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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대한 내 생각

내가 읽은 나의 시/북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7. 10. 30. 22:21

내가 읽은 나의 시

북 / 나호열

 

북은 소리친다

속을 가득 비우고서

가슴을 친다

한 마디 말 밖에 배우지 않았다

한 마디 말로도 가슴이

벅차다

그 한 마디 말을 배우려고

북채를 드는 사람이 있다

북은 오직 그 사람에게

말을 건다

한 마디 말로

평생을 노래한다

 

어느 사람이 ‘당신의 시론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한 편의 시를 쓰는 것’이라고 나는 대답했다. 게으르고 끈기가 없는 내가 육십 오년 동안 살아오면서 포기하지 않고 붙잡고 있는 유일한 일이 시를 쓰는 일이었다. 문단이라는 곳에 발을 내딛은 지 35년 동안 삼 천 수의 시를 쓰고 버리며 열여섯 권의 시집에 담아냈지만 그 흔적들은 오직 한 편의 시를 완성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그런 까닭에 독자들이 어떤 시를 좋아하는지 궁금해 해 본적도 없고 스스로 쓴 시에 만족해 본 적도 없다. 독서량도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재능도 없는 내가 날랜 토끼를 따라가는 거북이처럼 느리느릿 시인의 길을 걸어온 것은 평화롭지 못한 나의 삶을 위무하는 자위 自慰이면서 세속에 연루되기 싫은 자위 自衛였다고도 할 수 있다. 어린 질풍노도의 시기에 겪었던 가정의 몰락과 가까운 인척들과의 매몰찬 불화는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와 불신 그 자체였던 것 같다.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감탄고토 甘呑苦吐를 목도하는 일은 견디기 힘든 가난이었다. 천수를 누리지 못한 아버지와 어린 자식들을 부양해야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내가 배운 것은 세상의 부조리함이었다. 마음 안에 가득한 원망과 불신을 어떻게 하면 평화로움으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변하지 않는 진리를 추구하는 철학을 전공하게 만들었고 그런 탐문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그 탐문의 과정이며 결과가 편편의 시로 드러날 뿐인 것이다.

 

내가 다닌 중학교는 높지 않은 구릉에 있었다. 교문을 들어서면 가파른 언덕이 나타나고 한 구비 돌아서는 곳에 강당이 있었다. 어느 날 그 강당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발걸음이 이끌려갔다. 학교 관악부에서 가을에 있을 학예회에 연주할 ‘페르시안 마켓’이란 곡을 연습하고 있었나 보다. 그 합주 속에서 내게 선명하게 들린 소리는 소북(드럼)이 내는 떨림이었다. 차르르 뚝딱 뚝딱 차르르! 단순한 리듬이었지만 마치 심장에서 울려나오는 고동처럼, 감옥에서 해방되어 나오는 죄수들의 환호처럼 나는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그 소리는 나를 관악부의 일원이 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 이후 나는 풋내기 고수 鼓手가 되었다.

 

북은 화려한 음율은 없지만 합주에 있어 모든 악기들의 중심을 잡아주는 악기이다. 큰북은 무미건조해 보이지만 악대의 연주에 있어 빠르기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북을 치는 빠르기가 고르지 않으면 악대의 연주는 망쳐버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큰북은 숙련된 상급생이 맡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나는 그렇게 북을 매고 어린 시절을 속으로 울며 지나갔다.

 

「북」은 이런저런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2003년에 모 잡지에 발표를 하고 시집 『당신에게 말 걸기』(2007년)에 수록한 시이다. 타고난 천성이 그러한지, 그래서 다행인지 불행인지도 모르지만 내 앞을 걸어가는 훌륭해 보이는 많은 시인들을 작품으로 만났지만 실제의 행적을 통해서 그다지 깊은 감명을 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재능을 뽐내며 명예를 탐하는 사람들, 문여기인 文如其人의 참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들. 그래서 ‘너는 소설을 쓰는게 어떠냐?’는 충고를 해주신 선생은 계셨지만 나에게 시의 스승은 없다. 그저 고루해 보일지 모르지만 시를 통해서 모난 마음을 둥글게 하고 쓸데없는 욕심을 갖지 않으려는 생각이 문단이라는 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되돌리게 하고 시인묵객들과의 어줍지 않은 관계를 맺고 싶지 않은 결의를 다지게 할뿐이다. 고독해지지 않으려고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쓰면 쓸수록 고독해지는 자신을 냉철하게 대면하는 일이「북」을 통해서 드러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북은 속을 비워야 소리를 낸다. 어느 생명이 스스로 태어났겠느냐마는 북도 고수 鼓手가 없으면 소리를 내지 못한다. 채찍일수도 있고, 매일 수도 있는 ‘때림’과 ‘맞음’이 없으면 북은 소리를 내지 못한다. 그 소리는 과연 누구를 향한, 누구를 위한 소리인가? 이 세상을 떠도는 헛말과 막말들, 교언영색 巧言令色과 각주구검 刻舟求劍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날 수 있는 방도는 피세 避世도 아니고 침묵도 아닐 것이다. 이순을 지나 종심으로 가면서 언뜻언뜻 일어나는 탐욕에 놀랄 때가 있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하는 헛된 생각, 나의 시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들이 달콤하게 노욕을 부추기게도 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북」을 읽는다.

 

북은 나를 기다리는 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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