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편의 시와 이야기
나호열(시인․ 문화평론가)
시인이기 때문에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를 부단히 써가면서 완전한 시인의 이데아에 다가서는 일 사랑을 배우는 일 |
사랑이란 무엇인가 |
Ⅰ. 관념적 정의
1. 잘랄루딘 루미(Jalal ad-Din Muhammad Rumi·1207~1273), 사디 시라지(Abu-Muhammad Muslih al-Din bin Abdullah Shirazi·1210~1291) : 페르시아 시인
사랑이란 우주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다.
2. 플라톤의 향연 饗宴
에로스 Eros : Polos와 Penia 사이의 딸 중간자 풍요와 빈곤 사이를 오가는 존재
3. 사랑의 단계:
1) 에로스 Eros : 육체의 성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려는 육체적인 충동
2) 스테르고 : 헌신:
가족 구성원 사이에 존재하는 사랑'(the love that exists between parents and children or the love that exists between members of a family)을 의미. |
3)필레오 : 우정
4)아가페 : 초월적 사랑
Ⅱ. 생물학적 정의
1. 종족번식의 욕구
단순한 생물학적 욕망으로 시작한 관계는 도파민, 세로토닌 등을 뿜어내는 뇌 덕분에 상대에 대한 매력과 끌림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욕망과 끌림은 지속적일 수 없다.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이 서서히 생산됨으로써 단순한 끌림은 애착과 ‘정’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이란 이렇게 나, 그리고 너, 그리고 우리의 유전, 그리고 우리 뇌의 호르몬들 간의 치밀한 바통 물려 주기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인간이 하는 그 무엇보다도 사랑이 더 어렵고 복잡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
- 김대식, KAIST 교수
2. MPI 이론 (male parental investment : 부모로서의 남성의 투자)
1). 남성의 배우자 선택의 기준 : 聖女/娼女
2). 여성의 배우자 선택의 기준 : 높은 MPI 즉, 남성의 충실도
첫 번째 이야기
-평생 배우는 사랑
당신에게 말 걸기
이 세상에 못난 꽃은 없다
화난 꽃도 없다
향기는 향기대로
모양새는 모양새대로
다, 이쁜 꽃
허리 굽히고
무릎도 꿇고
흙 속에 마음을 묻은
다, 이쁜 꽃
그걸 모르는 것 같아서
네게로 다가간다
당신은 참, 예쁜 꽃
- 시집 『당신에게 말걸기』 (2007)
당신은 참, 예쁜 꽃’이고 이 시는 참 예쁜 시다. 시어 하나하나의 구사도 예쁘고 시의 행이며 연 구성도 예쁘지만 이 시에 담겨있는 마음은 더 예쁘다. 이 세상의 모든 꽃을 예쁜 꽃으로 보는 마음. 그리고 혹 꽃이 자신이 예쁜 것을 모를까봐 그에게 다가가 ‘당신은 참, 예쁜 꽃’이라고 말해주는 마음. 다시 생각해도 참 예쁜 시고 참 따뜻한 시다. 나에게도 그가 다가와 “이 세상에 못난 사람은 없어요. 당신은 참 예쁜 사람이에요” 라고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다. 나호열 시인이 이런 마음을 갖게 된 것은 역시 그에게 ‘향기가 짙어야 꽃이고/ 자태가 고와야 꽃이었던’(「매화」) 시절이 지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떨어짐으로써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보일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여기서 다시 나호열에게 세월이 흘러갔음을 설명할 필요는 없으리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이 시에 깊이 공감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 한명희 (시인 ․ 강원대 교수)
두 번째 이야기
- 마음을 닦는 일
인생도처 유상수 人生到處有上手 - 만초손 겸수익(滿招損 謙受益) |
修行 수행
내가 오랫동안 해온 일은 무릎 꿇는 일이었다
수치도 괴로움도 없이
물 흐르는 소리를 오래 듣거나
달구어진 인두를 다루는 일이었다
오늘 벗어 던진 허물에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 때와 얼룩이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자신을 함부로 팽개치지 않는 사람은
자동세탁기를 믿지 않는다
성급하게 때와 얼룩을 지우려고
자신의 허물을 빡빡하게 문지르지 않는다
마음으로 때를 지우고
마음으로 얼룩을 지운다
물은 그 때 비로소 내 마음을 데리고
때와 얼룩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빨랫줄에 걸려 있는 어제의 깃발들을 내리고
나는 다시 무릎을 꿇는다
때와 얼룩을 지웠다고 어제의 허물이
옷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본의 아니게 구겨진 내 삶처럼
무늬들의 자리를 되찾기에는 또 한 번의
형벌이 남겨져 있다
쓸데없이 잡힌 시름처럼 주름은
뜨거운 다리미의 눌림 속에 펴진다
내 살갗이 데이는 것처럼 마음으로 펴지 않으면
어제의 허물은 몇 개의 새로운 주름을 만들어 놓고 만다
부비고, 주무르고, 헹구고, 펴고, 누르고, 걸고
평생을 허물을 벗기 위해
오늘도 무릎 꿇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 시집 『낙타에 관한 질문 』(2004)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고 하지만 자기 자식이라도 호불호의 미묘함이 있고 애틋함의 차이가 있다. 그런 까닭에 내가 쓴 글이라고 하더라도 다시는 대면하고 싶지 않은 글이 있는가하면, 스스로 대견해 보이기까지 하는 글이 있다. 지금이야 어림없는 일이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한 편의 시를 단숨에 써내려가곤 했다. 물론 물이 차올라야 넘치듯 오래 마음 속에 차오르고 익어가는 사유의 시간이 있었음에 틀림없지만 단번에 쓰는 글이란 극명하게 글의 성패가 가려지는 법이다. 「수행」이란 시도 가필 없이 한 번에 내려 쓴 것이다. 짧은 시를 쓰는 입장에서 「수행」은 제법 긴 시에 속하는데 나름대로 뜻의 중심을 놓치지 않고 끝을 마감한 시라는 미숙한 자부심도 갖게 하는 작품이다.
