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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먼저 겪은 일본… 병상은 줄고, 편의점·약국은 늘었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5. 7. 16:32

고령화 먼저 겪은 일본… 병상은 줄고, 편의점·약국은 늘었다

[김철중의 생로병사]
日 재활병원은 식사 안갖다줘…환자가 식당으로 가는게 원칙
노인환자 늘면서 간병·돌봄 감당불가… ‘셀프케어’가 국가정책
편의점 5만·약국 6만개… 여기 갈 수 있으면 혼자 살 수 있어

입력 2024.05.07. 00:14업데이트 2024.05.07. 06:09
 
 
일러스트=이철원

 

일본의 재활 병원은 식사를 환자들이 누워 있는 병상으로 가져다주지 않는다. 환자들이 밥을 먹으려면, 병동마다 둔 식당으로 나와야 한다. 혼자 먹고 싶다면, 1인용 테이블에 앉아서 먹으면 된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은 휠체어를 타든, 간병인의 부축을 받든, 식당으로 나와야 끼니를 때울 수 있다. 먹고살려고 병실 밖으로 나오는 셈이다.

재활 병원은 뇌졸중이나 낙상 골절 환자들이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후유증과 장애를 줄이려고 찾는 곳이다. 그래서 회복기 재활 병원이라고 부른다. 환자들은 대개 3~6개월 머문다. 그 기간이 질병으로 발생한 장애를 회복하는 데 결정적인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엔 장애가 만성화된다. 일본 전역에 약 9만4000개의 회복기 재활 병상이 있다. 우리나라보다 10배 정도 많다. 그만큼 질병 장애를 앓는 고령자가 많기도 하고, 중차대한 시기에 장애를 최소화하여 간병 부담을 줄이고자 한 일본 정부의 현명한 전략이기도 하다.

회복기 재활 병원의 목표는 질병 완치가 아니다. 장애가 남아 있든 없든, 환자가 돌봄 없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게 목표다. 밥을 병상으로 가져다주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다. 병원 안에 사는 집이나 동네와 유사한 환경을 만들어 놓고, 환자들에게 살아가는 훈련을 시킨다. 마치 군인이 적과 교전하는 가상 환경을 만들어 놓고 훈련하는 것과 같다.

환자들이 4차선 도로의 횡단보도를 파란 신호등 20~25초에 건너가는지를 보고, 탕 목욕을 안 하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일본인이기에 욕탕 계단을 넘어갈 수 있는지도 본다.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서 조리할 수 있는지를 살피고, 부족한 동작이 보이면, 이를 집중적으로 개선시킨다.

환자가 이런 과정을 거치고, 어떻게든 100~200m 걸어갈 수 있으면, 의료진은 환자를 퇴원시킨다. 이는 의학적 기준이 아니라, 그 정도 걸으면 편의점이 있기 때문이다. 편의점을 혼자서 갈 수 있으면,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편의점서 장도 보고, 은행 업무도 하고, 책과 꽃도 사고, 우편을 부치고 받는다. 그러니 고령자들이 편의점 인프라가 없는 시골을 떠나 도시로 올 수밖에 없다. 일본 전역에는 편의점이 5만6700여 개가 있다(2023년 기준).

 
 

놀라운 것은 일본에 편의점보다 약국이 더 많다는 점이다. 약국이 6만1700여 개로, 편의점보다 5000여 개 더 많다. 약 조제 없이 일반 약과 건강용품만 파는 ‘드러그 스토어’도 2만2000개에 이른다. 둘 다 점점 주택가와 같은 일상생활 공간으로 진출하고 있다. 약국 수는 우리나라의 3배를 훌쩍 넘는다.

일본 약국은 약 제공뿐만 아니라 건강관리 보급창 역할을 한다. 고령자에게 구강 건강은 전신 건강 입구이기에, 구강용품 코너에는 별의별 치실이 있고, 희한한 칫솔들이 걸려 있다. 칫솔모가 잇몸 닦기에 좋게 길고 촘촘하다. 장난감 같은 설태 혀 클리너도 놓여 있다. 혀 운동 시키는 설압기도 눈에 띈다. 침, 눈물, 피지 등 나이 들면 모든 분비가 줄어 건조와의 전쟁을 한다. 안구건조증 원인별로 다양한 성분의 인공 눈물이 판매되고, 구강 건조 막는 껌이 있고, 보습 강도별로 로션들이 줄줄이 자리 잡고 있다. 초고령 사회 일본을 끌고 가는 최전선은 편의점과 약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요가 늘 것이라고 예상됐던 병원의 병상 수는 되레 줄어들고 있다. 한국은 일본과 같이 인구 대비 병상 수가 많은 대표적인 국가인데, 앞으로 어찌할지 걱정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1인당 외래진료 횟수가 연간 15.7회로, 세계 최고다.

고령화 선배 일본의 회복기 재활 병원, 편의점, 약국에서 얻는 교훈은 고령 사회로 갈수록 대세는 ‘셀프 케어’(self-care) 즉 자기 돌봄이다. 병원 의존을 피하고, 타인의 돌봄을 줄이고, 인생 끝까지 스스로 일상생활을 꾸려가야 한다는 의미다. 국가는 국민이 그렇게 하도록 생활과 의료 인프라를 바꾸어 놓는다. 그래야 개인도 국가도 의료 부담을 견딘다. 일본에서 의사 왕진과 가정 간호가 한 해 수천만건 이뤄지는 것도 병원에 기대지 말고, 가능한 한 집과 동네에서 지내라는 뜻이다.

번잡한 식당서 물이 셀프이듯, 고령 사회선 건강도 셀프다. 일년 앞으로 훌쩍 다가온 초고령 사회, 스스로 건강한 몸을 만들고, 집과 동네를 건장한 생활터로 키우는 데 나서자.

 
영상의학과 전문의, 논설위원 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