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산문 읽기

아이들은 가라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1. 2. 9. 23:32

 

 

아이들은 가라

 

임수현

 

“살인사건은 늘 그렇듯이 ‘죽은’ 사람보다 ‘죽인’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진다. 게다가 살인자는 거의가 사내다. ‘칼잡이 잭’도 마찬가지이다. 미궁 속 혹은 정신병원으로 뚜벅뚜벅 걸어간 잭 더 리퍼는 외과의사로, 유태인 군인으로, 폴란드 태생의 남색가 공작으로, 영국 왕실로,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6년 전인 1883년에 이미 죽은 마르크스로 100년 넘게 살아왔다. 그것은 여전히 유효하며, 이제 칼잡이 잭은 마니아를 거느린, 경외하는 인물로 콘돔으로까지 부활했다. 하지만……. 매리 앤 니콜스와 다크 애니, 리즈는 어디로 간 것일까. 잭의 전리품이 되기 전에 이미 여인들은 가난과 질병, 폭력과 중독으로 반쯤 동공이 풀려 있었다. 목덜미와 자궁을 도려낸 잭의 칼날은 확인 사살에 불과했다. 문제는 실재實在. 이제 모두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그럴까. 장맛비가 며칠 이어져 질척거리는 시장 골목을 걸으며 나는 다크 애니가 선술집 계단에 앉아 맨발을 간댕거리며 부르는 노랫소리를 들었다. 나도 어느새 익숙한 가락을 허밍으로 따라부르고 있었다. 노래의 제목을 떠올렸지만, 나는 결국 알아내지 못 했다. 그리고 읍邑의 군민회관 앞 광장.

 

……

 

날이 차가워지면 가창오리 떼처럼 약장수가 읍을 찾아왔다. 대개 사내고 더러 계집과 아이들이 딸린 약장수 가족은 한밤중 들리는 웃음소리처럼 읍의 여기저기를 뒤숭숭하게 달싹였다. 여자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천막 지붕을 정수리로 들이박고 아래로 가뿐히 내려앉는 여자는 하늘을 누비는 새가 아니라 오리나 닭, 타조 따위 날개가 퇴화한 가금家禽처럼 보였다. 여자는 머리와 몸통, 다리의 길이가 엇비슷한 땅딸보였다. 하지만 땅을 딛고 천장을 향해 솟구치는 몸은 제법 날렵하고 땅을 박찰 때마다 스프링을 퉁기듯 팽팽한 공명이 느껴졌다. 여자는 어쩌면 내게 이런 말을 들려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사내는 사내를 이길 수 없어서 계집과 아이들을 때리는 거야. 그 중에 정말 비겁한 놈들은 계집과 아이를 죽이기까지 하지. 계집과 아이들이 불쌍한 사내들을 보듬어주어야 해. 사내가 사내들을 죽이는 전쟁을 막으려면 우리가 피를 흘릴 수밖에 없어. 하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킥, 웃음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

 

시장통은 어둡다. 나는 아빠를 찾아간다. 과일전과 생선전을 질러가면 곧장 군민회관 앞 광장에 닿을 수 있지만, 나는 일부러 튀김집과 국밥집 길로 둘러간다. 튀김집은 시장통 배꼽이다. 천장이 없는 튀김집 합판 벽에는 검게 더께 진 기름 자국이며 곤충의 주검, 쥐오줌 자국이 누수처럼 번지고 있다. 이미 석 달이나 지난 팔월 달력에는 통통한 바퀴벌레 한 마리가 헐벗은 여자의 젖무덤을 핥고 있다. 언뜻 보면 바퀴벌레는 황색사진의 치부를 가린 조잡한 모자이크처럼 보인다. 사내들은 바퀴벌레가 부러운지 연신 해변의 여자를 쳐다보며 소주잔을 베어 물듯 홀짝 털어넣고 녹색 플라스틱 종지에 담긴 굵은 소금을 집어먹는다. 가끔 성난 취객은 정말 소주잔을 찌꺽찌꺽 씹어 먹었다.

 

나는 진저리를 치고 걸음을 서두른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아빠를 찾으러 오는 길은 튀김집이 마지막이었다. 아빠는 으레 튀김집 앞 축축한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거나 튀김집 여자와 싸우고 있었다. 나는 눈이 게게 풀린 아빠를 겨우 부축해 여자의 손목을 비틀고 침을 뱉었다. 하지만 아빠는 지금 여기 없다.

 

군민회관 앞 광장으로 가는 딴 길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과일전과 생선전을 질러갈 수도 있고, 아예 시장 옆구리를 끼면 밝고 환한 큰길이 나온다. 생선전에는 큰고모가 홍합, 굴, 백합 따위 조개류를 팔고 있다. 아빠가 술에 취하듯 큰고모는 날이면 날마다 이십 년 넘게 이웃으로 장사하는 사람들과 번갈아 싸웠다. 살집 좋은 큰고모는 명태처럼 마른 여자를 젖은 시장 바닥에 쓰러뜨리고 머리끄덩이를 야무지게 뜯어놓는다. 싸움이 끝나면 큰고모는 손바닥을 탁탁 털고, 깔고 앉은 돈 통에서 소주병을 꺼내 들이켠 뒤 홍합 빈껍데기에 사마귀처럼 돋은 관속을 뜯어먹었다. 둘 다 쉰을 넘긴 남매는 시장통에서 유명한 알코올 중독자다. 시장통 옆구리를 끼고 난 큰길에는 같은 학년 애들 가게가 여러 곳 들어 있다. 화장품 가게, 속옷 가게, 정육점 따위가 화투장처럼 그늘 없이 들어선 그곳에는 식어빠진 튀김이나 비늘이 다 떨어진 생선에서 풍기는 비릿하고 매캐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 취해 널브러진 사람도 없고, 코를 쫑긋거리는 살찐 쥐도 없다. 다만 하나같이 뚱뚱하고 좋은 옷을 입은 아이들이 자기네 가게 근처에서 알짱대고 있을 게 빤하다.

