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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호열의 시창작론

인물시를 어떻게 쓸까?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2. 11. 18. 15:21

 

인물시를 어떻게 쓸까?

 

나호열 (시인 · 문화평론가)

 

 

누구나 시를 쓸 수 있다 !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특징을 이야기한다면 ‘다양성’과 ‘경계 없음’이다. 이 두 개의 명제는 상호보완적이면서 동전의 양면처럼 동질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한 예로 예전과 같으면 문화(文化)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소수의 창조자들이 이끌어가는 개념으로 이해되었다면 지금은 모든 사람이 문화 창조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런 다양한 계층들이 서로를 포섭할 뿐만 아니라 더 새로운 의미로 확정되어 간다고 믿는다. 덧붙여 간단히 요약한다면 아마튜어와 프로의 경계가 사라진 상태로 말할 수 있다.『도봉열전』에 참여한 분들도 오래 시를 연마해온 분들도 있을 것이고, 처음 시작(詩作)에 입문한 분도 있을 것이다. 어째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길에 시 만큼 유용한 장르는 없다. 표현에 대한 강렬한 욕구만 있다면 자신의 카타르시스는 물론 시를 읽는 독자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줄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이번에 도봉문화원의 어르신문화프로그램『도봉열전』은 함께 살고 있는 우리 이웃에 대한 글쓰기이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 것은 각자의 재능에 따라 협동과 협업의 테크닉을 터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쓰레기를 수거해 가는 환경미화원이 없다면 우리는 일상의 많은 시간을 쓰레기를 처리하는데 바쳐야 할 것이다. 만일 장례를 치루는 장례지도사가 없다면...... 등등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은 타인의 삶에 유용함을 더해 줄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웃에 대한 감사보다는 무심함으로, 불편한 대상으로 경계하며 살아간다.『도봉열전』의 주제는 ‘이웃의 사람’이다. 이웃에 대한 이해와 감사는 소통의 길과 화해의 길 나아가서 감사의 길을 이어주는 다리이다. 그러나 이런 이웃에 대한 이해와 감사는 친밀도를 높이는 시간이 필요하고 이웃에 대한 관심이 없으면 이뤄질 수 없다.

 

 

주변의 사람을 친척으로 생각하라!

 

모든 작가들은 여러분이 아무 감정도 갖고 있지 않는 것에 대하여 글을 써서는 안 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만일 어떤 것이 여러분의 흥미를 끌거나 여러분을 흥분시키거나 여러분의 생활에 깊이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그것에 관해 말할 만한 어떠한 것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가 없다. 말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이 유별난 사람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여러분이 자신의 친척에 대해 아는 것만큼이나 이 세상의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이렇게 잘 알 수 없을 것이며, 여러분의 감정 또한 그들에게 만큼 다른 어느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그토록 깊게 결속되지도 않을 것이다.

 

- 테드 휴즈 Ted Hughes 『시작법 Poettry in the making』, 한기찬 역, 제 8장

 

이웃에 대한 관심은 유대와 연대감을 일으키는 첫 걸음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을 적절하게 조절하지 않으면 지나친 감정의 표현으로 떨어지기 쉬울 것이다.

 

그래서 인물에 대해 시를 쓸 때 유의해야 할 점을 이야기 한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 인물이 지니고 있는 특징을 찾아내라.

 

이 말은 한 인물을 묘사하는데 있어 장점만을 드러내는데 치중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유별난 성격이나 볼품 없는 외모도 한 사람의 특징을 드러내는데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그녀는 이혼녀였다/그녀는 파출부였다/그녀는 바람난 여자였다./그녀는 우아하게 와인을 마시고/ 강이 내려다보이는 하우스에서 잠을 잤다/그녀는 버림받았고/그녀는 배반했다/그녀는 재즈를 불렀다//

 

그녀 안에 있는 모든 그녀들이/그녀를 죽이려고 달려들었다/우울증에 걸린 이혼녀가/우울증에 걸린 파출부를 죽이려고 하고/우울증에 걸린 바람난 여자가/우아하게 와인을 마시는 그녀를 죽이려고 덤벼들었다/우울증에 걸린 배반이/우울증에 걸린 복수를 죽이려 하고/우울증에 걸린 재즈가/우울증에 걸린 그녀의 잠을/그녀의 집을 죽이려고 찾아들었다/그녀는 죽지 않기 위해 모든 그녀들을/우울증을 죽여 버렸다//

 

스물 다섯의 젊은 여배우는/우울증에 걸린 이 세상을/몸에 매달았다/우울증이 소문처럼 이 세상을 맴돌았다

 

-「어느 여배우의 죽음」전문, 나호열

 

이 시는 오래 전 자살한 어느 여배우에 관한 시이다. 자살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는 측면에서 하등 칭송받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 시는 우리 마음 속에 자리 잡은 수많은 타자로 말미암아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우울증의 폐해를 드러내는데 집중하고 있다.

