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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는 한국 문학의 뿌리…우리 안에 숨 쉬고 있다”중앙일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7. 18. 15:26

[제8회 중앙학생시조백일장]

“시조는 한국 문학의 뿌리…우리 안에 숨 쉬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2022.07.18 00:01

업데이트 2022.07.18 00:49

문정희 시인은 16일 제8회 중앙학생시조백일장 시상식에 이어 열린 강연에서 "내 본래 호흡으로서의 시조에 대한 애정과 사랑, 가치를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시조는 우리 시가 문학의 뿌리다. (...) 우리는 시조가 있어 고유의 정형시를 가진 문화민족의 긍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16일 서울 조계사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열린 제17회 시조의 날(7월 21일) 기념식은 김민정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 회장의 ‘시조 헌장’ 낭독으로 막이 올랐다. 이날 행사에는 제8회 중앙학생시조백일장 시상식도 함께 열려 수상 학생들과 학부모, 시조시인 등 100여명이 시조의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중앙일보가 주최하고 교육부 후원, 한국시조시인협회 주관으로 진행된 중앙학생시조백일장은 올해 시상식을 3년 만에 처음 대면으로 열었다. 코로나19 여파로 2020년에는 학생시조백일장이 아예 열리지 못했고, 지난해에는 시상식까지 비대면으로 개최됐다. 지난 5월 e메일·우편으로 접수된 응모작은 모두 885편. 이 가운데 고가현(제주 어도초6)양, 조수빈(김포 푸른솔중2)양, 이정윤(시흥 군서고3)양이 각 부문 대상 수상자로 선정돼, 교육부장관상과 상금 50만원을 받았다. 우수지도상에는 김계정 시인이, 우수학교상에는 제주 어도초가 뽑혔다.

왼쪽부터 이정환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장, 고가현(제주 어도초6)양, 함영기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관, 이정윤(시흥 군서고3)양, 조수빈(김포 푸른솔중2)양, 이하경 중앙일보 주필. 강정현 기자

 

이날 시상식에서 부문별 대상 시상에 나선 함영기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관은 “학생들이 직접 시조를 창작하는 경험을 하면서 자아 정체성과 민족 정체성을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문화도 포용할 수 있는 세계 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본 대회가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하경 중앙일보 주필은 축사에서 “상대의 마음을 읽고 역지사지하는 자세를 형성하는 데 문학, 그중에서도 시조야말로 가장 훌륭한 도구”라며 “시를 창작하는 행위를 통해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한다면 타인과 세계와의 관계도 잘 맺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시상식 후에는 문정희 시인의 문학 강연도 이어졌다. 1969년 등단한 문 시인은 ‘숨 쉬는 시조’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내가 지금까지 시를 쓰는 데 있어서 시조에서 매우 큰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문 시인은 서울 진명여고 1학년 때 시조를 처음 접했다고 소개했다. 과제로 제출한 시조 작품이 이화여대 공모전에 입상했고, 이 일이 계기가 돼 문인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이다. 문 시인은 지금은 시조를 쓰지 않지만 학창 시절 시조와의 인연으로 이날 강연자로 초청됐다.

그는 “집에 있을 때는 가족의 존재가 편하고 지겹다가도 밖에 나가면 내 생명 그 자체였다는 것을 느끼듯, 외국에 나가면 시조를 더 많이 자랑하게 된다”며 “일본 시인은 하이쿠, 중국은 두보와 이백 등의 고전 시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그럴 때 우리에게도 시조가 있다는 걸 더 많이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초등부 대상-고가현] “3년째 시조공부…생태 동시조 쓸 것”

새우 등

새우 등이 굽은 이유 이제야 알겠다.
아기를 안으면 등이 굽어지듯이
바다를 껴안다 보니 그렇게 된 거라고.

고가현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에서 서울까지 발걸음을 한 고가현(제주 어도초6) 양은 이날 무대에 가장 많이 오른 학생이었다. 초등부 대상을 받기 위해 한번, 우수학교로 선정된 어도초 대표로 또 한 번, 자신이 쓴 대상작을 낭독하기 위해서, 총 세 차례나 무대를 오르내렸다. 들뜰 법도 하지만, 수상 소감을 묻자 “기뻐요”라고 간결하게 답하는 고 양에게서는 그가 써낸 시조에서만큼이나 어른스러움이 물씬 풍겼다.