 

나는 그 아이들이 두꺼비나 뱀보다 더럽고 싫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아이들은 툭하면 코를 후비며 말라깽이의 멱살을 잡거나 연필로 손등을 쿡쿡 찔렀다. 짝꿍인 말라깽이가 책상에 엎드리거나 뒤꼍 화장실로 도망치면 애먼 나더러 ‘떡치는 그림’을 그려달라고 협박했다. 엄지손가락을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 사이에 집어넣고 꼴리기를 기대하는 아이들의 입에서는 들큼하면서도 역겨운 냄새가 풍겼다.

 

나는 변소 뒤에 숨어 말라깽이와 담배를 태우면서 그놈들은 ‘좆나게’ 케첩을 먹어서 그런 냄새가 난다고 낄낄거리며 벌어진 앞니 새로 침을 찍, 뱉었다. 나는 그 냄새를 맡을 때마다 그다지 게워낼 것도 없는 목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고 노란 신물을 뱉어내 내 어깨에 턱을 괴고 숨을 쌕쌕거리는 케첩들의 면상에 발라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걔들보다 한 뼘이나 작았고, 공부를 못했다. 나는 가끔 술 취한 아빠를 이길 수 있는 내가 왜 케첩들에게 늘 질 수밖에 없는지 무척 갑갑했다.

 

오늘은 아빠가 한 달 월급을 받는 날이다. 그 일이 있고 금세 한 달이 지났다. 아빠는 하룻저녁에 한 달 벌이를 몽땅 잃어버렸다. 노름을 해서 날렸다면, 아빠 성질에 패악을 부리다 다리 한쪽이 부러지지 않은 것 따나마 다행이라고 주억였을 테지만, 고작 약 두 박스에 오십만 원 넘는 돈을 홀라당 날려버렸다는 건 암만 생각해도 억울했다.

 

처음엔 엄마도 나처럼 분을 삭이지 못했다. 아빠 목을 조르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게거품을 물었다. 하지만 엄마도 전기밥솥 하나를 거저 경품으로 타고 나서는 완전히 넋이 나가버렸다. 여전히 검은색 엑기스를 쪽쪽 빨아먹는 아빠를 이를 갈고 쳐다보지만, 엄마도 저녁이면 슬그머니 군민회관 앞 광장으로 마실 나갔다가 바가지, 두루마리 휴지, 다리미, 냄비를 이고 왔다. 세차장에서 물걸레질하고 날마다 푼돈을 받는 엄마는 새삼스레 살림 장만에 열심이 되었다.

 

시작은 그날 밤이었을 것이다. 방과 부엌 바닥에 흩어진 깎은 밤을 씻어 자루에 담고, 밤껍질을 긁어모아 우물이 있는 뒤꼍의 텃밭에 내다버리고 왔을 때 방은 텅 비어 있었다. 애꾸눈에 한 쪽 팔이 빠진 붉은 병신 곰 코를 빨고 자는 누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날의 시작은 그런 대로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아주 드물게 찾아온 고요였다. 나는 우리에게도 이런 시간이 있다는 게 낯설면서도 괜스레 오줌이 마렵고 심술이 났다. 엄마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밤을 깎았고, 아빠는 모로 누워 소주를 마시면서 가끔 엄마가 깎아놓은 밤을 주워먹었다. 엄마는 아빠의 손등을 살짝 깨물고는 밤 공장 사람들은 킬로그램 수를 귀신같이 안다고 퉁바리를 먹였다. 아빠는 침을 퉤퉤, 뱉고는 소주를 들이켰다.

 

딱 그 병까지야!

 

엄마는 하품을 했다. 붉게 충혈한 눈귀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네가 칼을 잘 쓰면 얼마나 편하겠니.

 

세차장 물걸레질 말고도 엄마는 밤을 깎았다. 밤 한 포대를 깎으면 세차장 이틀 치를 벌었다. 동네 여자들이 좁아터진 방으로 새삼스레 마실 와서 밤 깎는 일을 도왔다. 여자들은 밥 먹고 술 먹고 노래를 불렀다. 보름도 지나지 않아 엄마는 밤 열 포대 깎은 값을 받았다. 여자들은 수고비를 나눠달라며 엄마에게 악다구니를 퍼부었다. 그 뒤로 엄마는 혼자서 밤을 깎았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잠든 누나가 잠결에 손을 뒤채는 바람에 엄마 무릎에 올려진 바가지가 쏟아졌다. 밤껍질이 아빠 머리에 죽은 나방처럼 후드득 떨어졌다.

 

니미럴, 병신 같은 년이 잠버릇도 더럽네.

 

그만 처먹으라고 했지. 딱 한 병이라고 했잖아.

 

그깟 밤 좀 깎는다고 유세냐. 나는 만날 등짐 진다고 등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

 

그럼 사내가 그깟 일도 안 하고 놀고먹겠다는 심사냐.

 

나는 그제야 가슴이 좀 후련해졌다.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나는 아빠의 주먹다짐을 피하는 엄마의 허리춤을 집적거렸다.

 

엄마 돈 줘. 스케치북 사야 해.

 

이 새끼가.

 

엄마 돈 줘. 스케치북 사야 한다니까.

 

나는 뒤엉켜 붙은 엄마와 아빠를 쳐다보며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다.

 

돈 줘. 엄마 돈 줘. 스케치북 사야 한다니까.

