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산문 읽기

개 1967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0. 11. 12. 22:27

□ 단편소설

개 1967

이충이

생물이라곤 한 마리의 새도 날지 않는 고보이 평야(平野) 동쪽 끝자락, 마산(山) 밑에 지붕이 없는 집 한 채가 있었다. 우리는 그 집의 오른쪽 벽면 밑에 <1961>이라는 초석의 기록이 뚜렷이 보이는 달빛 아래 앉아 씨레이션을 까먹고 있었다.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졌다. 갈증 때문이다. 열병 예방용 소금알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수통 물이 바닥나버렸다. 자꾸 소금알만 먹어도 되는 것일까? 그때 집 뒤 수풀에서 적병들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가 자세를 낮추며 소총을 들자 서너 명이 우리가 있는 수풀 쪽으로 서서히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 중 한 놈을 겨냥했다. 그 놈이 웃고 있었다. 그 때 느닷없이 우리의 배후에서 함성이 들려왔다. 우리가 탕, 탕 쏘아 죽이고 묻어주지 않았던 벌거벗겨진 사자(死者)들이 에이케이소총을 거꾸로 든 채 수풀을 헤치며 몰려오고 있었다.――나는 바람 빠진 에어 매트리스에 엎드린 채로 잠에서 깨어났다. 어떻게 늪 수풀을 도망쳐 나왔는지 확실하지 않다. 모두들 도망쳤을까? 잡히지는 않았을까? 뱅커 입구에서 누군가 들어왔다.

「일찍 출발하죠.」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 중위님이….」 서무병은 부중대장의 지시사항을 말하려고 했다.

「알고 있어.」

사건 때문에 어제 오후 나 중위가 사단 헌병중대에 호출되어 갔다. 그래서 11시 배를 타기 위해 우리 두 사람이 출발해야 했다. 사건이란 전(全) 병장의 자살에 관한 것이다. 늪 수풀지대의 소탕작전을 끝마친 중대가 연대휴양소로 3박 4일 휴양을 떠난 다음 날, 전(全) 병장은 오전에 일종검열을 받았었다. 우리는 검열이 끝나는 데로 휴양소로 출발하여 중대와 합류하도록 계획되어 있었다. 우리라고는 했지만 이제 서무병과 민사병인 나, 두 사람만 남은 것이다.

퀴논까지 직행하는 차를 잡기 위해서 기지정문 앞 19번 도로변에 서 있었다. 우리가 기다리는 차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이리 와요.」

우리가 서 있는 도로 건너 세차장 집 문 앞에서 호아(花)가 말을 걸어왔다. 그녀의 커다란 눈이 웃고 있었다.

「우린 바빠서 안 돼.」

서무병이 찝차를 세웠다. 우리가 탑승한 찝이 출발하자 그녀가 손을 흔들었다. 찝의 엠60 기관총좌에 앉아서 아침의 상쾌함을 만끽할 수 있었다. 6월의 태양은 열기를 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열기 속을 질주했다. 우리의 옆으로 람부레타차(車)와 버스가 털털거리며 지나갔다. 여기가 공허한 공간과 끝없이 싸워야할 전장이며, 여기의 이 중요한 국도의 지배자는 언제나 주야간 임무 교대를 해야만 했다. 이 국도에서 또는 이 국도를 지나서 많은 병정들은 국적에 구애 없이 <아주 갔음>과 <되돌아갔음>의 두 패거리로 헤어져야 했던 것이다. 어느 날엔가 나도 이 국도를 지나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이제는 한 곳도 낯설지 아니한 안케에서 퀴논까지의 국도변의 산과 들과 마을과 사람들과…. 찝은 7번 교량을 통과했다. 93민병 소대장 짱씨가 벙커 위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저 친구하고 구탕을 한 번 더 먹어야 할텐데, 그럴만한 합동근무 시간이 있을는지 모르겠다. 김빠진 33맥주 대신 블랙으로 녹초를 만들어 갚어야 할텐데 말이다. 6번 교량 8중대 병사들은 미식기를 두 개씩 들고 야전식당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교량 경계 철조망에 바짝 붙어있는 세차장 집 여자들이 문 앞에 나와 서성거리고 있는 것도 보였다. 간밤에 안탄촌(村) 게릴라에 의하여 폭파 절단된 송유관을 수리하는 펌프 스테이션 미군공병들도 손을 흔들었다. 4번 교량의 급수장에 미군 급수차 운전병은 이동주보 계집애들과 노닥거리고 있었다. 그 옆, 교량초소에서 <세워 총>을 하고 경계근무를 서고 있던 8중대 근무병은 내가 손을 흔들자 절도 있게 거수경례를 했다. 찝은 2번 교량을 통과했다. 옹타이산(山) 밑 도로변에서 늙은 여자들이 자갈을 깨고 있는 것도 보였다. 정부군 22사단 본부로 들어가는 푸미촌(村) 앞에서 탱크와 중장비 행렬이 좁은 도로를 차단했다. 찝은 철도를 건너지 못하고 멈추어 섰다. 1번 도로 옆구리에서 뻗어 나온 19번 도로 시발점, 세차장 집 여자들은 일찍 나온 흑인 병사와 흥정을 벌리고 있었다.