 

둘째, 찬양이나 미담은 가급적 피하라!

 

이 말은 어떤 인물에 대한 주관적 판단을 언급하는 것은 자칫 독자로 하여금 감동을 강요하는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머니에 대한 많은 시들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 모성애(母性愛)를 다루는 개인적인 경험은 상투적 감정에 함몰되기 쉽다.

 

어머니는 죽어서 달이 되었다

 

바람에게도 가지 않고

 

길 밖에도 가지 않고,

 

어머니는 달이 되어

 

나와 함께 긴 밤을 같이 걸었다

 

- 「사모곡」전문, 감태준

 

이 시는 시인의 체험에서 비롯된 감정이지만 그 체험을 ‘어머니’가 지닌 보편적 사랑으로 표현함으로서 유장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맛볼 수 있게 한다.

 

셋째, 시적 대상으로 택한 인물이 주는 의미나 가치를 표현하라.

 

표현하고자 하는 인물의 의미나 가치는 때로는 독자의 호불호를 편향하게 만드는 위험도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고은 시인의 시「김신묵」은 고 문익환 목사의 어머니인 김신묵 여사의 장례에 대한 시이다.

 

아흔여섯 살 김신묵은

내가 죽으면 박수치며 보내달라 하고 죽었다

장례식날

그의 관이 나갈 때

박수를 쳤다

그 누구도 박수치지 않는 자 없다

산에다 묻어버리고 내려올 때

그의 말이 들렸다

박수치며 내려가라고

그래서 하나둘 박수를 쳤다

 

동두천 의정부 사이의 길이 양키 없이 빛났다.

 

- 「김신묵」전문, 고은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문익환 목사는 민주화 투쟁에 앞장 선 투사로서 그의 어머니 또한 그와 같은 성향의 인물로 인식될 수 있음이 이 시의 마지막 구절에 드러나 있다. 죽음을 박수로 맞이해 달라는 유언이 주는 묵직함이 마지막 행의 시인의 주관적 인식으로 휘발되는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넷째, 시를 쓰는 주체의 명징한 해석을 가미하라는 점에 있어서는 충분한 의도가 살려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인물의 행동이나 업적을 나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러한 업적이나 행동을 통해 시인이 느끼는 주체적 인식이 표현될 때 앞 서 이야기한 칭송이나 미담에 그치지 않는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절명하듯 동백꽃 지는

화엄사 곁에 두고

 

전남 구례군 광의면 월곡리

매천 사당*

뜰 앞 매화향기 높은데

 

병든 사직의 야록은 끝나지 않있다는 듯

초상화 둥근 안경 너머

눈빛이 시리다

 

눈 쌓인 노고단 바라보며

잠시 내 죽음의 자세를 생각하다

 

매천 황헌 (1855- 1910)의 사당. 구한말 시인이자 우국지사. 한일합방이 되자 이 땅의 지식인 중의 하나로 책임을 통감한다며 다량의 아편을 먹고 자결함.

 

- 「매천 사당에서」전문, 복효근

 

시인은 나라를 빼앗기고 울분을 참지 못해 절명시(絶命詩)를 쓰고 자결한 매천 황헌의 사당에서 자신 또한 지식인으로서 어떤 역할을 하며 살고 있는지에 대해 자문하고 있다. 즉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대상을 통해 자신의 의식을 반성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영웅들!

 

 

『도봉열전』에는 열 두 분의 시 39편의 시와 두 편의 산문이 수록되어 있다. 도봉지역에 발자취를 남긴 역사적 인물에 대한 시도, 우리 주변에서 묵묵히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이야기한 시도, 자신들의 피붙이에 대한 회고를 탐색한 시도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이웃에 대한 따뜻한 관심에서 출발한 소중한 작품들임에 틀림이 없다. 이러한 작품들이 이웃들에게 읽혀지고 행복 바이러스가 되어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점화하게 만드는 씨앗이며 열매인 것을 우리는 깨닫고 있다.

 

『도봉열전』에 함께 하신 여러분들이 앞으로도 시작(詩作) 의 시작 (始作)을 잊지 않고 정진해 주시기를 바란다.

 

 

『도봉열전』 2022 도봉문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