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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온크의 눈물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0. 8. 24. 09:35

스쿠온크의 눈물

허만욱 

 

 

반나절을 달려 연홍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서울을 출발한 지 거의 아홉 시간 만이다. 그 가운데는 휴게소에 내려 점심과 커피 한 잔 사 먹은 시간이 포함되어 있긴 하다. 평택으로 가는 도중에 내리기 시작한 싸락눈이 해미를 통과할 때쯤에는 이미 함박눈으로 변해 시야를 흐리게 했다. 그리고 녹동항에서 카페리에 차를 싣고 30분 정도 걸려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사방은 고요하고 바다 위에 떠 있는 몇몇 척의 배들도 움직임이 없이 적요한데, 섬마을 산 뒤쪽으로 석양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어느새 눈도 그쳐 있었다. 입춘이 지난 지도 벌써 오래고, 양력 삼월도 보름 정도 남겨놓은 이 계절에 내린 눈치고는 참으로 대단했다. 앞서 가던 여자에게 길을 물었다. 미술관으로 가는 길은 섬 전체를 자연스럽게 한 바퀴 돌게끔 되어 있었다. 해안가를 돌아 어렵지 않게 목적지인 미술관에 도착했다. 어젯밤 늦게까지 준비한 김치통 셋, 육류통 둘, 생선통 하나, 몇몇 마른 반찬, 그리고 섬마을에서 구하기 어려운 몇 가지 조미료를 담은 이런저런 그릇들을 차에서 내렸다. 이것들은 한동안 나에게 생물학적 삶을 가능하게 해줄 에너지원이다. 이 섬까지 차가 들어올 수 있었고, 서울로 올라갈 때 몇 군데 가볼 곳이 있어서 굳이 승용차를 가져왔다.

나는 서울에서 출발할 때 진통제 두 알을 삼켰다. 일상적이고 반복된 도시생활에 지쳐있었고, 목까지 부어 있었다. 특히 수십 일을 긴장시키던 원고 집필이 선천적으로 건강 체질이 아닌 나로서는 무리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몸으로 먼 거리를 떠나기에는 아무래도 자신이 없던 터라 내가 선택한 것이 진통제였다.

 나는 대충 짐을 정리하고 곧바로 잠을 청하였지만, 밤새 출렁이는 파도소리에 잠을 이루기가 쉽지 않았다. 더욱이 창문 밖으로는 보름을 턱까지 쫓아온 달이 음력 12월 중순의 바다를 훤하게 비추고 있었다.    

  

다음날 나는 고열에 앓아누웠다. 해열진통제를 따로 복용했는데도 신열은 좀처럼 내리지 않았고 의식까지 혼몽해졌다. 그러는 사이 훌쩍 사나흘이 흘러가고 말았다.

미술관 화랑으로 들어가 창문을 열고 소파에 앉았다. 큰 관목으로 만든 테이블 위에는 도록이 놓여있었다. 보르헤스의 『상상동물 이야기』에 등장하는 동물들을 그림으로 옮겨놓은 친구의 것이었다. 거기에는 무수한 이야기들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물들이 친구의 상상력에 의해 재창조되고 있었다. 인간의 그림자에 민감한 ‘아 바오 아쿠’를 시작으로 해서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돌로 변하게 하는 ‘바실리스크’, 감성적이고 환상적인 ‘일각수’, 선원을 유혹하는 저 오딧세이아의 세이렌 미궁 속의 ‘미노타우로스’, 흘러내리는 눈물로 된 육체 ‘스쿠온크’ 등 기묘한 동물들의 울음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우리가 단 한번도 들을 수 없었던, 꿈속에서나 마음속에서조차 들을 수 없을 것 같은 그 소리가 새어나오는 것 같았다. 머릿속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이미지의 조합을 이리저리 재구성하여 하나의 존재를 탄생시킨, 그 나름의 변형을 통해 또다른 세계를 말하려는 화가 친구의 대단함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머물고 있는 연홍도 미술관은 섬과 하나가 되어 한 폭의 수채화처럼 보였다. 폐교가 된 분교를 개조하여 만든 미술관 앞마당엔 옛날 초등학교 다닐 때 늘 보고 자랐던 조각상들이 있었다. 한때 학생들 사이에서 메가패스 장군으로 통하던 이순신 장군상과, 전쟁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이승복 어린이상, 그것은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정원과 잘 어울렸다. 또한 급사가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던 학교종도 시간을 멈춘 채 썰렁하게 달려 있었다. 학교가 바닷가 가까이에 있어서 혹시라도 힘껏 공을 차면 바다로 빠지지는 않았을까 염려가 되었다. 그런데 바다와 붙어있으므로 바람이 잦은 날이면 미술관은 언제나 적막을 안고 있었다. 그 적막은 바닷가 어느 집에 가더라도 느낄 수 있는, 머물고 있는 것들이 흐르면서 사라지는 것의 의미를 즉각적으로 체감하는 해변의 비극적 정서이다. 특히 미술관 뒤쪽으로 산이 감싸고 있어서 그 적막이 더욱 두터워 보였다.

