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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아트로드’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12. 25. 22:14

[아무튼, 주말]

江에서 영감, 山에서 표정 읽어 탄생한 예술… ‘양평아트로드’를 아세요?

크리스마스에 가볼 만한
양평 ‘강상강하 아트페어’

입력 2022.12.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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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평군 강하면 복합문화공간 카포레 1층에 전시된 김경민 작가의 작품./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투명하게 얼어버린 남한강 수면 위로 흰 눈이 소복이 쌓였다. 그 뒤로 눈 덮인 매봉산이 보인다. 설산(雪山)과 설강(雪江)의 조화.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이다.

‘뽀드득 뽀드득’. 강변에 자리한 ‘강하예술공원’을 걷는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에 처음 발자국을 내는 기분이 설렌다. 그런데 왜 예술공원일까.

 

대로 위로 올라가니 답이 나온다. 양평군 강하면 강남로 267에 위치한 투박한 주황색 건물인 ‘기흥성 뮤지엄’ 앞 잔디밭 정원에 곰 세 마리가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이방인을 맞이한다. 한 마리는 화강석곰, 마주 본 두 마리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곰이다. 이는 원로 조각가 고정수가 만든 작품이다. 이건희 컬렉션에 소장돼 있을 뿐만 아니라 청룡영화상, 이중섭미술상의 트로피를 만든 것으로도 유명한 그는 평생 어머니를 닮은 여체를 탐구하다 2014년부터 그 주제를 ‘곰’으로 넓혔다. 참을성과 끈기로 그에게 영감의 생명력을 준다는 점에서 여체와 곰은 같은 결이다.

함박눈 쌓인 잔디밭에 전시돼 있는 이 작품들은 모두 ‘아트페어’ 출품작이다. 오는 30일까지 진행되는 ‘제1회 양평 강상강하 아트페어’다. 양평에 사는 고 작가가 같은 동네 사는 예술가들을 모아 출범한 공예·조각 전문 아트페어. 고 작가를 비롯해 30여 명이 참여했다.

카포레 정원에 설치된 김태수 작가의 ‘스프라우트 블로썸 아이’와 안치홍 작가의 ‘꿈꾸는 말’.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기흥성 뮤지엄 정원에 설치된 고정수 작가의 작품 ‘내 사랑 꿀단지’와 ‘뭐야! 뭐야! 나도 줘!’.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양평은 인구에 비례해 예술인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도시다. 라현정 양평군립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이렇게 말했다. “양평의 예술가들은 돌덩이에서도 이미지를 발견하고, 바람에서도 표정을 읽어냈다. 양평에 산다는 것은 감각을 사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양평에는 갤러리나 전시관, 갤러리카페 등이 많다. 특히 남한강변을 따라 형성된 강하면과 강상면 길을 ‘아트로드’라고 부른다.

 

보통 아트페어는 한 전시관에서 열린다. 그러나 ‘양평 강상강하 아트페어’는 아트로드에 있는 8개의 갤러리가 참여했다. 몬티첼로, 비갤러리, 카포레, 산리갤러리, 블룸비스타, 비아베네또, 기흥성, 뮤직포레스트 등이다.

 

이 길의 시작점은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 강남로 474에 위치한 ‘몬티첼로’다. 대로에서 나무가 우거진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 나온다. 동화에 나오는 숲속 작은 집에 온 것 같다. 불과 흙을 사용해 그림 그리듯 조각을 만드는 도예가 윤현경씨가 운영한다. 30년 전 양평으로 온 윤 도예가는 야산이던 이곳을 직접 가꾸고 다듬어 도자 갤러리 카페인 ‘몬티첼로’를 열었다. 그의 작품처럼 아늑한 2층짜리 건물에는 그가 만든 색색의 작품들이, 마당에는 화강석으로 만든 이정수 작가의 최신작 ‘50 디시즈(dishes)’와 안경문 작가가 스테인리스 스틸과 황동으로 만든 2013년 작품 ‘아자!’가 놓여 있다. 안 작가의 작품은 황동 가면을 쓴 토끼 인간이 평형대를 뛰어넘는 모양. 2023년 계묘년(癸卯年)을 앞두고 뛰어오르고 싶은 의지를 형상화한 듯하다.

 

이 작품들이 전시된 마당 뒤로 조그만 오솔길이 있다. 옆 건물인 복합문화공간 ‘카포레’로 이어진 길이다. 2000평의 경사진 대지에 200평 규모의 건물로 5개의 갤러리를 갖추고 있다. 계단을 따라 올라오면 보이는 넓은 초록 잔디 위에 지어진 하얀색 건물.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 아메리칸 건축상 AAP 골드 프라이즈 등을 수상한 곽희수 건축가의 작품이다. 공간이 넓은 만큼 가장 많은 작가들이 참여했다.

 

대표 작가는 김경민이다. 주요 랜드마크마다 보이는 여리고 길쭉한 팔다리와 행복한 표정, 생동감 넘치는 모습의 조각상들로 주변을 행복으로 물들이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 작가다. 서울 시내 곳곳에서도 그의 조각상을 볼 수 있다. 이번 아트페어에는 그의 최근작 ‘첫만남2′를 선보였다. 긴 벤치의 양쪽 끝에 남녀가 아직은 쑥스러운 듯 앉아 고개를 돌리고 있지만, 얼굴엔 금방 사랑에 빠질 듯한 미소가 가득하다. 크리스마스에 이곳에서 첫 만남을 하는 남녀가 있다면 조각상의 미소를 따라 짓다 연인이 돼 떠날 것 같다.

몬티첼로 정원에 전시된 안경문 작가의 ‘힘 쎈 놈’. ./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몬티첼로 건물 내에 전시된 윤현경 작가의 ‘인디터미네이트 라인’. 월·화에 휴무인 갤러리도 있으니 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다./주민욱 영상미디어 기자

 

이곳은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답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오면 건물 입구에 놓인 노란색 철 조각에 조명이 들어온다. 빛을 소재로 근원적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작가 인송자의 작품 ‘음, 어, 아’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신비하게 빛나고 있는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제목처럼 세 마디의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음, 어, 아!

 

강하면에 위치한 또 다른 하얀색 건물은 ‘비아베네또’다. 수입 가구 판매장으로도 쓰이는 이곳에 전시된 아트페어 작품들을 보려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가야 한다. 탁 트인 루프톱 정원, 이곳 입구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하는 건 백현옥 작가의 조각 ‘사랑’이다. 어머니가 아기를 소중하게 안고 있는 모습. 그 손가락 끝 하나에도 모성(母性)이 묻어난다. 양평 아트로드 중 가장 높은 전망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아트로드의 끝은 강하면 동오3길에 위치한 ‘뮤직포레스트’다. 첼리스트 김태균이 운영하는 곳이다. 소박한 시골길에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이곳 정원에는 흰색 새들이 날아다닌다. 김성회의 최신작 ‘숲의 소리’다. 자신의 풍부한 상상력으로 그려낸 동화의 한 장면을 조각으로 표현하는 작가다. 그때쯤 건물 안에서 현(絃)의 음악 소리가 흘러나온다. 금방이라도 새들이 날아오를 것만 같다.

 

강상강하 아트 포럼 대표를 맡고 있는 고정수 작가는 “작가들이 살고 있는 그곳이 바로 작업실이고, 모든 작품들은 생성된 땅에 놓여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며 “예술도시 양평, 그곳에서 탄생된 작품들을 천혜의 자연환경을 보며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감상하시면 좋겠다. 연말연시 소중한 이에게 선물로 드려도 좋을 작품들이 많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