「온리…허니….」

밤송이 머리 앞에서 엉덩이가 유난히 커 보이는 흑인병사는 빙글거리고 있었다. 우리 앞으로 일곱 번째의 탱크가 가로질러 지나갔다. 찝의 지휘관석의 흑인장교가 담뱃불을 찾았다. 내가 지퍼 라이터를 켜 주자 그는 말을 걸었다.

「의정부에서 6개월 간 근무한 적이 있지.」

「의정부는 좋았죠. 이쪽보다 말입니다.」

「무엇을 말하는 거지?.」

「여자 말입니다.」

그는 건장한 체구를 흔들지 않고 웃었다.

찝차를 몰고 있는 백인 운전병 철모 위장포 위에 <NIXON IS POWER>라고 적혀 있었다.

「이걸 자네가 썼나?」 내가 철모를 가리키며 물었다.

운전병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자네도 빨리 끝났으면 하는군.」

22사단 정문으로 기어 들어가는 탱크행렬이 보였다. 중장비행렬도 우리 앞을 지나갔다. 찝의 뒤에서 람부레타차와 버스가 털털거렸다. 찝은 19번 도로에서 1번 도로로 우회전하며 스피드를 냈다.

어제 오후, 정확히 말해서 15시 30분, 나는 중대 행정반에 상의를 벗어놓고 휴게실과 식당을 지나 일종창고로 갔다. 오전에 모든 검열이 끝났기 때문에 약간 따분한 기분이었다. 그 때 생각난 것이 창고 아이스 박스 속에 들어 있는 맥주였다.

「문 열어!」

나는 창고 문을 걷어찼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갑자기 이상한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문을 뜯어내고 뛰어들어갔다.

찝이 멈추어 섰다. 1번 도로와 나란히 뻗어 있는 녹슨 철길 위로 노란 디젤기관차가 기적소리를 내며 서서히 기어갔다. 도로 한가운데에서 버스가 람부레타차를 짓눌러 놓았고 그 람부레타차 곁에 네 사람이 나란히 누워있는 게 보였다. 하얀 상의를 걸친 경찰관이 구경꾼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모두 죽었는데요.」 서무병이 말했다.

비켜. 비켜. 찝은 다시 스피드를 냈다.

의무대 안전 침대에 눕혀 놓고 정글화 끈을 풀었다. 군의관은 인공호흡을 시켰으며 위생병들은 신속하게 후송준비를 했다. 그러나 더 이상 계속할 필요는 없었다. 후송계원은 이이8 전화기의 송수화기를 들고 다스토프를 취소하라고 말했다.

「육종이 됐어. 그래. 오뚝이 취소해버려. 거기서 출발하기 전에….」

그 맥없는 소리만이 치료실을 빠져나갔다. 빠져나가려는 일체(一切)의 것. 그렇다. 우리는 주검의 주변에서 그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날 우리는 포위권을 빠져나가려는 성(省) 주력 게릴라 이2비 대대를 물고 늘어졌었다. 그러나 그들의 후속병 몇 명과 촌 게릴라 몇 명이 우리를 기만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적 주력은 그들이 최근에 만든 비밀 통로를 통해서 빠져버린 것을 우리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최초에 분대 첨병이 왼쪽 가슴을 맞고 쓰러져버렸고, 우리는 더 이상 적을 추격할 수가 없었다. 나무 위에서 떨어져버린 저격병은 여자 게릴라였다. 년은 전신에 경련을 일으켰다. 전(全)은 년의 면상을 닳아진 정글화 뒤꿈치로 짓누르며 「끊어 버려.」라고 말했다. 퇴색하지 않은 국방색 정글복을 입은 신병이 발가벗겨진 년의 사타구니에 말뚝을 박아버렸다. 누군가 낄낄거렸다. 잠시 후 우리들도 소리나지 않게 웃음을 토해버렸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으므로 우리는 년을 더 이상 족치지 못하고 늪 속으로 던져버렸다. 그 다음날 추격을 계속했고 용감한 분대장이 「전진 앞으로」를 외친 다음에 살아남았던 분대원은 부분대장인 전(全)과 소총수인 나뿐이었다. 2소대 지원병들이 쫓아 왔을 때까지 남아있던 소대원은 선임하사 이외에 12명이었다. 또 그 다음 날 2소대 선임분대의 분대원들 4명이 더 쓰러졌다.