미술관 앞쪽으로는 양식장의 하얀 부표가 줄지어 있었는데, 그것이 출렁일 때마다 푸른 바닷물과 백색 바람의 미묘한 느낌이 전해졌다. 왼쪽 마을 뒷산 언덕으로 보리밭이 펼쳐져 있고, 오른쪽으로는 채석강 같은 층층 절벽 바위가 시야에 들어왔다. 조금 더 시야를 멀리하니 두 개의 작은 섬이 보였다. 밀물로 해면의 수위가 높아지면 섬 사이를 가로막아 별개의 섬으로 보이지만, 간조干潮 때가 되어 물이 빠지고 나면 섬 사이를 연결하는 육지 부분이 드러나기 때문에 그 이름을 ‘자매도姉妹島’라 지었다는 소리를 찻집 여자에게서 들었다. 마을과 좀 떨어진 변두리라 양식장에 일을 보러 가거나 가끔 낚시하러 오는 사람들이 아니고는 서로 마주치는 일이 별로 없어 좋았다. 나는 당분간 여기에 머물 예정이다. 해야 할 무슨 일이 있어서가 아니다. 도시의 부조리를 잊고자 휴양 차 이곳으로 왔다.

이곳에 도착한 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나는 마치 오래 전부터 이곳을 아주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산은 사람을 껴안고 바다는 산을 붙잡는 모습이라, 산과 바다 모두가 그렇게 친근하고 정다웠다. 뱀의 몸처럼 유연하고도 무겁게 오르내리는 파도의 나지막한 숨결, 동글동글한 조약돌이 펼쳐진 바닷가는 남해안의 여느 해변과 달랐다. 해변이 끝나는 곳 언덕에 그림처럼 세워진 교회 종탑도 여간 보기 좋은 것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마을을 안개처럼 휩싸고 도는 엄숙할 정도의 고요와 평화가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것들을 처음 본 순간, 나는 내가 이곳에 처음 왔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아마도 예전 언젠가 나는 이곳에서 살았었으리라.”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나의 몸과 정신은 그 ‘언젠가’를 기억하지 못했다. 사람에게 반하듯 그렇게 첫눈에 자연에게 반할 수 있다니, 그것은 참 신기하고 이상한 경험이었다.


느지막하게 식사를 한 다음 마을을 한 바퀴 빙 둘러보았다. 그리고 나서 친구가 소개해준 찻집 여자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는 약도에는 연홍도 선착장까지만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는 아무 것도 없다. 나를 이 섬에 오게 한 친구는 이 선착장에서 그곳을 찾으면 된다고 하였다. 나는 그렇게 해야 했다. 그런데 초행이라 찾기가 힘들었다. 마침 내가 타고 왔던 배가 선착장에 닿았다. 사실 이곳에서 내리거나 타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한때 흥성거리던 마을이 지금은 주민이 많이 떠났고, 미술관도 들어섰지만 여전히 교통이 불편할 뿐더러 홍보가 되지 않았는지 사람들의 발길이 아직은 요란하지 않다.

선착장 부근에서 두리번거리자, 아닌 게 아니라 그 문제 찻집의 작은 초록색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거짓말을 조금도 보태지 않고 그 간판은 손바닥만 했다. ‘茶香’이라는 한자가 삐뚤삐뚤 쓰였을 뿐, 그 밖에 다른 글씨는 없었다. 내가 그 찻집 문을 당당히 열고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찾고 있던 그 간판이 반가웠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려운 일이 있거나 섬에 대해 알고 싶은 일이 있으면 도움을 받으라는 친구의 말에 자신감을 갖게 된 때문이었다. 

