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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따라바람따라(여행기)

1999년 여름 백담사 / 나호열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1. 1. 15. 21:52

 

1999년 여름 백담사 / 나호열

 

 

어디든 마찬가지지만, 국토 곳곳의 길들은 볼쌍사납게 파헤쳐지거나 넓혀지고 있다. 그만큼 자동차가 늘어나고 이곳저곳을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반증이다. 꼭 필요할 때만 도로를 이용하여야 한다면 나는 할말을 잃는다. 이유없이, 그저 바람처럼 뭔가 시상을 건질만한 게 없나하고 두리번거리는 일이란 생산의 효율이 있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백담사에서 개최하는 만해시인학교에 올해는 꼭 참석해야지 하는 마음에 달아있을 때 마침 또 다른 일이 걸려들어서 백담사행은 쉽게 결정되었다. 광복절을 앞 둔 시점이어서 동해로 가는 피서객들의 수가 적어서인지 길은 그런대로 수월해져 있었다. 양평까지는 완전히 도로확장이 된 상태이고 홍천에서 인제 가는 길도 공사가 한창이었다. 지난 해 여름에는 진부령을 넘었는데 그때는 백담사를 힐끗 곁눈질 할 뿐이었기 때문에 백담사로 향하는 마음은 한결 간절해져 있었다.

83년도인가, 아내와 나 그리고 잡지사에 근무하던 후배 윤군 그렇게 셋이 백담사를 찾아갔었다. 마장동 터미널에서 원통 행 버스를 타고 5시간쯤 가다가 원통에서 용대리가는 버스를 갈아탔으니 가는 데만 7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원래 계획은 백담사로 해서 대청봉을 넘을 계획이었는데 용대리에서 백담산장 까지 8킬로를 중무장하고 걷다보니 그 계획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백담산장 옆 물가에 텐트를 치고 3일을 그냥 물하고 산하고 놀다가 대청봉은 근처에도 못가고 돌아왔었다.

 

행사용 통행허가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주차관리소로부터 백담사까지 단숨에 내달릴 수 있었는데 일행들은 걷기를 원했다. 쉬엄쉬엄 계곡물도 보고 바람소리 들으며 가는게 좋을 듯 싶었던 것이다. 주차관리소에서 4킬로는 버스를 타고 나머지 4킬로는 걸어야 야 한다.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반갑다. 그런데 요즈음은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무서울 때가 있다. 산에 까지 출장 오는 분(?)들도 있기 때문이다. 저만치 배낭을 둘러매고 한 사내가 걸어온다. 충북 영동에서 새벽 4시에 출발했단다. 강릉으로 해서 진부령을 넘어 둘러서 왔단다. 농부라고 시를 좋아한다고 하면서 사십이 넘도록 결혼을 못했다는 속내를 내 보인다. 농촌의 총각들을 누가 홀아비로 만들고 있는가? 농부 아들에게 시집올 여자 없는 세상을 욕하면서 자기 딸만은 도회지로 시집 보내겠다는 두 마음이 얼마나 많은가.

 

옛날에는 계곡물에서 수영도 하고 물놀이도 하고 했는데 지금은 출입금지의 팻말이 무섭게 서 있다. 어쩔 수 없다. 저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여기서부터 물은 썩는다. 대청봉 가는 길은 하늘로 오르는 길이다. 천 미터가 넘는 고봉들이 키를 세우고 다리는 벌써 아프다.

 

만해 생각. 지금부터 70 여년 전 그는 홍천 그 어디쯤에서 부터 걸어 걸어 이 산길을 걸어왔을 것이다. 출가를 하고 '님의 침묵'을 쓰며 그 얼마나 외로웠을것 인가! 시란 무엇인가? 외롭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욱 큰 외로움 견뎌내며 외로움 하나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시를 쓰는 것은 아닌가? 그로부터 40년 후 부부 한 쌍이 백담사를 찾아왔다. 업보라고, 업보라고 3년을 머리 조아리다가 속세로 내려갔는데 그 사람 호가 일해이던가.

 

백담사도 예전의 백담사가 아니다. 당우는 그대로인데 만해를 기념하는 건물은 족히 열 동은 될 것 같다. 그 수 많은 시인, 묵객들 사이에 끼어 밤 하늘 별이나 헤아려 보고 있으니 잠 못 이루던 시인 하나 술이나 한 잔 하잔다. 서정춘 시인. 문단데뷔 28년 만에 시집을 냈다. 죽편!30 편!

 

죽편. 2

 

- 공법

 

하늘은 텅 빈 노다지로구나

노다지를 조심해야지

조심하기 전에도

한 마디 비워 놓고

조심하고 나서도

한 마디 비워 놓고

잣대 눈금으로

죽절 바로 세워

허허실실 올라가 봐

노다지도 문제 없어

빈 칸 닫고

빈 칸 오르는

푸른

아파트 공법

 

대부도에서 시를 배우며 포도농사 짓는 김학수 군이 배낭에서 백세주 5병을 꺼내 놓더니 아예 백담산장으로 소주사러 자리를 뜬다.

 

죽편 시집 30 여 편이 고작이다. 백화점 식으로 벌려놓은 입담 좋은 시들 부끄럽다. 할 말이 있을 때 꿀꺽 침묵할 수있는 인내, 그것이 시인을 시인답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시인들이여, 그대들, 가인들이여, 침묵하자, 님의 침묵을 배우자.

 

자정이 넘자 물소리가 마당에 흘러 넘친다. 침묵도 함께 소리를 낸다. 멀리서 유성 하나 떨어진다.

 

 

너,나 맞아? - 나호열

 

시인이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저 개울가 깊이 박힌

바위를 들어올려

마음 속 모래가 될 때까지

담아두었다가

다시 그 모래 속으로

마음을 집어넣는 사람이라고

내가

말했다.

 

 

새벽 6시, 일정이 바뀌었다. 서둘러 하산해야 한다. 내려가는 길이 오히려 힘겹다. 풀밭에 버려둔 차가 이슬에 덮혀 있다.

 

만해시인학교

 

- 나 호 열

 

탈옥한 죄수의 이름표 매단 차 풀밭에 버려두고

산길을 걷는다. 살아지는 하루를 벗고

사라지는 길 참 아득하다

어느 사람은 한풀이로 삼 년을 보내고

어느 사람은 삼 년을 침묵을 배우고 내려간 길

배반할 줄 모르는 나무들아,새들아,벌레들아

모두들 안녕하구나

짧은 여름밤 사람말고 별하고

사람하고 물하고 이야기하고 싶어

산이 저하고 놀자고 마주 앉는다

 

 

물은 흘러가고

물소리가 남는다

어둠 속에 가득차는

저 울음소리

누군가 물의 소매자락

발자락 안간힘 쓰며

붙잡아 매고 있는 것이다

물은 그 때 마다 제 몸

제 살을 뚝뚝 떼어주며

그럴수록 몸살 불리며

산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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