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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가득한 대한민국, 분노의 악취를 화해의 향기로 만들어야”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10. 5. 11:36

“갈등 가득한 대한민국, 분노의 악취를 화해의 향기로 만들어야”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 펴낸 등단 50주년 정호승 시인 인터뷰

입력 2022.10.04 03:00
 
 
 
 
 
정호승 시인은 “기계화, 인공지능화되며 누군가로부터 위안의 언어를 선물받기가 어려운 시대”라며 “존재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보다는, 고단한 삶을 사는 인간에게 어머니처럼 위로를 주는 것이 더 중요한 시의 역할이다”라고 했다./남강호 기자

 

정호승(72) 시인이 열네 번째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창비)를 냈다. 올해로 등단 50년 차인 시인은 “50년 동안 죽지 않고 시를 써온 것보다 더 큰 감사는 없다”며 “언젠가 제가 죽어서 시를 못 쓰는 날이 올 거다. 그런데 그때 스스로 후회하거나 안타까워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시집은 2년 만의 신작이다. “시집을 낸 뒤 1~2년씩 시를 전혀 생각하지 않은 적도 있다”던 시인은 “이번 시집을 내며 처음으로 원고를 마무리한 다음에도 시를 계속해서 더 쓰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수록된 시 115편 중에서 106편이 미발표 작품. 죽음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슬픔을 노래하면서도, 그 끝은 비극이 아닐 수 있다는 위로를 건네고 있다.

 

“슬픔이 택배로 왔다/ 누가 보냈는지 모른다/ …/ 누가 보낸 슬픔의 제품이길래/ 얼마나 아름다운 슬픔이길래/ 사랑을 잃고 두 눈이 멀어/ 겨우 밥이나 먹고 사는 나에게 배송돼 왔나” (‘택배’ 중에서)

 

택배에 담긴 ‘슬픔’은 시인의 수많은 시가 나고 자란 곳이다.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고 노래한 첫 시집의 제목도 ‘슬픔이 기쁨에게’였다. 그러나 “살아갈 날보다 죽어갈 날이 더 많은” 이에게 슬픔은 ‘죽음’을 뜻한다. 시인은 “사랑의 본질적 문제가 제 시의 주제였다면, 지금은 죽음이란 주제가 제게 더 커졌다”며 “사람은 젊을 때 영원히 살 것처럼 살지만, 모두 죽음을 겪게 된다”고 했다.

 

“내가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 사랑한다는 것은/ 책임을 지는 것이므로/ 내가 하늘에서 땅으로 툭 떨어짐으로써/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이다”(‘낙과(落果)’ 중에서)

 

시집의 핵심어는 ‘떨어짐[落]’이다. ‘낙곡(落穀)’ ‘낙수(落水)’ 등 6편의 시의 제목에 이 단어를 포함했다. 다만, 시인은 떨어짐으로써 삶이 끝나는 게 아니라, ‘흙’과 섞임으로써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3년 전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보며 깨달은 것들이다. “부모님이 마지막으로 내게 가르침을 주시고 간 것은 죽음이다. 사람은 죽으면 완전히 흙이 되고, 흙이 생명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흙’에 묻히는 게 끝이 아니려면, 우리의 몸이 흙 냄새와 어우러질 수 있어야 한다. 시인은 “인간은 ‘분노’ 때문에 본질적으로 비극적이다. 분노가 썩을 때까지 참고 견디며, 그 냄새를 얼마만큼 향기롭게 만드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북한이 미사일을 쏘는 등 남북 관계에 있어 대한민국은 비극 속에 있다. 개인과 국가 모두 자기 이익에 너무 집착해선 안 되고, 갈등보다는 화해를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모과는 썩어가면서도 침묵의 향기가 더 향기로웠다 / 나는 썩어갈수록 더 더러운 분노의 냄새가 났다”(‘모과’ 중에서)

 

이제 시인은 떨어지는 자신의 삶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그는 “문학은 결사적이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 담긴 문예지를 그 대목만 찢어 30년째 작업실 책상에 붙여뒀다. 시인은 “한때 10년 넘게 시를 쓰지 않은 적도 있었다. 내가 시를 버렸으나, 시가 나를 버리지 않았다. 앞으로 한눈팔지 않고 시를 쓰려고 한다”며 “우물에 고인 시들이 썩지 않도록, 계속 시를 써서 퍼내야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