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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령 석불 머리가 없고, 하늘재 불상은 머리만 있어 웬일?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5. 2. 15:05

죽령 석불 머리가 없고, 하늘재 불상은 머리만 있어 웬일?

중앙선데이

입력 2022.04.30 00:21

업데이트 2022.04.30 09:25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16〉 백두대간 80고개 와인딩(중) 

굽이치는 말티재 도로. 말티재는 백두대간 고개가 아니지만 백두대간 80고개를 오토바이로 종주하는 '카이저 루트'에 포함된다. 정준희 기자

“남편 몸이 좀 안 좋아요. 온 지 한 달이 돼서야 눈에 힘이 느껴져요. 잘 왔어요. 정말로.” 몸속의 나쁜 불부터 끄자고, 서미영(55)씨는 멀리 인천에서 강원도 정선 임계까지 왔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서야 백복령(780m)에 올라왔다.

서씨의 말대로, 이중환(1691~1756)은 『택리지』에 임계를 ‘별다른 동천(洞天·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으로 꼽았다. 골지천과 임계천이 만나 물이 좋고 강원도 산골에서 보기 힘든 너른 옥토가 펼쳐지니, 정선의 쌀 절반을 이곳 임계에서 만들어낸다. 골지천을 끼고 새겨진 뼝대(바위절벽의 강원도 사투리) 여럿 아래 구미정(九美亭)이 있다. 말 그대로 아홉 가지 비경의 호사를 누릴만하다.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의 구미정(九美亭)은 조선 중기에 만들어진 정자다. 근처에 아홉 가지 비경이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중앙포토]

한때 임계에는 1만5000명 넘는 사람들이 살았다. 그런데 1975년 임계댐을 만든다며 수몰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주민들이 빠져나갔고, 대부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임계댐 계획이 ‘없던 일’로 된 1985년까지 지붕에 물이 새도 손을 못 댔으니 지역은 낙후했고, 주민은 재산권 피해를 보았다. 강원연구원이 추산한 수몰 지역 지정으로 인한 임계의 직간접 피해액은 2조2000억원 안팎. 3월 말 현재 임계면의 인구는 3462명이다. 15년째 ‘백복령 정상 휴게소’를 운영하는 홍명숙(56)씨는 “한적하고 물 좋고 산 좋으니, 7~8년 전부터 사람들이 들어오더라”고 전했다.

강원도 동해시와 정선군, 강릉시에 걸려있는 백봉령도 지난 3월 강릉시 옥계에서 발생한 방화의 마수를 벗어나지 못했다. 고갯마루에서 동해시 쪽의 한 휴게소가 불길에 휩싸여 전소됐다. 김홍준 기자

백복령 옛길은 ‘소금길’로도 부른다. 서해에서 만든 소금은 충북 단양을 거쳐 영월까지만 이르렀으나, 예전 강릉과 삼척의 염전에서 거둬들인 소금은 백복령을 넘어 임계장에서 정선으로 퍼져나갔다. ‘정선 아라리’는 그 풍경을 보여준다. ‘우리 집의 서방님은 잘났든지 못났든지/ 얽어매고 찍어 매고 장치다리 곰배팔이/ 노가지나무 지게 위에 엽전 석 냥 걸머지고/ 강릉 삼척에 소금 사러 가셨는데/ 백복령 굽이굽이 부디 잘 다녀오세요.’ 백복령에는 소금 외에 동쪽의 해산물과 서쪽의 곡물이 만났다. 고개 한쪽과 다른 쪽은 으레 이렇게 살 궁리부터 오가는 법이다.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과 하장면을 잇는 댓재(810m)도 소금과 어물·곡식이 오갔다. ‘내륙’ 강원도 홍천에서 왔다는 한 사내는 댓재에서 삼척과 동해의 어물을 넘보고 있었다.

 

만항재~화방재 산길 풍력터빈 공사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상사전리에 있는 댓재는 산죽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죽치(竹峙), 죽현(竹峴), 죽령(竹嶺)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댓재는 전봇대가 유난히 많은 고개다. 김홍준 기자

“회를 사 오라고? 알았어.”

