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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09. 12. 25. 22:05

눈물

               박 경 숙

 

 

내가 나를 바라본다. 늘 거울에 비쳐보던 나와는 사뭇 다른 나를……. 내 눈은 절반쯤 떠져 있다. 그 눈은 아무 것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채 초점이 없다. 언제 저런 포즈로 사진이라도 한 장 찍은 적이 있던가. 카메라에 담아두기엔 전혀 아름답지도, 그렇다고 일상적이지도 않은 저런 자세를 나는 이제껏 한 번도 취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어쩌면 저것은 내가 세상에서 단 한 번 취할 수 있었던 가장 이상한 포즈이리라.

나는 소파 등받이에 가슴을 걸친 채 고개를 오른쪽으로 꺾고 있다. 왼팔은 소파가 놓인 벽면, 거리로 뚫린 창문과 소파 등받이 사이 좁은 틈으로 떨어졌다. 조금 전의 충격으로 잠시 좌우로 흔들리던 팔은 태엽이 다 된 시계추처럼 점점 그 운동이 멈추어져 가고 있다. 오른팔은 자줏빛 가죽소파 등받이에 걸쳐진 채 모서리를 꼭 움켜쥔 손에 어지간히 힘이 들어갔다. 배와 허리는 소파 등받이와 사선의 간격을 이루며 허공에 떠 있다. 두 무릎을 디딘 소파로 온몸이 곧 미끄러져 내릴 것 같은데도 내가 그대로 있는 이유는 소파 모서리를 단단히 움켜쥔 오른손 때문이다.

나는 유난히 우악스런 손을 갖고 있다. 남자치고는 작은 키에 몸집도 크지 않지만 손만은 투박하고 컸다. 크기와 힘이 꼭 비례하는 건 아닌데도 나는 내 손의 힘이 남보다 세다고 늘 믿어왔다. 하지만 이제 힘을 자랑하기엔 너무 세월이 흘렀다. 나는 곧 예순일곱 번째 생일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내 모습을 좀 더 자세히 본다. 그래, 내가 저렇게 이상한 자세로 소파 등에 엎어진 채 그대로 있는 이유는 모서리를 잡은 오른손의 힘이 세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채집된 곤충처럼 거기 소파 등에 꽂혀 있다. 왼쪽 어깨뼈를 관통한 길고 날카로운 칼 한 자루가 내 몸과 함께 소파 등받이에 꽂혔다. 저렇게 긴 칼은 곧 다가올 11월 마지막 목요일의 추수감사절에 통째로 구운 칠면조를 썰기 위한 것일 게다.

나는 죽은 것이다. 그렇게 이상한 포즈로 소파에 매달려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있는 동안 저절로 그걸 알게 되었다. 지금은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내 왼쪽 등에서, 몸을 돌려세운다면 정확히 심장부분에 솟아오르고 있는 붉은 피를 그저 바라보고 있을 뿐. 리빙룸의 차가운 공기에 내 피에선 희미하게 김이 솟아오른다. 초겨울의 집안 온도는 차갑다. 나 혼자를 위해 넓은 집 전체를 난방 할 수가 없어 나는 요즘 잠자는 침실에만 작은 전기히터를 켜두곤 했으니까. 참 지금 히터는 그냥 켜져 있을까? 몇 걸음이면 내 방으로 달려가 확인 할 수 있으련만 움직일 수가 없다. 아마도 지금 저렇게 정지되어 버린 몸에 내 모든 습관이 잠겨버린 탓이리라. 히터는 자동온도조절장치가 있으니 과열되어 불이 날 염려는 없을 것이다. 저렇게 가엾게 숨을 멈춘 내 육신이 또 불에 타는 것을 보고 싶지는 않다.

유리창엔 어둠이 가득하다. 더러는 자동차가 지나가기도 하지만 이렇게 깊은 밤이면 집 앞의 길은 칠흑이 된다. 가로등이 없는 동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지어진 집들은 밤이면 파도소리를 들으며, 총총히 뜨는 별빛을 보기 위해 일부러 가로등을 세우지 않았다고 했다.

이웃들은 내 비명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다. 그들은 밤마다 파도소리에만 귀를 열어놓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누군가 유유히 컴컴한 동네 길을 달려와 서슴없이 자동차를 세우고, 나지막한 내 집 담장을 넘어왔으리라. 나는 늘 현관문을 잘 잠그는 버릇이 있지만 창문 걸쇠는 신경 써 채워보지 않았다. 그만큼 안전한 주거지라고 소문이 난 곳이니까. 동네에 가로등이 없는 것처럼 집집의 창문엔 창살이라곤 없다. 그는 분명 잠기지 않은 창문을 열고 들어왔으리라. 하지만 나는 사실 아무 것도 알 수가 없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고, 지금 이렇게 내 주검을 보고 있을 뿐이다. 산동네서 태어났던 내가 또 다른 산동네에서 죽었다는 사실이 조금 우연처럼 느껴질 뿐, 내가 왜 죽어야했는지 나는 모른다.

칠면조 칼의 주인은 필경 강도였을 거다. 미국 남가주 인근에선 부자동네로 통하는 이 언덕배기에 원정을 나온 히스패닉 강도일 것이다. 거실에서 들려오던 희미한 인기척에 잠을 깬 나는 그가 내리친 칼끝이 베게 모서리를 스친 순간, 재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얼른 방을 뛰쳐나왔지만 그는 무섭게 쫓아왔고, 나는 도망친다는 게 바로 저 창문을 막 뚫고 나갈 셈이었다. 먹이사슬에 걸려들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한 마리 곤충처럼…….

어깨에서 흘러내린 피가 내 비둘기 색 잠옷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피는 실내의 찬 공기에 점점 식어가고 이제 김이 솟아오르는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 모습이 끔찍하지도 무섭지도 않다. 물론 나는 아프지도 않다. 하지만 언제까지 내가 나를 보고 있어야하는지 조금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마음이 멍해진다. 점점 생각이란 게 없어지고 있는 것 같다. 죽음이란 이런 것이던가. 느낌이, 생각이 점점 옅어져 그저 물거품이 되는 것, 아니면 공기가 되는 것…….

