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망각은 하얗다 1991

가을이 가고, 그도 가고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0. 10. 3. 11:56

가을이 가고,  그도  가고

 

거리의 끝에서 조등이 걸어온다

하나, 둘, 셋 가슴을 환하게 비워두고

어둠한 밤길을 태우는 종이 냄새

살아 있는 사람만이 울 수 있다

울면서 후르륵 라면을 먹고

울면서 담배를 태울 수 있다

죽음은 죽은 이의 것

왁자지껄한 이 세상의 안부가

자욱한 향불에 가려 가물거린다

어색한 조문객들이 서투르게

서로의 그물진 얼굴을 숨긴 채

관심하게 떨어지는 나뭇잎을 밟는다

울지 않는 나뭇잎을,

더 세게 밟으면서

저 언덕 밑의 조등들.

점자로 읽어내고 있다

문장이 되지 않는 몇 줄의 바람을,

남루로 흔들리는 한 생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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