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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은 새해가 시작되는 달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7. 12. 5. 21:59

12월은 새해가 시작되는 달

나호열

 

다사다난했다는 말이 실감이 나는 2017년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정치, 사회, 경제 어느 분야를 둘러보아도 즐겁고 아름다운 이야기보다 추악하고 실망스런 일들이 격랑으로 몰아쳤던 한 해를 보내다보니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새해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가져보게 된다.

돌이켜 보면 우리 문단도 유쾌하지 못한 여러 문제들이 불거져 나왔던 한 해를 보냈다. 미당문학상으로 촉발된 작품과 인격의 문제, 그동안 읍습하게 자행되어 왔던 일그러진 성추문, 표절과 같은 적페들이 명쾌하게 정리되지 못하고 두리뭉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흘러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을 지우기 힘들다.

 

다양한 견해들이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되기란 쉽지 않은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미당이 친일 작품을 남긴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수 천 편의 시 중에서 친일 성향의 작품이 극소수라는 사실이 미당의 문학을 정당화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란은 우리 문단을 대표하는 여러 단체에서도 명확한 견해를 내놓지 못하고 있음은 매우 실망스럽다. 독자 개인이 미당의 작품을 선호하는 것을 강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공공재로서의 문학의 위의를 생각할 때 작품의 수월성으로 작가의 품격을 선양하는 일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몇몇 유명 작가들의 적절치 못한 행위로 불거졌던 성을 둘러싼 추문들도 법적인 처벌 이외에는 달리 규제할 방도가 없다는 이유로 개인적 일회성 자성 自省으로 파편화되어 있을 뿐 더 이상의 논의는 진전되고 있지 않은 것도 되짚어 보아야 할 문제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혼성모방의 기치 아래 표절의 행태가 단죄되기는커녕 더욱 만연되어가고 있음을 인지하면서도 암묵적 방치 상태로 버려져 있다는 것이다.

이런 여러 문제들의 근저에 자리잡고 있는 자본주의, 권위주의, 황금만능주의의 폐해가 우리 문단을 잠식하고 있는 적나라한 현실이라면 자칭 문단의 어른부터 패기만만한 신예에 이르기까지 분연히 예술가로서 품격과 위상을 높이겠다는 결기를 보여주어야 할 때가 지금이 아닌가 싶다.

 

경제력 세계 11위의 나라에서 OECD 국가 중 독서량 꼴찌의 현실은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들만의 리그로 추락한 문단의 참담함을. 문인들의 작품을 톻한 수입이 연간 몇 십만원에 불과하다는 푸념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어디선가 메모해 둔 글 하나가 떠오른다.

 

한국시단이 이처럼 침체된 것은 대중의 정서와 세대 취향이 일회적이고 휘발하는 성질로 바뀐 탓입니다. ...중략 ... 시인은 언제나 외롭고 고통받는 자입니다. 유폐와 유배를 즐기며 낙심에 익수해질 때마다 더 깊은 절망으로 스스로를 밀어넣는 자입니다. ...하략 ...( 이병철, 『애지』 2016년 여름호)

 

 

우리 문단에서도 부익부빈익빈 현상은 일반화 되어 있다. 문학 생태계에도 유통과 소통의 먹이사슬이 존재하고 있으며, 자본주의와 권위주의의 작동은 여전히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김현은 문학은 쓸모가 없기 때문에 유용하다고 했고, 오규원은 그의 시 「용산에서」에서 시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읊조렸다. 위의 인용한 글을 오버랩해서 곱씹어 본다면 오늘날의 작가들은 무모한 객기와 광기로 자신을 옹호하기 보다는 가난함의 단단함을, 외로움의 사치를 만끽하는 존재가 되어야 마땅하다. 명예와 부를 얻기 위해 스스로를 황금과 권력의 불구덩이 속에 밀어넣으며 자신의 작품을 상품화하는 것에 반기를 들어야 한다.

 

12월은 한 해의 마지막 달이다. 문학에 뜻을 둔 많은 사람들이 신춘문예의 좁은 문을 열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한다. 극소수의 사람만이 관문을 뚫고 비로서 엄중하게 대중 앞에 나서는 영예를 얻는다. 이와 같이 작품의 독창성 하나만으로 겨루는 세계 유일의 제도인 신춘문예의 열기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기존 문단의 적폐를 과감하게 떨쳐내고 새로운 한국문학의 지형을 개척하겠다는 의지는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검증할 수 있을까?

 

지령 100호를 향해가는 계간 『시와 산문』은 천 오백 만원의 상금을 내놓고 세 번째 신인문학상을 준비하고 있다. 시와 수필, 평론 세 분야에 걸쳐 시류에 현혹되지 않고 올곧게 자신만의 목소리로 풍진 세상을 벼려낼 신인들이 나타나 주기를 기다리는 일이 절실한 까닭은 왜곡된 한국문단의 적폐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으며. 기존의 시인, 작가들에게 희망을 걸기에는 너무 때가 늦었다는 자괴감을 떨쳐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문득 육사의 시「광야」가 떠오른다. 12월이 한 해의 마지막이 아니라 새해를 즌비하는 시작임을 어찌 잊으랴.

 

지금 눈 내리고

메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시를 뿌려라.

 

 

-계간 시와 산문 2017년 겨울호 권두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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