세상 안에서 신이 있다고 왈가왈부하던 사람들은 다 거짓말을 했나보다. 그들의 말이 맞다면 지금쯤 나는 어떤 체험에 있어야하지 않는가. 어쩌면 난 죽은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잠시 유체이탈을 한 것인가. 그런 생각마저도 자꾸만 흐려진다. 그런데도 산동네에서 태어났던 내가 산동네에서 죽었다는 사실은 검고 굵은 화살처럼 자꾸 나를 지나간다. 그래, 지질이도 못살던 그 산동네 판잣집에서 태어났지. 그리고 미국 캘리포니아의 부자동네 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언덕에서 나는 죽은 것이다. 내가 이 언덕에 오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짓을 했던가. 결국 나는 어린 시절 그렇게도 벗어나고 싶어 하던 산동네로 다시 오르기 위해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했던 것만 같다.

허망함에 한숨을 쉬고 싶다. 그러나 저렇게 피를 흘리며 멈춘 내 몸이 어찌 한숨인들 쉬랴. 어떤 행위도 할 수 없는 내 존재가 갑자기 갑갑해진다. 응축되어 산산이 터져버리거나 아니면 그냥 허공으로 풀어헤쳐져야만 할 것 같다. 나는 내가 짐작할 수도 없던 시공에 그냥 멈추어버린 것이다. 사방의 어둠, 어둠……. 그래도 용케 그렇게 이상한 자세로 소파 등받이에 꽂힌 내 모습만은 선명히 보인다. 저 검은 창밖에선 이 밤도 파도가 끊임없이 웅얼대고 있겠지만 내 귀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내 귀는 죽었고 내 존재엔 귀가 없다. 아아 이 갑갑함…….

어두운 공간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 나는 잠시 내 몸이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내 몸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낯선 무엇이다. 내 몸과는 다른 한 사람의 몸이다. 나 보다는 키가 크고 몸집도 큰, 그러니까 죽은 내 몸 위에 어른거리는 건 낯선 남자이다. 그는 내 어깨에 꽂인 칼을 잡고 있다. 그것을 빼내려는지 칼자루를 이리저리 비튼다. 내 여윈 몸에 쉽게 박혔던 그것이 잘 빠져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칼끝은 소파모서리 쿠션 속에 질러진 나무 심에 단단히 박혀 있으리라. 내가 저렇게 곤충처럼 꽂혀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가 좀 더 힘을 주어 손을 비튼다. 그의 손짓을 따라 내 몸이 소파 등에 꽂힌 채 움찔움찔 움직이고 있다. 내가 얼마나 아플 것인가 생각하다가 나는 곧 내 몸은 죽었고 내 존재엔 감각이 없다는 걸 안다.

이윽고 사내가 긴 칼을 힘겹게 뽑아낸다. 그와 동시에 나는 소파 밑 마루바닥으로 벌렁 나자빠진다. 내 몸이 마룻바닥에 부딪는 소리……. 아니 들을 수가 없다. 나는 그냥 그 소리를 본다. 사내는 바닥에 나동그라진 나를 그대로 두고 현관을 나간다. 내 몸에서 빠져나온 긴 칼을 한 손에 든 채. 순간 나도 모르게 그를 따라 나간다. 아니 내가 그에게로 파도처럼 휩쓸려 간다. 그의 구부정한 등이 자석처럼 나를 끌고 간다고 해야 옳을까. 나는 그의 등에 붙어가며 저기 마루바닥에 나뒹구는 건 이제 내가 아니라는 걸 비로소 알게 된다. 물체와 존재의 인연이 절단되는 느낌에 갑갑하던 내 존재가 조금 시원해지는 것도 같다.

사내는 내 집 앞에 세워두었던 낡은 깡통 밴에 올라탄다. 운전석과 조수석만 있을 뿐 뒷자리는 짐을 싣기 위해 텅 비워둔 그런 자동차 말이다. 이 산동네에선 보기 어려운 고물차이다. 나도 모르게 덩달아 깡통 밴에 오른다. 사내는 늙수그레하다. 강도짓을 하기엔 너무 늙고 힘도 없어 보인다. 그는 내 집을 뒤지지 않았다. 피 묻은 칠면조 칼을 자동차 뒤에 던져놓았을 뿐 내 집에서 갖고 나온 물건은 없다. 하긴 철제 금고에 넣고 전자열쇠로 잠가놓은 현금과 보석을 무슨 수로 저런 늙은이가 꺼내랴. 그는 얼굴이 검다. 턱 밑에 덥수룩한 허연 수염 때문에 낯빛이 더 검어 보이는 흑인이다. 누굴까?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나는 왜 이 늙은이를 따라가고 있는 것인가. 내 안엔 그를 따라가야겠다는 의지가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아직 이런 내 존재에 익숙하지 못한 나는 내 영혼이 간파하는 그 이유를 아직 모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새삼 삶과 죽음의 간극에서도 아직 제 영혼에 익숙해지지 못하는 또 다른 간극이 있다는 걸 안다.

어둠 속을 달리는 늙은이의 검은 두 손이 핸들 위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다. 어쩌면 그는 살인을 처음 해 본 것인지도 모른다. 검은 녹이 슨 갈고리같이 핸들에 걸쳐진 그 손의 떨림에서 철사처럼 가느다란 흐름이 보인다. 그것이 그의 팔을 타고 심장 안으로 스며든다. 그러니까 그 손의 떨림은 그의 심장에서 팔을 타고 내려왔던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그 떨림이 심장으로 스며들고 있다는 걸 나는 안다. 나도 모르게 그의 손이 나를 죽였을 뿐 그의 가슴이 나를 죽인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그러면 청부살인일까? 하지만 그는 살인청부를 받기엔 너무 늙고 힘이 없어 보인다. 그냥 늙기만 한 것이 아니라 병들어 보이기까지 한다. 내가 잠을 자다 불현듯 기습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면 결코 이 늙은 흑인에게 당하지는 않았으리라.

어둠을 달리며 사내가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그의 갈고리 손에 묻었던 내 피가 눈물을 훔치는 그의 뺨 위로 흐릿하게 번진다. 마마! 오 마마! 그의 입에서 새어나오는 소리를 귀가 닫힌 나는 듣지 못한다. 하지만 내 존재는 그 소리를 안다. 오 마마! 그는 다시 한 번 탄식처럼 내 뱉는다. 제 엄마를 부르고 있는 것인가. 나도 문득 엄마를 부르고 싶어진다. 내 주검을 바라보며 내가 태어났던 산동네를 떠올렸던 건 어머니를 생각했던 걸까.