 

빈 방에 남은 나는 칼을 들어 밤을 깎아냈다. 밤껍질은 어둠처럼 딴딴하고 깊었다. 찰나 손등이 서늘했다. 나는 손가락을 쪽쪽 빨며 담요를 한쪽 구석으로 밀어냈다. 나는 엄마가 바께쓰에 떨어뜨린 밤 깎는 칼을 호주머니에 쑤셔넣고 바깥으로 나갔다. 문득 나를 버리고 모두 도망가 버렸을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하나도 겁나지 않았다. 나는 주인집 옆구리를 돌아 뒤꼍의 우물로 갔다. 낮은 우물 턱에 엉덩이를 걸쳤다. 문득 죽은 형의 야윈 어깨에 매달린 기분이 들었다. 위태롭지만 기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뿌듯했던 기억이 났다. 엄마나 아빠는 한 번도 나를 안거나 업어주지 않았다. 나는 우물 속을 들여다보며 고함을 질렀다.

 

니미럴, 전부 다 똑같아.

 

정말 억울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니미럴. 전부 다 뒈져버려라.

 

나는 주머니에 든 밤 칼자루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든다. 시장통 천장은 우주를 향해 난 우물처럼 껌껌하다. 드문드문 불타는 별처럼 전깃불이 매달려 있다.

 

나는 잔뜩 부스럼이 나고 험상궂은 얼굴로 담배를 피우는 지구를 본 적이 있다. 환경오염을 경고하는 만화는 그다지 재미가 없었지만, 부스럼 딱지 땡중 지구가 공장 굴뚝을 담배처럼 뻑뻑 피워 물고 있는 꼬락서니는 배를 틀어쥘 만큼 우스꽝스러웠다. 나는 연신 깔깔거리며 부스럼 딱지 땡중 지구의 눈깔에 집 한 채를 그렸다. 그리고 우주로 향한 담배연기에 침목처럼 선을 긋고 사다리를 놓았다. 겨우 다섯 단 짜리 사다리였다. 네모난 칸 속에서 우주는 고작 한 입 베어 먹은 사과 모양의 오른쪽 여백이었다. 결국 내가 가보지 못한 우주는 지구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나는 못생긴 지구와 우리 집처럼 좁은 우주 사이에 놓인 사다리 끝에 버섯 갓 같은 반 타원을 그리고, 세로로 선을 그은 다음 부스럼 딱지 땡중 지구가 굴뚝을 물고 있는 주둥이 가에 동그라미 두 개를 달았다. 지구는 이제 담배가, 사다리가 아니라 근사한 좆을 물고 있었다.

 

니미럴, 전부 다 좆이나 빨고 살아라. 하여튼 이놈의 지구는 사람 살 데가 못돼.

 

나는 우리가─지구에서─ 집도 없는 가난뱅이라는 걸 원망하지 않았다. 슬프지도 않았다. 엄마나 아빠 같은 사람에게도 집 한 채를 허락할 만큼 지구가 호락호락하거나 평등하다고 믿지도 않았다. 그냥 길거리를 지나는 여자에게 염산을 뿌리는 사내랑, 검은 사람 가운데 태어난 하얀 아이의 팔다리를 훔쳐가는 사람들도 살고 있는 지구인데, 술주정뱅이 사내와 성질 못된 여자가 못 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집은 그 다음의 문제였다.

 

아닌 게 아니라 엄마와 나, 아빠, 병신 누나에게 쥐똥 굴러다니는 소리가 늘 장마처럼 들려오는 낮고 기울어진 천장의 셋방은 더할 나위 없이 어울렸다. 나는 엄마가 스란치마를 입고 계란빵을 구워 학교를 마친 나를 기다려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자개농, 흔들의자, 샹들리에…… 비단 보료를 깔아놓고 밤을 깎는 풍경이라니. 레이스 달린 드레스를 입고 침을 질질 흘리며 거위처럼 되똥되똥 걷는 누나라니.

 

작년 운동회 날이었다. 개천절을 하루 앞둔 가을 하늘은 미친 듯이 파랬고, 구름 한 점 없었다. 우리 반은 운동장 왼쪽 버짐나무 아래 모여 있었다. 나는 케첩들─케첩은 언제 어디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얼굴을 달리해 존재했다─의 어설픈 응원을 건성으로 따라하며 하늘을 갈래갈래 찢어 놓은 만국기를 쳐다봤다.

 

만국기가 먹구름으로 변해 신문지 같은 빗줄기를 쏟아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지긋지긋한 운동회가 금세 끝날 텐데. 그래도 오늘만 참으면 더 이상 운동회가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홀가분했다. 드디어 초등학교 시절이 끝난다. 중학생이 되면 더 이상 유치하게 노란 체육복을 입고 청색 백색 머리띠를 매지 않아도 되고, 텀블링을 안 해도 된다.

 

운동회 보름 전부터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면 모래 운동장에서 텀블링 연습이 시작됐다. 어린 학년이 꼭두각시 춤을 추고, 큰 학년 계집애들이 부채춤을 추는 동안 머슴애들은 강당 입구의 그늘에 웅기중기 모여있다. 색동옷을 입은 아이들이 총소리에 놀란 새 떼처럼 한꺼번에 물러가면, 운동장으로 나가 차전놀이와 텀블링을 연습했다.

 

빛이 기울어가는 모래밭에 다복다복 인간 탑이 쌓였다. 나는 삼 년 내도록 오층탑의 삼층에 괴었다. 일층은 정말 뚱뚱한 아이들이 엎드렸다. 토할 때까지 뭔가를 끊임없이 입속에 집어넣는 케첩들이었다. 아이들은 모랫바닥의 자갈을 훑어내며 마을 어귀마다 세워진 라이온스 클럽 사자처럼 엎드렸다. 제 등에 또 아이들이 올라타면 라이온스 클럽 사자의 위엄 있는 포효와는 전혀 달리 오만상을 찌푸렸다. 아이들은 갈기를 세운 사자가 아니라 무너진 축사 기둥에 깔린 돼지 같았다. 꼭대기는 나보다 마르지도 않은 6학년 3반 반장이 운동화를 신고 올라섰다. 그 아이는 뱀처럼 생긴 4학년 1반 담임의 외동아들이었다. 그 아이는 차전놀이의 청군 대장이기도 했고, 운동회가 끝날 즈음이면 땅바닥에 단단히 박아놓은 박대를 은근슬쩍 쥐고 있다가 운동회의 승패가 갈리면 아이들 대표로 단상에 올라가 교장 선생의 손을 잡고 웬 만세를 불렀다.

