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장날 / 나호열
이제는 늙어 헤어지는 일도 섭섭하지 않은 나이
사고 싶은 것도 없고 팔아야 할 것도 없는 장터 이쯤에서
산이 높아 일찍 노을 떨구는
잊어버린 옛사랑을 문득 마주친다면
한 번 놓치고 오래 기다려야 하는 버스를 기다리며
낯익은 얼굴들 묵묵부답인 저 표정을 배울 수 있을까
알아도 소용없고 이름 몰라도 뻔히 속 보이는
강물을 닮은 얼굴들이 휘영청 보름달로 떠서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는 아라리로
누구의 가슴을 동여매려 하는가
함부로 약속을 하지 말 일이다
다음 장날에 산나물이라도 팔 것이 있으면 오고
살 물건이 없으면 오지 않을 것이다
문득 피어 아름다운 꽃이 아니라
질 때 더욱 보고 싶어지는 그런 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