어두운 길을 벗어난 자동차는 깊은 밤에도 불빛이 훤한 다운타운으로 들어선다. 텅 빈 거리 위로 빌딩에서 쏟아지는 불빛이 바람처럼 지나간다. 사내는 어느새 울기를 그치고, 눈물로 뻣뻣해진 제 검은 볼을 갈고리 손으로 연신 쓰다듬고 있다. 그의 눈물에 섞인 내 피도 같이 말라버렸으리라. 얼마간 타운의 불빛 속을 통과한 자동차는 다시 어두운 길로 들어선다. 허름한 단층 건물들이 어둠 속에서 그 윤곽을 폐허처럼 드러내고 있다. 그는 그제야 생각난 듯 자동차 뒷부분에 던져놓았던 칠면조 칼을 흘깃 돌아본다. 달리던 속도를 조금씩 늦추며 두어 번 더 뒤를 돌아보던 그가 후미진 길가에 천천히 자동차를 세운다. 내가 언젠가 와보기도 했던 것 같은 거리, 창고건물들이 운집한 곳이다. 자동차에서 내린 그가 뒷문을 열고 바닥에 떨어진 칼을 집어 든다. 순간 나도 모르게 흠칫해진다. 어두컴컴한 자동차 안에서도 빛이 나는 칼날은 촘촘한 톱니로 이루어져 있다. 젊은 시절엔 내 집에서도 추수감사절 파티를 열었다. 제니는 내게 저런 칼과 커다란 포크를 쥐어주며 칠면조 살을 저며 손님들에게 나누어주라고 했다. 감히 버르장머리 없이 남자에게 그런 일을 시키느냐고 화를 내기엔 제니는 너무 미국화 된 여자였다. 고분고분 그녀가 시키는 대로 하며 적잖은 세월을 사는 동안 우리는 점점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갔고, 금고엔 현금과 귀금속이 쌓였다.

아 제니! 이제 제니를 만날 수 있는 걸까. 그녀와 헤어진 지도 벌써 5년이다. 서로 살가운 정을 주고받았던 건 아니었지만 덩그마니 나 혼자 남은 것은 쓸쓸했다. 그녀가 그립다는 생각은 안 했는데도 말이다. 여기가 피안의 세계라면 혹 제니가 벌써 나를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그녀뿐 아니라, 나 이전에 수도 없이 죽어간 이 지구상의 혼령들은 어디에도 기척이 없다. 영혼을 믿어온 인류는 모두 속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나 이외엔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으니 말이다. 그렇담 내 존재는 뭔가. 이제 나는 몸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안다. 나는 그저 이렇게 부유할 뿐인가.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서글퍼진다.

사내는 자동차 뒷부분에 쓰레기처럼 쌓여 있던 낡은 신문지 한 장을 집어 긴 칼을 둘둘 말고 있다. 희미한 시야에서 영문 신문의 알파벳이 칼의 좁은 너비를 따라 지그재그 일그러진다. 그는 총총히 자동차 앞쪽으로 걸어가 거기 둥근 맨홀 뚜껑을 열고 재빠르게 칼을 떨어뜨린다. 사내가 익히 아는 곳임이 분명하다. 후미진 길가 맨홀 뚜껑 앞에 정확히 자동차를 세웠으니.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난다. 여긴 일요일 아침이면 노숙자들이 몰려들어 급식을 받기도 하는 거리이다. 해마다 추수감사절이면 어느 동포교회에선가 커다란 칠면조를 여러 마리 구어와 저런 칼로 살을 저며 그들에게 나누어주곤 했다. 그건 모두 텔레비전 화면의 동포뉴스에서 본 것이지만 말이다. 저 칼은 얼마나 많은 칠면조 살을 저며 내고나서 내 몸을 관통한 것인가. 사랑의 나눔 도구가 살인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사람들은 알기나 할까.

자동차에 오른 그가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어둠과 희미한 빛이 몇 번인가 교차되고 났을 때 한 단층건물 앞에 자동차가 멈춰 선다. 급히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린 그는 성큼성큼 그 건물의 입구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걸어간다. 네모로 이어진 넓은 벽면이 언뜻 창고처럼 보이는 곳이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곳이 주거공간이라는 걸 알게 된다. 사내는 몸에 헐렁하게 걸쳐진 푸른 재킷을 벗어 현관 앞 옷걸이에 익숙하게 건다. 겉옷이 벗겨져 나간 그의 몸은 활처럼 휘어 있다. 불거진 등뼈와 홀쭉한 배는 언뜻 그믐이 가까운 조각달 같기도 하다. 잠시 음침한 공간을 서성이던 그가 갑자기 생각난 듯 한쪽 벽에 붙은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간다. 변기와 세면기의 사기가 누렇게 변색된 지저분한 화장실이다. 사내는 수도꼭지를 틀어 손을 씻는다. 표면이 갈라진 틈에 검은 때가 낀 하얀 비누를 여러 번 문질러 거품을 낸 그가 제 갈고리 손을 정성껏 씻어낸다. 이미 사내의 눈물에 지워져버린 내 피가 그의 손가락 사이를 스치는 물줄기에 희미하게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손을 물에 담근 채 세면기 위 뿌연 거울 속 제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사내가 그때서야 흐릿한 욕실 불빛에 입은 옷을 비춰본다. 혹 핏방울이라도 얼룩졌을까 걱정하고 있는 거겠지. 그의 표정으로 안심의 기운이 스쳐간다. 그는 철제 수건걸이에 걸려 있던 낡은 베이지 빛 수건에 손을 문질러 닦고 욕실을 나온다.