‘茶香’은 간판대로 찻집이었다. 입구에는 크고 작은 화분에 각종 들꽃들이 놓여있었다. 겨울철이라 아름답게 꽃은 피우고 있지 않지만, 그 작은 것 하나가 모두 정성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창가 쪽에는 노란 들꽃 하나가 화분에 담겨져 수줍은 듯 꽃을 피우고 있었다. 더 들어가니 장난감 같은 조그만 탁자들이 벽 모서리마다 하나씩 붙어 있고, 그보다 조금 큰 동그란 탁자가 한가운데 놓여있었다. 여기저기 옛날 물건들도 보였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정이 있는 것들이었다. 주인은 30대 중반의 긴 머리에 얼굴이 유난히 작아 보이는 여자였다. 한눈에도 온갖 고비를 다 겪었을 것 같은 얼굴인 데다가 머리까지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귀에 익은 음악이 들어갈 때부터 흐르고 있었고, 그녀는 음악이 끝날 때마다 일어나서 다시 돌리는 일을 되풀이했다. 슬픈 노래 모음인 CD였다. 

나는 유자차를 시켜 마셨다. 간판대로라면 녹차 이름도 적혀 있을 법 한데 몇 번을 보아도 찾을 수 없었다. 말이 없는 편인지 그녀는 내가 묻는 말 외에는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나도 그다지 언변이 좋은 편이 못 되어서 자연 몇 마디밖에 나눌 수가 없었다. 이런 곳에서 장사가 되느냐는 물음에도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녀의 신상에 대한 궁금증은 자제해야 했다.


너무 이른 시간이었을까, ‘茶香’은 문이 닫혀있었다. 아직 열한 시가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이 마을에 조금 더 친숙해지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나는 방파제를 따라 걸었다. 바닷물에 떨어진 햇살이 수면 위에서 미끄럼을 타고 있었다. 가끔씩 물고기들이 낚싯줄에 매달려 수면 위로 오르는 광경은 사람을 즐겁게 했다. 기분이 아늑해졌다. 방파제에 앉은 채 꽤 오랫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몇십 분이 흘렀을까, 나는 다시 찻집으로 갔다. 여전히 문은 닫혀 있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문을 두드리는 쪽을 택했다.

“문은 정오부터 열어요.”

쪽문이 하나 신경질적으로 열리더니 그녀가 쑥 목을 내밀었다.

“나예요, 저 어젯밤에…….”

“열두 시 넘어서 오세요.”

“잠깐만요, 사실은 할 말이 좀…….”

그녀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할 말을 하라고 했다. 나는 좀 난처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도 짐작했다. 나는, 이 마을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이곳에서 살고 싶다고도 했다. 가능하다면, 이라고 전제한 다음 집을 한 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묘하게 웃었다. 어이없어하는 것도 같았고 딱해하는 것도 같았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유자차를 마시겠느냐고 물었다. 잠시 후에 그녀는 자기 몫의 녹차도 함께 가지고 와 내 앞자리에 앉았다. 실내에는 여전히 어제와 같은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그 음악은 친구가 6개월 전에 보내준 ‘슬픈 노래모음집(빗소리 버전)’ CD에 수록되어 있는 곡이라 쉽게 들려왔다. 24곡 가운데 ‘슬픈 사랑’이 찻집 공간을 울리고 있었다. 그녀는 차를 마시는 내내 그 음악을 듣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가 않았기 때문에 무슨 말인가를 꺼내야 했다. 나는 조금 전 문 밖에 서서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그녀는 찻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휴양하러 온 게 아니었던가요?”

“휴양이라기보다……. 실은 좀 쉬려고 왔지요. 한데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을 바꿨습니다. 이곳에 더 오래 머물고 싶어졌어요.”

“생각만큼 좋은 곳이 아니에요.”

그녀는 긴 머리카락을 넘기며 자리에서 일어나 CD를 다시 처음으로 돌렸다.

“이곳에 누가 차를 마시러 오나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사실 그 점이 처음부터 궁금했었다. 조그만 섬인 데다 도무지 찻집이 있을 만한 장소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손님 같은 분이 가끔 있지요. 손님이 없으면 하루종일 나 혼자 마시는 거구요. 여긴 내 집이거든요.”

그녀는 선착장을 바라보며 미소까지 지어보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뭇거리는데 그녀가 선수를 치고 나섰다.

“계속 계실 건가요? 나는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 해서…….”

