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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 無等의 세상을 꿈꾸며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3. 12. 5. 13:23

무등 無等의 세상을 꿈꾸며

 

 

오래 전 팔공산 동쪽 자락에 있는 거조사(居祖寺)에 간 적이 있다. 어느 정도의 규모를 가진 사찰에는 나한전이 있게 마련인데 거조사 영산전(靈山殿)에 모셔진 오백나한상은 그 규모로 보아 으뜸이라 할 만하였다. 석가모니의 제자 중에 중생들에게 복락을 베풀고 소원성취를 이루게 한다는 아라한(阿羅漢)의 숭배는 기나긴 환난의 시간을 거쳐온 우리 민중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주로 고려 말, 조선 초에 유행한 맞배지붕 주심포(柱心包) 양식은 수덕사 대웅전, 부석사 무량수전, 봉정사 극락전에서 볼 수 있는데 거조사 영산전 역시 기둥 하나에 공포를 얹은 주심포 양식의 단아한 형식미가 돋보이는 정면 7칸 옆면 3칸 규모로 각기 다른 형상의 근엄한 오백나한을 모시는데 모자람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색다른 나한상을 만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20여 년 전 영월 창령사터에서 발굴된 300여 점의 나한상 중 일부를 춘천 박물관에서 마주했을 때의 기억이 새롭다. 거조사 오백나한상과는 달리 크기가 약 30센티미터에 불과한 작은 크기에 근엄한 모습이 아니라 친근한 우리 이웃의 희로애락이 그대로 담겨 있는 얼굴과 마주했을 때 열반에 들기를 마다하고 탐진치 (貪瞋痴)의 삼독(三毒)을 헤쳐기며 우리들과 함께 고집멸도(苦集滅道)의 먼 길을 가고자 하는 발원(發願)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그 발원의 핵심은 무엇일까? 모두가 하나가 되는 세상, 그 모두가 서로 견줄 필요가 없는 무등(無等)의 세상을 꿈꾸는 일일까? 지금 발 딛고 있는 세상의 온갖 모순은 힘을 가진 자와 가엾은 검수(黔首)들의 싸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인간 일반의 욕망의 다툼에서 터져나오는 것이라면 저 힘없는 장삼이사(張三李四)의 모습으로 나타난 나한들은 우리들에게 분별심(分別心)을 타파하라는 무언의 말씀을 던지는 것이 아닐까?

그리하여 나한은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높은 경지의 존재일 뿐만 아니라 누구나 나한이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이해하고 싶어진다. 그 옛날 공자(孔子)는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의 삶을 이야기했다. 70이 넘고 보니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체면에 급급하지 않으며 마음 가는대로 행동에도 그 누구에게도 누가 되지 않않았다고 했다. 그 종심을 넘어서도 나는 여전히 화를 내고 미워하며 타인을 비난한다. 그 분별심을 버리려고 잡다한 세상사를 무관심으로 대한다면 그 또한 종심에서 어긋나는 일이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나는 거조사의 나한상과 창령사지 나한상을 떠올린다.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반야의 세계와 그 무엇에도 차이를 주지 않는 무등(무등)의 세계 사이에서 우리 모두가 나한이 되는 꿈을 꾼다. 그 나한의 꿈을 드러내보고자 또 어리석은 시를 꾸며내고 있다.

 

불교와 문학 2023 겨울호 시작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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