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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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고갯길 25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9>단종이 넘었다는 고개 ‘행치’ 세 곳

이런 폭염에 한강물이 말랐다…배 버리고 고개 넘은 유배길 단종 [중앙선데이] 입력 2021.07.24 00:02 수정 2021.07.24 07:46 딱 이맘때였다. 이런 무더위였다. 1457년 6월 22일(양력 7월 13일)은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된 단종이 유배를 떠난 날이었다.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방절리 선돌. 단종은 유배길 마지막날 유배지인 영월읍 청령포로 향하면서 이 근처를 지나갔다. 김홍준 기자 단종은 50여 명과 유배지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향했다. 물길을 헤쳐나가다가 뭍에 올랐다. 이후 수십 개에 이르는, 크고 작은 고갯길을 넘어야 했다.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넘겨준 지 2년 뒤, 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 실패 1년 뒤였다. ■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단종이 넘었다는 고개 ‘행치’..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8> 대관령

대관령서 커피 팔다 쫓겨난 그녀 “돌아와 일하다 보니 표창장 줍디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1.07.03 00:02 수정 2021.07.03 11:33 “35년 됐네요. 내 나이 스물아홉, 대관령에서 커피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대관령 산불 감시역 인정 받은 60대 행상 “식당 일 준다 했지만 대관령 못 떠” 러시아서 귀화한 바이애슬론 국대 “자전거로 고개 넘으며 올림픽 훈련” 강릉 단오제 열기 지피는 성황사 불교-민간신앙, 해안-내륙 하나 돼 지난달 9일 만난 김기연(가명·64)씨는 고향 대구를 떠나 강원도 횡계에 터전을 마련했다. 그리고 대관령 아흔아홉 굽이 중 하나인 이곳에서 행상을 시작했다. “개업은 1986년 4월 5일이었다”고 그는 뚜렷이 기억한다. 2021년..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7>북한산 하루재

출판사도 이름 빌린 북한산 하루재…”몸과 마음 꼭 다잡는 고개이니까요” [중앙선데이] 입력 2021.05.15 00:02 수정 2021.05.15 08:14 “인수봉 정상에 커피 자판기 있다니까.” “그래? 카드도 되나?” ■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백운대·인수봉·영봉…길은 널려 있어 어디로 향할 것인가 선택은 자신의 몫 30㎡ 아담한 고갯마루는 원대한 도량 우이동에서 하루재·도선사 향하는 도로 육영수 시주설 속 ”청담 스님 공사 총괄” 고갯마루에서 중년의 남녀가 이런 믿지 못할 정보를 주고받는 사이, 청년 셋이 마스크 안에서 거친 숨을 토하며 올라오고 있었다.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자 “아, 잠깐만.” 그리고 숨을 고른 뒤 대답한다. “백운대.” 말이 짧다. 이해한다. 힘드니까. 북한산 인수봉에서 바..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5> 단종·금성대군 유배지 가른 고개, 50㎞ 거리 둘은 못 만났다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단종·금성대군 유배지 가른 고개, 50㎞ 거리 둘은 못 만났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1.03.13 00:02 수정 2021.03.14 05:48 왕은 어인 일인가 물었다. 사약을 갖고 내려온 금부도사는 엎드려 울기만 했다. 노산군(魯山君)으로 신분이 내려간 단종은 그날, 죽었다. 세조실록은 단종의 죽음을 간단하게 알린다. 소백산 고치령(760m)은 경북 영주와 강원 영월을 잇는 고개다. 영주는 세종의 여섯째 아들인 금성대군(이유)가, 영월은 단종(이홍위)가 세조(수양대군, 세종의 둘째 아들)에 의해 유배된 곳이다. 김홍준 기자 ‘노산군이…스스로 목매어서 졸(卒)하니, 예로써 장사 지냈다(1457년, 세조 3년 10월 21일).’ 단종은 왜 갑자기 죽었을까. 정말 스스로 목을..

'처언드응산~'의 박달재, 실제론 6㎞ 떨어져 있다

'처언드응산~'의 박달재, 실제론 6㎞ 떨어져 있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1.04.17 00:24 수정 2021.04.18 03:22 김홍준 기자 “영차, 영차, 세워! 고정!” ■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울고 넘는…’ 가사와 달리 시랑산에 노래 발표 뒤 박달-금봉 설화 탄생설 영남서 한양으로 가기 위한 길목 고려 김취려 장군, 거란 제압한 곳 때아닌 노동. 거대한 목각을 일으켜 세운다. 남정네 넷이 힘을 모은다. ‘아니, 내가 왜.’ 말하려는 순간, 성각 스님과 정법 스님은 “여기 오면 일해야 하는 거요”라며 웃는다. 여기는 박달재. 박달은 노래 이름 일부분이다. 박달은 고려 시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박달은 사람 이름이다. 박달은 나무 이름이다. 충북 제천 박달재의 봄은 늦게 찾아온..