찝은 1번 도로에서 다시 좌회전하여 440번 도로로 꺾어 들었다. 한진 소속 황갈색 트럭이 찝의 전방을 가로막았다. 찝은 트럭을 추월하려고 했지만 시내에서 나오는 차량 때문에 저지 당했다. 트럭 위에 서 있는 파월 민간인들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관광객 차림을 한 그들에게 우리도 마주 손을 흔들어주었다.

「놀러 가는가 보죠.」 서무병이 말했다.

관광객들은 레 러이 극장 앞집에 가서 한 번씩은 2달러 블루 필름을 구경하고, 바에 가서 바걸에게 80센트 사이공 티를 사주어야 할 것이다. 50센트 깡맥주를 마신 다음, 삐걱거리는 대나무 침대 위에 올라가서 5달라 오입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찝은 시의 외곽을 도는 비상도로에서 들어오는 차량들 때문에 잠시 정차 당했다. 비상도로 교량초소 근무병은 칼빈소총을 샌드백 위에 내려놓은 채 낮잠이 들어있었다. 정신차리도록 한 방 쏘아주면 잠은 깨겠지만…. 찝은 다시 스피드를 냈다.

비큐 021292 지점에서 야간매복 중이던 민병소대는 일찍 잠이 들어버렸던 것이다. 월맹 정규군 3사단 18연대 7대대 소속 특공대가 티 군청을 둘러싸고 있는 여섯 겹의 철조망을 차례차례 절단하고 있는 것을 군청 민병소대 야간 근무병도 발견하지 못하고 참호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23시 19분 적이 쏘아 올린 81㎜ 박격포탄이 청사 지붕 위에 정확히 낙하된 다음에야 적의 공격이 시작된 것을 알아차렸고, 적의 공격을 알아차린 민병소대원들의 대부분은 근무지를 버리고 도망쳐 버렸다. 일시에 통신대가 있는 청사 후면이 적에게 점령되어 버렸다. 우리는 격발검사를 한 지 일주일이 넘은 소총을 쥐어들고 교통호로 뛰어들어갔다. 61에프에이 소속 최중사와 보안대 소속인 박하사, 헌병대 소속 김병장과 나는 정문초소로 빠지는 교통호를 따라 기어갔다. 민병소대장이 지휘하는 민병 일개 분대는 정문을 지키고 있었다. 군청에 파견 나와 있는 미고문관 한 명이 우리가 엎드려 있는 교통호 앞까지 뛰어와서 쓰러졌다. 그는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포병 연락장교 김대위는 다리에 파편상을 입고 팬티차림으로 몹시 떨고 있었다. 그가 이곳에 파견 나온 첫날밤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청사 앞에서 여자가 무엇이라고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때서야 최초로 5만 촉광의 조명탄이 떴으나 먼 상공에서 낙하했기 때문에 우리의 위치는 노출되지 않았다. 청사 앞, 우리의 정면에서 불과 이십미터 되는 거리의 국기 게양대에 붉은 빛으로 보이는 기폭이 올라갔다. 정면으로 조명탄피가 휘파람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느닷없이 옆에 쭈그리고 있던 박하사가 긁어버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정문에서 청사 쪽으로 민병대원들까지도 긁어댔다. 엘엠지가 제일 큰 소리를 뿜어내다가 그치자 사격이 끝났다. 빈손으로 쭈그리고 있던 민병대원 한 사람이 우리 곁에서 「군수 여동생입니다. 총을 쏘지 말아달라고 말했는데.」라고 말했다. 나는 그 순간 초등학교 교원이었던 그녀의 얼굴이 꽤 이뻤다는 생각을 해냈다. 또한 지난 일주일 동안을 통해서 보아왔던 아침 출근 시간의 그녀의 리드미컬한 엉덩이가 퍽 인상적이었다는 것까지 생각해냈다. 야전 천막 쪽에서 한국군이 없다고 외치는 소리가 분명히 들려왔다. 나는 탄창을 갈아 끼웠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조용해졌다. 단 한번 부군수 부인이 안고 있던 아이가 울음을 터트려서 모두 신경을 곤두세우고 그 부인이 아이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을 때까진 마음을 놓지 못했다. 왜냐하면 한 발의 수류탄이 날아오면 끝장이 나버릴 수밖에 없었다. 월남어 교육대에서 우리와 함께 실습파견 나온 두 장교의 행방을 알 수 없는 채로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우리의 추측으로는 적의 퇴각 시간은 03시 전후였다. 어떤 사명감보다도 우리는 두 장교를 찾아야 했다. 먼저 정문 앞에서부터 시체를 확인해 나갔다. 국기 게양대 뒤에서 우리와 함께 교통호에 쭈그리고 있던 민병대원을 만났다. 그는 여자 시체에서 손목 시계를 풀고 있었다. 이 여자가 군수 여동생이냐고 묻자 그는 그렇다고 대답하고, 또 다른 시체 쪽으로 걸어갔다. 그 때까지도 붉은 바탕에 노란 별이 그려진 기폭이 게양대 위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우리가 야전 천막 문 앞까지 다가가자 정문 쪽에서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 장교가 우리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정문 철조망을 넘어서 민가(民家)에 가 있었다고 말했다. 날이 밝자 우리가 살았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박하사와 내가 나란히 누워있는 침대 사이 통로에서 두 개의 수류탄 안전핀에 연결된 인계철선을 발견했을 때보다도 놈들이 우리를 사로잡아 포로로 데리고 가려했다는 사실에 더 치를 떨었다. 월남어 교육대에서 우리를 철수시키기 위하여 사분의 삼톤 차를 가지고 교관 권대위가 도착했을 때까지 우리가 확인했던 시체는 군수 이외에도 11구였다. 그 시체를 붙잡고 가족들이 오열하는 모습을 보았다. 민병소대장은 국기 게양대 앞에 민병소대원을 집합시켜서 인원 파악을 하고 있었는데, 적이 숨겨놓고 간 것으로 추측되는 시한폭탄이 청사 왼쪽 탄약고에서 폭발했다. 탄약고의 박격포탄 및 각종 탄약이 연쇄적으로 폭발하자 폭음과 초연이 청사주변을 뒤덮어버렸고 정문 주변까지 바람 부는 날 마른 나뭇잎 떨어지는 듯이 파편 조각이 떨어져 내렸다. 더 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갔다. 우리와 함께 파견 나왔던 두 장교도 청 내에 들어갔다가 파편을 얻어맞았다. 마침 우리는 정문 건너 도로에 나와 있어서 또 한 번의 위기를 모면했던 것이다. 탄약고 옆에 정차하고 있던 두 대의 찝이 불타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우리의 차는 부상자를 싣고 질주했다. 서쪽 국도에서 캐터필더 소리가 들려왔다. 정부군 22사단 장갑차가 먼지를 일으키며 굴러오고 있었다. 「늦었어. 개새끼들아.」 최 중사가 정부군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정부군 병사들은 우리에게 우정의 손을 흔들며 지나갔다.

