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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의 곧은 소리를 시로 담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2. 23. 12:36

폭포의 곧은 소리를 시로 담다

나호열

 

폭포라는 실체를 나는 스무 살이 넘도록 눈으로 보지 못하고 시로 읽었다. 김수영이 1957년 『현대문학』에 발표한 시「폭포」를, 70년대 초반 민음사에서 간행한 민음시선 첫 번째 시집『거대한 뿌리』와 겹쳐 읽으며 폭포의 형상을 마음속에 담았던 것이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의 의미는 여전히 불가해한 미지의 세계로 남았지만 폭포가 주는 굳은 의지의 표상 表象은 또렷하게 청춘의 한 시절에 각인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폭포를 마주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 년 후, 포 부대 관측반에 배치된 병사兵士로 하루가 멀다하고 산을 오르내리던 어느 날 이었다. 한탄강이 굽이쳐 흐르는 단애 위로 수십 만 발의 포탄세례로 허옇게 속살을 드러낸 산 옆구리 쯤, 고문리 깊숙한 골짜기 안에 자리 잡은 재인폭포가 건너편 포병 관측소에서 망원경 안으로 희미하게 그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직선으로 2,3킬로미터 떨어진 탓으로 그저 검지 한 마디쯤 되는 흰 물줄기가 눈물 몇 방울쯤으로 떨어지는 듯하여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는 김수영의 일갈 一喝이 허풍으로 퇴색되는 듯한 느낌도 없지 않았을테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주한 폭포는 가슴 속을 훑어내리는 일필휘지의 묵언과도 같았다. 지금은 포 사격이 있을 때만 출입이 통제될 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지만, 그 당시에는 출입 허가받은 관광버스 몇 대가 왔다가 사라질 뿐, 허공을 가르며 머리 위를 날아가는 포탄의 굉음과 뿌연 연기가 이십 대의 적막강산을 채우는 그런 날들이었다.

 

용모가 아름다웠던 줄 타는 재인 才人의 아내를 탐낸 원님이 벼랑을 가로지른 줄을 타게 한 다음 줄을 끊어 재인을 죽게 하고 그 아내를 취하려 하였으나 그 원님의 코를 물어 절개를 지키려했다는 코문이에서 연유한 고문리의 비극적 전설을 그 누구에게도 들은 바 없었으나 폭포는 내가 흔들어야 할 것만 같은 결별의 흰 손수건 같이 아련하기만 했던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렇게 삼 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고 사회에 나오고 시를 쓰면서 내게 있어서 폭포는 자연스레 노자 老子가 설파한 상선약수 上善若水의 원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만물을 이롭게 하며 다투지 않고, 뭇사람들이 자리하기 싫어하는 곳을 마다하지 않는 물의 속성이 아득하게 높은 절벽을 뛰어내림을 두려워하지 않는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의 고매한 정신의 투신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체득하게 되었던 것이다.

 

삶이란 그 누구를 가릴 것 없이 구절양장 九折羊腸의 신고를 겪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적지 않은 폭포를 만났다. 나이애가라는 웅장함으로, 남미 베네주엘라의 앙헬 폭포는 1 킬로미터에 가까운 수직의 높이로 우리를 압도한다. 금강산 구룡폭, 철원의 삼부연, 설악의 미인 폭포, 토왕성 폭포 등의 우리나라 폭포는 자연의 위대함보다는 보다 가까이에서 우리 삶을 반추하게 하는 기쁨을 선사한다. 포말로 흩어져 내리다가 다시 제 모습을 찾는 광경은 아무리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꿈을 잃은 사람에게는 용기를, 온통 상처뿐으로 세상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희망을 가슴에 가득 담아주기 때문이다.

 

인연에 연연해하지 않아 시인으로서의 내 이름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없어도 그만이지만 그래도 삶이 허무해질 때, 이 세상에 혼자 있는 듯한 외로움에 사무칠 때가 있으니 그럴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재인폭포이다. 한 번 가봐야지 하면서 30년이 훌쩍 지나고 이십 대에 만난 이루지 못한 연인을 이순을 넘어 다시 만났던 기억이 엊그제 일이다. 폭포가 아니라 내 생에 우뚝 선 도인 道人으로, 세월의 곡절을 같이 겪었으나 여전히 일필휘지의 묵언을 보여주는 폭포 앞에서 비로소 ‘곧은 소리’가 ‘곧은 소리를 부른다’는 옹골찬 뼈의 소리를 깨닫게 되었으나 그 깨달음을 글로 형언한다는 것 또한 불가능하니 어찌하랴. 그리하여 열다섯 번째 시집『촉도』첫 번째 시로「거울을 깨다」를 싣고 부제로 재인폭포를 달았으니 그에게 바치는 시의 결말은 이러하다.

 

 

멀리서 바라보던 나를 만났다

목이 쉬도록 외쳤던 격문은,

창벡하도록 희었던 뼈는 사라지고

풍우에 찢긴 손수건 한 장이

남루한 얼굴을 닦아 주었다. 

 

 

*<<문학의 집 서울>> 2016년 3월호에 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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