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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따라바람따라(여행기)

떠나지 못하는 배, 강화섬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1. 1. 15. 00:44

 

떠나지 못하는 배, 강화섬 / 나호열

 

마리,고려 쌍돛대에 푸른 바람을 가득 먹여도

먼 바다로 나가지 못한다

뭍을 떠나지 못하는 배

강화섬은 그렇게 떠 있다

 

아득한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

참성단과 지석묘 그 사이에

웃음보다는 울음이 질펀하게 깔린 땅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아프게 삭인

눈물이 하도 많아

가슴가지 차오르던 바다는

개펄을 남기고 저만치 물러서 있다

 

눈에 보이는 것 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이 보여

강화에서는 함부로 길을 재촉해서는 안된다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은 고향의 폐가를 찾아가듯이

어디 길모퉁이 펄썩 주저앉아

우리네 장삼이사들의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을

병인,신미년 까닭없이 쫓기던 무명적삼들의 이웃들을

석모도 저 너머로 저물어가는 노을에 비춰 보거나

갈매기처럼 훨훨 날아보기도 하는 것이다

 

떠나지 못하는 배, 강화에 가면

하늘과 땅, 나무와 이름모를 풀꽃들

휘청휘청 자진모리 바람까지도

팔만대장경이다

 

                  -시, < 강화섬>

 

 다섯 번의 강화도 나들이 끝에 한 편의 시가 남는다.섬이면서도 섬 같지 않고,서울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도회지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땅.아득한 선사시대부터 최근세에 이르기까지 피와 눈물과 한탄으로 얼룩진 땅,그래서 강화는 걸어서 걸어서 그 숨결을 보듬어 보아야만 다가오는 곳이다.

 참성단과 지석묘와 같은, 민족의 시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강화읍을 중심으로 항몽투쟁의 투혼이 숨쉬는 유적지와 초지진,광성보,정족산성 등 물밀듯 밀려오던 외세에 대항하던 국방 유적지.전등사,정수사,보문사와 같은 사찰,어디에가나 풍부하게 펄쳐져 있는 너른 갯벌과 화문석과 인삼의 땅. 지금은 남북분단의 최전방 지역으로 실향민들이 북녁을 그리며 뼈를 묻고 눈물을 삼키는 곳.

 

  일일 관광지로 전락하여 차도 밀리고,사람도 밀리고,어딜가나 주차료 받고 입장료 받고하는 일상사에서 조금 벗어나 평일에 그것도 초겨울 초입이나 이른 봄에 넉넉히 여장을 꾸리는 것이 강화를 느끼는 첫 번 째 일이다.

 

 대학 1학년 초겨울,기말고사를 끝내고 무작정 신촌터미날에서 강화행 버스를 탔던 기억이 난다.시집 몇 권 원고지 한뭉치 달랑들고 장발을 휘날리며 김포가도에 들어선 것 까지는 좋았는데 도처에 자리잡은 검문소에서는 계속 나만 붙잡고 주민증 보자, 책가방 좀 보자 하면서 들쑤시는 통에 승객들로부터 눈총을 받았다. 지금보다 훨씬 많았던 검문소들,헌병들,강화읍에 내리자마자 어디선가 불쑥 경찰관이 나타나서는 마지막 검문을 하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조금 수상한 놈이 가니까 단도리를 하라고 무전연락이 았던 모양이지.....

 

 결국 경찰관이 지정해 주는 여관에서 하루밤 묵고 그 다음날 아침 일찍 강화도를 떠나야만 했던 서늘한 추억,돌아가는 길은 아예 인천으로 빠지는 코스를 택했는데 검단 검문소에서 책가방 속의 원고 뭉치까지 다 읽어 보는 통에 얼마나 혼비백산 했던가,헌병 나으리의 마지막 말

 "세월 좋구만, 대학생이 이따위꺼나 쓰고 있어!"