 

초등학교 내내 공책 한 권 못 받은 나는 엄마에게 한 번도 운동회 날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마지막 운동회도 엄마가 세차장에 나간 뒤에 누나와 식은 밥상을 깨작대다가 느지막하게 도착한 참이었다.

 

운동회 날을 가르쳐주지 않은건 굳이 소풍날과 가정실습 날을 가르쳐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나는 소풍을 가면 솔숲이나 대숲 깊숙이 숨어 팔베개를 하고 하루종일 누워있었고, 모를 심을 때나 타작할 때 이틀 사흘씩 쉬는 가정실습 날이면 혼자서 논두렁을 어슬렁거렸다.

 

무논에 바글거리는 새끼 개구리를 잡아 다리를 찢어놓고 마른 흙바닥에 파닥거리는 나비를 발로 꾹 밟아 짓이겨 놓았다. 웃자란 냉이꽃을 꺾어 이리저리 흩뿌리며 걷다보면 아는 아이의 논에서 막 새참을 먹고 있었다. 그 아이는 나만큼 입성이 더러웠지만 아이의 아빠는 소처럼 순한 눈을 씀벅거리며 스테인리스 주발에 한가득 따른 막걸리를 꿀떡꿀떡 들이켰다. 그들은 내가 어디 살고, 성이 뭐고, 공부를 얼마만큼 하는지, 부모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데친 부추와 종종 썬 김치를 얹은 국수 한 그릇을 말아주었을 뿐이다. 국물에 시꺼먼 엄지손가락을 반쯤 잠그고 국수 그릇을 내미는 아주머니와, 그 손등에 들러붙어 좀체 떨어질 생각을 않는 파리 한 마리를 보면서, 나는 오물통에 밀대처럼 담겨있는 엄마의 손이 떠올렸다.

 

맨 뒷줄에 앉아 개미를 눌러 죽이고 있던 나는 점수판을 보려고 이순신 동상 곁의 단상과 천막 쪽을 쳐다보다가 화들짝 놀랐다. 이순신 동상 옆의 화단 철책 앞에 엄마가 누나를 업고 서 있었다. 단상 옆 천막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엄마는 햇빛을 고스란히 받아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나는 얼굴을 푹 수그렸다. 석대 위에 서 있는 이순신이 갑옷을 벗고 400미터 계주를 뛴다고 해도 그렇게 놀라거나 곤혹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갑작스레 찾아온 엄마가 반갑기는커녕 괜스레 화가 나고 똥을 밟은 것처럼 찜찜했다. 게다가 엄마 어깻죽지에 매달린 누나는 코끼리 코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노란 체육복을 입고 하양 파랑 띠를 두른 꼬맹이들이 누나의 치마를 슬금슬금 끄집어 내렸다. 나는 당장 달려가 엄마 몸을 친친 감고 있는 코끼리 코를 뎅겅 베어버리고 싶었다.

 

우리는 이순신 동상 옆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김밥을 먹었다. 어쩐 일인지 엄마는 땡볕에 내다 말린 토란잎처럼 시르죽은 낯빛으로 이마에 밴 땀만 훔쳤다. 엄마는 평소처럼 걸걸하게 웃지도 않고 내처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내가 엄마가 낯선 것처럼 엄마도 햇볕이, 만국기가 펄럭이는 학교 잔치가, 걱정 없는 웃음이, 수저처럼 단란한 가족풍경이 낯설었을 것이다.

 

엄마는 너무 오랫동안 오물이 그득 담긴 바께쓰와 폐타이어와 폐유 냄새가 가득한 세차장이나 어둠침침한 셋방에서 웃고 떠드는 방법만 알고 있었다. 아들에게 김밥을 집어주고 음료수를 따라주며 살갑게 내리사랑을 보여주기에 햇빛은 너무 적나라했고, 사람들은 구두처럼 반짝거렸다. 게다가 배 아파 낳은 자식은 노란 체육복을 입은 아이들에 비해 유난히 키가 작고 얼굴은 주근깨투성이였다.

 

나는 햇볕 아래 가족이 만나면 얼마나 못생겨지는지 알았다. 해가 지고 늦은 저녁 침침한 전깃불 밑에 모여 입을 꾹 다물고 텔레비전을 쳐다보면서 힐끗거리는 옆모습이 진짜 식구 얼굴이었다. 문제는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죽은 나방 같은 밤껍질과 쥐똥이 그득한 셋방에 어느 날 검은색 엑기스가, 채 비닐을 뜯지 않은 냄비가, 두루마리 휴지가 벽 한쪽을 차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제 저녁이 되면 익숙한 욕과 다툼으로 떠들리던 셋방의 전깃불 아래는 그지없이 휑뎅그렁하기만 하다.

 

군민회관 앞 광장에 천막이 서고, 밤마다 쿵작쿵작 소리가 드높아지면서 셋방에 살던 어른들은 마치 피리부는 사내에게 홀린 쥐 떼처럼 천막 속으로 우두우둥 몰려갔다. 나는 그 피리부는 사내가 순 공갈쟁이에 사기꾼인 것을 빤히 알고 있는데 정작 어른들만 모르는 눈치였다.

 

나는 주머니에 든 밤 칼자루를 다시 한 번 만지작거린다. 칼날이 차갑다. 저만치 군민회관 앞 광장이 보인다. 말라깽이는 정말 약속을 지켰을까.

