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를 내려와 지방도로 접어들자 강원도의 길은 구불텅구불텅 휘었다가 탄력적으로 펴지기를 반복했다. 굳이 지방도를 선택한 것은 바로 그런 근육질 도로의 살아 있는 힘을 느껴보기 위해서였다.

운전은 새로 최신형 SUV를 구입한 후배 J가 맡았다. 그 차는 J 자신처럼 힘이 넘쳤고 가파른 길이든 구불대는 길이든 거침없이 힘차게 타고 들어갔다.

J는 직장에서 미처 마무리하지 못하고 온 일 때문에 오래도록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비록 자동차와 블루투스로 연결된 무선 헤드셋을 쓰고 있다고는 하지만 정신이 분산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뒷자리의 또 다른 후배 O는 언제부턴가 완강한 침묵으로 운전 중 통화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었다. 전화통화를 끝낸 J가 내게 물었다.

“형님, 이번에 제가 기획하고 있는 방송 다큐멘터리가 ‘어른이 된다는 것’이라는 제목인데요. 우리 사회에서 언제부터인가 진짜 어른다운 어른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잖아요. 기껏 이기적인 소인배들만 설쳐대는 세상 아닙니까. 한 사회를 이끌어가고 어지러운 세상에 모두가 경청할만한 한 말씀, 법어를 내려주시는 진정한 어른들은 모두 어디 가신 겁니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에이 왜 그러세요, 형님. 형님이 바로 그런 어른이실 수도 있잖아요.”

“괜한 소리 말고 운전이나 똑바로 해. 난 절대 그런 사람 아니고 될 생각도 없으니까 기대를 버려.”

“좋습니다. 한 가지만 묻죠. 형님은 이 시대의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게 어떤 거라고 생각하세요?”

“정말 내 생각이 궁금해?”“그럼요. 우리 컨셉만 정해지면 지금 바로 제작 들어간다니까요.”

“정말이지?”

“정말요.”

“입부터 닥쳐. 그러면 돼.”

“넹?”

“우하하하하하홧!”

뒷자리에서 침묵하던 O가 풍선이 터지는 것 같은 큰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부연해 설명했다. “나이 들었네, 경험이 많네, 혼자만 아네 하면서 마이크 잡고 떠들어대지 말고 입만 닥치고 있어도 어른스러워 보여. 입을 열고 닫을 때를 아는 사람이 진짜 어른이지.”

어쨌든 흥겨운 여행길이었다. 천천히 가면서 길과 자연, 낯설면서도 친근한 사람 사는 풍경의 맛을 보면 되었다.

그러다 문득 내 눈길이 길 옆에 있는 표지판에 멎었다. 20대 때 여러 차례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고 산길로 한참 올라가서 탐승을 하고 왔던 호젓한 사찰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야, 저 절 이름 보는 게 얼마 만이냐. 한 이십년은 넘었겠다.”

“형님, 한 번 가보실래요? 시간도 많은데.”

마음의 품이 넉넉한 후배 J가 속도를 늦췄다.

“그래, 얼마나 변했는지 궁금하네.”

차는 지방도보다 더 가늘고 구절양장 같은 소로로 접어들었다. 이어서 가파른 산길을 숨이 턱에 닿게 치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고개를 넘고 내리막길에 들어서자 갑자기 길이 넓어지고 사하촌(寺下村)의 식당과 가게, 민박집 같은 숙박업소가 등장했다. 노점에서는 전을 굽는지 기름 냄새와 연기를 풍겨대고 있었다.

“어, 이렇게 을씨년스러운 날 무슨 손님이 있다고 여기는 이렇게 흥청대지?”

“그러게요. 요즘 대학생들은 이런 데 오지 않을 거 같은데.”

“온다 해도 그렇지, 전 좋아하는 대학생이 많을까?”

