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서 아름다운 사람들
나호열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잘났다고 떠드는 사람들은 많아도 스스로 자신의 모자람을 꾸짖는 사람들은 드문 세상입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는데 그 중에 반드시 배워야 할 사람이 있다( 삼인행 필유아사 三人行 必有我師)’ 는 공자의 말씀은 늘 나의 마음이 거들먹거리기 쉽고, 남을 앝보며, 스스로 위세를 가진 존재로 착각하기 쉬우므로 늘 지유조심只有操心, 자신의 마음을 낮추고 깨끗이 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뜻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행동거지가 올바르지 않은 사람을 경계하고, 자신보다 덕을 갖춘 사람을 본받으려하는 마음, 그리고 자기 자신도 그 누구에게 본보기가 된다는 자각이 널리 퍼질 때 세상은 좀 더 밝고 맑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래 전 막 대학 강단에 시간강사로 나갈 때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그 당시 야간 대학에는 주경야독을 하는 직장인이 많았습니다. 하루 종일 일하고 남들이 쉬는 시간에 공부를 한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학생이나 선생이나 저녁 시간은 피로가 가득했습니다. 교양과목으로 반드시 이수해야하는 철학 시간은 세파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 수업이 끝날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고 강의를 듣는 학생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무리 젊게 보아도 이순이 넘어보이는 그 학생과 대화를 할 기회가 우연히 생겼습니다. 12월의 추운 밤 교문을 나서는데 승용차 한 대가 막 그 학생을 태우려던 참이었습니다. 승용차에 오르다 눈이 마주쳤고 나에게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잠시 사양을 했지만 집까지 모셔드리겠다는 정중한 호의에 동행을 하게 되었지요.
그 분은 서울 시내에 작지 않은 병원을 운영하는 분이었습니다. 3년간의 6.25 전쟁 통에 다니던 대학의 학업을 중단하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뒤늦게 대학에 입학한 연유가 참 특별했습니다. 자신의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의 식사를 꼼꼼이 살펴보기 위해 식품영양학과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환자식을 전담하는 영양사도 있지만 자신의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이 건강 회복을 위해 맛있게 식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하였습니다. 한 학기 강의는 끝났지만 그 분과 인연은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어떻게 집 주소를 알았는지 새해가 시작되는 명절에 작지 않은 선물이 내게 왔습니다.
더 이상 선물이 오지 않았을 때, 그 분이 세상을 떠났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굳이하지 않아도 될 일을 위해 힘들게 자신의 시간을 쪼개고 공력을 쌓는 일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 분은 하찮아 보이는 일에 진심을 담았습니다. 누가 알아주기를 바란 것도 아니고 세상에 빛나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심도 아니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자신을 앞세우고, 서로 헐뜯는 이전투구의 험한 세상으로 물들어가도 아직까지 굳센 희망이 사그러들지 않은 이유는 이렇게 자신을 뽐내지 않고, 위선을 달가워하지 않으며 작은 선행을 마다하지 않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세상 곳곳에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는데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 서천신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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