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8.08.02 03:00
김성동, 27년 만에 대하소설 '國手' 완간… 김훈과 대담
소설가 김성동(71)과 김훈(70)이 만났다. 김성동이 집필 27년 만에 대하소설 '국수(國手)'(전 5권·솔출판사)를 최근 완간한 것을 맞아 두 작가가 지난 31일 서울 조계사 부근 안동국시집에서 대담을 나눴다. 소설 '국수'는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을 거쳐 동학농민혁명 직전까지 격변의 역사를 다뤘다. 작가의 고향인 충남 보령을 비롯한 내포(內浦) 지역을 무대로 삼았기에 생생하고 살가운 방언이 풍성한 문체의 핵심을 이룬다. 김훈은 소설 '국수'를 완독하곤 "바둑뿐 아니라 마상(馬上)무예·검술·궁술·택견·서화·시문(詩文)·판소리·오입 등 각 분야 고수(高手)들의 생활을 물 흐르듯 한 문체로 그려냈다"고 감탄했다. 그는 김성동이 소설 '만다라'(1978년)로 주목받을 때부터 인연을 맺었고, 두 사람은 한때 서울 불광동에서 이웃사촌으로 지냈다.
―김훈(이하 훈): 옛날 '만다라'와 비교해볼 때 성애(性愛) 묘사에서 장족의 발전을 했더라. '만다라'에선 '남녀가 이층을 지었다'고 했는데. '국수'에선 남녀의 하룻밤을 묘사할 때 '달[月]이 졌다'고 썼더라.
―김성동(이하 성동): '만다라' 쓸 때는 내가 여자를 잘 몰랐으니까(웃음). 그래도 '이층을 지었다'는 유행어가 됐다.
―훈: 충청도 방언에선 '이'와 '으' 모음이 잘 붙잖아. 형의 고향에선 '김성동'을 '김승됭'이라고 하잖아. 그걸 어떻게 이해해야 돼?
―성동: 모음을 안(內)으로 오므린다. '농민'을 ' 민', '노동자'를 '뇌동자'라고 한다. 말이 안으로 자빠져.
―훈: 범[虎]을 '븜'이라고 썼는데 산속에 있는 범이 생활에 가까운 것처럼 들리더라. '씨부랄'을 '쓰부랄'이라고 쓴 것도 욕이 아니라 바람 새는 소리 같아.
―성동: 그러니까 욕인데도 우스워. 충청도 말은 모난 것을 깎아서 순화해. 삼국시대 때 충청도 내포 지역이 낮에는 백제, 밤에는 신라였다가 거꾸로 될 수도 있었다. 피어린 현장에 살았기 때문에 누구 편도 들 수 없어서 말을 천천히 해야 돼. '글쎄 말이여, 잘 모르겄시유'라면서. 일단 상황을 봐야 되니까, '가만있어 봐유~'라고 하는 거지.
―훈: 소설에서 하인이 상전에게 말할 때 종결어미를 우물거리더라. '~습니다'가 아니라 '~습니다만…'이라고.
―성동: 언어는 계급이니까 절대 맞먹지 못하게 했지. 양반 앞에선 평민들이 곡좌(曲坐)했어. 몸을 옆으로 틀어 무릎 꿇고 앉았어. 마주 봤다간 그냥 나가떨어졌지.
―훈: 아전의 언어가 소설에서 섬세하게 그려졌더라.
―성동: 아전과 노비의 언어는 잘 남아있지 않아. 어느 누가 '우리 조상이 아전 했다, 종놈 했다' 하겠나. 그걸 찾느라 고생했어. 내 소설에서 노비가 '나으리 마님, 외오 여기지 마소서'라고 하는데, '외오'는 '고깝게 혹은 기분 나쁘게'란 뜻이다. 지금 우리말은 일본식 한자어에 너무 오염됐어. '삼계탕'이 아니라 원래 '계삼탕'이었다. 그 탕에 인삼이 몇 뿌리나 들어가겠는가. 닭이 주(主)가 되니 계삼탕이 맞지.
―훈: 문체가 판소리를 연상케 한다. 진양조가 본류를 이루면서, 중모리와 중중모리가 들어와 있는 형국인데, 그 문체가 저절로 나온 건가?
―성동: 전문적으로 얘기하니까 난 뭔 말인지 모르겄구먼(웃음). 뭘 의식한 게 아니고 그냥 터져 나온 거여.
―훈: 나 같은 놈은 문장을 공들여서 만들어내거든. 형은 물 흐르듯이 그냥 나온 것 같아.
―성동: 어휴, 김형 문장은 아름답지. 하자 없이 딱 짜였잖아. 난 글을 쓸 때 할아버지랑 놀던 유년기로 가기 때문에 행복해. 네 살부터 여덟 살 때까지 할아버지한테 논어·맹자·대학·중용을 배웠어. 그때 익힌 게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아.