 

 

 

 

*

 

일, 일본에서 온 남자가

 

이, 이쁜이를

 

삼, 삼층으로 데리고 가

 

사, 사방을 둘러본 뒤

 

오, 옷을 벗기고

 

육, 유방을 만진 다음

 

칠, 칠대에 눕혀

 

팔, 팔딱 구멍에 있는

 

구, 구멍을 보고

 

십, 십을 했다

 

배가 고프다. 숫자 시를 백 번도 넘게 왼 것 같다. 입안은 쩍쩍 마르고 눈앞이 어지럽다. 멀찍이 보이는 연노랑빛 약장수 천막이 먹음직스런 찐빵처럼 보인다. 가끔 천막이 바람에 부풀 때마다 사람들의 그림자가 팥알처럼 아른거린다. 아빠는 단팥 맛에 환장한 구더기처럼 넋을 놓고 천막 안에 갇혀있을 것이다.

 

딱 담배 한 모금만 피우면 좋겠는데.

 

말라깽이는 여전히 오지 않는다. 오랜만에 모눈종이에 떡치는 그림을 그려주고 받은 돈도 모자라 담배며 못 받은 신문배달료 반까지 나눠주겠다고 약속했는데, 말라깽이는 어디로 꽁꽁 숨어버렸다.

 

생각할수록 괘씸하다. 말라깽이는 배신자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말라깽이에게 의리를 지키려고 최선을 다했다. 중학생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말라깽이가 맨날 특수반에서 한글도 제대로 못 깨친 아이들과 서로의 잠지나 만지고 빈둥거린다는 사실을 알고는, 쉬는 시간마다 찾아가 동전 따먹기를 같이 해주고 수업시간 내내 그린 만화를 보여주기도 했다. 심지어 케첩들이 말라깽이에게 보여줄 그림을 자기들에게 달라고 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반항을 하기도 했다.

 

모눈종이에 여러 도형을 그리는 시간이었다. 도형 자나 컴퍼스가 없는 나는 수업 내내 파도 하나 없이 얌전한 봄 바다처럼 푸른 모눈종이 위에 서로 뒤얽힌 두 사람의 모습을 열심히 그렸다. 컴퍼스의 가랑이를 조절하던 케첩1이 물에 빠져 죽은 시체를 발견한 것처럼 눈빛을 빛내고 침을 다셨다. 나는 모른 척하고 사내의 장딴지에 고슬고슬한 털을 촘촘히 그려 넣었다. 어느새 케첩2와 케첩3이 창가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선생님을 힐끗거리며 나를 둘러쌌다. 목덜미에서 들큼하면서도 역겨운 냄새가 풍겼다. 그러자 갑자기 심술이 났다. 무슨 용기가 나서 그랬는지 몰라도, 내 손은 어느새 뒤얽힌 사람의 얼굴에 들창코를 그리고, 고구마 잎 같은 마름모꼴의 귀를 달아주고, 아직 선 처리가 힘든 손가락과 발가락에 족발을 달았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얄따란 엉덩이에 용수철 같은 꼬리를 이어주려고 할 때, 케첩이 내 옆구리에 잽을 먹이며 수업이 끝나면 화장실로 따라나오라고 했다. 그때 내 눈에 케첩1 앞에 놓인 컴퍼스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컴퍼스로 푸른 바다에 빠진 두 마리의 돼지인간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컴퍼스의 긴 바늘이 내 손등에 붉은 선을 그었다. 그때 별안간 눈앞에 별이 둥둥 떠다녔다. 나달나달해진 모눈종이를 손에 들고 있는 선생님의 시뻘게진 얼굴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특수반 맨 뒷자리에 가만히 엎드려 있는 말라깽이를 찾아가 선물을 내밀었다. 말라깽이는 나달나달해진 모눈종이를 빳빳하게 펴며 무슨 그림이냐고 물었다.

 

피그스야.

 

피그스가 뭐야?

 

돼지의 복수.

 

하지만 말라깽이는 어느 순간 조금씩 변해갔다. 내가 찾아가도 시들먹했고, 하굣길에 기다리라고 해도 꽁무니를 빼버리기 일쑤였다. 어쩌면…… 아니 말라깽이는 케첩들의 박쥐가 된 것이 분명하다.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녀석은 케첩들의 자지를 주물러주고 동전 몇 닢을 얻은 게 분명하다. 이제 케첩들보다 피그도 모르는 말라깽이가 더 짜증난다. 화장실에 숨어 서로 담배를 나눠 피고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말라깽이와 돼지가 상상된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정말 고독한 사냥꾼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우리가 초등학교 때부터 해왔던 약속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케첩2의 정육점에 불을 지르기로 한 것. 내가 망을 보고 말라깽이가 석유를 묻힌 신문지를 밀어 넣기로 했는데. 그냥 고기를 훔치는 것보다 타고 남은 고기를 훔치면 햄버거 만 개는 쉽게 만들 수 있다고 구슬렸을 때, 군침을 다신건 분명 말라깽이였다. 케첩3의 화장품 가게에서 병을 몇 개 훔쳐 깨뜨린 유리조각으로 목덜미를 쑤셔버리자고 한 것은. 피 냄새가 아니라 달콤한 화장품 냄새가 날 거라고 낄낄거리며 좋아했던건 내가 아니라 분명 말라깽이였다. 읍에서 가장 높은 동네에 있는 걔네 집까지 찾아갔을 때, 게게 풀린 눈으로 ‘아가리 안 닥칠래. 솥에 넣고 삶아버리기 전에 얼른 꺼져.’ 악다구니를 퍼붓던 주정뱅이 여자를 먼저 솥에 삶아버리자고 말했던 것도…… 말라깽이였다.

 

배가 고프다고 창자끼리 서로 뜯어먹는지 뱃가죽이 당긴다. 뱃속에 늑대 한 마리가 들어있는 게 분명하다. 배부르면 하염없이 부풀어 한 발짝도 못 뗄 만큼 드러누워 버리고, 굶주리면 이를 갈며 복사뼈를 물고 늘어진다. 그래 배가 너무 고파 화가 나서 내가 말라깽이를 의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아까 하굣길에 겨우 만나 오늘 계획을 얘기했을 때 말라깽이는 분명 고개를 끄덕거렸다. 조금 뒷걸음질치며 얼마 줄 건데, 하고 묻긴 했지만 나는 안다. 말라깽이의 검은 눈자위가 오백 원짜리 동전처럼 반짝거렸다는 것을.

