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백호 “청춘이 아름답다지만, 나는 일흔의 내가 좋아요”
새 앨범 ‘찰나’ 펴낸 가수 최백호 인터뷰
최백호는 최근 기획 앨범 ‘찰나’를 펴냈다. 이 작업실에서 쓴 자작곡 ‘책’과 CJ ENM의 신인 작곡가 육성 프로그램 ‘오펜 뮤직’ 출신들이 써 준 7곡을 모았다. 그 안에는 20대(곡명 덧칠)·30대(개화)·40대(변화)·50대(그 사람)·60대(나를 떠나가는 것들) 등 나이 들며 겪는 고민과 성장이 순서대로 담겨 있다. 그는 2018년부터 이 프로그램에 멘토로 참여해 왔다. 앨범과 동명 타이틀곡 제목은 “작지만 소중한, 짧지만 영원한 찰나들이 모여 우리 삶을 지탱한다”는 뜻. 최근 비슷한 시기 조용필이 낸 신곡 제목도 똑같아 화제가 됐다. “발매 전 조용필 소속사에서 곡 제목이 같아도 괜찮냐 묻는 연락이 와서 놀랐고, 가왕의 곡과 함께 화제가 된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다”고 했다. “30대 때 조용필의 ‘생명’을 듣고 ‘와, 범접할 수 없는 사람이다’ 했죠. 경쟁 의식은 전혀 없어요. 오죽하면 곧 책을 낼 건데 제목을 ‘3등이 편해요’로 지을까 고민했겠어요.”
그에게는 어떤 노래를 불러도 “쓸쓸하게 들린다”는 반응이 많이 돌아온다. 이번 앨범도 마찬가지. 최백호는 “아무래도 타고 난 것 같다. 나는 정말 신나게 불렀는데도 자꾸 쓸쓸하다고 한다”며 웃었다. 탁월한 노래 실력과 히트곡 제목 덕분에 붙은 ‘낭만 가객’이란 별칭이 “참 싫었다”고도 했다. “칭찬을 잘 못 참아 했거든요. 낯간지러워서. 그런데 요즘에는 계속 그렇게 불리는게 참 좋다 싶어요. 나이 드니 자꾸 칭찬 받는게 좋은 모양이야.”
문학은 그의 음악 원천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기형도 시집에 푹 빠졌다”고 했다. “내가 못 봤던 단어가 많아서 가사가 막힐 때마다 봐요. 새 길을 알려주는 것 같거든.” 히피들의 미국 로드 트립 이야기가 담긴 작가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는 지금도 작업실 책장에 꽂힌 ‘인생책’. “20대 땐 금서라 친구들과 몰래 돌려봤고, 나 읽을 차례엔 뒷장 20장이 몽땅 뜯겨 있어서 결말은 정작 나이 들어 알았어요.(웃음) 군사정권 시절에 장발 단속이 있을 때였죠. 책 속 미국 문화 모습에 해방감을 얻었고, 살아가는 데 여러 영향도 받았어요.”
소문난 만화광이기도 하다. 일본 만화 ‘파이브 스타 스토리즈’, 웹툰 ‘호랑이 형님’ 스토리를 줄줄 외웠다. “‘라이파이’는 특히 처음 화가 꿈을 품게 해준 만화. 작가 김산호의 팬클럽에도 가입했다”고 했다. “전 늘 만화책 읽는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 말해요. 그만한 감성과 공감능력을 가진 이가 대통령이라면 힘들고 어려운 사람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테니깐.”
팬데믹 시작과 함께 70대에 접어든 그는 “60대까진 죽음을 별로 실감 못 했는데 이젠 현실이 됐다”고 했다. 70대를 목전에 두고 비결핵성 항산균 폐질환 진단을 받았고, 올 초 그토록 좋아하던 축구를 체력이 달려 그만둬야 했다. 그런데도 “청춘은 참 아름답지만, 그때로 꼭 돌아가고 싶진 않다. 지금의 현실이 더 소중하다”고 했다. “내겐 청춘이 너무 힘들었거든요.”
스무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이듬해 입대했지만 폐병을 얻고 조기 전역해 한참을 방황했다. “누나 둘 밑에 막내아들, 게다가 장손이라 어머니가 과잉보호하다시피 예뻐하셨다. 덕분에 세상 물정을 전혀 몰랐다”고 했다. “데뷔 후 처음 900만원, 지금으로 치면 1억원가량 돈을 현금으로 받아 하숙집 이불 밑에 두고 꺼내 썼죠. 은행 계좌 여는 법도 몰랐어요. 그래서 내겐 어머니의 부재가 더 애틋하고, 힘들었어요.”
1976년 어머니에 대한 사모곡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로 데뷔해 문화방송(MBC) 가요제 신인상을 받았지만, 이후 30대에 긴 슬럼프가 왔다. 손님이 던지는 수박 껍질, 땅콩을 얼굴에 얻어맞으며 미사리 라이브 클럽을 수년간 전전했다. 당시 선배 가수 최희준이 해준 다음 조언이 “참 아렸다”고 했다. “야, 네 출연료에 (수박 맞는 값도) 다 들어 있어. 참아야지 뭘.” 이때 미사리에서 겪은 설움이 아직도 생생해 “관련 영화 시나리오를 썼고, 영화화도 추진 중”이라고 했다.
그런 설움을 버티고 버텨 46세에 설거지하는 아내 뒷모습을 보고 운명처럼 쓴 게 바로 ‘낭만에 대하여’. 1995년 김수현 작가의 KBS 2TV 주말극 ‘목욕탕집 남자들’에 삽입돼 전국적인 인기를 끌었고, 현재는 2030 세대 사이에서도 역주행 인기를 끄는 곡이다. “젊은 층이 좋아해줘서 참 고맙긴 한데 사실 이 곡이 와 닿고, 따라 부르기 시작하면 늙기 시작하는 거거든.(웃음) 나이가 들고 인생에 대한 회한이 느껴지고, 사는 게 허무해지는 관문 같은 곡이죠.”
최백호는 “살면서 보니 난 70대가 된 게 참 좋다”고도 했다. “60대만 해도 가난한 옛날로 돌아갈까봐 항상 불안하고 잡다한 생각이 많았는데 이젠 정리가 되고 편해졌죠. 눈앞이 아닌 전체를 볼 줄 알게 됐어요. 덕분에 80이 되면 더 좋은 노래를 쓸 거 같아요. 그렇게 90대까지, 90대의 호흡으로 품위 있게 노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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