그가 짧은 복도의 정면 도어손잡이를 조심스레 돌린다. 문을 열고 바람처럼 살며시 방으로 들어선 그는 이불이 구겨진 채 놓인 넓은 침대로 가만가만 걸어간다. 그의 등 뒤를 따라가던 나는 구겨진 이불 속에 누군가가 숨을 쉬고 있다는 걸 안다. 언뜻 보면 그저 이불더미처럼 보이는 그 속의 여윈 생명체가 사내를 향해 잠시 눈을 치뜨다 고단한 듯 도로 감아버린다. 마마! 늙은 사내의 목소리가 불거진다. 그 소리에 이불 속의 눈이 다시 떠지는 듯했지만 곧 힘없이 감기고 만다. 마마! 죽지 마! 죽으면 안 돼! 흑인 특유의 혀가 뜨는 영어발음이 어스름한 방안을 둥둥 떠다닌다. 이불 속은 고요하다. 마마! 마마! 사내는 간절한 목소리를 내며 잠시 그렇게 섰다가, 몸을 굽혀 이불을 걷어내고 생명체를 조심스레 안아 올린다. 작고 늙은 여인의 풀어 헤쳐진 흰 머리칼 끝자락이 베개 위로 떨어지며, 앙상한 상체가 사내의 팔에 들려진다. 참으로 볼품없는 동양여인이다. 여인은 힘겹게 숨을 쉬고 있다. 마마! 내가 했어. 했다구! 울음 섞인 사내의 목소리가 여인의 얼굴 위로 침방울과 함께 쏟아진다. 여인은 사내의 품에 안긴 채 미동이 없다. 그러나 그 눈 꼬리에서 가느다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다. 혹 내 죽음이 이 여인과 관계가 있는 것인가? 나는 여인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본다. 병색이 완연한 작은 얼굴은 유난히 턱이 뾰족하다. 복숭아형 이마와 낮은 코, 힘없이 닫힌 도톰한 입술은 터실터실 각질이 일어서 있다. 그녀가 눈을 크게 뜬다. 생각보다 둥글고 검은 눈이다. 아마도 젊은 시절엔 저 눈으로 생을 승부했을 거라는 느낌이 나도 모르게 든다. 갑자기 그녀의 검은 동공이 좌우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치 무언가를 찾고 있듯이. 우- 여인이 돌연 외마디 소리를 지른다. 저 소리……. 전혀 낯설지는 않은 음성이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도 같다. 쇳소리가 섞인 탁한 음성, 나는 내 생애에 저런 목소리를 가진 여인을 알고 있었다. 그다지 멀지 않던 날에 이 늙은 여인을 분명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어디서였을까.

우- 여인이 다시 소리를 지른다. 사내는 침대에 걸터앉은 채 여인을 품에 안고 눈물을 흘린다. 오 마마! 마마! 나는 물론 사내가 여인의 아들일 리 없다는 걸 안다. 그 둘은 비슷하게 늙어 있다. 사내의 눈물 젖은 뺨이 여인의 얼굴과 포개진다. 그는 두툼한 입술을 여인의 볼에 비빈다. 각질이 일어선 여인의 터실대는 입술로 사내의 입술이 포개진다. 그리고 그 입술은 여인의 목덜미를 더듬기 시작한다. 그가 땀으로 달라붙은 여인의 잠옷 앞단추를 풀고 가슴을 헤친다. 뼈가 드러나는 가슴팍엔 물기를 다 짜내버린 듯한 젖가슴이 늘어져 있다. 사내가 그곳으로 입술을 가져간다. 마마! 일어나! 당신은 내가 이렇게 하는 걸 좋아했잖아. 어서 일어나! 사내는 이내 여인의 어깨에 걸쳐진 잠옷을 벗겨낸다. 여인의 말라붙은 가슴팍은 벌써 사내의 침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속옷이 입혀있지 않은 여인의 아랫도리 밑엔 오물을 받아내기 위한 일회용 패드가 깔려 있다. 사내는 침대 머리맡에 있던 둥근 플라스틱 통 속 젖은 휴지를 한 장 빼내어 음모가 듬성듬성한 그녀의 사타구니를 정성스레 닦아낸다. 여인이 사르르 눈을 감는다. 사내는 닦아낸 휴지를 침대 밑으로 떨어뜨리며 다시 입술을 여인의 샅에 댄다. 그리고 천천히 그녀를 핥기 시작한다. 여인이 더 깊이 눈을 감는다. 사내의 혀가 그녀의 사타구니 깊숙이 점점 옮겨간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들의 다음 행위를 기다리고 있다. 결코 흥분을 유발할 장면도 아니지만, 나는 이미 감각할 몸도 없는데도 말이다. 아마도 곧 사내도 알몸이 되겠지. 그리고 늙고 추한 두 몸은 싱겁게 겹쳐지고 말리라.

하지만 사내는 옷을 벗지 않은 채 너무 오래 그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나는 내가 왜 이 재미없는 베드신을 보고 있어야하는지 갑자기 의문이 든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여인이 갑자기 감았던 눈을 번쩍 뜬다. 그녀는 검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무언가를 황망히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의 시선이 내가 있는 곳에 고정된다. 혹 나를 보고 있는 건가. 공연히 섬뜩한 찰나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기억해 내고 만다.

몇 해 전이었나. 교포 텔레비전 방송에서 짧은 다큐멘터리를 방송했다. 새벽마다 뜨거운 수프를 끓여 빵과 함께 거리의 노숙자들에게 나누어 준다던 그녀, 노숙자들의 어머니라고 했다. 새벽의 박명 속에 허연 입김을 쏟아내며 찬송가를 부르던 여자, 뒷문이 열린 깡통 밴 자동차 위엔 수프가 담긴 대형 팟과 비닐포장의 빵이 쌓여 있었다. 그 앞에서 국자로 스프를 떠 줄을 선 노숙자들에게 나누어 주던 한 허름한 뒷모습이 떠올랐다. 구부정한 등에 홀쭉한 몸피, 국자를 잡았던 검은 손이 내 눈을 스쳐갔다. 여인의 찬송가는 힘차고 구슬펐다. 몸 깊은 곳에서 끌어올려진 듯한 노래 소리는 거친 허스키였다. 질끈 감긴 두 눈에 평평한 얼굴, 머플러에 감싸여 있던 뾰족한 턱을 그 때 볼 수 없던 까닭에 화면 속 여인이 지금 이 여인이라는 걸 떠올리는데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그런데 내가 왜, 왜 여기에 있어야하는 건가. 왜 이런 장면을 바라보고 있어야하는가.

여인의 검은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녀의 가슴깊이에서 세찬 무엇이 그 눈으로 발산되고 있는 게 느껴진다. 필경 저 눈이 늙은 사내의 검은 손을 움직였을 거란 생각이 든다. 여인의 눈에 물기가 고인다. 사내의 입술은 아직도 여인의 볼품없는 몸을 핥고 있다. 여인의 휑한 눈에서 기어이 눈물이 쏟아져 내린다. 눈물……. 나는 문득 내가 눈물을 흘린 게 언제였던가 생각한다. 제니가 떠났을 때도 울지 않았으니. 그녀가 고스란히 남겨놓은 재산과 보험금을 계산하느라 머리가 분주했을 뿐. 어쩌면 내 생애에 가장 마음에 걸리던 눈물의 기억 때문에 나는 일생 내내 눈물을 거부했는지도 모른다.