“학교에서 금요일마다 쓰게 해서” 시조 창작을 시작하게 됐다는 그가 특히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생태건강’ 동시조다. “학교에서 4학년 때부터 3년째 공부하고 있어요. 처음 배울 때는 생태 동시조가 뭔지 잘 몰랐는데 차츰 시조의 형식에 맞춰 쓸 수 있는 수준까지 된 것 같아요.”

새우를 소재로 한 시조는 선생님이 내준 ‘바다’라는 시제(詩題)를 고민하다 떠올리게 됐다. 그는 “새우가 사실 안을 수 있는 게 없지만, 그래도 바다는 안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며 “앞으로도 우리 시조를 더 사랑하며 열심히 생태 동시조를 쓰겠다”고 말했다.

[중등부 대상-조수빈]

“시인인 할머니 영향…도전 6년 만에 대상”

 

우주에 지어놓은 집

학원이 끝난 시간 밤을 걷는 세상은
달 위를 혼자 가는 고요한 나의 우주
무거운 산소통을 맨 나는 도시의 우주인

꼬불꼬불 영어단어 어질어질 수학 공식
외계인과 소통하듯 입에서 빠져나간 말
우주에 지어놓은 집 통신이 불가하다고

단어 시험 백 문제 만점을 받기까지
무거운 눈을 뜨고 긴 밤을 건너가면
나만의 우주에서도 꽃은 피고 있겠지

조수빈

 

“사실 제가 초등학생 때부터 이 대회를 계속 나왔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중학생이 돼서 대상을 받게 되니까 정말 감회가 새로워요.”

시인인 할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시조를 자주 접했다는 조수빈(김포 푸른솔중2)양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중앙학생시조백일장에 도전한 끝에 대상을 품에 안았다. 그는 시조의 매력에 대해 “형식이 정해져 있는 글을 쓰면서 글자 수 등을 맞추기 위해 깊게 생각하는 과정이 시조가 아닌 다른 글을 쓸 때도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스승 김계정 시인이 “어른보다 잘 쓴다”고 칭찬하는 조양은 일상에서 느낀 감정을 시조로 녹여냈다. “항상 학원이 밤 10시에 끝나거든요. 어떤 주제로 시를 쓸까 고민하다가, 갑자기 그 장면이 생각나는 거예요. 거기다 제가 원래 관심이 많은 우주를 섞어서 쓰면 예쁜 시가 나올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반드시 갖고 싶은 직업은 아직 없지만, 관심사는 넘쳐난다. “심리학에도 관심이 많아요. 지금은 시를 쓰고 있지만, 이쪽 직업을 택하지 않더라도 언젠가 제 책을 꼭 내보고 싶습니다.”

[고등부 대상-이정윤] “영국 셰익스피어처럼 시조가 문학자산 되길”

 

냉이꽃

봄 정취 따다 놓고 냉잇국 끓여본다
푸르른 국이 되어 냄비에 봄이 피던
국자의 작은 언덕엔 된장 맛의 봄 향기

이윽고 그 초봄을 푹 익은 국에 말아
초록의 얼굴 가진 냉이를 들여 마셔
내 몸에 언덕의 일부가 큰 허파로 솟는다

남겨진 냉이들은 저마다 꽃을 피워
허연색 살짝 휘인 고개로 흔들흔들
자연의 언덕 그대로 그득하게 봄이 온다

이정윤

고등부 대상 수상자 이정윤(시흥 군서고3) 양은 2016년 열린 중앙학생시조 암송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던 베테랑이다. 당시 경험에 대해 그는 “초등학교 6학년생이어서 멋모르고 외웠는데 암송대회 수상이 1차로 시조에 대한 관심을 키워줬다면 올해 수상은 곧 성인이 되는 제게 시조를 사랑할 또 다른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대상작은 고모네 밭에서 처음 본 냉이꽃에서 착안했다. “냉이는 보통 꽃이 되기도 전에 항상 다 먹었기 때문에 냉이도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거기서부터 내가 먹은 냉이도, 남아 있는 냉이도 모두 소중하다는 상생과 화합의 이야기를 하게 됐네요.”(웃음)