나는 머쓱해져 자리에서 일어서다가 탁자 옆 벽에 붙어있는 그림을 보았다. 어디서 본 듯한 그림이었다. 슬픈 표정을 하고 오른쪽으로 향하여 날아가는 한 마리 새 같았다.  

 

창문을 열면 나를 반하게 한 그 모든 것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바람이 아니 부는 듯 불고, 사방에 가득한 양광陽光이 나뭇가지와 땅을 자못 부풀게 하는 이런 날은, 야릇하게도 채석강 같은 매서운 절벽과 외로워 보이는 자매도가 있는 바다 쪽이 아니라, 마을이 있는 쪽으로 유달리 눈이 갔다. 심장의 박동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차가운 바닷물도 이런 날은 목소리가 낮아져 나를 끌고 가지 못하였다. 나처럼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모여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역시 이런 날씨와 썩 어울린다. 마을이 있는 곳은 바닷가와는 달리 자주 따스한 바람이 불었다. 때로는 그렇지 않은 일도 벌어지지만, 그러나 여전히 마을의 체온이 골목의 공기와 하늘을 데워놓기 때문이다. 나는 목덜미가 따끈해 오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눈으로 길을 따르지 않고 마을로 향한다. 그렇게 미술관 뒤에 우거져있는 자작나무숲을 지나,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에까지 도착한다. 언덕의 지붕은 나직하고 집들을 둘러싼 담장은 더욱 나직하며 집들의 뒤와 옆에 서 있는 나무들의 키도 결코 우뚝하지 않다. 오른쪽으로 머리를 돌려 바닷가를 보니 낚시꾼들이 바닷가로 내려선다.


나는 상당히 많은 시간을 ‘茶香’에서 보내면서 섬 안팎을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곤 했다. 지나가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나의 주의력은 그에 반비례해서 더욱 치밀해지고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움직이는 것이 없으면 날아다니는 먼지에도 신경을 쓰게 되고, 할 일이 없으면 낡은 신문의 오자까지 바로잡게 되는 이치라고나 할까, 나는 종종 그것이 나의 직무라도 되는 것처럼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일에 온 신경을 집중하곤 했다.

‘茶香’을 드나드는 이들은 대개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양식장 주인 남자도 가끔 들러서 인삼차를 시켜 마시곤 했다. 여주인에게 꽤 공을 들이고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말투며 눈빛만 보고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 친구도 그랬지만, 다른 사람들도 어쩐지 이 긴 머리를 늘어뜨린 30대의 여자에게 맥을 못추는 낌새였다. 그런데 어쩌다가는 낯선 사람들이 이 찻집을 찾아오기도 했다. 그들은 거의 간편한 차림에 낚시 가방을 메고 있었다. 더러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바닥에 진을 치기도 했다. 낚시꾼들 가운데는 여주인과 스스럼없이 인사를 나누는 사람도 있었다. ‘지난 번보다 훨씬 예뻐졌네’ 하며 실실 웃는 사람도 있었고, ‘이따 여기서 매운탕 좀 끓여 먹읍시다. 괜찮지요?” 하고 부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어쨌든 모두 손님이었다. 내가 그런 것처럼.

그러나 오늘 ‘茶香’의 찻집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다르다. 그는 낚시꾼도 아니고 양식장 주인도 아니다. 나는 창가쪽 자리에 앉아 밖을 내다보고 있었는데, 그 남자는 선착장을 빠져나오자마자 곧장 찻집을 향해 걸어왔다. 그는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검정색 양복을 입은 건장한 중년의 신사였다. 눈치까지 덩달아 예민해진 걸까, 그 사람이 들어선 순간 나는 그가 매우 특별한 사람이라는 점을 바로 짐작해 버렸다. 요컨대 그 남자는 결코 손님이 아니라는 예감 같은 것이다. 그 사람은 문고리를 쥔 채 입구에 서 있었는데, 주방에서 나오다가 그 남자를 발견한 여자가 순간 걸음을 멈춘 채 몹시 심란스런 표정을 짓는 모습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것은 명확하게 반기는 표정도, 그렇다고 명백하게 거부하는 표정도 아니었다. 종잡을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의 표류가 그녀의 표정을 허물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손쓸 수 없이 빠르게 내려덮인 미세한 불안의 그물이 그녀의 얼굴에서 미세한 웃음과 윤기를 빼앗았다고 해야 할까, 그런 정도의 느낌이었다. 아마도 그녀 자신은 그 순간의 자기 표정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을 테지만.