―훈: 형은 유가(儒家)에 뿌리를 뒀지만 입산해 불가(佛家)에도 몸을 담았다. 소설을 읽어보니 유불(儒佛)이 조화롭게 살자고 하더라. 그 조화라는 것이 '밥을 먹는 이치를 배우는 것'이라고 쓴 대목은 아주 감동적이다.
―성동: 모름지기 궁리를 하고자 할진대 먼저 올바르게 밥 먹는 법부터 배우고 볼 일이지. 밥을 함께 먹을 줄 알아야지. 그런데 우리 역사는 배제의 역사잖아. 내 것만 주장하고 남을 부정하고. (정권이) 뒤집어지면 또 배제하고. 지금도 똑같아. 조화해야 평등이 나오지.
―훈: 문재인 정부가 지금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도 밥을 먹는 이치를 실현하는 게 어려워서 그래. 소득 주도 성장이니 뭐니 하면서 이 난리가 벌어지잖아.
―성동: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도 없는 것이 백성이고, 항산이 없어도 항심이 있어야만 왈(曰) 선비여.
―훈: 형은 궁예·묘청·신돈·김개남·홍경래·김옥균 같은 계통의 사람들을 좋아하는 듯하다.
―성동: 현실을 바꿔보려다가 꺾인 사람들이다. 그들에 대한 평가도 야박해. 우리 역사의 반쪽이 없어졌다.
―훈: 소설에서 농민들이 탐욕스러운 군수(郡守)를 혼내주려고 몰려가는데, 그런 것을 뭐라고 표현했더라.
―성동: '짚둥우리 태운다.' 짚방석으로 된 의자에 군수를 태우고 고을 바깥에 내다 버리는 거지. 군수를 처단하는 게 아니야. 요즘 투쟁이 더 사나워졌어.
―훈: 소설에선 군수가 가뭄을 해소하기 위해 기우제를 지낸다는 명목으로 세금을 더 걷는다. 성난 농민들이 군수에게 몰려갔다가 때마침 비가 오니까 신나서 해산하잖아. 비가 오니까 혁명이고 뭐고 다 내던지고 제 논에 물 대러 달려가는 거지.
―성동: 그게 생활이지. 대중의 익명성에 가린 개인 하나하나를 소설로 쓰려고 했어. 옛날 사람들이 지금 우리보다 더 나은 점도 많아. 아내를 '안해'라고 했는데, '안의 해, 내부의 태양'이란 뜻이지. 양반일수록 안해를 동등하게 여겼어. 우리 할아버지가 할머니한테 아주 깍듯이 했어. '그러셨어요?'라며 극존칭을 아주 자연스레 썼어.
―훈: 나는 그렇게 못 하겠다 .
―성동: 아니, 김훈이 못하는 게 아니고 이 시대가 못 하는 거여. 다 바뀌었으니.
―훈: 소설엔 오입쟁이들의 언어도 많이 나오더라.
―성동: 기생방 풍습을 재현하느라 힘들었어. 거기에도 법도가 있어서 손님이 그냥 들어가는 게 아니야. 손님끼리도 예를 갖춰서 대화를 나눴어. 오입쟁이도 마구잡이가 아니여. 지금 정치인의 품격은 조선의 오입쟁이 수준도 못 되지.
―김성동(이하 성동): '만다라' 쓸 때는 내가 여자를 잘 몰랐으니까(웃음). 그래도 '이층을 지었다'는 유행어가 됐다.
―훈: 충청도 방언에선 '이'와 '으' 모음이 잘 붙잖아. 형의 고향에선 '김성동'을 '김승됭'이라고 하잖아. 그걸 어떻게 이해해야 돼?
―성동: 모음을 안(內)으로 오므린다. '농민'을 ' 민', '노동자'를 '뇌동자'라고 한다. 말이 안으로 자빠져.
―훈: 범[虎]을 '븜'이라고 썼는데 산속에 있는 범이 생활에 가까운 것처럼 들리더라. '씨부랄'을 '쓰부랄'이라고 쓴 것도 욕이 아니라 바람 새는 소리 같아.
―성동: 그러니까 욕인데도 우스워. 충청도 말은 모난 것을 깎아서 순화해. 삼국시대 때 충청도 내포 지역이 낮에는 백제, 밤에는 신라였다가 거꾸로 될 수도 있었다. 피어린 현장에 살았기 때문에 누구 편도 들 수 없어서 말을 천천히 해야 돼. '글쎄 말이여, 잘 모르겄시유'라면서. 일단 상황을 봐야 되니까, '가만있어 봐유~'라고 하는 거지.
―훈: 소설에서 하인이 상전에게 말할 때 종결어미를 우물거리더라. '~습니다'가 아니라 '~습니다만…'이라고.
―성동: 언어는 계급이니까 절대 맞먹지 못하게 했지. 양반 앞에선 평민들이 곡좌(曲坐)했어. 몸을 옆으로 틀어 무릎 꿇고 앉았어. 마주 봤다간 그냥 나가떨어졌지.