검고 커다란 눈에 그렁그렁 눈물을 담고 있던 그 애, 아 정말 오래전의 일이다. 의정부 산언덕 아래의 교회당, 오갈 데 없던 홀아비가 어린 딸을 데리고 골방에 살고 있다고 했다. 교회지기 아범,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불렀다. 출석인원 150명 안팎의 크지 않은 교회에서 그는 그림자처럼 움직이며 휴지를 줍고 비질을 했다. 언젠가부터 아비가 없던 나는 교회에 큰 잔치가 있을 때 부엌일을 돕게 된 어미를 따라 그곳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별로 예쁘지도 않던 소녀는 내가 갈 때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이 되어갔다. 키가 자라면서 마른 종아리에 도톰하게 살이 오르고, 엉덩이가 점점 팡파짐해졌다. 소녀도 내 목소리가 변하고, 어깨가 벌어지고 팔에 근육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걸 알고 있었으리라.

내 어미는 소녀의 아비와 친해지고 나는 소녀와 친해졌다. 내 어미와 그녀의 아비가 골방에서 무슨 짓인가를 하는 동안 나는 소녀와 교회 뒤 동산에 숨어들었다. 땟물이 흐르던 그녀의 치마를 들치고 단추가 떨어져 나간 포플린 블라우스의 앞섶을 열고……. 나는 소년다운 짓을 했을 뿐이다. 그건 행복하고도 무서운 느낌을 주었다. 언덕을 비추는 해는 너무 밝았다. 그리고 내려다보이는 교회당 첨탑은 너무 뾰족했다. 소녀는 첨탑처럼 뾰족한 턱을 갖고 있었다. 내 어미가 소녀의 턱에 대해 내 앞에서 투덜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가시나가 턱이 빨라서 팔자가 안 좋을 거라고. 산동네엔 내 어미와 교회지기 홀아범의 소문이 파다해지고 어미는 끝내 살림을 합칠 생각을 했다. 혹 소녀와 내가 하는 짓을 알고 어머니는 일부러 그녀의 턱이 어쩌고 하며 나를 말릴 생각이었을까. 나는 무서웠다. 그러나 햇빛 밝은 동산에서 소녀의 치마를 들치는 그 행복한 행위를 멈출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동산 뒤로 동네 건달 서너 명이 쳐들어 왔다. 소녀와 내가 반나체가 된 채 막 몸을 달구던 참이었다. 나는 사타구니를 내놓은 채 죽도록 두들겨 맞았다. 겨우 바지춤을 올리고 도망칠 때 뒤에서 소녀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온몸이 떨렸지만 눈을 감고 그대로 내달아 버렸다. 나는 열여덟 살 여드름투성이였다.

앓아누워버린 소녀에게 나는 멀리 떠나겠다고 했다. 햇빛이 영그는 초여름의 한낮, 그녀의 골방 앞 토방에서 막 신발을 꿰고 일어선 내 앞으로 금방 쓰러질 듯한 소녀가 앞을 막아섰다. 엿가락처럼 가느다란 몸이 햇빛에 금방 녹아내릴 듯했다. 휘청 고꾸라질 듯하면서도 그녀는 양팔을 벌려 균형을 잡고 섰다. 가지 마! 햇빛을 가를 듯한 쇳소리가 그녀 입에서 울려 나왔다. 가느다란 몸에서 그렇게 울림이 큰 소리를 뱉아 낼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울 아버지는 네 엄마랑 살림 안 합친댔어. 절대로 안 한댔어. 그녀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노란 해가 그 눈에 빠진 듯 광채를 냈다. 나는 온몸이 오싹했다. 이제껏 그토록 빛나는 눈물을 본 적이 없던 까닭이다. 두 다리에 힘이 빠졌다. 그만 그대로 주저앉고 말 것 같았다. 그녀의 눈물 속으로 내 온몸이 빨려들고 있었다. 일부러 동산 뒤로 쳐들어 왔던 동네 건달들을 떠올렸다. 그녀의 비명소리를 기억했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가래침 뱉듯 내뱉었다. 비켜! 이 더러운 계집애야! 이쁘지도 않은 게 이놈 저놈 붙어먹고……. 소녀가 나를 막아섰던 팔을 스르르 내렸다. 그리곤 맨땅 위로 힘없이 고꾸라졌다. 고개를 숙인 채 하염없이 우는 소녀 옆에 봉숭아 꽃봉오리가 붉게 맺혀 있었다. 소녀의 아버지가 교회당 앞에서부터 그 후미진 골방에 이르는 좁은 길에 아무렇게나 뿌려놓은 씨앗이 햇빛 아래 붉은 길을 그려내었다. 나는 자꾸만 눈앞이 흐려졌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거기 더 서 있는다면 나도 소녀 곁에 주저앉아 그만 엉엉 울어 버릴 것만 같았다. 그녀의 울음소리는 땅 끝에서 끌어올린 듯 너무 깊었다. 나는 그 울음 속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 죽어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조금만 속도를 늦춘다면 그만 그 울음의 갈고리 끝이 나를 낚아챌 것만 같았다.

 

황망히 움직이는 늙은 여자의 눈동자 속엔 오래 전 초여름 그 눈물이 가득하다. 그리고 텔레비전 화면 속 그 질긴 찬송가 소리에 소녀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겹쳐 울린다. 나는 고개를 젓는다. 내가 왜 여기 있어야하는가를 이제는 훤히 알았음에도 도리질을 한다.

어미는 내가 떠난 후 목을 맸다. 소녀의 아비로부터 거절을 당하자 남우세스런 삶을 견디기 어렵다고 푸념하다 그리했다고 했다. 구두를 닦아주던 미군을 따라 이미 태평양 건너에 있던 나는 그 소식을 듣고 계집아이를 욕했다. 그 뾰족한 턱으로 기어이 내 어미까지 잡아먹은 년! 나는 계집아이의 아비를 향해서도 부드득 이를 갈았다. 내 속마음엔 사실 어미와 그녀의 아비가 맺어지길 원하는 마음이 없었다. 나는 계집아이에게 싫증이 났고 그 산동네의 지긋지긋한 가난을 벗어나고 싶었다. 동산 뒤 햇빛 속을 쳐들어왔던 동네 건달들이 맘에 걸렸지만, 그건 그녀를 떼어낼 좋은 구실을 내게 마련해주었을 뿐이다.