남자는 망설임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마땅히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아무 말도 붙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집을 나왔고 그녀는 문을 닫았다.

나는 왜 그랬을까, 찻집을 나와 다른 곳으로 가지 못했다. 오히려 찻집이 잘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별다른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茶香’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습관과 별다를 바가 없을 터였다. 굳이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쓸데없이 왕성하기만 한 나의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그런데 그녀에게 여성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아주 터무니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동인으로 작용했으리라고 추측은 무리라고 할 수 없다. 나는 자리를 잡고 앉아 찻집을 노려보았다.

황혼이 질 때까지 ‘茶香’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내가 보고 있는 동안 두 명의 손님이 문을 두드리다 돌아갔다. 나는 밖으로 나가는 배가 일곱 시 20분이면 연홍도에서 멈춘다는 사실을 상기해 냈다. 물론 그 남자가 이곳에서 잠을 자고 갈지도 모르는 일이긴 했다. 하지만 그가 오늘 밖으로 돌아갈 생각이라면 마지막 배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었다. 시계를 보니 일곱 시였다. 나는 10분만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어쩌자는 계산도 없이 무작정 찻집만 노려보고 있는 내 자신이 우스꽝스럽고 쑥스러워서 나는 그 10분 동안 몇 차례나 쓴웃음이 나왔다. 10분은 금방 지나갔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길게 늘어진 황혼의 자락을 밟으며 언덕을 내려오면서도 나는 여전히 찻집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언덕을 내려오자 두 개의 길이 나타났다. 하나는 ‘미술관’으로 가는 길이며 그 길은 오른쪽으로 가는 길이었고, 다른 하나는 ‘茶香’으로 가는 길이며 그 길은 왼쪽으로 가는 길이었다. 내 몸이 자동적으로 왼쪽을 향했다. 언덕에 올라갈 때 어쩌자는 계산이 없었던 것처럼 왼쪽 방향을 잡아 걸으면서도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모퉁이를 돌아 막 찻집 앞으로 몸을 내미는데 뜻밖에도 문이 열렸다. 찻집 문을 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나쁜짓을 하다가 들키기라도 한 사람처럼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서고 말았다.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남자였다. 뒤이어 여자의 모습도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문 쪽에 시선을 두고 기다렸지만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남자는 옆에 서 있는 나를 일별한 후 곧바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의 태도에서는 아무 감정도 전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들어올 때와 똑같이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선착장 쪽으로 갔다. 그가 막 선착장 끝으로 다가갔을 때 저만치서 다가오는 배가 보였다. 녹동으로 가는 배였다.

여자는 창문 가까이 얼굴을 대고 서서 그 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여자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때 나는 이미 그녀의 눈에서 눈물을 본 뒤였다.

나는 마치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찻집 문을 열었다. 실내 가득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14번째 곡 ‘사랑이 지면’이었다. 슬픈 노래가사가 더욱 무겁게 분위기를 내리 누르고 있었다. 등을 돌린 채 여자는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는 안주 접시와 함께 서너 개의 막걸리 병이 세워져 있는 테이블을 보았다. 그들은 그 동안 거기에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도 그쪽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배가 떠난다는 뱃고동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잔을 비웠다.

“같이 한 잔 할까요?”

여자는 대꾸하지 않았다. 내가 주방에서 잔을 갖고 왔을 때 더 이상 음악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여자는 맞은편 의자에 앉아있었다. 여자는 음반을 다시 올려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일부러 판을 내려놓아 버렸다고 추측했다. 나의 추측은 들어맞았다.

“지겨운 인생, 지긋지긋한 놈 …….”

그녀는 혼잣말하듯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지만 나는 그 말을 알아들었다. 그 남자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 남자가 누구냐, 무슨 일이냐 하고 묻는 것은 온당한 일이 아닐 것 같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도 대충은 짐작할 만한 사정이었다. 단지 나는 그녀의 빈 잔에 술을 채우기만 했다. 그녀는 가끔씩 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쓸어올릴 뿐, 빠른 속도로 잔을 비웠다. 나는 그런 그녀가 은근히 걱정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에 그녀는 훌쩍훌쩍 울먹이기까지 했다. 나는 난처하고 불편했다. 아무 생각도 없이 공연히 들어왔다는 후회가 생겼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그 시간, 그 자리에서 그녀의 상대는 나였다. 내가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될, 피할 수 없는 부담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인지했다.

“지겨운 섬, 난…… 난 떠날 거예요.”