시외버스 정류장에 민간인들이 한산하게 보였다. 검문소 미군 헌병은 찝에 앉아서 이동주보 계집애들과 노닥거리고 있었고, 경찰관은 람부레타차를 검문하고 있었다. 찝은 시가지가 시작되는 교량을 통과했다. 우리는 삼거리 셀표 주유소 앞에서 잠시 정차했다. 찝은 메인 피엑스로 가야 했고, 우리는 상점과 바아가 즐비한 지아롱가(街)를 지나 부두까지 걸어가야 했다.

내가 월남어 교육대를 수료하고 중대에 귀대했을 때 전(全)은 일종계원이 되어 있었다. 어느 날 화기소대장이 인솔 장교로 화기소대와 중대본부가 퀴논시 일일 관광을 갔었다. 나는 월남어 실습 기간의 몇 주 동안 시내 구석구석을 헤맨 일이 있었다. 가령 비행장 근처 주택가에서 한국인 여자를 월남인 여자인 줄 알고 실수했던 일이라든가, 한국인이 경영하는 호텔 높다란 벽면에 간판처럼 커다랗게 쓰여져 있는 <ÐỤ>라는 문자가 우리말로 <그 것>이라는 것을 알아내고, 어느 짖구진 월남인 인부가 썼으리라고 까지 알아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거리를 걷는 월남인은 모두 한 두 번씩은 쳐다보고 웃었으리라고 까지 알고 있었다. 그 날도 나는 원하는 병사는 누구든지 함께 어울려서 레 러이 극장 앞집으로 몰려갔다. 카운터에 앉아 있는 젊은 여주인이 돈을 모조리 받았다. 우리는 떠들어대면서 거실을 지나 좁은 층계를 올라갔다. 「너 몇 번 봤냐?」 전(全)이 그렇게 물었다. 「서너 번 될 거야.」 필름이 돌아가는 소리만이 덜덜거렸다. 흑백. 한 여자가 의자에 손을 짚고 무릎을 굽히지 않고 엎디자…. 우리는 층계를 내려왔다. 그때 우리는 무엇인지 도무지 참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인도에 나와 서자 마침 찐쫑학교의 여학생들이 아오자이 옷자락을 펄럭이며 삼삼오오 교문을 빠져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 너머로 성당의 종탑이 보였고, 부두 쪽에서 한진 트럭이 은회색 네이팜 탄두를 싣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트럭은 성당 앞에서 해변도로로 좌회전을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가자.」라고 전(全)이 말했다. 우리는 성당 앞길과 성모 병원을 지나서 부두 쪽으로 내려갔다.