그녀가 미국에 건너온 건 짐작도 못했던 일이다. 미주방송에서 만들어진 엉성한 다큐멘터리에서 그렇게 울부짖던 찬송가 소리를 듣고도, 나는 왜 그 초여름의 깊은 울음소리를 기억 못했던가. 늙은 여인의 휑한 동공으로 그녀의 신산한 삶이 휙휙 지나가고 있다.

언젠가부터 수프를 끊여들고 노숙자들이 우글거리는 공원을 찾기 시작한 그녀를 늙은 흑인은 자진해서 도왔다. 마약에 찌든 그를 갱생시켜 한 집에 기거하며 그녀는 사내의 여신이 되었다. 그리고 사내는 그녀의 충직한 개가 되어갔다. 밤이면 벌거벗은 채 침대에 나란히 누워 그녀는 오래 전의 이야기를 레코드처럼 반복했고, 사내는 늘 결연한 표정으로 내뱉었다. 마마! 걱정 마! 내가 원수 갚아줄게. 그토록 곱던 마마를 울게 한 그 사람을 내가 꼭……. 그녀는 사내의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돌아누우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때서야 그녀는 자신이 살아온 생의 목적이 무엇이었던가를 알게 되었다. 왜 스스로 이곳까지 왔는가를……. 원한을 갚아줄 한 마리 개를 찾기 위해 새벽마다 부랑아들의 공원을 헤매왔다는 것을. 어느 날 밤 그녀가 사내에게 말했다. 혹 내 죽음이 임박하거든 그 일을 해줘. 나를 위해 네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야. 오 마마! 내가 하고말고. 나를 구해준 마마! 사람처럼 살지 못하는 나를 사람으로 살게 해준 마마! 하지만 나는 내가 그 일을 하지 않게 되길 바래. 왜냐면 마마는 죽으면 안 되니까. 사내의 절절한 말에 그녀는 침대머리 서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주었다. 거기엔 내가 사는 집의 주소가 정확하게 쓰여 있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아름다운 시간이었어. 그녀가 허공을 바라보며 꿈을 꾸는 듯한 눈으로 혼자 중얼거린 말을 사내는 받아든 종이를 부스럭대며 보느라 듣지 못했다. 그녀가 발음했던 ‘아름다운’이란 단어를 사내가 들었다면 결코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몽롱한 눈빛을 보았다면 그녀 가슴에 쌓인 것이 원한이 아니라 다만 추억일 뿐이란 걸 알아차렸을 테니까.

나는 흠칫한다. 나를 이곳으로 부른 건 그녀의 가슴에 들어찬 그 질긴 추억이다. 사내가 원한으로 오해한……. 사내에게 알몸을 맡긴 채 부릅뜬 그 눈을 보며, 내가 잠시 머무는 이 어중간한 세계로 그녀가 들어올 시간이 가까워왔다는 걸 안다. 나는 두렵다. 몸을 빠져나온 그녀의 존재를 마주하는 것이……. 결국 내 안에 묻혀버린 기억들을 들춰내기 위해 나는 여기 오게 된 것인가. 그녀가 그렇게 울부짖던 그 여름의 햇빛, 눈물, 그리고 봉숭아꽃…….

이따금 두드러기처럼 솟아나 나를 성가시게 하던 계집아이의 눈물에 대한 기억은 어미의 죽음을 듣던 순간 말끔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계집아이의 아비 때문에 내 어미가 목을 맸다면 나는 계집애의 눈물에 양심을 긁히며 더 시달려야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왜 저리도 추하게 늙어버린 여자의 눈을 내가 바라보고 있어야하는가. 살아서 정리해버렸던 것들이 죽어서 왜 도드라지는지 나는 알지 못한 채 서 있다.

그녀의 여윈 몸을 훑어 내리느라 길게 늘어진 사내의 혀는 어스름한 방에서도 그 검은 얼굴 때문에 더 붉어 보인다. 마마! 일어나! 일어나! 난 마마 없이는 살 수가 없어. 두껍게 겹쳐진 눈꺼풀 속 순박한 사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여자의 가슴팍에 떨어진다. 허물어진 언덕처럼 양 겨드랑이 사이로 쳐진 그녀의 가슴골을 눈물이 타고 흐른다. 아 저 눈물……. 나는 어쩔 수 없이 내 마지막 눈물을 더듬어 본다. 그러니까 어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던 때 나는 어쩌면 평생 흘릴 눈물을 다 흘려버렸다. 그리고 미군의 집을 도망쳐 나왔다. 나는 사실 내 모든 기억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거다. 그 산동네, 가난, 홀어미, 교회당, 교회지기아범, 그 딸과 골방, 무엇보다 그 동산 뒤 후미진 곳을…….

뉴욕 뒷골목의 상스런 영어를 배우고, 할렘의 낡은 아파트에서 입에 풀칠을 하고 있을 때 제니를 만났다. 한밤중의 텅 빈 지하철에 그녀가 있었다. 더러운 의자에 앉아 검은 부츠를 신은 가느다란 다리를 꼬고 있던 그녀, 허벅지가 드러난 짧은 스커트와 헝클어진 듯 길게 꼬불거리던 머리칼, 눈두덩은 아이샤도우인지 멍인지 구별이 안될 만큼 시퍼랬다. 나는 어느덧 마흔 다섯 살이었고, 그녀도 비슷하게 나이 먹은 여자였다. 그동안 내 몸과 마음 위를 수많은 여자들이 지나갔듯이 그녀에게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지 나는 묻지 않았다. 그녀는 세 번째 미국인 남편에게 얻어맞고 무작정 전철에 올랐던 터였다. 그 불행한 표정에도 그녀가 눈물을 흘리고 있지 않다는 게 맘에 들었다. 내 몸엔 여러 개의 칼자국이 나 있었고, 그녀의 마음엔 셀 수 없는 상처가 있었다. 우리는 뉴욕의 어두운 밤기운 속 일그러진 서로의 모습에서도 같은 모국어가 출렁임을 알아보았다. 내 몸과 그녀의 마음은 이내 상처로 결합했다. 제니를 사랑했냐고? 나는 떠돌이 내 몸에 지쳤고, 제니는 제 마음에 지쳐 있었다.