국어교사로 진로를 정했다는 이양은 시조의 매력에 대해서도 옹골진 답을 내놨다. “영국 같은 나라에서는 가령 셰익스피어가 남긴 문학작품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나잖아요. 우리나라도 그런 문학 자산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정형시이면서 그 안에서 자유를 표출할 수 있는 시조가 그런 문학 전통이 되면 좋겠어요.”

 

[우수지도상-김계정 시인] 제자 17명 수상 … “아이들도 시조 쓰며 여유 찾아”

김계정

 

우수지도상을 받은 김계정 시인은 중앙학생시조백일장 1회 대회 때부터 제자들을 입상시킨 ‘단골 도우미’ 선생님이다. 올해도 29명의 제자가 작품을 응모해 17명이 수상했다. 논술 강사를 하다 학부모들 요청으로 한국사·세계사를 개인 지도한지 15년이 넘었다는 그는 “아이들 숨통을 틔워주자”는 취지로 무료 시조 교육을 시작했다고 한다. “요즘 아이들은 학원 다니느라 하늘이 얼마나 파란지 올려다볼 시간도 없더라고요. 시조를 쓰다 보면 하늘 한번, 길가의 꽃 한번 쳐다보면서 여유를 찾게 되죠.”

시조시인이기도 한 그는 “아이들 시조 교육 덕분에 어느 순간 내 시도 좋아지면서 복이 되어 돌아오는 것 같다”며 “아이들이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그에 대한 보상이 이렇게 주어진다는 점이 너무 좋을 따름”이라고 기뻐했다.

 

[심사평] 율격·발상·표현 … 시조 빚는 솜씨 놀랍다

 

◆초등부=원고를 보내온 초등학생들 대부분이 3장 6구 12음보라는 다소 까다로운 시조의 형식을 제대로 공부했다는 것이 기특하고 기뻤다. 그중 제주 어도초 6학년 고가현 학생의 ‘새우 등’은 율격의 자연스러움과 내용의 진지함이 돋보여 초등부 대상에 선정했다. 자연을 대하는 따스한 마음과 세밀한 관찰이 적절한 비유와 의인화를 거쳐 아름다운 시조로 탄생되었다. 초등생으로서 시조를 빚는 솜씨가 놀랍다.

◆중등부=중등부 대상은 김포 푸른솔중 2학년 조수빈 학생의 ‘우주에 지어놓은 집’이다. 학교를 마치고 나서 또다시 시작되는 학원 공부가 얼마나 청소년들을 힘들게 하는지 잘 나타냈다. 특히 첫째 수 종장의 “무거운 산소통을 맨 나는 도시의 우주인”은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 앞에 놓여 있는 ‘공부’라는 고된 현실을 매우 잘 말해주었다. 시어들을 매끄럽게 시조의 율격에 맞추어 앉혔으며 시적 연상도, 표현도, 제목 짓는 법까지도 수준급이다.

◆고등부=시흥 군서고 3학년 이정윤 학생의 ‘냉이꽃’이 고등부 대상에 선정됐다. 좋은 그릇(형식, 정형률)에 맛깔스러운 내용을 잘 담아냈다. ‘봄’을 둘로 나눠서 전개하는 방식이 특히 재미있다. 먼저 겨울을 갓 벗어난 “초봄”, 앞다투어 언덕에 올라오는 냉이를 캐 된장을 푼 국을 마실 때이다. 그러면 “내 몸에 언덕의 일부가 큰 허파로 솟”아 오르는 것을 느낀다. 그 후 “자연의 언덕”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냉이꽃을 보면서 비로소 “허연색” 봄을 “그득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섬세한 발상과 표현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게 되었다.

심사위원 김삼환·강현덕(대표집필)·우은숙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