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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저수지엔물길이 없디2001

산길을 돌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2. 12. 30. 02:06

산길을 돌다 / 나호열

  삼릉 ↔ 포석정

 

 

가까운 길을

멀리 돌아가야 하는 것이네

삶과 죽음

한 뼘도 안 되는 거리를

많은 세월을 소모해야 하는 것처럼

한걸음에 달려갈 수 있는 그대 앞을

수 만 보를 터벅거리며 걸어야 하는 것

산길은 성급하게 서둘러서는 안되네

흘러온 시간만큼 거대해진 왕릉 옆에

안개를 매단 소나무 숲을 지나

바위마다 새겨진 마애불을 보면

누군지도 모를 천 년 전의 사람들이

합장하며 서 있고

누군가가 이 길을 먼저 즈려밟았다는 놀라움이

소름으로 끼치는 일이네

그대를 향하여 가는 길이 어디 먼 곳에 있던가

문신처럼 마음속에 또아리 튼

물의 길, 바람의 길, 하늘의 길이 아니었던가

이제는 숨이 차다

그리움도 오래 걸으면 저렇게 풀섶에 주저앉아

한 시절을 달래는 쑥부쟁이가 되는 것을

다시 고갯길을 내려 잡으면

무거워진 등짐을 구름으로 날려 보내놓고도

발자국 소리는 텀벙텀벙 계곡 물에 빠지네

가까운 길을

왜 멀리 돌아가야 하는 지

웃는 듯

우는 듯

천 년 전의 미소가 이정표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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