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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최대한 빨리 방에 숨어들어 다시 소설 쓰고 싶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6. 5. 29. 11:10

한강 “최대한 빨리 방에 숨어들어 다시 소설 쓰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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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이 중국 대륙으로 흐른다. 소설가 한강(46)의 작품들이 본격적으로 중국 문학시장에 진출한다는 얘기다. 계기는 물론 맨부커인터내셔널상 수상이다.

24일 낮 서울 동교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수상 이후 첫 기자간담회. 널찍한 카페 공간이 모자랄 정도로 많은 수의 국내외 취재진이 몰렸다. 특유의 침착함을 잃지 않은 한씨는 가만가만 그러나 또박또박, 수상 순간의 심경, 번역의 중요성, 새 장편 『흰』(난다·사진)의 내용, 다음달 열리는 관련 미술전시에 대해 설명했다.

| 오래 전 작품으로, 이렇게 먼 곳서
상 받는 사실이 무척 이상했다


질의응답 중간쯤 한씨 소설의 해외 판권을 관리하는 KL 매니지먼트의 이구용 대표가 그간의 계약 진행 상황을 공개했다. 대뜸 “중국의 한 출판사가 한씨의 장편을 모두 출판하고 싶어 한다”고 밝혔다. 이미 출간된 『채식주의자』『검은 사슴』 이외에 나머지 장편 네 편을 마저 수입하겠다는 얘기다. 특히 “『소년이 온다』는 처음에는 계약을 꺼렸으나 곧 마음을 바꿔 역시 계약 의사를 밝혔다”고 했다.

『소년이 온다』는 ‘80년 광주’의 희생자들을 소재로 한 작품. 정치적 소재에 지극히 민감한 중국 당국 심기를 거스르는 내용일 수 있지만 맨부커인터내셔널상 수상이 그런 걸림돌마저 무력화시켰다는 얘기다.

이 대표는 “『채식주의자』의 경우 인도 남부의 한 소수 언어권에서도 계약을 맺고 싶어 한다”고 소개했다. 지금까지 27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영국에서는 추가로 2만 부를 찍기로 해 수상 이후 제작 부수가 4만 부로 늘었다. 『소년이 온다』는 중국까지 포함하면 11개 나라에 팔렸고, 이날에야 서점에 깔린 『흰』에 대한 관심도 크다고 했다. 느리지만 한눈 팔지 않고 자신 만의 골방에서 뚜벅뚜벅 걸어온 한강 소설의 국제적 약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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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맨부커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해 세계적 주목을 받은 소설가 한강. 24일 간담회에서 “이제 시작이다. 한국문학 해외 진출이 늘 것”이라고 했다. [사진 박종근 기자]


한씨는 “수상작 발표 순간 시차 때문에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졸린 상태였다”고 했다. “발표 직전 커피를 한 잔 마셔 둬 시상식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큰 동요 없이 담담했던 이유는 “오래전 작품인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려서 이렇게 먼 곳에서 상을 받는다는 사실이, 좋은 의미로, 무척 이상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뜨거운 관심이 부담스러워 앞으로 작업이나 생활에 영향이 없겠느냐고 묻자 “처음에는 택시를 탔다가 차가 막혀 지하철을 갈아 타고 오늘 간담회장에 왔는데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며 “이런 자리가 모두 끝나면 최대한 빨리 내 방에 숨어 들어 소설을 다시 쓰는 게 소란을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 의역이 원작 훼손이라고 생각 안해
중국서 모든 장편 출판 제의 들어와


번역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자 한씨는 “한 줄의 문장을 번역하더라도 수 많은 다른 번역들이 있을 수 있다. 언어의 섬세함, 예민함에 항상 매료되기 때문에 그런 번역의 세계가 무척 흥미롭다. 한 세계를 다른 세계와 연결하는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일대일 직역(直譯)과 원문을 일부 수정하는 의역(意譯) 가운데 어느 게 맞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소년이 온다』의 영어 번역은 80년 당시의 역사적 맥락을 외국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세 부분에 걸쳐 한글 원본과 일부 다르게 했는데 나중에 문장 별로 대조해보니 원작에 충실한 번역이었다. 원작훼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 65편 짧은 글 모은 새 장편 『흰』
태어나자마자 죽은 언니 그려


이날 간담회는 『흰』 출간에 맞춰 출판사 난다와 『채식주의자』의 창비가 함께 주최했다. 예약 판매만으로 4만 부를 찍은 『흰』은 65편의 짧은 글을 모아 시집 같기도 산문 같기도 한 작품이다.

한씨는 “2차 대전 때 폭격으로 도시의 90% 이상이 파괴됐던 폴란드 바르샤바에 2013년 하반기 머물렀는데, 당시 희생자들과 태어나자마자 죽은 내 언니에게 더럽힐 수 없는 투명함, 생명, 빛, 밝음, 눈부심 같은 것들을 주고 싶어 쓴 작품”이라고 했다.
 
▶관련 기사
①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 한강은 누구? '채식주의자'는 어떤 작품?
②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에 번역자가 눈물 보인 까닭


작가 자신이 영매(靈媒)가 돼 진혼이라도 하려는 듯 소설은 간곡하면서도 서정적이다. 한강식 도발도 있다. 눈 오는 밤, 전신주 밑에 엉망으로 넘어져 있다가 일어서던 한 사내의 속내를 한강은 다음과 같이 상상한다.
 
씨팔 그 끔찍하게 고독한 집구석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이게 뭔가, 대체 이게 뭔가 생각할 때 더럽게도 하얗게 내리는 눈.”

씨팔 그 끔찍하게 고독한 집구석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이게 뭔가, 대체 이게 뭔가 생각할 때 더럽게도 하얗게 내리는 눈.”

DA 300


세상 모든 어려움을 흰색은 어쨌든 덮는다는 얘기다.

글=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