지난 6일, 50대 남자는 아내와 통화 중이었다. 그러더니 하품을 쩍쩍.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한국전력 하청업체 직원인데 전봇대 안전점검을 위해 나왔다”며 “열화상카메라가 제대로 작동하는 해 질 녘까지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 ‘전봇대 남자’는 “오늘 500기의 전신주에 오를 계획”이라며 “어젯밤에는 도계 쪽에서 1500여기에 올라가 점검했다”고 밝혔다. 댓재 넘어 건의령(806m) 옛길에서 삼척 도계가 빼꼼 보인다.

강원도 태백시 상사미동과 삼척시 도계읍을 잇는 건의령에서 바라본 도계읍 전경. 김홍준 기자

도계가 어떤 곳인가. 강원도 태백 장성광업소와 함께 우리나라 최대 탄전 아니었던가. 사북·고한·철암·황지 등과 함께 검은 금(金), 석탄으로 우리나라를 일으킨 탄광촌이다. 1960~80년대 초는 석탄 산업의 전성기. ‘팔도공화국’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전국 각지에서 노동자들이 탄광촌에 몰렸다. 1980년대 초, 7급 공무원 월급이 10만원을 갓 넘었을 때 광부의 평균 월급은 25만원을 웃돌았다. 광부가 되기 위한 경쟁률이 50대1에 달했다.철저한 체력·신체 검사로 유명해 '명문 탄좌'가 탄생했고, 입사는 '육사 입학보다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석탄 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현재 남아있는 전남 화순, 강원도 태백 장성, 삼척 도계 등 대한석탄공사 산하 3개 광업소가 2025년까지 차례로 문을 닫는다. 사실상 탄광산업이 막을 내리는 셈. 도계읍 거리 곳곳에는 대책을 세우라는 현수막이 즐비하다.

1940년 영동선이 개통하면서 증기기관차에 물을 대주던 강원도 삼척시 도계역 급수탑. 김홍준 기자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전경. 도계읍은 1970년대까지 무연탄 최대 생산지였지만 석탄합리화 정책에 의하여 대부분 폐광됨으로써 대다수 주민들이 타 지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도계광업소도 2025년 폐광될 예정으로, 지역주민들은 폐광안을 반대하면서 대체 산업 육성을 요구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태백·삼척·정선. 그곳의 댓재·건의령·통리재·노나무재·두문동재·만항재·화방재·내리고개는 석탄 가득 실은 ‘운탄차’들이 드나들었던 고개들이다. 이제는 다른 길에 제 몸 기대야 하는 곳. 길은 이어지는 듯하지만, 그 길 보이지 않으니 앞날에 검은 그림자만 드리운다.

삼척은 갈 곳 잃는 고려의 왕이 죽은 곳이요, 강원도 정선군 고한의 두문동은 일부러 길을 잃은 사람들이 산 곳이다. 조선 태조가 즉위한 1392년 7월,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은 원주, 간성을 거쳐 삼척으로 유배됐다. 공양왕은 두 아들과 함께 교살당한다. 이성계가 내린 교지는 이렇다. ‘반역을 도모하였는데, 군은(공양왕은 폐위 즉시 공양군으로 강등됐다) 비록 그 반역을 모르지만, 신하들의 간청에 억지로 따르니 군은 이 사실을 아시오(태조 3년 4월 17일).’