―훈: 아전의 언어가 소설에서 섬세하게 그려졌더라.
―성동: 아전과 노비의 언어는 잘 남아있지 않아. 어느 누가 '우리 조상이 아전 했다, 종놈 했다' 하겠나. 그걸 찾느라 고생했어. 내 소설에서 노비가 '나으리 마님, 외오 여기지 마소서'라고 하는데, '외오'는 '고깝게 혹은 기분 나쁘게'란 뜻이다. 지금 우리말은 일본식 한자어에 너무 오염됐어. '삼계탕'이 아니라 원래 '계삼탕'이었다. 그 탕에 인삼이 몇 뿌리나 들어가겠는가. 닭이 주(主)가 되니 계삼탕이 맞지.
―훈: 문체가 판소리를 연상케 한다. 진양조가 본류를 이루면서, 중모리와 중중모리가 들어와 있는 형국인데, 그 문체가 저절로 나온 건가?
―성동: 전문적으로 얘기하니까 난 뭔 말인지 모르겄구먼(웃음). 뭘 의식한 게 아니고 그냥 터져 나온 거여.
―훈: 나 같은 놈은 문장을 공들여서 만들어내거든. 형은 물 흐르듯이 그냥 나온 것 같아.
―성동: 어휴, 김형 문장은 아름답지. 하자 없이 딱 짜였잖아. 난 글을 쓸 때 할아버지랑 놀던 유년기로 가기 때문에 행복해. 네 살부터 여덟 살 때까지 할아버지한테 논어·맹자·대학·중용을 배웠어. 그때 익힌 게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아.
―훈: 형은 유가(儒家)에 뿌리를 뒀지만 입산해 불가(佛家)에도 몸을 담았다. 소설을 읽어보니 유불(儒佛)이 조화롭게 살자고 하더라. 그 조화라는 것이 '밥을 먹는 이치를 배우는 것'이라고 쓴 대목은 아주 감동적이다.
―성동: 모름지기 궁리를 하고자 할진대 먼저 올바르게 밥 먹는 법부터 배우고 볼 일이지. 밥을 함께 먹을 줄 알아야지. 그런데 우리 역사는 배제의 역사잖아. 내 것만 주장하고 남을 부정하고. (정권이) 뒤집어지면 또 배제하고. 지금도 똑같아. 조화해야 평등이 나오지.
―훈: 문재인 정부가 지금 이렇게 힘들어하는 것도 밥을 먹는 이치를 실현하는 게 어려워서 그래. 소득 주도 성장이니 뭐니 하면서 이 난리가 벌어지잖아.
―성동: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도 없는 것이 백성이고, 항산이 없어도 항심이 있어야만 왈(曰) 선비여.
―훈: 형은 궁예·묘청·신돈·김개남·홍경래·김옥균 같은 계통의 사람들을 좋아하는 듯하다.
―성동: 현실을 바꿔보려다가 꺾인 사람들이다. 그들에 대한 평가도 야박해. 우리 역사의 반쪽이 없어졌다.
―훈: 소설에서 농민들이 탐욕스러운 군수(郡守)를 혼내주려고 몰려가는데, 그런 것을 뭐라고 표현했더라.
―성동: '짚둥우리 태운다.' 짚방석으로 된 의자에 군수를 태우고 고을 바깥에 내다 버리는 거지. 군수를 처단하는 게 아니야. 요즘 투쟁이 더 사나워졌어.
―훈: 소설에선 군수가 가뭄을 해소하기 위해 기우제를 지낸다는 명목으로 세금을 더 걷는다. 성난 농민들이 군수에게 몰려갔다가 때마침 비가 오니까 신나서 해산하잖아. 비가 오니까 혁명이고 뭐고 다 내던지고 제 논에 물 대러 달려가는 거지.
―성동: 그게 생활이지. 대중의 익명성에 가린 개인 하나하나를 소설로 쓰려고 했어. 옛날 사람들이 지금 우리보다 더 나은 점도 많아. 아내를 '안해'라고 했는데, '안의 해, 내부의 태양'이란 뜻이지. 양반일수록 안해를 동등하게 여겼어. 우리 할아버지가 할머니한테 아주 깍듯이 했어. '그러셨어요?'라며 극존칭을 아주 자연스레 썼어.
―훈: 나는 그렇게 못 하겠다
―성동: 아니, 김훈이 못하는 게 아니고 이 시대가 못 하는 거여. 다 바뀌었으니.
―훈: 소설엔 오입쟁이들의 언어도 많이 나오더라.
―성동: 기생방 풍습을 재현하느라 힘들었어. 거기에도 법도가 있어서 손님이 그냥 들어가는 게 아니야. 손님끼리도 예를 갖춰서 대화를 나눴어. 오입쟁이도 마구잡이가 아니여. 지금 정치인의 품격은 조선의 오입쟁이 수준도 못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