마을을 돌아서자 갑자기 깊숙한 골짜기가 나오고 아직 채 떨어지지 않은 붉은 나뭇잎이 매달린 단풍나무가 나타났다. 나무 아래로 맑은 계곡물이 소리내어 흐르고 있었고 높고 크지는 않아도 절묘한 모양의 폭포까지 등장했다.

“히야, 순식간에 본전 뽑네.”

일행은 눈 앞의 자연에 각자 감탄을 토해냈다.

“정말 오기를 잘했군. 이런 데가 아직 남아 있어서 난 강원도가 좋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절로 가는 길 중간에 세워진 조립식 건물을 지나치게 되었다. ‘하마비(下馬碑)’라고 쓰인 비석이 비스듬하게 서 있었는데 오십대 남자가 ‘매표소’라는 흐릿한 글씨가 붙어 있는 건물에서 걸어나왔다. 차가 막 그의 앞을 지나치려는 순간 그가 차체를 두드렸다. J가 창문을 열자 그는 “여기 절 안쪽은 좁아서 차 댈 데가 없어요. 차 돌려서 저 아래쪽 주차장에 대고 걸어가세요” 하는 것이었다.

J는 많이 와본 사람처럼 막힘없이 술술 대답했다.

“저 위 안쪽 넓은 데서 차를 돌려서 나올게요. 여기서는 어차피 차 못 돌리잖아요.”

낡은 양복에 유행이 지난 두꺼운 뿔테안경을 쓴 남자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고 나서 다시 ‘절대로 절까지 올라가면 안 된다, 저 위에서 반드시 차를 돌려서 나오라’고 말했다.

삼십여미터쯤 차가 올라가 모퉁이를 돌자 차를 돌릴 수 있을 만한 공터가 나왔다. 그곳에서 차를 돌리려면 운전대를 열 번은 꺾고 돌려야 하니 미친 척하고 절까지 올라가자, 올라간 김에 남자가 우리 존재를 잊어버릴 때까지 천천히 구경하다가 편하게 돌려서 나오자는 합의가 연속으로 이어졌다. 마치 얄타회담-포츠담 회의-모스크바 3상회의가 연속해서 개최되듯.

결국 차는 절까지 나 있는 흙길을 올라가 서너 대의 사찰 차량이 서 있는 곳에 세워졌다. 일행은 느긋하게 절을 구경했다. 내려가는 길에도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조립식 건물 앞 남자의 정체에 대해, 절 아래에서 차나 말을 세우고 굳이 걸어 올라가게 하는 관습에 대해, 절에 새로 세워진 거대한 사찰 유래비의 설치비가 어디서 나왔을지에 관해.
그러다 하마비 앞에 차가 도착하자 전에는 없던 무릎 높이의 ‘일단정지’ 팻말이 도로 한가운데 세워져 있는 게 보였다. 차는 급정거했고 무방비하게 있던 뒷자리의 O의 머리가 차의 천장을 뚫고 나갈 뻔했다. J가 차 밖으로 나가서 팻말을 치우려하자 남자가 나왔다.

“아이고, 미안합니다!” J가 넉살좋게 말하며 팻말을 치우려는데 남자가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이 어째 그래요!”

그건 그 남자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항의 표시이자 최대한의 비난이었고 준엄한 질책이며 훈계였다. J는 한 사람 당 2000원의 입장료를 치르고는 다시 “미안합니다아! 미안합니다아!” 하며 차로 돌아왔다. 남자는 위엄 있게 서서 사천왕상 같은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한마디 논평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짜 이 시대의 어른이 저기 계시네.”

그날 내내 그 ‘어른의 말씀’은 세 사람 사이에서 수백 번은 쓰였다. 꾸짖듯 가르치듯 설득하듯 호소하듯 다독거리듯…. 사람이, 어째, 그래요!

 

※‘성석제 소설’은 성석제씨가 소설의 형식을 빌려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실험적 칼럼으로 4주마다 연재됩니다.

 

성석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