해발 1100m에서 석탄을 실어나른 길이었기에 운탄고도(運炭高道)로 부르는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백운산의 비포장 도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인 만항재(1330m)의 발 아래 구름이 양탄자처럼 깔려 운탄고도(雲坦高道)라고도 불린다. 김홍준 기자

두문동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고려의 신하들이 숨어든 곳이다. 진길우(67) 강원도 문화관광해설사는 "조선왕조가 들어서자 고려의 신하 120명이 경기도 개풍군 서두문동과 동두문동에 은거했는데, 그중 일부가 이 고한에 터를 만든 곳이 또 다른 두문동“이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두문동은 세 곳이다. 두문동재는 이 마을에서 굽이치는 길을 따라 1268m까지 솟구쳐야 만날 수 있다. 이웃한 만항재(1330m)에 지방도 414호선이 들어선 2003년 이전까지만 해도 두문동재는 도로를 이용해 가장 높이 갈 수 있는 고개였다. 두문동재를 거쳐 만항재, 그리고 화방재로 향하는 길. 풍력 발전기 터빈 11개를 짓는 공사로, 산은 제 몸을 사정 없이 내주고 있었다.

백두대간이 서쪽으로 몸을 틀며 만든 첫 자락이 소백산이다. 남사고(1509~1571)는 『격암유록』에서 소백산을 ‘사람을 살리는 산’이라고 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 소백산이 태백산과 함께 ‘병란을 피하는 데 제일 좋은 곳’이라고 썼다.

충북 단양군 대강면과 경북 영주시 풍기읍을 잇는 죽령(竹嶺·696m) 고갯마루에서 만나는 장승. 소백대장군은 경북에서, 소백여장군은 충북에서 올라와 죽령 길의 장승 부부가 됐다고 한다. 김홍준 기자

실제 경북 영주시 풍기읍과 충북 단양군 대강면을 잇는 죽령(689m)은 임진왜란(1592) 때 왜군이 돌아간 곳이다. 영남과 호서를 잇는 큰 고개는 조령(문경새재)과 추풍령, 그리고 죽령이었다. 왜군은 이 세 고개를 넘어 북상하기로 했는데, 삼도순번사 신립(1546~1592)은 조령에 허수아비를 세우고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쳤다. 허수아비 머리에 새가 앉아 있으니, 왜군의 정찰병은 이를 알아챘다. 이상훈 육사 군사사학과 교수는 “애초에 죽령으로 향하던 왜군 일부는 조령이 비었다는 첩보를 접하고 무혈 입성하듯 조령으로 넘어갔다”고 밝혔다. 죽령으로서는 다행이었을까. 고갯마루 비탈의 10여 기의 장승들은 입을 닫고 있었다. 고개 밑 보국사 터의 오래된 석불은 머리를 잃고 몸을 동쪽으로 향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늘재 고개 나이 1866세 가장 많아

머리 없는 죽령의 보국사지 석불. 정준희 기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개인 하늘재 밑, 경북 문경시 동로면 적성리에는 연주패옥이라는 명당이 있다. 무송대(舞松臺) 또는 말무덤으로 부르는 이 곳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을 따라 왔다가 귀화한 지관 두사충(杜思忠)이 조선의 문신인 약포(藥圃) 정탁(鄭琢)에게 큰 은혜를 입게되어 그 보답으로 신후지지(身後之地, 생전에 잡은묘자리)를 이 일대에 잡아두고 그 위치를 구종(驅從, 말을 잡아끄는 하인)에게 알려 놓았다고 한다. 그 자리가 바로 연주옥형(連珠佩玉形, 옥관자(玉寬子) 서 말, 금관자(金寬子) 서 말이 나온다는 뜻) 명당으로, 자손이 아주 귀하게 되는 곳이라고 전해진다. 김홍준 기자

죽령은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아달라왕 5년(158)에 신라인이 처음으로 고갯길을 열었다고 했으니, 고개 나이 무려 1864세다. 하지만 연륜으로 따지면 하늘재(충북 충주시 수안보면~경북 문경시 문경읍)가 최고다. 죽령보다 2년 앞선 아달라왕 3년에 고개를 열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있다.

