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나의 사랑니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10. 7. 25. 02:00

나의 사랑니

                         김세영

 

8월의 끝가지에 매달려서

매미, 애끓게 울던 날

잇몸 속에 갇혀서

누구의 혀, 한 번 깨물어보지 못하고

사랑니, 속앓이 했다

사랑니의 울음소리에

개미핥기처럼 다가온 그녀

숨소리는 뜨거운 태풍이었다

진공청소기 혀가

입속의 개미들을 핥으며 들어왔다

미처 깨물 사이도 없이

뿌리 채 뽑힌 사랑니가

허파꽈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한여름 물장구치며 놀던

송아지 떠내려가는 개천가에서

어미의 치맛자락 속을 파고들며 울던

벌거벗은 그 아이를 쫓아서

마을을 뒤덮은 먹구름 치마 속으로

태풍의 자궁 속으로 온몸 빨려 들어갔다

태풍이 허물을 벗으려 날아간 곳은

사하라 사막 그 어느 곳

생 텍쥐페리가 불시착한 곳이었다, 그녀는

자궁 속의 양수를 뿌려서

오아시스 나라를 세웠다

어린왕자가 살다 묻힌 그곳에

나의 사랑니는

고인돌이 되어 서 있었다

지금도 매미 우는 8월이면

사랑니가 있던 빈 잇몸자리를

태풍의 흔적을

혀끝으로 더듬어본다.

---------------------------

「시선」 2009년 가을호

 

쓸모없는 것들의 아름다움

                                                이채민

 

치과의사들은 사랑니가 말썽을 일으키면 무조건 발치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에 따라서 사랑니가 없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 열 여덟에서 스물 대여섯 쯤에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쓸모없는 이에 왜 사랑니라고 하는 사랑스런 이름을 붙였을까? 영어로 wisdom tooth(智齒)라고 하여 지적 호기심이 왕성할 때 나오는 시기에 맞물리는 이름을 가진 것을 보면 '사랑니'라는 우리 말의 어원도 이성에 관심을 두게 되는 나이에 돋아나거나 첫 사랑처럼 아픔이 어지간하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나의 사랑니」는 이와 같은 사랑니의 어원을 따져보고 거기에 활달한 상상력을 발동하여 경쾌하게 시상을 이끌어간 작품이다. 일년 중 생명 활동이 가장 왕성한 8월과 여름의 절정에서 생명을 마감하는 매미와 그 울음이 사랑을 앓는 에로티시즘과 맞물리면서 발치의 과정을 자궁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환상으로 시를 이끌어간다. 쓸모없는, 용도 폐기된 사랑니는 어디로 갔을까? 아니 잊어버린, 잃어버린 첫 사랑은 어디로 갔을까? 쓰라린 추억은 불모의 땅, 사막에 있다. 불모의 땅이기는 하지만 그곳은 셍땍쥐베리가 불시착한, 어린 왕자가 살고 있는 땅이다. 그래서 썩지 않고 나의 사랑니는 그곳에 고인돌로 서 있다. 아직도 행방이 묘연한 생땍쥐베리는 죽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어린 왕자도 여전히 우리의 추억 속에서는 어린 왕자이다.

「나의 사랑니」는 쓸모없는 것들을 무참하게 버리고 잊어버리는 오늘의 현실을 넌지시 꼬집기도 한다. 십 년을 땅 밑에 있다가 스러지는 매미와 울음, 나의 첫 사랑은 부질없다. 추억은 뼈아픈 感傷을 유발하므로 유해하다. 그러나 어쩌랴! 작열하는 태양과 우편배달부와 어린 왕자와 나의 사랑니는 환상 속에서 빛나는 우리의 後生인 것을...

'내가 읽은 시(짧은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갈/ 류인서  (0) 2010.11.24
  (0) 2010.10.28
존재가 사라진 세계에 던져진 풍경의 기록 - 최윤경의 시  (0) 2010.04.30
나옹스님 토굴가  (0) 2010.01.31
먹고 사는 일  (0) 2010.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