 

나는 밤 칼자루를 쓰다듬으며 뚜벅뚜벅 천막 앞으로 걸어간다. 막상 아빠와 맞닥뜨리면 어떻게 하나, 조금 겁이 났지만 월급이 들어있는 두둑한 잠바를 떠올리면 달싹이던 마음이 금세 차돌처럼 단단해진다. 신문배달도 잘려서 내 주머니는 한 달 넘게 텅 비어있다. 이제 그 돈의 얼마는 내 학용품 값─사실은 담뱃값과 만화책 빌려보며 쫄쫄이를 사먹을 수 있는 돈─이다. 나도 그 돈의 그래, ‘권리’가 있다.

 

슬금슬금 천막 앞으로 걸어가는데 컴컴한 그림자가 내 앞을 또 가로막아 선다. 사내는 쇠사슬에 묶인 토인처럼 옴짝달싹 하지 않는다. 내가 나를 목말탄다 해도 사내의 어깨에 닿지 않을 것 같다. 사내는 내가 이때까지 본 사람 중에서 제일 거인이다.

 

애들은 가라.

 

느티나무처럼 내 몸에 그늘을 드리운 사내의 한 마디에 나는 바다를 만난 쥐처럼 단박 뒷걸음질을 친다. 나는 사내의 허벅지에 칼날을 꽂거나 아빠의 돈을 돌려달라고 악다구니를 지르기는커녕 사내가 내 목덜미라도 낚아챌세라 무릎이 후들거리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그저 군민회관 앞 광장 구석의 그늘로 숨어들기 바쁘다. 게임의 시작은 너무 싱겁게 끝났다. 나의 일방적인 케이오 패.

 

어둠을 덮고 있자니 마음이 조금 차분해지면서 다시 말라깽이 생각이 떠오른다.

 

천막 앞을 지키고 있는 거인한테 말라깽이를 미끼로 던져주면 일이 좀더 쉬워질 텐데.

 

나는 숫자 시를 다시 외며 약장수 천막만 하염없이 노려본다.

 

일, 이, 삼, 사…… 쿵작쿵작……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라…… 꼬르륵꼬르륵

 

연노랑 찐빵 속에서 들리는 노랫소리, 내 뱃속에서 들리는 꼬르륵 소리, 여전히 귓바퀴에 남아있는 거인의 목소리, 내 가슴 콩닥거리는 소리에 왠지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아빠는 군민회관 앞 광장에 유에프오처럼 내려앉은 약장수가 ‘진짜’라고 했다. 부엌을 바란 벽에서는 누수로 쫄쫄쫄, 빗소리가 들렸다. 어머니의 무릎을 덮는 밤껍질처럼 머지않아 누수가 부엌을 넘쳐 이 집을 모조리 잠글 것 같았다. 나는 끊이지 않는 물소리를 들으며 실꾸리처럼 온 집을 휘감은 물줄기를 떠올렸다. 아빠는 조만간 겨울이 오면 오히려 누수로 수도가 얼지 않을 거라고 했다. 아빠는 수도관이 한파에 얼 것을 염려해 일부러 톱으로 썰어놓은 것처럼 거들먹거리며 다시 먼 곳을 꿈꾸는 눈빛으로, 어쩌다 장날에 들리는 약장수는 ‘가짜’라고 했다. 그 대목에선 엄마도 수긍하는 눈치였다. 손에 쥔 밤을 내려다보는 엄마의 고개가 설핏 까닥였다.

 

나는 진짜 약장수가 은근히 궁금했다. 가짜와 진짜를 어떻게 구별하는지 내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호기심 때문에 가족을 내팽개치는 어른들과 똑같아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오늘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빠의 주머니, 아니 내 용돈만큼이라도 지켜야 한다. 나도 언젠가는 등짐을 지거나 케첩의 부모 같은 사람들의 자동차를 깨끗이 닦아주는 사람이 될 것이다. 십 년 동안 같은 일을 반복해도 집 한 채 살 수 없을 텐데, 진짜 가짜를 따져 무엇 하나. 아빠와 엄마가 진짜 가짜를 따질 안목이라면, 왜 나는 한 번도 케첩이 신는 진짜 아디다스나 케첩이 자랑하는 은하철도999 하이샤프나 진짜 할아버지 할머니를 가져본 적이 없는 것일까. 게다가 약장수라니. 진짜, 가짜가 어딨어. 약장수로 불리기는 매한가진데.

 

그래도 사내가 손 관절을 꺾으며 돌아설 때 오줌이 마려운 것처럼 바짝 궁금증이 일기는 했다. 한 손에 좋이 열 사람은 들고 흔들 수 있을 것 같은 사내의 거대한 그림자만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이야기 속, 진짜 보물이 숨겨진 동굴을 지키는 사람을 보면 대개 사내처럼 미루나무보다 크고 코끼리처럼 튼튼한 다리를 가지고 있다. 물론 동굴을 들어가기란, 지금의 나처럼,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설령 사내를 물리쳤다고 해도 이내 익룡이 정수리를 휙 지나가며 불을 뿜고, 머리에 뱀이 달린 사람이 수수께끼를 내기도 한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싸움에서 이겨 동굴 속에 들어있는 상자의 뚜껑을 열어보면, 태양보다 반짝이는 진짜 보물이 그득그득 쌓여있다.

 

따뜻한 동굴에 앉은 것처럼 머릿속이 점점 어둠침침해지려는 찰나, 저만치 천막 옆에서 소란이 인다. 누군가 동굴에 플래시를 비쳐 그림자만 어지러운 것 같은 고요한 소란이다. 사내가 천막 한쪽의 주렴을 들추고 뛰어들어 간다. 나는 그 새를 놓칠세라 군민회관 앞 광장의 그늘만 밟고 그쪽으로 도둑걸음을 뗀다.

