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나호열의 시창작론

시와 시인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11. 24. 23:35

시와 시인

나호열

시는 모든 것에 대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끝까지 말하려 한다. 말의 이치가 부족하면 말의 박자만 가지고도 뜻을 전하고, 때로는 이치도 박자도 부족한 말이 그 부족함을 드러내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능변의 재능을 가진 사람이 시를 잘 쓰는 것은 그럴 만도 한 일이겠지만, 어눌하게 말을 잇다가 자주 입을 다무는 사람들도 좋은 시를 쓴다. 물을 떠낸 자리에 다시 샘물이 고이듯 시가 수시로 찾아오는 사람도 있지만, 유장한 말이 되기에는 너무 기막힌 생각이나 너무 복잡한 생각을 가진 사람은 마음의 특별한 상태에서 그 생각이 돌처럼 단단한 것이 되거나 공기처럼 숨 쉴 수 있는 것이 되기를 기다린다. 시는 사람들이 보았다고 믿는 것을 명백하게 볼 수 있을 때까지 저를 지우고 다시 돋아나기를 반복하며, 진실한 것이건 아름다운 것이건 인간의 척도로 파악하기 어려운 것에까지 닿으려고 정진하는 시의 용기와 훈련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이 이 세상의 것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지극히 절망적인 순간에 그 절망을 말하면서까지도, 포기하지 않는다. 시는 포기하지 않음의 윤리이며 그 기술이다.

   - 황현산 『잘 표현된 불행』 (문예중앙, 2012. 02)

 

<강의 요점>

1. 시 쓰기는 마음 공부이다. : 立德, 立功, 立言 - 불후 不朽에 대한 욕구

2. 무엇에 대해 쓸 것인가를 분명히 하자. : 자아의 문제 vs 세계의 문제

3. 자신의 문체에 대한 입장을 확고히 한다.: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목소리를 다듬는 것

4. 일상적 언어구조를 의식적으로 회피한다. (이미지의 구성)

 

1). 말 터벅터벅 / 날 그림으로 보는 / 여름의 들판

2). 풀 베개 신세 / 개도 겨울비에 젖나/ 밤의 목소리

3). 길가에 핀 /무궁화는 말에게 / 먹혀버렸네

 5. 독자의 평판을 의식하지 않는다. 예> 시: 나는 이동 중이다 :권현형

 

나는 자주 짐을 싸고 가방과 함께 입을 닫는다 / 다른 방법이 없다/목소리가 늙어가고 있으므로//

어떤 사태에도 직면하지 않은 자들은 /평화로운 자들은 평화를 가장한 자들은/

섬광처럼 만났다 헤어진다 아픔을 느끼지 않는 섬모로 /식어가는 뺨을 이마를 밀착시킨다고 해도 //

우리는 보기보다 멀리서 흘러왔다/홍수, 쓰나미, 임시대피소, 카펫 위 장미/한 단면을 잘라 집중적으로 직관적으로 누구라 말할 수 없다//

속도와 거리와 높이는 고통을/ 종이로 보이게 하는 힘이 있다/ 병에 든 소주는 왜 푸른 바다로 보이는 걸까/바다는 왜 병에 든 소주로 보이는 걸까//

햇빛의 각도에 따라 내 눈은 깊은 우울이 되기도 하고/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백서白書로 보이기도 할 것이다

 

<평가>

* 이 작품은 소리를 통해 나와 세상이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말하고 있다. 물론 일정하게 규정되지는 않아서 우울이 되기도 하고 백서로 보이기도 한다. 나는 늘 제 자리에 있지 못하고 ‘이동’하기 때문인데, 우리의 삶은 이렇게 흔들리는게 본질일지도 모른다.

 

* 다들 어디론가 달려간다. 대학입시 때문에, 취업을 하기 위해, 애인을 만나려고 KTX로 고속버스로 우리는 지금 이동중이다. 가만히 있어도 움직인다. 홍수, 쓰나미, 임시대피소에서 겨우 목숨을 건진다. 목숨은 건졌지만 우리는 늙어간다. 지구가 자전하며 공전하고 있으므로.

 

* 지난달 한달 여간 여행을 다녀왔다. 가방과 입을 꼭 잠글 때가 많았다. 삶의 쓰나미가 밀어낸 여행일 수도 있었다. 속도와 거리와 높이는 고통을 종이 짝 처럼 느껴지게도 하였으며 어떤 자는 내 눈에서 우물을 보고 어떤 자는 물려다니는 빛살을 보기도 했다. 잠언처럼 아름다운 시다.

 

*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는가, ‘섬모’같이 하찮은 것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시인의 사유의 각도에 따라 ‘깊은 우울’이 되기도 하고, ‘백서’로 보이기도 하는 ‘우리는 보기보다 멀리서 흘러’ 왔고, 아직 흘러가는 존재이기에.

 

* 보기보다 멀리서 흘러온 나는 쉬 늙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나에게 불치의 고통과도 같은 것이다.

 

* 일반적인 상식수준보다 훨씬 더 멀리 대상을 탐구하여 인간의 내면의 이동 경로를 낯설게 그린, 시적 자아가 아픔 쪽으로 잘 드러난 작품이다.

 

* 이동의 진행사항을 직관을 통하여 그 단면을 묘사하는 묘사력이 은은한 매력을 지닌다. 아무 것도 담기지 않은 백서로 보일 우리의 삶이 보이는 듯하다.

 

* 끊임없이 흘러가야 하는, 떠나가야 하는 노마드의 삶을 투명하게 그려낸 작품. 그러면서도 ‘소주’에서 ‘바다’를 보고 ‘바다’에서 ‘소주’를 끌어당기는 희망의 메시지를 놓치지 않는 근력이 돋보인다.

 

* 삶의 숨통, 아마 여행은 모든 이에게 설렘과 기분좋은 우울, 깊고 맑은 눈을 만들어준다. 그걸 안 뒤부터 엄마의 옷장 안의 보자기, 둥근 작은보따리가 생각난다. 유고 보자기를 좋아하셨던 듯 싶기도 하다. 그렇게라도 보따리와 함께 입을 다물고 싶었을게다. 옛날에는 흔한 여행가방이 없었을테니까 말이다. 그렇게라도 엄마들의 엄마도 이동중이었을테니까...

 

* 다양한 이미지들을 잘 배치하여 생이 가지는 변화무쌍한 일면들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 소통의 부재와 단절에 대한 역설적 가벼움을 냉소적 시각과 담담한 어조로 보여주는 시.

 

* 몸의 이동, 視覺의 이동, 사고의 이동, 관념의 이동, 물질의 이동, 시간의 이동이 이 한편의 시에 담겨 있다. 이 지상의 모든 것은 어디론가 이동 중이다. 그러므로 그 한 단면으로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시의 말에, 우리는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 단면을 잘라 확언할 수 없겠지만, 속도와 거리와 높이가 고통을 환각케 하겠지만, 병에 든 소주와 바다는 같은 태생이니 환시의 운명이 아닌가. 백서를 밝히는 햇빛의 조명 권한 또한 시인에게 있으니, 그 목소리 결코 늙지 못한다.

  - 계간 『시인시각』 2012년 봄호

 6. 많이 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더 많이 읽는 것이다.

 1) A급 문학지를 구독한다. (월간지보다 계간지를 읽는다)

2) 자신이 호감을 갖고 있는 시인에 대해 연구한다 (모방을 넘어서는 모반이 창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