어릴 때 환경이 그러하기도 했지만 손수 빨래를 해야 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보니 게으르고 참을성 없는 내가 이 나이 되도록 투덜대지 않고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 되고 말았다.
세탁소에 맡겨야 하는 양복은 어림없는 일이지만 셔츠나 속옷, 바지 등을 빨고 다림질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장성한 아이들이 중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지금까지 교복이며, 셔츠를 빨고, 말리고 다림질하는 일 또한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인생의 밑바닥까지 굴러 떨어졌을 때 우리 아이들은 한참 질풍노도의 시기였고, 그런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었다. 주머니는 비어 있었고, 속죄의 심정으로, 감사의 마음으로 나는 흙 묻고 때에 절은 아이들의 옷을 빨면서 증오와 번민이 가득한 내 마음을 문질러 대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변함없이 빨래하고 다림질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지만 우리 인생 또한 그런 일과 다름이 없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다. 내가, 보잘 것 없는 나를 스스로 위로하는 ‘수행’의 의미를 체득하는 즐거움을 「수행」을 읽으며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세 번째 이야기
- 사랑은 언제나 미완성이다
어머니를 걸어 은행나무에 닿다
구 백 걸음 걸어 멈추는 곳
은행나무 줄지어 푸른 잎 틔어내고
한 여름 폭포처럼 매미 울음 쏟아내고
가을 깊어가자 냄새나는 눈물방울들과
쓸어도 쓸어도 살아온 날 보다 더 많은
편지를 가슴에서 뜯어내더니
한 차례 눈 내리고 고요해진 뼈를 드러낸
은행나무 길 구 백 걸음
오가는 사람 띄엄한 밤길을 걸어
오늘은 찹쌀 떡 두 개 주머니에 넣고
저 혼자 껌벅거리는 신호등 앞에 선다
배워도 모자라는 공부 때문에
지은 죄가 많아
때로는 무량하게 기대고 싶어
구 백 걸음 걸어 가닿는 곳
떡 하나는 내가 먹고
너 배고프지 하며 먹다 만 떡 내밀 때
그예 목이 메어 냉수 한 사발 들이켜고 마는
나에게는 학교이며
고해소이며 절간인 나의 어머니
- 시집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알고 있다』 (2017)
* 2015 천태산 은행나무 시제 출품, 처음에는 「그 길」 이라는 제목이 붙었던 시이다. 어머니가 돌아기시기 전에 썼었는데 차마 발표하지 못했다. 계간 『시에』 양문규 시인이 주관하는 ‘천태산 은행나무’ 시제 詩祭에 시를 내놓으면서 제목을 바꿨다. 천태산 은행나무 축제 앤솔로지 표지시로 선택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2015.09.23)
마치는 글
애련설(愛蓮說)-주돈이(周敦頤) 1017 - 1073
-연꽃을 좋아하는 이유-주돈이(周敦頤)
水陸草木之花(수육초목지화)가 : 可愛者甚蕃(가애자심번)이라 :
晉陶淵明獨愛菊(진도연명독애국)하고
自李唐來世人甚愛牡丹(자이당래세인심애모란)이라
予獨愛蓮之出於泥而不染(여독애련지출어니이불염)하고
濯淸漣而不夭(탁청연이부요)라
中通外直不蔓不枝(중통외직부만부지)하고
香遠益淸(향원익청)하여 亭亭淨植(정정정식)하여
可遠觀而不可褻翫焉(가원관이부가설완언)하니
予謂菊(여위국)은花之隱逸者也(화지은일자야)요
牡丹(모란)은花之富貴者也(화지부귀자야)요
蓮(연)은花之君子者也(화지군자자야)라
噫(희)라
菊之愛(국지애)은陶後鮮有聞(도후선유문)이오
蓮之愛(연지애)는 同予者何人고(동여자하인)
牡丹之愛(모란지애)는宜乎衆矣(의호중의)로다
물과 뭍의 풀과 나무의 꽃은 사랑할만한 것이 대단히 많다
진나라의 도연명은 홀로 국화를 사랑하였고,
이씨의 당나라 이래로 세상 사람들이 모란을 매우 사랑했으나,
나는 연꽃을 홀로 사랑하였으니, 진흙에서 나왔으면서도 물들지 아니하고,
맑은 물결에 씻기어도 요염하지 아니한 것을 사랑한다
가운데는 통하며 밖은 곧아서, 덩굴 뻗지 않고 가지치지 않으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으며, 우뚝이 깨끗하게 서있으며,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나 함부로 가지고 놀 수도 없다
나는 생각하기를, 국화가 꽃 중의 은일한 것이요
모란은 꽃 중의 부귀한 것이요
연은 꽃 중의 군자 같은 것이니라
아, 국화를 사랑함이 도연명 후에 거의 듣지 못했다
연을 사랑함이 나와 같은 몇 사람이나 될까
모란을 사랑함은 의당히도 많을 것이다
* 서산시립도서관 2019.10.25 19:00 특강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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