「나는 언제 시내 구경을 하죠?」 서무병이 물었다.

「언제 기회가 있겠지.」

우리는 성당 앞길까지 걸어왔다. 해변 도로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그러나 우리의 얼굴은 온통 땀으로 젖어있었다. 무척이나 더운 날이다. 우리는 부두 쪽으로 내려갔다.

「놀다 가세요.」

거의 정확한 한국어 발음이었다. 거리의 여자들이 우리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서무병이 그녀들에게 쑥떡을 먹였다. 그녀들은 미소를 지으면서 조심스레 손을 흔들어 주었다.

「참아라. 참아!」

우리는 먼지투성이 길을 따라 더 걸어 내려갔다. 미군 위병 근무자가 군사부두로 들어가는 정문에서 한 월남군 해병의 소형 백을 조사하고 있었다. 하역장에는 네이팜 탄두를 싣고 있는 한진 트럭이 즐비했다. 우리가 찾아갔던 통제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통제소 나무층계에서 서성거리자 스탠드 박스 쪽에서 상의를 벗어버린 미군병사가 왔다. 그는 11시 배는 없고 13시 배가 있다고 했다. 13시라면 아직 3시간이 남아 있다.

우리는 악취가 코를 찌르는 골목을 지나서 민간인 사용 부두로 갔다. 더러운 오물 투성이의 검은 파도가 모래사장을 핥아 내고 있었다. 부두는 혼잡하고 아우성으로 들끓고 있었다. 임검 경찰관은 우리에게 퀴논․180 발동선을 찾아 주었다. 몇 분만 늦었더라면 3시간을 허송할 뻔했다. 우리가 올라서자 배는 이내 부두를 빠져나갔다. 늙은 남신부와 짜우양과 그녀의 어머니, 그리고 낯모르는 세 여자가 우리와 마주 앉아 있었고 팜씨는 키를 붙잡고 있었다.

「이 엠피씨 교환할 수 있어요.」

팜씨는 지아이군표를 내보였다.

「얼마입니까?」

「154달러요.」

군표 교환은 삼일 전에 끝났었다. 휴양소의 약삭빠른 한 취사병이 팜씨에게 흥정해 왔었다. 154달러를 77달러씩 반분하자는 흥정을 그는 거절해버렸다.

「잘못했습니다. 그렇게 라도 바꾸어야 했습니다.」

상의 오른쪽 주머니 뚜껑을 열어젖히고 군표를 집어 놓는 그의 모습이 몹시 초라했다. 그는 마을사람들이 모두 떠나가 버렸다는 얘기를 했다. 그도 휴양소와의 거래가 안되어서 마을을 떠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즘은 취사병들이 빼내는 잉여 레이션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휴양소장이 경질된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 그 것까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여자들이 삶은 옥수수를 뜯고 있었다. 아직 팽팽한 피부를 가지고 있는 짜우양이 먹지 않겠느냐고 옥수수를 내밀었다. 그러는 그녀가 순진해 보였다. 나는 남 신부의 시선을 느꼈다.

「남 신부님, 건강이 좋지 않으신 것 같아요.」

「좀 나쁘오.」

말소리는 기력이 없어 보였다.

여자들이 옥수수 깡치를 바다로 던져버렸다.

「응우엔 반 먹씨가 기억나시나요?」

팜씨가 물었다.

「압니다.」

「팔을 절단했지요. 그도 피난민 수용소로 돌아갔습니다.」

내가 숨기고 있는 그 때의 비정한 처사를 그는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벌써 5개월 전의 얘기인 것이다.

배는 해안을 따라 올라 갔다. 중대는 전투군장으로 휴양소로 출발했다. 작전이 끝나자마자 바닷가에 가서 쉴 수 있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 우리가 흥분하기에는 충분했다. 첫째 날은 모두들 너무 피곤해서 잠을 자야했다. 그 이튿날 아침 일찍 바다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이 너무 불어서 식당의 뜨거운 에이레이션까지도 모래가 들어 있어 식사를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편안한 마음뿐이었다. 한낮의 해변의 모래알들이 너무도 환히 반짝였으므로 물 속에서나 비취 파라솔 밑에서나 눈이 시릴 정도였다. 해변의 모래언덕 위 열 서너 채의 집들이 모두 레이션 상자 조각으로 세워져 있고, 그 집들의 한가운데 조그만 성당이 탑처럼 솟아 있었다. 성당의 현관 콘크리트 바닥은 깨어져 나가 버렸고, 성당 출입문도 본래 제짝이 아니었다. 현관 바닥에 눈만 커다란 아이들이 대여섯 명 앉아 있고, 검은 아오자이를 입은 한 노인이 흑판에 서자, 호랑이 코끼리 등을 그려 놓고 또 사슴을 그리고 있었다. 노인은 남 신부였다. 그의 손을 잡았을 때 싸늘한 촉감이 나의 전신을 통해 전해왔다. 성당 내부의 벽은 본래의 하얀 색이 갈색으로 퇴색되어 있었다. 창문 유리는 깨어져 나가 버렸고 투명한 비닐 조각이 여러 곳을 가리고 있었다. 크라운 맥주 빈깡통에는 플라스틱으로 된 가화가 꽂혀 제대 위에 놓여 있었다. 그는 거실로 나를 안내하며 씁쓰레한 엽차를 따라 주었다. 셋째 날 아침도 바람은 불었다. 태양이 직사하는 정오가 지나서까지 바람이 불었다. 나는 아무런 하는 일없이 막사에 앉아서 맥주를 마셨다. 느닷없이 마을 철조망 쪽에서 크레이모어 지뢰가 터지는 폭음이 들려왔다. 2소대원들이 마을 쪽에서 뛰어내려 왔다.