이번에도 그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걸 안다. 나는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그녀는 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고개를 번쩍 들더니 대들듯 내 가슴을 향해 손가락을 내뻗었다.

“당신, 여기가 좋다고 했지요? 여기서 살고 싶다고 했죠, 이 지겨운 섬에서?”

그녀는 끝내 탁자에 얼굴을 묻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은 매우 낯이 설었다. 그녀의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당황한 나머지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넨다고 해서 마음이 개운해질 것 같지도 않았다. 어쩌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는 편이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호의일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동생을 잃었어요, 아니 죽였어요.”

한참 만에 고개를 치켜든 그녀가 왼쪽 손을 이마에 받치고 다른 쪽 손으로는 탁자 위에 의미 없는 글씨를 쓰면서 불쑥 입을 열었다. 한없이 가라앉은 목소리이긴 했지만 아까처럼 감정이 격앙된 것 같지는 않았다. 한바탕의 울음을 토해내고서 마침내 평상의 자신으로 돌아온 것일까. 나는 내심 안심이 되었다. 그녀의 오른쪽 손가락들이 탁자 위에 엎질러진 술을 휘젓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흡사 고해라도 하고 있는 사람 같았다. 그렇게 진지하고 정성스러웠다.

“어릴 때 우리집은 차를 재배했지요. 꽤 넓은 밭이었어요. 집 앞마당엔 큰 우물이 있었고, 물맛이 좋아 동네 사람은 물론 일하는 아줌마들도 좋아했지요. 그 우물물을 길어 차밭에 물을 대었고요, 나와 동생은 우물가에서 자주 숨바꼭질을 했답니다. 어린 동생은 자주 우물 안을 들여다 보았지요. 그 날도 달빛 가득한 우물 안을 본다며 잔뜩 고개를 빼고 있었는데, 그만 내가 부르는 소리에 놀라 우물에 빠졌답니다. 뒤늦게 건져 올려진 동생은 죽어있었지요. 그 뒤로 나는 우물가에 앉아 자주 울었지요. 그런데 그때마다 동생의 울음소리도 들렸답니다. 분명히 동생의 소리였어요. 부모님은 굿도 하고 온갖 푸닥거리를 다 해보았지만 ……, 하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었어요.”

그녀는 거기서 말을 멈췄다. 나는 “그런 일이 있었나요?” 하고 물었다. 물음이 아니라 그 말은 상대방을 응원하기 위한, 말하자면 추임새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문득 자신의 과거를 꺼내기 시작했을 때 이상야릇한 감동과 함께 어떤 기대를 가졌었다. 그녀 스스로 자기를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는가. 어떤 동기에서든, 그것은 결코 단순한 일일 수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그녀는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를 상대로 넋두리를 늘어놓는 자신이 민망스러워진 모양이었다. 나의 추임새를 그녀는 간단히 무시해 버렸다.

“자, 이제 가보세요.”

“괜찮겠습니까? 제가 곁에 있어드리면…….”

여자는 내 얼굴을 올려보며 웃었다. 나는 그녀가 내 제안을 불쾌해 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녀의 웃음은 어쩐지 쓸쓸하고 슬프기까지 했다. 그녀의 고개가 서서히 도리질을 했다. 그녀의 긴 머리카락도 따라 움직이며 볼을 쓰다듬었다.

“그런데, 저 그림은 누가 걸었나요?”  

나는 찻집에서 나오다 말고 새를 그린 듯한 그 그림을 보며 별스럽지 않게 말을 던졌다. 그러나 여자는 심상치 않은 웃음과 ‘다음에’라는 말로 대신하였다.         

나는 웬지 서운하고 허전하게 미술관으로 돌아왔다. 시간은 어느새 새벽 1시 반을 지나고, 언제부터 내렸는지 제법 쌓인 눈송이 몇몇만 띄엄띄엄 허공을 헤매고 있었다. 나는 차츰 열리는 뜰 앞의 시계視界를 훔쳐보며, 내친 김에 에세이를 연재 중인 잡지의 원고를 쓰려고 컴퓨터를 켰다. 커서가 머뭇거리는 자리에 ‘슬픔의 미학’이라는 제목을 적고, 식은 커피를 마셨다. 그러나 ‘슬픔의 미학’이라는 제목을 적게 한 어떤 생각은 좀처럼 그 구체적인 내용을 모니터 위에 불러내지 못하고, 제목만 고도孤島처럼 그 위를 떠돌고 있었다. 이럴 때 ‘하얀 화면’은 공포의 대상이다. 순간 나는 친구의 도록과 찻집 여자의 벽에 걸렸던 그림이 생각났다. 일삼아서 그 새의 형태와 모습의 특징을 검색하여 나는 그 그림의 주인공이 ‘스쿠온크’라는 눈물의 새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런데 그 새가 날아가는 방향은 왼쪽이었다.

