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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어디세요?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7. 1. 15:40

고향이 어디세요?

나호열 시인〮· 문화평론가

 

오래 전 ‘생활문화사’ 강의 시간에 ‘현대문명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소재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소련(지금의 러시아)공산주의가 몰락하고 소련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몽고에 자본주의가 유입되면서 유목민들에게 거의 자급자족의 형태로 영위되었던 목축이 재산 축적의 수단이 되었다는 이야기, 그들이 기르던 양(羊)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초지가 부족해지고 풀이 자라던 지역이 사막화되면서 그 영향으로 우리나라에도 황사가 심해졌다는 이야기 끝에 몽고 사람들의 주거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아마도 수 천 년 동안 유목민들은 한 곳에 정주하기보다는 게르(Ger)나 빠오(包)라는 이동천막에서 생활하였기에 풀이 있는 곳, 광대한 자연이 그들의 고향이고 집이었던 셈이다. 고향이 어디냐고 한 학생에게 질문 했더니 그 학생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내게 다시 물었다. “그게 뭔데요?” 고향(故鄕)이 무슨 뜻인지 사전을 찾아보라고 하였더니, ‘태어나 자라난 곳. 또는 제 조상이 오래 누려 살던 곳’이라고 읽어준다. 그 순간 태어난 곳, 자라난 곳, 제 조상이 오래 누려 살던 곳이 각각의 새로운 의미로 내게 다가왔다.

나는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곧 서울에서 살아왔다. 또 몇 백 년 동안 조상들이 대대로 살고 묻힌 곳은 금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충청도 서천이다. 나의 아버지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또한 이 곳이니 내 연배쯤의 사람들이 물어보면 ‘그럼 당연히 내 고향은 충청도이지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아래 대(代) 연배, 그러니까 80년대 이후 태생인 세대로 내려가 보면 각기 다른 여러 대답이 나올 것이다. 태어난 곳은 병원이고, 이 곳 저 곳 옮겨 다니며 산 사람들에게 고향은 어딜까?, 오랫동안 한 지역에 정주한 부모가 아직 살아 있다면 그곳을 고향이라 할 수 있을까?

해방이후의 전쟁과 혹독한 가난 속에서 농업 위주의 삶은 급속하게 산업화 사회로 뒤바뀌었다. 70년대 6 할이 넘었던 농어촌 인구는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20%가 안 되고, 이른바 도시화의 그늘 속에서 빈번한 이주(移住)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 버렸다.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둘 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를 넘어 세 째 아이는 아예 건강보험에도 올리지 못하는 우스운 일도 있었고, 주식(主食)이었지만 턱없이 부족한 쌀 생산을 보완하는 혼식 장려 정책이 시행되기도 하였다. 지금이야 흔하디흔한 라면은 고급식품이고 각급 학교나 음식점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 한 끼를 보리나, 조, 콩을 섞지 않으면 벌을 받는 그 시대가 바로 몇 십 년 전 일이다.

아무튼 몇 해 전 부터 죽는 이 보다 태어나는 아이들이 적어지는 인구 감소가 시작되고, 쌀이 남아 곳간에 보관하기조차 힘든 풍요의 시대가 오리라 예상했던 사람들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른 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이 풍요의 뒷면에는 정처 없는 삶, 마음에 돌아가고 싶은 곳이 없고, 돌아가고 싶어도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무상함에 어쩔 수 없어 하는 것이 오늘의 안타까움인 것을 누가 헤아리겠는가?

나는 선친의 근무지를 따라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입학 무렵에 서울로 왔다. 시내에 잠시 살다가 6.25 전상(戰傷) 후유증으로 공기 좋고 휴양하기 좋은 조용한 곳을 찾던 아버지는 산이 병풍처럼 둘려진 서울의 끝자락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날로 치면 주택공사에서 지은 양옥에 살게 되었는데, 아랫 마을은 전통적인 마을로 논과 밭을 일구며 사는 촌락이었기에 뒷산에는 꿩이 날고, 노루 뒷발질에 갈비뼈가 부러지기도 했고, 초여름에는 아카시아 꽃잎을 따 먹고, 논에서 메뚜기를 잡아 구워 먹었으며 어르신이 돌아가면 뒷산으로 상여가 올라가고 계곡의 맑은 물은 수영의 기초를 배우는 수영장이었다. 한 마디로 자연과 인간이 함께 호흡하는 마음을 저절로 배웠던 것이다.

내 고향 서천에 올 때마다 삭막한 도시의 번잡함을 잊고 싶어진다. 삶의 편리성을 좇다가 잃어버린 살겨운 사투리에 묻어나는 인정을 맛보고 싶다. 그러나 이곳도 예외 없이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타향으로 변해가고 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후손들과 함께 자연이 살아 숨쉬는 서천의 향기와 역사를 더듬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서천군 마사면 남전리라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도록 한 겨울 동백정 동백꽃을 보여주고 싶다.

 

서천신문 2024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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