「폼 잡고 사진 찍다가 스위치를 밟아 버렸어.」

1소대원들도 막사 쪽으로 뛰어내려갔다. 중대장 당번이 뛰어왔다. 나는 당번 뒤를 따라 뛰어갔다. 의무실 문에서 중대장이 「빨리 와.」라고 말했다. 위생병이 한 중년 사내의 오른 쪽 팔꿈치를 압박 붕대로 묶고 있었고, 그 곁에서 한 여자가 맨발로 서서 꺼억 꺼억 울고 있었다.

「괜찮다고 말해라. 파편이 팔뚝 한군데 맞았다.」 중대장이 내게 말했다.

「여기서는 안되겠습니다. 엑스레이를 찍어봐야 합니다.」 휴양소 정 상사가 말했다.

「어떻게 보고하지 않고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나?」

중대장은 말썽 많은 대민 사고를 간단하게 처리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일은 그의 뜻대로 되어갔다.

「그러시다면 퀴논 시립병원으로 보내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야 할 것입니다. 이 사람이 나무 그늘 밑에서 낮잠을 자다가 파편을 맞았으니까 말입니다. 이 사람에게 그렇게 이해시키고 시립 병원까지 후송시켜 주면 될 수 있겠습니다. 거기서는 무료 치료를 해 줍니다. 6후송으로 안 보낼려면 그 방법 밖에 없습니다.」 정상사가 말했다.

「노 병장, 할 수 없다. 정 상사 말대로 해라.」

중대장은 그 자리에서 단호하게 지시했다.

미군 헌병 찝에서 헌병의 부축을 받으며 젊은 여자가 내려서서 외래실로 들어갔다. 사내와 나는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외래실은 비좁고 지저분했다. 헌병은 의자에 여자를 앉혀 놓고 나갔다. 이내 밖에서 찝의 시동 소리가 들렸다. 간호원이 여자에게 다가와서 어디가 아프냐고 묻자, 미군한테 두들겨 맞았다고 말했다. 그 다음 차례로 내 얘기를 들은 간호원은 엑스레이를 촬영한 다음 입원해도 된다고 했다. 응우엔 반 먹 55세 등 인적사항을 기록한 카드를 들고 온통 하얗게 백회를 칠한 긴 복도를 지나 엑스레이 실로 갔다. 사내가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나는 복도의 끝에서 기다렸다. 잠시 후 사내와 나는 단 한 개의 파편이 뼈 속에 박혀있는 필름을 들고 외래실로 돌아왔다. 간호원에게 필름을 건네주었다.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내가 묻고 있었다.

나는 다만 빨리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내가 혼자서 시립병원 정문을 빠져나왔을 때는 바다에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석양이었는데도 등에선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주홍색 위험 표시판이 보였고, 모래사장과 물 속에서 중대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발동선을 타고 있는 우리를 발견하고 몇몇 중대원들이 손을 흔들었다. 중대장 당번이 손을 흔들며 마을 쪽으로 뛰어 왔다. 발동선이 모래사장에 닿자 우리가 먼저 뛰어내렸다.

「연락 받았나?」

「무슨 연락이요? 전(全) 병장은 안 옵니까…. 한 시간 전에 헬리콥터로 대대 에스―3장이 와서 인사계님을 데리고 갔어요. 무슨 일이 있어요?」

「아무 것도 아냐.」」

「또 작전이 있다는데요.」 중대장 당번이 말했다.

「알았어. 가자.」

남 신부와 팜씨 그리고 여자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우리는 휴양소로 내려왔다.

나는 곧장 중대장 막사로 갔다.

「어떻게 된 거야?」

「전(全)병장이 자살했습니다.」 나는 부동자세를 한 채로 말했다.

「그건 알고 있다.」

중대장이 묻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다.

