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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은 하얗다 1991

철새와 나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0. 10. 25. 20:53

철새와 나무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새였고 또 한 사람은 나무였습니다. 새가 멀리서 날와 왔습니다. 내가 있는 곳은 너무 더웠어, 그렇지만 그곳에는 절로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지, 은빛 날개를 나무가지에 걸치고 새가 말했습니다. 나무는 날개가 없으므로 발돋음을 하면서 그 곳을 찾아 보았습니다. 나무는 새의 집이 되고 싶었습니다. 나무는 새에게 기댈 수 없어 날마다 똑같은 이파리를 흔들면서 새가 보았다는 좋은 세상을 향하여 키를 세웠습니다 나무와 새는 서로가, 서로의 집이 될 수 없음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닐씨가 추워지자 새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너를 좋아하지만 이곳은 너무 춥고 너에겐 아무런 양식도 없단 말야, 나는 떠나겠어, 너는 날개가 없으므로 같이 갈 수도 없지 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무리지어 따뜻한 남쪽 나라로 떠나는 새를 바라보면서 자신에게 집을 짓지 못하는 사람들과 집이 되지 못하는 자신이 얼음덩어리인 줄 차마 모르고 있었습니다

돌아온다는 약속은 거짓말입니다. 새가 떠난 곳은 너무 먼 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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