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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오르는사다리(시)

추억, 남당리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1. 8. 14. 20:16

 

추억, 남당리/ 나호열

 

지금, 바다로 가고 있다

 

어쩔 수 없는 벼랑 끝의 향기

그에게서는 잘 익은 사과술 내음이 난다

추억 때문이다. 길을 잘못 들 때도 있지만

끈질긴 추억의 힘은 더디게, 때로는

숨차도록 저 편,

멈추어 선 시간의 묘지로 이끈다

 

나는 추억을 경멸한다. 헝크러진 머리 속은

비워지지 않은 쓰레기통 같다

쓰다가 지워버린 편지, 부패하기 쉬운 시간 사이로

기억되지 않은 몇 개의 주소, 그리고 유령들

 

그는 입 봉한 추억의 항아리 같다

그 항아리는 너무 크거나 작아서

가슴이 터져버리거나 결석처럼 전율을 일으킨다

내가 만일 벙어리가 되어 그를 사랑한다면

그 항아리에 담겨 있을 것 같은

태양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였고

긴 방죽 너머로 갈대가

갈대가 흔들거리며 비를 뿌렸고

아! 바다는 한숨을 내쉬며 손가락 마디 사이로 빠져나가고

아! 추억은 질퍽거리는 개펄에 수많은 상형문자로 남아 있고

아! 항아리 속에 가득했던 향기는 한 방울 눈물이었다

 

항아리가 깨지지 않도록 나는 조심스럽다

길은 끝없는 개펄 같은 가슴을 밟고 지나간다

추억은 다시 밀려 들어오는 슬픔으로 가득찬다

 

지금, 바다를 떠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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