「앉아.」

나는 야전침대의 끝에 걸터앉았다. 내가 급히 여기까지 온 것은 전(全)의 자살을 알려주기 위해서가 아닌 것이다. 중대장이 궁금히 여기는 것. 즉, 사건의 전말을 보고해야 하는 것이다.

「검열 전일 자로 일보계산을 하고 중대 급식재고량 씨레이션이 50상자 부족했습니다. 그렇지만 빈 상자 50개를 속에 쌓아 넣고 검열을 무사히 끝냈던 것입니다. 서류 상에 소모량과 재고량은 이상 없이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되었다면 죽긴 왜 죽지?」

중대장은 담뱃불을 짓눌러 껐다.

중대장은 장기 소탕작전 중에 작전인원에게 지급되어야 할 개인당 일일 한 끼 분의 증식용 씨레이션을 지급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민간인이 불법소지하고 있는 총을 구입하기 위한 자금, 다시 말해서 그 자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그렇게 계획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은 중대장이 계획하는 데로 잘 되어 가는 것만은 아니었다. 파월 목적이 외화획득에 있다는 중대 선임하사관 양 상사는 매사 철저한 사람이었다. 전방 보급소에서 우리 중대만이 증식용 씨레이션을 작전병에게 보급하지 않는다는 계획을 잘 알고 있었지만, 누구보다도 자신에 충실해야 했던 그는 일종계원 전(全)이 작전지역에 보급추진을 위해 보급 헬리콥터에 탑승해 하늘로 올라 갈 때마다 감쪽같이 씨레이션을 빼다 팔아치웠던 것이다. 작전이 끝나고 전방 보급소에서 철수하여 기지에 돌아왔을 때까지 부족량이 생겨났다. 전(全)은 중대장의 계획을 위해 분명히 사용되어야 할 증식용 씨레이션을 잃어버렸고, 중대 급식재고량에서도 더 잃어버렸던 것이다.

「가서 당번 오라고 해.」

나는 중대장 막사를 나왔다.

모래사장에서 소대 대항 권투시합이 진행되고 있었다. 화기소대 뚱뚱이 김용대 병장이 3소대 꼬마 이창홍 병장한테 얻어맞고 식식거리고 있었다. 두 명의 투사를 둘러싸고 소대원들이 우우 고함을 질렀다. 누군가 한 사람이 급소를 얻어맞고 콱 꼬꾸라져야 시합은 끝날 것이다.

마을로 올라갔다. 여자들이 레이션 상자 조각을 발동선에 옮기고 있었다. 짐과 그녀들이 살았던 상자 집을 송두리째 헐어 가는 것이었다.

「아주 가시는 거요?」 팜 씨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갔다 내일 다시 한 번 올 겁니다.」

한참을 성당 주변을 서성거리다가 발동선이 해안을 따라 내려가는 것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성당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성당 마루바닥에 정글화를 벗어놓고 남 신부의 거실로 갔다. 문을 두드렸다. 침대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고, 문으로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렸다. 유리가 깨어져 나가버린 창문의 투명한 비닐 조각으로 저물어 가는 석양빛이 밀려들어왔다. 나는 등 없는 의자에 앉았다.

「차 마시겠오?」

남 신부는 두 개의 찻잔에 엽차를 따르면서 말했다.

「어떻게 생활하시고 계십니까?」

「그저 편히 있는 거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떠났는데도 여기 혼자 계실 작성이세요?」

「이 곳이 나의 집이오.」

나는 갑자기 당혹감을 느꼈다. 레이션 상자 집들이 텅 텅 비어 있는 데를 기웃거리던 얼마전 까지도 알지 못했는데….

「누워 계시죠.」

나는 씁쓰레한 엽차를 마시고 일어섰다. 남 신부는 천장에 길게 매달린 램프 등에 불을 켰다. 그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무료한 것들이 일시에 나를 휩싸여 오는 것을 느꼈다. 이제까지 나는 충실한 개였다.

*

전(全)의 늙으신 아버님께서 아들의 주검에 대하여 궁금해하시는 편지를 수차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답장을 올리지 못하고 피일 차일 하다가 귀국했다. 어떤 사건이 부딪쳤을 때 그것이 우리가 전혀 예측할 수 없이 확산되어 간다는 사실은 무서운 일이다.