   

스쿠온크는 무뚝뚝하며 일반적으로 석양 무렵에 잘 나타나는 습성이 있다. 어찌 보면 그에게 잘 어울리지 않는 얼룩덜룩한 털로 덮인 가죽이 그의 몸을 둘러싸고 있다. 이 새는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불행한 동물이다. 이 동물은 누구나 쉽게 추적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계속 울고 다니므로 언제나 눈물 자국을 남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더 이상 도망을 못하게 되거나 혹은 사람들 때문에 놀라게 되면, 이 새는 눈물로 변해서 흘러내린다. 이 스쿠온크를     잡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차갑고 달이 뜨는 저녁이 가장 좋은 때인데, 왜냐하면 이때는 눈물이 천천히 떨어질 뿐만 아니라 이 동물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스쿠온크의 울음소리는 주로 커다란 관목 아래에서 들려온다.


‘흘러내리는 눈물로 된 육체’를 가지고 있는 이 스쿠온크를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슬픔이 된다. 슬픔이야말로 눈물이라는 이름의 피로 살고 있는 존재가 아닌가. 슬픔이 슬픔이라는 자신을 잃고 눈물이라는 다른 존재로 파괴되는 것은 엄청난 비극이다. 자신이 바라는 존재 전이가 아니라 존재 파멸인 탓이다. 나는 제목을 ‘슬픔의 비극’으로 바꾸었다. 한 시간 가량이 지나서야 비로소 어떤 생각의 가닥이 조금씩 풀려 나갔다. 나는 그 생각의 가닥을 아슬아슬하게 잡고 따라가며 자판을 두드렸다.


여자는 짐을 싸고 있었다. 내가 들어갔을 때도 잠깐 고개를 내밀며 내려다보았을 뿐 왔느냐는 인사도 건네지 않았다. 나는 냉장고 문을 열고 맥주를 한 병 꺼내 테이블로 가지고 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맥주 한 병을 비웠다. 

“나도 여기 오래 있지는 않을 생각이오.”

뚜껑을 열어젖히는 오프너의 경쾌한 파열음과 잔에 따르는 맥주의 청량한 소리만 한동안 홀 안을 짓누르는 침묵을 깨고 있었다.    

“왜요?”

한참 만에 그녀가 물어왔다. 이번에는 내가 뜸을 들였다. 나는 잔을 비웠다.

“생각이 바뀌었소.”

그녀는 다시 되묻지 않았다. 그 대신 그녀는 내 앞에 앉았다. 나는 그녀에게 잔을 내밀었다. 그녀는 손을 흔들어 사양한다는 표시를 했다. 나는 더 권하지 않았다. 그런데 벽에 걸려있던 스쿠온크 그림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처음에 그랬지요, 생각만큼 좋은 곳은 아닐 거라고. 내 말은 이 섬이 특별히 나쁘다는 뜻도 아니었어요. 어느 곳도 특별히 나쁘거나 특별히 좋거나 하지는 않다는 뜻이지요. 중요한 것은 사람이에요. 자연이나 풍경은 그 다음이에요. 사람이 좋게도 만들고 나쁘게도 만들어요. 사람 때문에 좋은 곳이 나빠지기도 하고, 나쁜 곳이 좋아지기도 해요. 그 말을 하려는 거였어요. 결국 문제는 자기 자신이지, 다른 무엇도 아니예요……. 지난번에 물어보셨던 이야기를 해드릴 게요. 먼저 내가 그 그림을 걸게 된 이유에요. 내가 이곳에 와서 적응하느라 애쓰는 걸 알고 미술관 관장님이 많은 도움을 주었지요. 하루는 미술관에 걸려있는 그림을 구경했지요. 그 가운데 내 눈에 확 들어오는 그림 하나가 있었답니다. 가까이 다가가 한참을 쳐다보았지요. 새 한 마리가 왼쪽 방향으로 날아가는 모습이었지요. 그때 멀리서 지켜보시던 관장님이 그 그림 속의 새가 나와 많이 닮았다고 말씀하셨어요. 나의 작은 얼굴과 슬픈 표정이 닮았답니다. 순간, 나는 유년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갔지요. 우리집 차밭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나와 동생을 무척 닮았다고 했어요. 그런데 나는 작은 얼굴이 크게 비쳐 보이는 우물물이 신기해서 자주 우물 안에 내 얼굴을 비추어 보곤 했지요.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어요. 나와 닮아서였을까요, 동생도 나를 따라 우물을 종종 들여다보았지요. 그러다가 그 날 내가 부르는 소리에 놀라 중심을 잃고 떨어져 그만……. 그 이후 나는 우물을 들여다보던 그 일만 안 했더라면 하는 죄책감으로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답니다. 그리고 관장님께 부탁을 했지요. 저 그림과 같은 것으로 오른쪽으로 나는 모습으로 말이지요. 그런데 어느 날 그 그림을 찻집으로 가져오셨더군요. 그래서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눈에 잘 띄는 곳에 걸어 놓았지요…….”    