제니는 나를 종착역 삼아 제 마음을 부렸다. 그리고 나는 백인남편으로부터 적잖은 위자료를 챙긴, 그녀에게 내 몸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내게 욕심을 내지 않았다. 헐벗고 걷다가 길에 떨어진 낡은 담요 하나를 뒤집어 쓴 듯 내게 기댄 채 그저 제 삶을 살았다. 슬그머니 기후가 좋은 캘리포니아로 숨어든 우리는 백인사회의 뒷골목과 동포사회의 중심을 오가며 돈을 벌었다. 영어에 능숙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았다. 이민알선, 취업, 유학주선……. 어수룩한 동포사회엔 구멍이 많았고, 우리는 어느덧 타운의 명사가 되었다. 나는 정부보조금을 받는 2년제 사설 기술대학을 차리고 출석도 않는 가짜 유학생들의 여권에 유학비자 스탬프를 받아다 주었다. 이민국 내부에도 제니의 지인들이 많았다. 이따금 동포 텔레비전 뉴스에 얼굴을 내밀며 양로원에 자선도 했고, 본국 정치인들에게 자금도 조달했다. 아마도 이 늙은 여자는 언제부턴가 나를 훤히 보고 있었으리라.

잠시 부릅뜬 채 멈춰있던 그녀의 동공이 황망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혹 그녀의 눈엔 내가 보이는 것일까.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린다. 아니 몸이 없는 나는 내가 그렇게 움츠러들고 있다고 느낀다. 사내가 그녀의 가슴팍에 처박고 있던 얼굴을 든다. 여자의 몸을 핥고 나서도 그의 얼굴엔 쾌락의 흔적이 없다. 마마! 당신이 못 견뎌하는 그 사람을 내가 해치웠어. 그랬잖아. 그 사람이 세상에 있는 것 못 견디겠다고……. 그녀의 눈동자가 조금 더 움직였을 뿐 표정은 그저 멈춰 있다. 나는 그녀의 그 무표정 안에 고인 그녀의 생을 다시 읽는다.

내 어미가 죽고 나서 교회 골방을 떠나야했던 그들 부녀는 미군부대 앞 싸구려 옷가게에 점원으로 취직한 계집아이의 월급으로 연명했다. 내게 몸을 열고, 동네 건달에게 윤간을 당하고도 미숙하기만 하던 계집아이의 몸은 그 시련 뒤에 여자로서 점점 더 여물어갔다. 가게를 드나드는 미군 놈들이 군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계집아이는 내게 했듯 사랑에 빠졌고, 어린 미군 놈은 내가 그랬듯 그녀를 버렸다. 그것이 몇 번인가 그녀를 훤히 들여다보면서도 셀 수가 없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그러니까 저 늙은 여자의 인생엔 내 책임이 없는 것이다. 제 멋대로 몸을 굴린 제 잘못일 뿐. 그렇다면 내가 왜 여기 있어야하지?

나는 이 방을 나가고 싶다. 내겐 이미 오관이 달린 몸이 떨려나가 냄새를 맡을 수 없는 것이 다행이다. 그렇지 않다면 얼마나 퀴퀴한 냄새가 이 방에서 풍겨 나오랴. 그런데도 나는 이곳을 벗어날 수가 없다. 그녀와 나 사이에 어떤 인력이 작용하는 듯 꼼짝할 수가 없다. 나는 다시 그녀의 눈을 바라본다. 그녀로부터 남은 이야기들을 다 듣고 어서 여길 빠져나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든 순간 나는 움찔한다. 이 방을 나가 내가 갈 곳은 어디란 말인가. 휑뎅그렁한 거실에 처참하게 누운 그 몸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면 나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갑자기 두려워진다. 아 혹시 저 여자의 저 휑한 눈 속에 무슨 답이 있을까. 나는 점점 더 텅비어가는 그녀의 눈을 필사적으로 바라본다.

그녀는 미군애인을 갈아 칠 때마다 그들이 예사로 내뱉는 아이 러브 유라는 말에 빠져들었다. 그 한마디를 붙잡으면 제 안에 모든 것이 낫으리라는 희망에……. 하지만 그 말들은 공허한 아픔으로 그녀의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녀는 알았다. 제 안의 근원적인 상처가 아무 것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걸. 교회지기를 하며 배운 것은 찬송가뿐이라 딸이 몸을 팔아 벌어오는 밥을 먹으면서도 그저 예수 주님을 흥얼거리던 아비가 죽고 나서, 그녀는 나처럼 미군에 묻어 태평양을 건넜다. 내가 양자라는 낚싯밥을 물었다면 그녀는 결혼이라는 미끼를 물었다. 내가 나의 미끼를 나도 모르게 신뢰하지 않았듯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제니를 만나 살림을 차릴 무렵 그녀도 동포사회로 스며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익숙해온 제 안의 찬송가소리에 저도 모르게 끌린 그녀는 어느 날 새벽 부랑자들이 사는 공원에 나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박명에 빛나던 눈물어린 그녀의 눈과 창자 끝에서 끌어올려진 듯한 그 목소리에 공원에 몸을 뉘었던 생명체들이 잠을 깼다. 하나 둘 모여들던 갖가지 인종의 노숙자들이 그녀에게 경이로운 눈길을 보낼 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충실한 개 한 마리가 얻고 싶어졌다. 그들에게 던질 미끼는 따뜻한 음식 한 그릇이란 걸 알아챈 그녀는 새벽마다 수프를 끓였고, 그 일은 그녀의 기쁨이 되기도 했다.

생각지도 않게 그녀의 이야기가 동포사회 매스컴을 통해 공개되자 여러 곳에서 기부금이 들어왔다. 팔다 남은 도넛을 제공해 주겠다는 도넛가게 주인, 유통기한이 가까워오는 깡통수프를 보내주겠다는 마켓 사장, 점점 일은 쉬워졌고, 그녀는 새벽 공원의 여신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살아 움직이는 교회라 불렀다.

세상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빛 뒤에 그것의 빌미가 된 많은 어둠이 있다는 건 결코 짐작할 수 없으리라. 그녀가 동포 언론에 명사로 등장하기 시작한 나를 발견한 건 그 즈음이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늙은 흑인을 길들이기 시작했다. 그가 가장 충직해진 순간이면 그녀는 이내 중얼거렸다. 언젠가 내 죽음이 가까워오면 그를 해치워줘. 그녀는 얼마나 오랫동안 그 말을 해왔던 걸까. 늙은 흑인의 귀에 그 말이 들어가고, 그것이 피에 녹아 세포 곳곳에 자리 잡기까지…….

불현듯 제니가 교통사고로 떠났던 5년 전, 나는 적잖은 보험금을 챙겨 동포사회로부터 잠적했다. 수완 좋은 그녀가 없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기에. 혹 제니의 죽음에도 그녀가 연관되어 있던 건가 그녀의 눈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그러나 아무 것도 알 수가 없다. 그녀는 제니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제니와 함께 늙어가던 나를 바라보고 있던 것이 아니라, 오래전 제 눈물을 저버리고 도망치던 그 열여덟 살 소년을 보고 있었을 테니까.

