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이 1810년 유배지에서 부인이 보내준 치마폭에 쓴 ‘하피첩’ 부분. 경직의방(敬直義方), 즉 공경한 자세로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하고 의에 입각해 자신의 외부 행동을 단속하라는 뜻이다. 『주역』의 한 구절이다. [중앙포토]
다산 정약용(1762~1836)의 ‘하피첩’이 국민 품으로 돌아왔다. 14일 오후 서울 평창31길 서울옥션스페이스에서 열린 고서(古書) 경매 ‘책의 기운 글자의 향기’에서 보물 제1683-2호 하피첩은 7억5000만원에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이 낙찰했다. 개인 소장자에게 넘어갈 것을 염려했던 문화계는 공공 박물관이 새 주인이 됐다는 소식에 안도하는 분위기다.
서울옥션이 고서 경매의 하이라이트로 잡은 하피첩이 28번째로 등장하자 장내가 술렁거렸다. 보물급 경매품이 18점 나온 데다 불경이 다수 출품돼 문화재 애호가와 연구자들, 스님 등 3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객석을 채웠다.
음정우 경매사는 “가장 인기 있는 보물, 다산의 얼이 깃들어있고 가족 사랑이 넘치는 하피첩입니다”라고 소개했다. 시작가는 2억5000만원이었으나 바로 5000만원씩 응찰가를 올려 단숨에 6억원까지 치솟았다. “6억5000, 6억5000, 7억, 7억 나왔습니다. 7억5000, 7억5000 안 계십니까.” 음 경매사가 7억5000을 세 번 연호한 마지막까지 경합했던 실학박물관(관장 김시업)은 결국 7억원 문턱에서 국보급 유물을 놓쳤다.
하피첩은 2011년 부산저축은행 사건 때 압류된 다산의 편지 글로 문화동네에 화제가 됐던 명품이다. 다산이 1810년 가을, 전라도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경기도 양평 마현에 있던 부인 홍씨가 보내온 헌 치마를 재단해 만든 서첩이다. 두 아들 학연과 학유에게 써준 가계첩(집안사람들이 경계할 것과 교훈으로 삼을 것을 담은 첩)으로 가족을 생각하는 다산의 따듯한 마음 씀씀이를 느낄 수 있어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경매 현장을 지켜본 고서 전문가 김영복(옥션 ‘단’ 대표)씨는 “다산 선생의 유품이 10억원도 안 되는 값에 팔리다니 아쉽다”면서도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하게 돼 다행”이라고 평가했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은 “문화재 제자리 찾기에 힘을 보태게 돼 뿌듯하다”며 “스토리텔링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하피첩’의 다양한 활용에 상상력을 더 하겠다”고 말했다.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은 “다산의 정신을 살릴 수 있는 여러 박물관이 공조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보겠다”며 기뻐했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