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심의 시 「농담」에 대하여
농담
서서히 그리고 둥근 동심원으로
환한 사향의 향기를 눌러 송연먹을 간다
거친 그을음의 입자를
절반의 밝음과 절반의 어둠으로
감각의 아홉 문을 죄다 걸어 잠그고
정수리에 숨을 모아 내 깊은 고갱이를
자꾸만 빛과 어둠으로 괴어
아득하게 바림으로 번져가는 회색빛 울림을
간다
푸른 핏줄 타고 남은 생을 다시 흐를 사무침
다시는 이름 부를 수 없으므로
큰 붓으로,
저 슬픈 모서리 눈물을 듬뿍 찍어
눈에 밟히고 귀에 맴도는 흔적들
아린 갈맷빛 그리움으로
백자 연적의 열루(熱淚)를 타서
아리게 울컥하게
손에 익은 단계연에 가랑가랑 먹빛 이름
옥판선지의 여백, 번지는 농담
하늘에 묵화 한 점 내걸린다
간다
조영심의 시편에는 동음이의의 펀 pun이 드물지 않게 등장한다. 이 시에서의 펀은 '농담'과 '간다'이다. 농담을 '우스갯소리' 弄談으로 받아들인 독자는 곧바로 머리를 긁게 될 것이다. 이 시에서의 농담은 濃淡이기 때문이다. '간다'는 가다(走)를 어간으로 하는 하나와 갈다(磨)를 어간으로 하는 또 하나의 동작의 진행을 뚯한다. 이 시에서 한 연으로 처리한 '간다'를 굳이 위의 어느 한 쪽으로 해석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울 것이다. 1연은 글씨를 쓰기 전에 먹을 가는 행위를 묘사하고 있으며, 2연 '간다'를 사이에 두고 붓을 들어 글을 쓰는 행위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먹을 가는 행위에서 글씨를 쓰는 행위로의 이행을 '간다'라고 하거나 먹을 갈고, 글씨를 행위 모두가 가는 것(磨)으로 받아들여도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겠다.
먹빛은 濃淡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다. 오욕칠정의 현란한 색채를 그저 옅고 짙음으로 가늠해야 하는 것이기에 서 書는 예藝의 경지를 넘어서서 도 道의 경지로 끊임없이 나아간다. 먹을 가는 행위야말로 다도와 마찬가지로 단순하고 지루한 행위의 반복을 통해서 가라앉는 마음의 수련인 것이다. 오늘, 먹을 가는 것은 '다시는 이름 부를 수 없는 이'의 명정 銘旌을 쓰기 위함인지도 모르겠다. 회한의 눈물로 먹을 가니 옥판선지의 귀함이 무슨 소용이 있더냐!
마음을 갈고 '하늘에 묵화 한 점' 걸기 위해 가자(走). 그러나 저 하늘로 오르는 길은 또 어디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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