 

사내는 여자의 옆구리를 걷어찬다. 여자는 벙어리일까. 도롱뇽 알처럼 몸을 구부린 여자는 개처럼 낑낑거리기만 한다. 그것은 내가 알기로 가족끼리만 할 수 있는 폭력이다. 아빠는 술 취하면 엄마의 옆구리를 걷어차고, 나는 엄마 몰래 누나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 짝꿍인 여관집 막내딸이나, 아빠의 담배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걸 선생님께 고자질한 반장 계집애의 옆구리를 걷어찰 수는 없었다. 그 애들이 누나보다 백배 천배 얄미운데도 걔들의 머리카락 한 오라기 건드릴 수 없었다. 외려 그 계집애들이 내게 침을 뱉고 책받침으로 뒤통수를 내리치는데도, 나는 슬금슬금 수돗가 뒤나 변소 뒤의 버짐나무에 숨어 말라깽이와 계집애들의 더러운 소문을 만들었다.

 

사내와 여자도 부부일까. 거인과 땅딸보 부부. 숟가락에 엉덩방아를 찧고 밤톨만 하게 줄어든 호호할머니와 멀쩡한 할아버지 부부처럼. 천막 속에 있는 것이 ‘진짜’라면 그들은 부부가 맞을 것이다. 엄마와 아빠처럼.

 

여기서 뭐하니. 애들은 집에 가.

 

내 어깨를 두드리는 소리에 기겁을 하고 돌아보니 눈가가 짓무른 쭈그렁 할머니가 나를 골똘히 쳐다본다. 나는 본능적으로 밤 칼자루를 움켜쥔다. 오늘 밤 내가 맞닥뜨린 사람들은 모두 사내의 주술에 걸린 것처럼 똑같이 그 말만을 되뇐다. 그것이 저 천막 속에 들어갈 수 있는 암호인 것처럼. 어른들만 알 수 있는 진짜 세계에는 아이들이라고는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아이들은 집에 돌아가 가짜로 만들어진 장난감이나 갖고 놀라는 듯이. 아이는 가짜의 시간이야,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그래서일까, 아빠가 말한 장날에 오는 가짜 약장수는 아이를 돌려세우기는커녕 꼭 아이가 필요했다. 닷새마다 한 번씩 시장통 근처의 공터에 잠시 머물다 이내 사라지는 가짜 약장수는 부푼 천막 속에 어른들만 가두어놓는 진짜와는 달리 울타리도 없고 아무나 드나들 수 있었다. 공터의 둘레에는 갓 젖을 뗀 강아지며 황금빛 냄비며 몸을 잔뜩 도사린 호저까지 두리번거리며 서로서로를 구경했다. 끊임없이 달그락대고 부스럭대는 장날의 소음 속에서 가짜 약장수는 장날의 찌꺼기를 모조리 쏟아버리는 구덩이처럼 오히려 고요했다.

 

그들은 북도 없고 서커스도 없었다. 석유를 채운 소주병을 머금어 불을 뿜지도 않았고, 회칠한 얼굴에 연지곤지를 바르지도 않았다. 호객하는 여자도 안경잡이에 하얀 남방을 입고 있었다. 그녀는 약장수라기보다 선생님이나 간호사처럼 보였다. 여자는 나와 말라깽이에게 다가와 오백 원짜리 동전을 내밀었다. 엄마가 집을 나간 해 태어난 오백 원짜리 동전은 갈치 빛으로 반짝였다. 나는 몇 발짝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말라깽이는 오백 원짜리 동전에 눈이 뒤집혔다.

 

말라깽이는 파란 용달 앞에 서서 여자가 내민 누에 같은 알약과 유리컵에 담긴 노란 액체를 홀짝 들이켰다. 안경잡이 여자가 말라깽이한테서 몇 발짝 물러나자 확성기를 들고 있던 사내가 신문지 한 장을 들고 와 말라깽이의 바지를 벗겼다. 혁대도 차지 않은 말라깽이의 바지는 시든 배춧잎을 벗겨내듯 무릎으로 죽 흘러내렸다. 팬티도 안 입은 말라깽이의 아랫도리는 때가 절어 까만 나뭇가지 같았다.

 

어쩐 일인지 말라깽이는 사내의 손길에 인형처럼 휘둘렸다. 사내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열을 세라고 했다. 아무도 사내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사내는 말라깽이의 엉덩이를 덮은 신문지를 죽 끌어당겼다. 말라깽이의 똥구멍에서 마치 장다리처럼 기다란 줄이 솟아 나왔다. 마치 말라깽이가 삼킨 누에가 금세 실을 자은 것처럼.

 

사내는 엿가락을 끊듯 장다리를 끊어 안경잡이 여자가 내민 컵에 담갔다. 안경잡이는 오만상을 찌푸리고 컵에 담긴 장다리에 물을 붓고 나무 꼬챙이로 홰홰 저었다. 컵 속에 며루 같은 하얀 알갱이가 붕붕 떠다녔다. 나는 헛구역질이 치밀었다. 케첩보다 말라깽이가 훨씬 더러웠다. 나는 누에가 아니라 활활 타면서 황 냄새를 훅 끼치는 성냥 한 갑을 통째로 삼킨 기분이었다.

 

누구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사람들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일러 취한 사내들 몇 만이 담배를 꼬나물고 이죽거렸다.

 

저 까짓 것 술 먹고 담배 먹으면 깡그리 죽는 거야.

 

채독증 앓는 듯 누렇게 뜬 얼굴이 싸늘하게 뇌까렸다.

 

몸에 회충도 살아야지.

 

낮술에 취한 사내는 침을 퉤, 뱉었다.

 

불쇼나 뱀쇼는 없어? 하물며 각설이 타령이라도 해야 할 것 아냐.