처음 우연한 기회에 자매부락에서 소총을 구입했었다. 그 때 내가 가졌던 단순한 생각, 즉 적에게 넘어갈 수 있는 소총을 우리가 먼저 빼앗는다는 그런 정도의 의도뿐이었다. 그러나 중대장은 기발한 계획을 했고, 나는 그 계획을 막을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그 계획이란 구입한 소총을 매복작전이나 소탕작전에 가지고 나가서 전과를 조작하는 것이었다. 사실 그 당시 적병을 사살했거나 포로 했어도 개인화기나 공용화기를 빼앗지 못하면 훌륭한 전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향이 많아서 우리는 적병의 생명보다도 화기노획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차츰 노획한 화기의 수량으로 전과의 등급을 정하려는 상급부대 지휘관의 판정이 확실해지므로 대대에서까지도 소총중대 전과에 협조하여 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알기로는 우리 대대 민사장교 임 대위는 많은 수고를 했던 것이다. 그렇게 되자 대대 내의 각 소총중대에서 경쟁이나 하듯이 전과를 조작하는데 열중하기 시작하여 효과를 과시했던 것이다. 우리가 구입했던 칼빈, 엠원, 에이케이, 씨케이씨, 에스엠지, 엠 79, 엠 16, 45구경권총, 단발 엽총 등. 그러나 박격포는 한번도 구입하지 못했었다. 총을 구입하기 위해서 만났던 월남인들은 내가 본국에 가지고 가서 사냥총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라고 얘기한 것을 그들이 그대로 받아드렸는지는 확신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확신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내가 파월기간 중 네 번째로 모셨던 중대장 감무웅 대위는 처음 우리가 해왔던 계획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위선양을 모독하는 것이라고까지 단언했다. 나는 전임 중대장으로부터 지시 받고 대민 지원물자와 첩보미로 구입했던 소총 건에 대한 보고를 했다가 형편없이 얻어맞고 말았다. 대민 지원물자는 대민 지원에 사용되어야 하며 한국군 작전에 의해 피해 입은 건, 적에 의해 피해 입은 건, 공공 사업 건, 적 잔유가족 구호 건, 극번자 구호 건 등등 순위에 입각하여 자매 부락 및 친선 부락의 모든 지원 건에 사용되어야 하며 첩보미는 첩자를 운용하며 첩보를 수집하는데 유용하게 사용하여야 한다는 신임 중대장의 지휘방침 때문에 각 소대에 배정하려 했던 칼빈 3정, 에스엠지 1정, 에이케이 1정을 즉시 다른 소총중대에 처분해야 했다. 그러나 신임중대장으로 근무한 지 1개월도 못되었던 그 해 11월 말에 시작된 소탕작전에서 3소대 2분대 부분대장이 개머리판이 없고 방아쇠 뭉치가 없고 노릿쇠가 전진후퇴도 안 되는 에이케이 총신을 수풀에서 주워 내놓자 신임 중대장은 즉시 대대장으로부터 에스엠지 1정을 하사 받아서 훌륭한 전과를 조작해 버렸다. 적병 3명 사살, 에이케이 자동 소총 1정, 에스엠지 1정을 노획했다는 신임중대장의 첫 전과였다. 그 얼마 후 주간 매복작전에서 화기소대 무전병이 크레이모어 지뢰로 적병 2명 사살, 칼빈 소총 1정, 문서 다수를 노획하는 전과를 얻었는데 그 때도 화기소대 무전병은 물론 소대원들까지도 크레이모어 지뢰가 폭발하는 폭음을 듣지 못했고, 적병 시체조차도 구경하지 못했다. 물론 매복작전은 출발할 때에 화기소대 무전병이 나한테서 적 문서 다수를 인수해 갔던 것이다. 또 그 다음 그러니까, 내가 귀국하기 6개월 전에 있었던 소탕작전에서도 신임 중대장은 2소대 1분대 분대장에게 지시해서 항공폭격으로 배낭을 메고 죽어 자빠져 있는 월맹 3사단 18연대 8대대 소속 정규군들을 일으켜서 그들의 빈손에 에이케이 자동 소총 1정과 엠원 소총 1정과 칼빈 소총 3정을 쥐어주었다가 다시 빼앗는 훌륭한 전과를 세웠었다. 그 때 그 곳에 있었던 소총병들은 적병 5명 사살의 추가 보고를 다 보고 있었다. 그 후 그를 형편없는 지휘관이라고 말하는 소총병은 하나도 없었다. 그 작전 중 인접 소총중대에서는 헬리콥터 랜딩 직후 일개 분대가 전사 및 행방불명되었고, 하루 동안에 헬리콥터가 적 포화로 네 대가 추락하는 치열한 전투였다. 그 작전이 끝나고 중대장이 가슴에 훈장을 달았을 때 그것을 보고 힘차게 박수를 치지 아니한 병사는 하나도 없었다. 또 상급부대 지휘관님과 참모들과 전우들의 갈채 속에서 가슴에 훈장을 달아야만 했던 3소대 2분대 부분대장 한덕희 병장과 화기소대 무전병 최영식 병장과 2소대 1분대장 김동호 하사가 사이공 휴가 및 본국 휴가를 받았을 때 전과를 한 번도 세워보지 못한 소총병들은 모두들 「전과는 세우고 볼일이고, 훈장은 가슴에 달고 볼 일이야」라고. 한 마디씩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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