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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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시킨 일 2011

불의 산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4. 1. 25. 00:24

 

불의 산

- 민둥산 억새

 

 

긴 문장 하나가 산을 오른다

꼬리에 꼬리를 문 맹목의 날들처럼

검은 상복의 일개미들의 행렬처럼

발자국들 눌리고 덮히며 수직으로 서려는 탑인 듯

길은 꿈틀거린다

고독한 여행자 같은 가을이 느릿느릿

산의 몸을 더듬을 때마다 식은 땀을 흘리는 숲을 지나서

이윽고 다다르는 불의 산

긴 문장은 품사를 버리고 하늘을 우러른다

사랑을 잃은 척박한 가슴이 저럴까

막 날개가 돋은 새들이 비상하기 전에 내지르는 으악 소리가

추억을 태울 때 드러나는 하얀 불길 같다

쉬익 쉬익 능선을 타고 달려온 말 무리들

어둠별을 닮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씨앗을 날리기 위하여

기꺼이 바람 맞으러 왔다

혹은 돌아가지 않기 위하여 길은 스스로 몸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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