엄니 홀로 눈물 훔치며 되밟은, 그 고갯길

엄니 홀로 눈물 훔치며 되밟은, 그 고갯길 [중앙일보] 입력 2021.02.26 00:03 | 기자 손민호 기자 이청준의 눈길에 모처럼 눈이 쌓였다. 눈이 녹기 전에 서둘러 걸으러 갔다. 1957년 어느 겨울날 새벽. 고등학생 이청준이 어머니와 발자국을 남긴 눈길이자 어머니 홀로 눈물 훔치며 되밟은 고갯길이다. 드론으로 촬영했다. 남도 끝자락 이 마을에는 좀처럼 눈이 쌓이지 않는다고 했다. 종종 허공의 눈은 볼 수 있어도 땅바닥의 눈은 보기 힘들다고 했다. 겨울 끝머리, 그 남도 마을에 춘설치고 제법 큰 눈이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소문하니 그 고갯길도 꽤 눈이 쌓였을 것이라 했다. 인적 드문 숲길이어서 인연이 닿으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발자국을 남길 수 있겠다 싶었다. 이청준의 ‘눈길’을 걷다 ..

인조가 기다리는데…수만 병력 12km 앞 고개서 사라졌다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 경기도 광주 쌍령 병자호란 중 벌어진 조선 최악의 패전 인조가 기다리는데…수만 병력 12km 앞 고개서 사라졌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1.01.30 00:26 수정 2021.01.30 11:32 인조는 다시 혹독한 겨울을 보낸다. 또 한성을 비운다. 세 번째다. 1636년 12월(이하 음력), 병자호란이다. 1637년 1월 병자호란. 남한산성에서 웅거하고 있는 인조를 구하기 위한 수천, 수만의 병사가 경상도 등지에서 올라오다가 경기도 광주의 이 대쌍고개 근처에서 청나라 군대에 의해 궤멸된다. 김홍준 기자 시간을 돌려 1624년 1월, 부원수 이괄이 난을 일으켜 평안도에서부터 기동 기만술을 벌이며 한성으로 몰아쳤다. 이상훈 육사 군사사학과 교수는 "기동 기만술은 당시 획기..

무악재, 400년 전 이괄의 난…폭설·출퇴근 땐 교통난

무악재, 400년 전 이괄의 난…폭설·출퇴근 땐 교통난 [중앙선데이] 입력 2021.01.02 00:02 수정 2021.01.04 15:04 해발 112m. 서울 무악재의 높이다. 1000m대를 호령하는 백두대간 고개들에 비하면 ‘고작’이라는 수식어가 붙을법하다. 하지만 통일로 덕에 넓어진 제 어깨보다, 지하철 3호선에 내준 제 속살 깊이보다 더 쌓인 이야기들이 있다. 지난 12월 21일 퇴근길 차들이 무악재에서 홍제로 넘어가고 있다. 무악재가 6차선 도로로 넓혀진 건 1966년 11월이다. 김홍준 기자 서울의 고개는 230여 개. 그중 무악재를 한겨울에 들이미는 이유는, 이 계절과의 인연 혹은 악연 때문이다. 무악재는 기습 폭설이 내리면 차가 오도 가도 못하는 서울의 ‘준령’으로 꼽힌다. 11월~2월에..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2>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양간지풍·급경사에 사고 잦아···9월 이후 꽁꽁 묶인 ‘무시무시’ 미시령 [중앙선데이] 입력 2020.11.28 00:21 수정 2021.01.03 09:47 길에 자물쇠가 채워졌다. 힘겨운, 그러나 정겨운 드라이브를 단단히 마음먹은 운전자가 힘이 빠진 채 차에서 내렸다. “아니 왜 막아놨대요?” 지난 24일 미시령옛길에서다.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미시령옛길 구불구불 9㎞ 61년 전 오늘 개통 태풍으로 끊겨, 봄에나 복구 공사 조선시대·한국전쟁·적설·강우… 재해·쓰임새 따라 막히고 뚫리고 미시령옛길은 지난 9월부터 강원 고성과 인제 양방향에서 출입 통제 중이다. 태풍으로 도로 일부가 붕괴되면서다. 김홍준 기자 미시령(彌矢嶺·826m)옛길은 지난 3개월 가까이 문을 잠갔다...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1>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진고개 점령한 일본인, 혼마치로 바꿔 식민화 거점 삼아 [중앙선데이] 입력 2020.11.07 00:02 수정 2021.01.03 09:49 김홍준 기자 고개는 삶의 출발점이자 종착지이기도 한 교착지대다. 고개의 지금 모습과 옛 모습은 다를지언정, 이야기는 전해진다. 설렘과 안타까움, 만남과 헤어짐, 옛일과 앞일의 뒤섞임을 크고 작은 고개가 말한다. 하여 ‘스무 고개’는 '20개의 고개'라는 의미보다 고개의 사연을 알아보는 과정이다. 그 고개 이야기를 싣는다. 1905년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전경. 우측 상단에 창덕궁과 가운데 명동성당이 보이는데, 일본인이 거주한 진고개 일대는 명동성당 남쪽이다. [사진=한국의백년] 2020년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전경. 명동성당은 빌딩 숲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