충북 충주시에서 온 이상인(70)씨 부부가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에 있는 하늘재를 넘고 있다.정준희 기자

죽령에 보국사지(址)가 있다면 하늘재에는 미륵대원지가 있다. 10세기경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절은, 광활한 터와 석굴사원, 탑을 받친 돌거북 등만 남긴 채 돌연 사라졌다. 조선 시대 들어 어떤 기록에도 이 거대한 미륵대원이 등장하지 않는 점으로 보건대, 주요 교통로서의 기능을 이미 문경새재(642m)에 넘겨준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문경새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고개다. 조선 개국과 함께 하늘재가 갖고 있던 '큰길'로서의 쓰임새를 가져왔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영남과 호서를 잇는 또다른 고개인 추풍령에 경부선, 경부고속도로, 국도4호선이 지나가게 되니, 위세를 잃은 새재는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하늘재에서 만난 이상인(70·충주)씨 부부는 “절터가 휑뎅그렁하지만, 꼭 가보시라”고 추천했다. 죽령 보국사지 석불은 머리가 없는데, 미륵대원지 뒤편에는 머리만 있는 불상(불두)이 있다. 절터의 고요함과 쓸쓸함이 묻은 바람은 서쪽으로, 서쪽으로 등을 밀었다.

머리만 남은 하늘재의 불두. 김홍준· 기자

낙동강·한강·금강 세 강의 분수령이 되는 늘재(경북 상주시 화북면)를 지나면서 다시 난관에 부닥쳤다. 늘재를 살짝 지나치면서 내비게이션이 밤치재(상주시 화북면)로 향하는 우회로를 알려주면서다. 임도는 차가 빠듯하게 지나갈 만한 정도인데, 아래위로 요동친다. 갑자기 닭장과 개집이 등장하더니 함석판 지붕의 작은 집에서 노인이 나오며 한 말. “어디 가셔?”

경북 상주시 화북면의 늘재, 늘티 혹은 늘고개는 경북 상주시 화북면과 충북 괴산군 청천면, 속리산과 청화산을 이으며 낙동강·한강·금강 등 세 개 강의 분수령이 된다. 사진은 늘재의 성황당. 김홍준 기자.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화령(548m, 충북 괴산군 연풍면~경북 문경시 문경읍)에서 내려와 문경새재로 향할 때였던가. 교통 표지판을 본 사진기자가 “서울이란 단어가 참 오랜만”이라고 했다. '백두대간 80고개 와인딩' 중의 도로는 대부분 지방도로다. 문경새재라는 큰 고개를 지나면서 큰 도로를 만나니. 교통 표지판 정보도 '전국구'로 확대된 것이다.

밤치재는 백두대간 80고개 중 53번째 고개다. 백두대간 고개에 포함되지 않는 ‘번외’ 말티재(430m, 충북 보은 장안면~속리산면)에 어둠이 내리고 ‘시간외근무’에 들어갔다. 하루 전, 해 저물고 주인도 떠나버린 저수령(850m, 충북 단양 대강면~경북 예천군 상리면) 휴게소에서의 적막이 다시 찾아왔다. 해지고 사람 없는 고개는, 사무치도록 쌀쌀하고 쓸쓸하다.

트롯 가수 이한경의 '저수령'에는 '주인 잃은 휴게소엔 바람만 불어...내리막길 굽이굽이 땅거미 지고...'라는 가사가 나온다. 충북 단양군 대강면과 경북 예천군 상리면을 잇는 저수령은 고개가 몹시 높고 길어서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는 데서 이름이 비롯됐다고 한다. 주인 없는 저수령 휴게소에 땅거미가 지고 있다. 김홍준 기자

경북 영주시 봉현면에서 이름도 범상치 않은 테라피로를 지나 고항치를 넘으면 경북 예천군 상리면에 다다른다. 이곳에 예천곤충생태체험관이 있다. 지역 명품인 사과의 안정적인 결실 확보를 위한 화분매개곤충의 최적지로 상리면 고항리가 선정되면서 1998년에 예천군곤충연구소가 설립됐다. 고개에서 예천군 쪽으로 내려서면 곳곳에 곤충을 본딴 구조물을 볼 수 있다. 도로명 테라피로는 국립산림치유원이 있어 치료, 치유를 뜻하는 theraphy를 붙었다. 김홍준 기자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