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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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열정과 상실의 날들 !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2. 10. 23. 23:21

 

젊은 열정과 상실의 날들 !

 

 

 

 

                                                                                                       나병장

메밀꽃 필 무렵 / 나호열

 

 

스물 넷 젊은 병사는 밤이면 막사를 나와 강가로 보초를 서러 갔다네

죽도록 사랑한다던 여자는 편 지 한 통으로 죽음을 대신하고

소리죽여 흐르는 강물에 수 천 통의 편지를 쓰고 또 썼다네

잠들어 악몽에 시달리는 것 보다

아직 젊어 해독할 수 없는 풀벌레의 울음과

아직 젊어 껴안을 수 없었던 바람과

부동의 나무들과 함께

아무런 이야기도 나눌 수 없는 적막 속으로

수 천통의 편지는 쌓여만 갔는데

눈 감으면 떠오르는 얼굴 때문에

눈에 눈물을 담고 어둠을 바라보는 것이 더 나았는지도 몰라

스물 넷 젊은 병사는 밤이면 막사를 나와 강가로 보초를

서러 갔다네

영원토록 변치 말자던 여자는 편지 한 장으로 순간을 증명하고

지나간 추억처럼 또렷하고 영롱한 별들을 향해 빈 방아쇠를

당기도 또 당겼다네

눈 부릅떠도 보고 싶은 것이 보이지 않을 바에야

아직 젊어 용서할 수없는 이별과

아직 젊어 녹여낼 수 없는 그리움을

그믐날 어둠으로 덮어버리는 것이 차라리 나았는지도 몰라

이제는 더듬거리며 막사를 나와 어둠을 향해 가는데

저기 수 만개의 등불이

바람 불면 꺼질듯 꺼지지 않고 환하게 돌아 오르는 것을

잊어버리자던 수 만개의 별들과 달이

메밀꽃 여린 숨으로 매달려 있는 것을

스물 넷 젊은 병사는 울면서 바라 보았네

또렷이 이별과 그리움을

                                     나병장                                                                  제 홀로 피워낸 너른 메밀꽃밭으로 가슴에 받아 들였네

 

시집 『당신에게 말걸기』(2008)에 수록

 

                                                                                                    나일병 (가운데)

 

37번 국도는 임진강 하류 파주 땅에서 시작하여 덕유산 자락 거창 마리면에서 끝나는 종단 縱斷 길이다. 34개월 넘게 나는 그 길이 어디로 가는 길인지도 모르면서 그 길의 어디쯤에서 서성거렸다. 전곡에서 동으로 달려 포천으로 남행하는 그 어디쯤에서, 먼 훗날에 그 이름을 알게 된 푸른 영평천을 만나고 애인인양 품에 안고 살았던 군용 5만분지 1 지도에 핀으로 꽂은 나의 좌표는 끊임없이 흔들리는 깃발 어디쯤이었다.

                                                                                                                                  나상병

 

백의리 다리를 건너자마자 포진한 우리 砲隊는 마치 배고픈 맹수처럼 포신을 북녘 땅을 향해 겨누고 있었다. 양사언이 시를 읊었던 금수정이 지척에 있었으나 일상의 반경은 그 너머로 결코 넘어가지 않았다. 지금은 말끔이 포장이 되고 확장이 된 37번 국도는 영평천을 건너는 진군교를 지나가지만 70년대에는 창옥병을 지나는 비포장도로였다. 경기도 포천군 창수면 면소재지로 가기 위해서는 지금도 진군교를 건너가야 하는데 진군교의 북쪽에는 우리 부대의 초소가 있어 야간 보초를 서기 위해서는 15분쯤 걸리는 산길을 넘어야 했다. 새벽이면 물안개가 피어 우의를 써야만 2시간의 보초 근무를 마칠 수 있을 만큼 야지의 경계 근무는 사계절을 가리지 않고 힘들었다. 기다림도 지쳐가고 그리움도 삭아가는 20대의 중반을 넘어가면서 시대의 곡절만큼 나의 미래는 구불거렸다. 하루 빨리 군역 軍役을 마쳤으면 하는 열망만큼 불투명한 진로에 대한 불안도 커져가던 어느 초가을날 밤 보초를 서러갈 때 달빛을 받아 휘황한 메밀꽃이 출렁거리는 광경과 마주쳤었다. 바람에 흔들리며 달빛에 출렁거리는 메밀꽃은 황량한 가슴에 지펴지는 등불과도 같았다. 개인은 없고 집단의 숨막히는 위계와 이익이 최고선인 군영 軍營의 삭막함을 벗어나서 하나가 아닌 여럿이 모여 또 하나의 커다란 하나를 만드는 메밀꽃의 웅자함에서 어우러져야만 살아갈 수 있는 내 삶의 희노애락을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었다. 지금 그 진군교에는 초소도 없고 초병도 없으나 35 년의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