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남당리/ 나호열
지금, 바다로 가고 있다
어쩔 수 없는 벼랑 끝의 향기
그에게서는 잘 익은 사과술 내음이 난다
추억 때문이다. 길을 잘못 들 때도 있지만
끈질긴 추억의 힘은 더디게, 때로는
숨차도록 저 편,
멈추어 선 시간의 묘지로 이끈다
나는 추억을 경멸한다. 헝크러진 머리 속은
비워지지 않은 쓰레기통 같다
쓰다가 지워버린 편지, 부패하기 쉬운 시간 사이로
기억되지 않은 몇 개의 주소, 그리고 유령들
그는 입 봉한 추억의 항아리 같다
그 항아리는 너무 크거나 작아서
가슴이 터져버리거나 결석처럼 전율을 일으킨다
내가 만일 벙어리가 되어 그를 사랑한다면
그 항아리에 담겨 있을 것 같은
태양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였고
긴 방죽 너머로 갈대가
갈대가 흔들거리며 비를 뿌렸고
아! 바다는 한숨을 내쉬며 손가락 마디 사이로 빠져나가고
아! 추억은 질퍽거리는 개펄에 수많은 상형문자로 남아 있고
아! 항아리 속에 가득했던 향기는 한 방울 눈물이었다
항아리가 깨지지 않도록 나는 조심스럽다
길은 끝없는 개펄 같은 가슴을 밟고 지나간다
추억은 다시 밀려 들어오는 슬픔으로 가득찬다
지금, 바다를 떠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