 

안경잡이 여자는 아무런 대꾸도 않고 술을 권하듯 상표를 벗겨낸 박카스 병과 하얀 누에알이 담긴 통을 사람들의 코앞에 바짝 들이밀었다.

 

말라깽이는 오백 원짜리 동전을 처음 가져본다고 했다. 손에 꼭 쥔 은빛 동전에서 학이 너울너울 날아오를 것 같았다. 하지만 말라깽이는 내장을 훑어낸 짐승처럼 자꾸 걸음을 비칠거렸다. 장다리를 쭉 뽑아낼 때 말라깽이의 내장까지 딸려나온 것 같았다. 긴 줄 끝에 근뎅거리는 붉은 간과 콩팥, 심장에서 훅 끼치는 비린내를 상상하며 나는 말라깽이의 귓바퀴에 은밀하게 속삭였다.

 

너도 어른들 말 들었지? 담배 먹고 술 먹으면 자연스레 나을 수 있는걸 굳이 돈주고 살 필요 있겠냐고. 넌 수은을 삼킨 게 분명해. 네 내장은 다 녹아버렸을 거야.

 

나는 내가 왜 말라깽이한테 그렇게 잔인해지는지 몰랐다. 어쩌면 나도 말라깽이의 손에 쥐어진 오백 원짜리 동전이 부러웠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집을 나간 해 태어난 오백 원짜리 동전. 하지만 엄마는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욧잇을 쓸면 밤까끄라기가 묻어나고 아빠는 술만 마시면 누나와 엄마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나는 어쩌다 걷어찼다.

 

나는 배신자 말라깽이의 옆구리를 걷어찬다. 말라깽이는 개처럼 내 무릎에 감겨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빈다. 나는 케첩들처럼 뚱뚱한 몸뚱이로 변신한다. 아무도 내가 아이라는걸 눈치재치 못 한다. 목이 마르다. 어디서 물병 소리가 들린다. 딸랑딸랑 방울 소리 같다. 어쩌면 내 뱃속에서 이제 순해진 늑대가 잔뜩 웅크리고 자면서 하는 잠꼬대인지도 모른다.

 

나는 호르르 침을 다시고 눈을 지릅뜬다. 깜빡 졸았나 보다. 몇 발짝 앞에서 단춧구멍만한 눈이 나를 쳐다본다. 눈은 구슬처럼 글썽거리고 있다. 나는 퍼뜩 주머니의 밤 칼자루를 움켜쥔다. 단춧구멍이 돌아설 때 손에 들려진 병에서 다시 물소리가 들린다. 그 그림자는 겨우 책가방만 하다. 내 그림자보다 작다. 나는 갑자기 심술이 난다. 나는 그림자를 불러 세운다. 움찔 놀란 그림자가 돌아선다. 내 어깨에도 닿지 않는다.

 

땅딸보 여자다. 사내에 옆구리를 걷어차이는 나, 엄마, 누나와 마찬가지인. 이 여자라면 상대할 만하다. 이 여자는 아빠도 토인도 아니다. 안경잡이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자 주먹에 힘이 들어가면서 더 허기가 느껴진다.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여자의 손에 들린 까만 봉지를 빼앗아 벌컥벌컥 마시고 싶다. 모자라면 여자의 등에 달린 혹을 가르면 된다. 사막에서 목이 마르면 타고 가던 낙타의 혹을 베어 그 속에 고인 물을 먹는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나는 밤 칼자루를 쥐고 여자에게 바짝 다가간다. 여자는 아빠를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제쯤 부푼 천막의 불빛이 꺼지고 홀린 사람을 풀어줄지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여자를 쳐다보자 할 말이 없다. 오히려 나를 바라보는 여자의 눈매는 토인에게 붙들려 나무둥치에 묶인 포로를 내려다보는 것 같이 매섭고 싸늘하다.

 

싸늘한 그 목소리는 어른들만의 진짜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암호가 아니다. 그저 얄궂게 지나가는 바람소리일 뿐이다. 내가 잘못 들은 게 분명하다. 아니, 암호래도 아무 상관없다. 쭈그렁할망구와 땅딸보가 그 암호를 알고 있더라도, 진짜 세계를 찾으려면 여전히 많은 싸움이 남아있다. 암호만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것은 그저 진짜 세계를 향한 험난한 여행의 첫 발짝을 떼는 열쇠에 지나지 않는다. 거인 같은 사람만이 모든 게임을 물리치고 먼지가 도탑게 쌓인 보물 상자의 뚜껑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다.

 

나는 주머니에 든 손에 힘을 지그시 준다. 손끝이 서늘해지고 어디선가 물병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바람이 부는지 연노랑 천막은 찐빵처럼 다시 부풀어 오른다. 어쩌면 천막이 품고 있는 보물이 말갛게 비추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빠는 아직도 내 담뱃값을 품고 천막 속에 갇혀있을 것이다. 그 돈은 내 진짜 보물이다. 나는 동굴을 지키고 있는 불 뿜는 익룡이나 거인과 싸울 용기가 있다. 진짜 싸움은 늘 조무래기를 해치우면서 시작된다. 나는 작지만 날렵한 칼 한 자루도 쥐고 있다. 비록 따르던 부하는 배신하고 말았지만. 하지만 진짜 보물을 찾는 주인공은 모두 고독한 사냥꾼. 어쩌면 말라깽이는 그걸 알고 일부러 나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한 번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의심해본 적이 없는 고무신 무늬가 옆구리에 박힌 신발을 천천히 뗀다. 게임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임수현 / 1976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어했고, 2008년 『문학수첩』으로 등단했다.

 

 

계간 <<시와 산문>> 2010년 가을호 게제

 

 

 

 

 

 

 

 

'산문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쇼브라더스 베이비  (0) 2011.08.01
호박밭의 파수꾼   (0) 2011.07.14
개 1967   (0) 2010.11.12
스쿠온크의 눈물   (0) 2010.08.24
눈물  (0) 2009.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