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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진 마음으로 사진 읽기

[13] 종이 얼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1. 4. 09:27

[신수진의 마음으로 사진 읽기]

[13] 종이 얼굴

입력 2022.02.25 03:00
 
 
 
 
 
 

마스크를 오래 쓰다 보니 모르는 얼굴과 가까이 일하는 경우가 생긴다. 마스크에 가린 코와 입은 나의 짐작만으로 메워진다. 바로 앞에 있는 사람 얼굴을 상상하는 것은 뭔지 모를 애틋함과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싶어 하고 알 수 없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인간의 가장 큰 경쟁력인 기억과 상상을 만든다. 무엇을 보고 알게 되느냐가 곧 그 사람의 얼굴이 된다. 독서 예찬론자였던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의 ‘마흔이 넘은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은 결국 ‘무엇을 보느냐가 그 사람의 얼굴이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임수식, 책가도 143, 프린트된 한지에 손바느질, 44×73㎝, 2011

 

임수식 작가는 어릴 적에 책이 빼곡히 꽂힌 서가를 부러워했다고 한다. 먹고사는 데에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넘치게 가질 수 있는 풍요로움, 서가가 그런 상징처럼 보였기 때문이리라. 그렇게 시작된 ‘타인의 책꽂이’에 대한 관심은 곧 사람에게 이어졌다. 세상에 똑같은 얼굴이 없는 것처럼 책꽂이도 모두 다르다. 책을 사고 읽고 보관하는 방식은 누군가의 삶이 남긴 족적이며 그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다. ‘책가도’ 연작을 보는 재미 중 하나는 서가의 주인을 상상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이미도 외화 번역가의 서가를 촬영한 것이라 하니,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얼굴이 정면에 보이는 이유가 단박에 이해된다.

 

작가는 조선시대 정조 이후에 크게 유행한 책가도와 유사한 방법으로 서가를 바라보았다. 책과 문방사우 등 수집품을 상세하게 보여주면서도 입체적 시각을 적용한 표현 방법이 사진을 통해서 재현되었다. 왜곡을 최소화하여 촬영한 사진을 다시 전통 회화의 선 투시법에 따라 변형한 후, 조각조각 프린트해서 실로 꿰매 이어 붙인 수공의 흔적은 서가 주인이 찬찬히 쌓아 올린 시간을 가늠하게 한다.

 

요즘은 책을 주문할 때마다 종이책과 전자책 사이에서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졌다. 실물을 곁에 두어야 할 이유를 한번 더 따져보고 내 손에 쥐게 되는 책은 더 소중하다. 허영이거나 물욕인들 어떠하랴. 무엇을 열망하느냐가 나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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