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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의 세설신어

[194] 유재시거(唯才是擧)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9. 2. 16:26

[정민의 세설신어]

[194] 유재시거(唯才是擧)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입력 2013.01.22. 23:30
 
 
후한의 승상 조조(曹操)에게 수하의 화흡(和洽)이 말했다.

"천하 사람은 재주와 덕이 저마다 다릅니다. 한 가지만 보고 취해서는 안 됩니다. 검소함이 지나친 경우 혼자 처신하기는 괜찮아도, 이것으로 사물을 살펴 따지게 하면 잃는 바가 많습니다. 오늘날 조정의 의논은 관리 중에 새 옷을 입거나 좋은 수레를 타는 사람이 있으면 청렴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모습을 꾸미지 않고, 의복은 낡아 해진 것을 입어야 개결하다고 말하지요. 그러다 보니 사대부가 일부러 옷을 더럽히거나, 수레와 복식을 감추기에 이르고, 조정 대신이 밥을 싸들고 관청에 들어오기까지 합니다. 가르침을 세우고 풍속을 살핌은 중용을 중히 여깁니다. 오래 계속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한몫으로 감당키 어려운 행실만을 높여 다른 길을 단속하니, 힘써 이를 행하느라 반드시 지치고 피곤할 것입니다. 옛날의 큰 가르침은 인정을 통하게 하는 데 힘썼을 뿐입니다. 무릇 과격하고 괴이함을 행하면 감추고 속이는 짓이 용납될 것입니다."

조조가 옳다 여기고 영을 내렸다.

"맹공작(孟公綽)은 조나라나 위나라같이 큰 나라의 원로가 되기는 충분하나, 등나라나 설나라 같은 작은 나라의 대부가 될 수는 없다. 반드시 청렴한 뒤라야 쓸 수 있다고 한다면 제나라 환공이 무엇으로 세상을 제패하였겠는가? 너희는 나를 도와 다소 부족해도 고명한 이를 드러내어, 역량만으로 천거하라(唯才是擧). 내가 이를 쓰리라!"

'통감(通鑑)'에 나온다. 큰 사람을 뽑을 때 작은 흠을 따지기 시작하면 온전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 청렴이 훌륭해도 무능과 맞바꾸면 안 된다. 욕먹을까 봐 명품 백 감춰두고 싸구려 들고 다니는 검소는 검소가 아니라 속임수다. 방법이 바르고 정도가 넘치지 않는다면 비싼 물건을 살 수도 있고, 외제 차를 몰 수도 있다. 청백리 정신을 지킨다는 것이 가식과 위선을 부르면 가증스럽다. 어느 일본학 전공학자가 학술 모임에서 툭 던지던 말이 생각난다. "일본의 경우 막부의 번주가 꾸미지 않고 허름하게 다니면 쇼군을 욕보이는 행동으로 간주하여 처벌됩니다. 사무라이의 입성이 초라하면 주군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로 여기지요. 일국의 재상이 낡은 옷 입고 비 새는 집에서 사는 것만 미덕으로 알면 나라의 체면은 뭐가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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