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 즐거움
시인에게 시를 쓴 연유를 묻는 것이 대단한 실례인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거꾸로 자신이 쓴 시에 대해 이러저러 군말을 붙이는 것 또한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한 마디로 시는 시인의 정신이 변태 變態한 것이다. 시인의 심층에서 유충이나 애벌레로 꿈틀대던 불온한 생각들이 세상 밖으로 나와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한 것! 그래서 ‘시인은 오직 시로 말한다’는 금언이 아직도 유효한 것인지도 모른다. 시인이 외로운 존재라고 하는 것은 변태한 자신의 정신이 오직 자신을 비추는 거울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갖는다는 것이고 일상적 소통의 언어를 벗어난 상태에서, 언어의 그물(언전言詮)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시인의 거처는 변방 邊方이 마땅하다. 인과에 얽혀있지 않은 공간, 세속의 구심력이 작동하지 않은 그 경계쯤에 서 있는 것. 그쯤에서 눈 먼 자아를 바라보고 이 광대한 우주 속에서 한 톨 먼지만한 존재의 의미를 되새김 하는 것. 눈동자가 흔들리고 슬픔이 깔려 있는 허무의 끝까지 가보는 것은 그 무엇에게도 포획되지 않겠다는 아나키스트의 숙명이자 숙제라고 나는 믿고 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인간의 사랑을 믿기에는 너무 영악해져버린 나는 가끔 내가 아름다워지기를, 사랑으로 충만된 인간이 되기를 꿈꾼다. 바로 그 때, 시는 내게로 온다. 절망을 깨우치지 않으면 희망을 가질 수 없고, 세상의 냄새나는 부조리와 불안과 조우하지 않는다면 어찌 사랑의 고귀함을 운위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여전히 세속화된 나와 변방에서 서성거리는 본심의 줄다리기는 계속되고 있다. 내게 있어서 변방은 명예와 권력의 중심에서 어쩔 수 없이 밀려 나온 장소가 아니라 스스로를 유배한 자유의 땅이다. 나는 이곳에서 소외와 망각을 배우고 절망을 사육했다. 나의 시는 소외와 망각이 그리고 절망이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나온 노래가 되기를 소망할 뿐이다.
* 이 글은 월간 『우리시』 2016년 10월호 신작 소시집에 붙인 시작 메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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