허무한 애무를 끝낸 사내가 서랍에서 새 옷을 꺼내 그녀에게 입힌다. 자루처럼 하얀 무명 잠옷이 그녀의 늙은 몸을 수의처럼 감싼다. 어쩌면 사내는 옷을 갈아입힐 때마다 그녀의 몸을 제 혀로 닦아내왔는지도 모른다. 새삼 사내의 행위가 성스럽기까지 하다. 아 나는 어느 여인에게 저토록 극진한 행위를 해본 적이 있던가. 반듯이 누운 그녀의 눈에 또 물기가 어린다. 초라한 커튼이 비스듬히 들춰진 창문 한쪽 귀퉁이로 스며든 가로등 빛에 그녀의 눈이 광채를 발한다. 문득 나도 울고 싶어진다. 아 이럴 수가. 나는 내 지난한 생애를 지나오며 눈물의 충동을, 그 의미를 생각해보지 않았으니…….

그녀의 눈에 어린 물기를 보며 눈물을 쏟아낸 건 사내가 먼저였다. 마마! 사랑해! 당신을 내 어머니처럼, 나의 여신처럼, 성모마리아처럼 사랑해! 제발 나를 버리지 마! 그녀의 눈은 미동이 없다. 사내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녀가 꼭 나를 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녀의 눈이 내게 말하고 있다. 잘 헤아려 봐. 네가 모르는 것이 있어. 네가 버린 것들 뒤에 네가 모른 것, 내 눈을 바라봐. 이제는 알게 될 거야. 나도 모르게 그녀의 눈 속으로 빨려든다. 어둠의 통로를 따라 휙 내가 날아가고 있다. 어둠은 한 순간 빛과 함께 꼬여들고 나는 문득 내가 살던 그 산동네 어귀에 와 있다. 비탈길을 오르면 우리 집이 있고 내리막길을 가면 교회가 있다. 집과 교회의 중간 길, 그 샛길로 스며들면 그녀와 내가 햇빛아래 청춘의 장난질을 하던 언덕이 솟아 있다. 내 어미가 그 샛길에 서 있다. 부스스 머리가 헝클어진 젊은 사내 몇 명이 내 어미와 흥정을 한다. 계집애를 작살내줘. 그 방법밖에 없잖아. 그 계집애를 내 아들에게서 떼어놓은 방법 말야. 알았지? 어미의 앙칼진 목소리에 건달들이 꺼떡꺼덕 웃고 있다. 돈을 안 받아도 하고 싶던 일이라고. 실컷 재미를 보고 오겠다고. 나는 고개를 도리질한다. 그날 햇빛 아래 계집아이를 놓아두고 도망쳐오던 내 귀를 찢을 듯이 울려오던 비명소리. 나는 그냥 내 잘못이 아니라고 웅얼댔을 뿐이다. 아아, 어머니…….

흠칫 그녀의 눈에서 한 순간에 빠져나온 나는 그 입가에 띠어진 삐뚜름 미소를 바라본다. 나는 그 웃음이 무섭다. 물기가 가득 고인 눈보다 그 입가의 미소가 더 무서워진다. 그녀로부터 도망치고 싶다. 그러나 그녀는 가만히 누워서도 나를 더 제 곁으로 당기고 있다. 그녀의 눈이 내게 속삭인다. 울어봐! 눈물을 흘려봐! 그러면 내가 이 사슬을 풀어줄게. 나는 정말 그녀로부터 풀려나고 싶다. 그녀가 너무 무서워서. 이미 죽은 내가 아직 죽지 않은 그녀를 이렇게 무서워하다니. 울어 주리라. 이 두려움을 벗어날 수 있다면. 그러나 어떻게 울어야하는 거지? 내 울음을 표현할 몸을 이미 잃어버린 내가 말이다. 갑자기 그녀가 깔깔깔 웃는다. 나지막이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그녀의 경직된 몸 어디에서 저런 웃음이 나오는 걸까. 흑인 사내는 자꾸 눈물을 흘리고 그녀의 눈동자에 가득 고여 있던 눈물도 이윽고 흘러내린다. 마마! 마마! 사내가 울부짖는데 그녀는 깔깔 웃는다. 오직 나를 향해서만 웃고 있다. 울어봐! 용서해줄게. 너를 용서하고 싶어. 그녀의 깊은 목소리가 내게로 메아리친다.

그녀의 폐부로 깊이 스며든 숨이 그대로 머무르고 있다. 그 머무름이 가녀리게 뛰고 있던 심장으로 번지고 서서히 그녀의 피돌기가 가라앉기 시작한다. 나는 그녀의 영혼이 그 몸을 곧 뛰쳐나올 것이 두렵다. 어찌해야 하지? 도망가야 한다. 그러나 꼼짝할 수가 없다. 어디선가 창자가 끊어질 듯한 찬송가 소리가 들려온다. 그녀의 목소리인가? 그녀는 아직도 저 초라한 침상에서 마지막 숨을 내뱉지 못하고 있는데……. 혹 내 어미의 노랫소리인가? 그래, 교회당을 드나들며 찬송가 몇 마디를 곧잘 흥얼거렸지. 노랫소리가 갈라진다. 누구의 소리지? 기억나지 않는 목소리, 나는 왜 그런지 그 교회지기 아범의 목소리를 기억하려 애를 쓴다. 아아, 갑자기 더할 수 없이 고독해진다. 나는 한 번도 그 노래를 불러보지 않았다는 생각에 이른다. 노래를 부르고 싶다. 곧 나와 맞닥뜨릴 그녀의 영혼이 두려워 나도 노래를 부르고 싶다. 그러나 나오지 않는 노래, 나는 그때서야 안다. 살아서 부르지 못한 노래는 죽어서도 부를 수 없다는 걸, 살아서 흘리지 못한 눈물은 죽어서도 흘릴 수 없다는 걸.

그녀가 일어선다. 그녀의 몸에서 그녀가 일어서고 있다. 저런! 그 늙은 몸에서 어린 소녀가 일어선다. 풀썩 일어선 소녀의 눈빛과 마주쳤을 때, 나는 헤어날 수 없는 고독에 갇혀버렸다는 걸, 저절로 안다. (한국소설 2009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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