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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호열의 시창작론

시詩의 생활화를 위하여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0. 4. 27. 20:07

의 생활화를 위하여

나호열

수백 개의 문학상과 문예지를 가진 나라, 세계유일의 신춘문예라는 등단제도가 한 세기 가까이 유지되고 있는 나라, 수 만 명에 이르는 시인들이 살아가는 나라, ‘풍요 속에 빈곤이라는 경제학의 이론이 오늘의 우리 문단에 절절하게 와 닿는다는 것이 기우杞憂이기를 바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소수만이 즐기는 고급예술이 문학이라고 자위를 하면서도 보다 많은 대중이 시를 읽고, 시에서 고단한 삶을 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매스컴의 강력한 선택을 받은 몇몇 시인들을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훌륭한 시인들이 녹록치 않은 현실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의 문학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들고 있는가?

첫 째로 우리나라 교육에서 국어를 비롯한 문학교육의 부재를 들 수 있다. 사고思考 영역의 읽기쓰기능력의 배양은 논리적이고 비판적 사유를 공고하게 만드는 실마리이면서 결말임이 분명한데도 우리의 학교 교육은 문학교육의 중요성을 여전히 간과하고 있다. 자라나는 세대, 훈련된 독자가 양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문학의 진흥振興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두 번째로 충분한 문학 수련과 교양이 축적되지 않은 대중에게 탈 이성사회, IT를 기반으로 하는 디지털문화로의 진입에 영향 받은 새로운 세대의 문학()은 환영 받을 수 없는 몽상의 세계일뿐 이어서 일군의 현대시는 교화 敎化의 사회적 기능을 다 할 수 없다. 그러나 스스로 문학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대중이 사실은 그런 문학을 수용할 수 없는 상태에 있음을 논증할 수는 없겠으나 21세기 현대사회에서의 시인의 역할이 자연 / 인간, 감성 /이성과 같은 이분법적 사유 방식으로 이 세계를 계몽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와 가는 오랜 세월 시가詩歌로 음유吟遊되어 왔다. 고대의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나 정읍사井邑詞는 수 천년 역사를 흘러 삶의 애환을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오늘의 삶의 다양성과 복합성은 간명한 언어로 정서를 표출하는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 말은 우리 글(한글)이 가지고 있는 장점(소리글)을 살리고 단점(의 제한적 요소) 을 상쇄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 어문語文이 가지고 있는 음률과 장단으로 세계화의 도도한 물결 속에서도 한국인 고유의 서정抒情을 벼리는 시인들이 아직도 이 땅에 살아있음에 안도하면서 동시에 노래로서의 시의 생활화가 널리 퍼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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