자꾸만 술이 들어갔다. 어제는 그녀가 내 앞에서 만취했었다. 그러나 오늘은 거꾸로다. 그녀는 어제의 그녀가 아니다. 나도 내일이면 오늘과 다른 내가 되어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나는 투정하듯 그놈의 음악을 틀어보라고 주문했다. 그녀는 쓸쓸하게 웃었다. 그 미소가 기분 나빴다.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없어요. 버렸어요.”

등 뒤에서 그녀가 한숨처럼 내뱉은 말이다. 나는 그 자리에 우뚝 섰다. 그리고  몸도 돌리지 못한 채 중얼거리듯 말했다.

“당신은 정말 대단한 여자요.”

“새삼스럽게 그런 말을, 나중에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지요.” 

그 말은 모두 다 진심이었다.

나는 그 길로 찻집을 빠져나왔다. 부끄러움 때문이었을까,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이었을까? 어쩐지 그녀를 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내 걸음걸이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눈을 떴을 때 바깥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미술관은 어두웠고, 나뭇잎이나 땅바닥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제법 시끄러웠다. 시계 바늘은 여덟 시 30분을 넘기고 있었다. 입 안이 모래를 씹은 것처럼 깔깔하고 머리는 묵지근했다. 힘들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창문 밑에 의자가 놓여있다. 나는 아침마다 그곳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았었다. 습관적으로 그곳에 가서 앉았다. 비는 생각보다 많이 쏟아지고 있었다. 절벽에서 시작된 남은 구름이 서서히 움직이면서 시야를 흐리게 했다. 그래서 창밖 풍경을 지우며 쏟아지는 빗줄기 말고는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이곳 모든 것들이 아예 처음부터 없었는지 모른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 처음부터 내 창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중얼거렸다. 전원이 나간 워드프로세스의 액정 화면이 순간적으로 검은색으로 변하듯 그렇게 급작스럽게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런데 나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저 멀리 자매도 사이를 날고 있는 새를 보았다. 어제 밤 꿈속에서 미술관 창밖으로 날아간 그 스쿠온크였다. 그리고 분명 두 마리였다. 그것도 마주 보면서.


며칠 전 내린 눈이 어느덧 다 녹아내렸다. 나뭇가지에 머뭇거리던 설편雪片들조차 까끄라기 같은 겨울 햇빛이 다 걷어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천지간의 슬픔, 천지간의 눈물, 천지간의 비애들도 함께 달고 갔을까. 자기를 잡으려는 사람들에게 에워싸이면 눈물로 변해서 흘러내린다는 그 스쿠온크처럼, 인생의 중턱에서 그냥 흘러내릴 순 없잖은가. 그 끝이 어디인지를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이제 나를 감싸고 있는 것들과 함께 나만의 적당한 보폭으로 걸어갈 것이다. 봄의 기다림으로 지독한 삶의 부피는 이 섬에 묻어두고, 사람을 껴안는 또 다른 곳을 찾아 나서야겠다. 실상 모든 문제는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인 것이다. 

나는 미술관 뒤 자작나무숲 앞의 차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허만욱 / 1961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났으며 1999년 『조선문학』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공룡의 땅』, 『가을예감』이 있고 저서로 『문학과 비평의 이해』, 『문예창작의 이해』, 『현대소설의 이해와 비평적 감상』 외 다수가 있다. 현재 남서울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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