선생님이 내준 ‘이 세상의 끝을 담아오라’는 숙제를 하기 위해서였다. 2021년 개봉한 영화 ‘종착역’은 이렇게 시작된다. 요즘도 신창역은 젊은 학생들로 붐빈다. 역명엔 순천향대가 병기돼 있고 경찰대, 한국폴리텍대 아산캠퍼스, 공주대 예산캠퍼스 학생들도 이 역을 주로 이용한다.
이른 아침에 지하철 1호선 남쪽 끝 신창역을 이용해 출근하는 모습. 충남 아산 신창면 행목리의 이 신창역은 2008년 1호선이 연장 개통하면서 생겼는데, 이전 장항선 구간의 신창역은 오목리에 폐역으로 남아 있다. 김홍준 기자
신창역 주변엔 도고온천·온양온천·영인산 등이 유명하다. 외암민속마을에선 사극도 종종 촬영된다. 주민 이영삼(50)씨가 “명물”이라며 추천한 신창휴게소의 신창가락국수는 마침 가게가 공사 중이라 맛보지 못했다. 현재는 문을 다시 열었다. 장항선 철로를 걷어 내고 만든 자전거도로와 그 앞의 신창역은 영화 '종착역' 속 아이들처럼 사진 찍기에 좋다.
2021년 개봉한 '종차역'의 무대는 지하철 1호선 신창역이다. 14살 사진 동아리 친구들이 '세상의 끝을 찍어오라'는 선생님의 숙제를 안고 찾아간 곳이다. 충남 아산시 신창면 오목리의 옛 신창역에서 아이들도 시진을 찍었다. 장항선의 일부였던 이 곳의 철로는 자전거 도로로 바뀌었다. 김홍준 기자
지하철 1호선 남쪽 끝 신창역 인근 도고산(482m)에 올라 바라본 영인산(364m). 영인산은 아산의 진산이다. 김홍준 기자
오전 5시55분. 이미 오전 5시25분 천안발 신창행 첫 열차를 몰고 온 오평강(32) 기관사가 편의점에서 김밥을 먹고 있었다. 그는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야죠”라며 신창역으로 뛰어갔다. 오전 6시9분에 출발한 광운대행 1호선 열차는 곧 최고 시속 107㎞를 찍었다.
1호선의 끝과 끝, 연천역에서 신창역까지 '전철 끝판왕' 코스(184.9㎞)는 환승 시간을 포함해 4시간30분가량 걸린다. 운임은 4500원+알파.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69696
'문화평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르셀로나의 관광객 거부 시위 (0) | 2024.08.23 |
---|---|
지방 사람들이 세운 고려, 어떻게 지방을 차별했나 (0) | 2024.08.16 |
김부식·윤언이·정지상·묘청의 네 갈래 길 (0) | 2024.07.19 |
"회사 밖은 지옥" 후배 리더 아래서 버티는 엘더 (2) | 2024.07.08 |
서얼 차별 없었던 일부일처 사회 (0) | 2024.0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