 

 20년도 한참 넘은 후에 다시 찾은 강화,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을 찾아간다. 이른 아침의 전등사.대웅전 처마를 받치고 있는 발가벗은 여인상.절간에 일하러 왔던 목수가 벌은 돈을 몽땅 아래마을 주모에게 갖다 바쳤는데 밤새 그 돈 가지고 줄행랑 치는 바람에 "평생 기둥이나 받치고 있어라!"하면서 발가숭이로 조각을 해 놓았다나 어쩌나.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다가 눈물이 난다.길을 남쪽으로 잡으면 동막리 해변을 지나 석모도로 향한다.차를 페리에 싣고 나니 갈매기들이 우루루 달려드는 광경,새우깡을 허공에 집어 던지면 잽싸게 물어가는 갈매기들,몇 마리는 배를 따라오다가 돌아가고 몇 마리는 배가 선착장에 머리를 들이밀 때까지 따라온다.저 무서운 습관성,길들여짐.갈매기 붉은 눈을 보고 있으면 세상 사는 일에 눈이 어두어진 내 눈을 보는 것 같아 무섭다.

 

 보문사 가는 길의 염전. 강열한 햇빛에 증발되는 푸른 바다와 치열한 사투끝에 건져올려지는 소금, 그 백색의 상징성은 짜다 못해 쓰다.

 

 

누가 뿌린 눈물이기에 이렇게 아리도록 흰 어여쁨이냐

발가벗은 온몸으로 승천하는 것이냐

언젠가 숙명으로 다가왔던 바다는 없고

세월에 절은 이 짠 맛!

 

                         -시 < 곰소 염전>

 

 보문사는 번잡하다.잘 살게 해달라고 무병장수하게 해달라고 나한전,대웅전엔 욕심 투성이의 붉은 마음 뿐이다.대웅전 뒷 켠의 계단 400을 올라 보면 그곳 또한 기원과 발복의 人賴가 가득하다. 100년이 안된 마애불은 그저 그렇다.저녁 무렵 그냥 앉아 서해의 낙조를 기다려 본다.분신하는 듯한, 그런데 그 분신의 실체는 보이지 않는 온통 피흘리듯 넘쳐나는 바다.

 

 석모도를 빠져나와 부근리로 항한다.단군 이전의 청동기 시대의 족장의 무덤,북방식 지석묘의 남방한계선이라는데 사실 고창에도 북방식 지석묘가 인가 뒷뜰에 서 있다.하도 그것이 좋아 홈페이지 사진으로 장식해 놓았는데 부근리 지석묘는 정말 크다.너른 들과 방어에 유리한 구릉,예나 지금이나 권력의 상징물들은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자리잡고 있다.

 

 부근리에서 15분도 안 지나서 강화에 닿는다.북문에 오르면 북녁 땅이 훤히 내려다 보이고, 민둥산 가운데 벌레 먹은 듯 '주체사상'의 구호가 쓸쓸하기 그지 없다. 북문에서 100미터즘 내려가면 약수터,물 한 모금 마시고 하늘을 보니 고려궁터 앞의 배롱나무가 눈길을 받는다.허물을 벗으며 환생을 거듭하는 나무......

 

 강화와 김포를 가로지르는 그 사이로 빠른 물살이 흙탕물인 채로 넘나든다.도대체 방향을 가늠할 수 없다.남에서 북으로 가는 것인지 아니면 북에서 남으로 흘러오는 것인지……

 

 아침 일찍부터 움직인다면 강화는 하루에 둘러볼 수 있다.그러나 제대로 강화와 친해지려면 한 번에 한 코스씩 천천히 음미하며 마시는 차처럼 서두르지않는 것이 좋다.하루는 마니산에 오르고,하루는 석모도에 가고……길은 너무 넓어서 탈이다.

 

 

 

* 강북에서 강화에 가려면 내부순환도로를 통해 자유로를 진입하여 김포대교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자유로에서 표지판을 유의하지 않으면 일산 너머까지 가게 된다.

* 강화대교 지나서 강화역사문화관을 거쳐가는 것이 좋다.강화의 역사가 잘 정리되어 있다.

*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웬만한 곳에서는 입장료와 주차료를 받는다.

* 도로 표지판은 정확한 편이지만 정밀지도를 먼저 보는 것이 좋다.

* 외포리 선착장에는 회집이 많지만 석모도에 들어가서 염전 지나 해수욕장 부근에 통나무회집이 인심도

넉넉하고 바로 앞에 바다가 있어 휴식하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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