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호접몽

세상과 세상 사이의 꿈

모두 평화롭게! 기쁘게!

내 시와 시집에 대한 평론

후생(後生)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12. 9. 16:07

 

후생(後生)

저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다 얼굴도 없이 뼈도 없이 맹물에도 풀리면서 더러운 것이나 훔치는 생을 살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하늘만 바라보면서 고고했던 의지를 꺾은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무엇이든 맞서 싸우되 한 뼘 땅에 만족했던 우직함이 나를 쓰러뜨렸다

나무는 벌거벗어도 실체가 없음의 다른 말이다 벌거벗어도 보일 것이 없으니 부끄럽지 않다 당신이 나를 가슴에 품지 않고 쓰레기통에 처넣는다 해도 잠시라도 나를 필요로 할 때 기꺼이 나는 휴지가 되기로 한다 나는 당당한 나무의 후생이다

 

당연히 나는 원래 내가 아니었다. 각색되어 태어난 후생일 뿐이다. 내 기억 속 전생은 내 기억의 회로가 미처 성장하기도 전에 세상을 등졌다.

어느 땅에서도 새로운 지역에서는 우선 나를 버려야 한다. “나를 가슴에 품지 않고 쓰레기통에 처넣는다 해도” 본래의 나는 버리고 “하늘만 바라보면서 고고했던 의지”도 꺾어버려야 한다. 나무라 우기지 말고 “잠시라도 나를 필요로 할 때 기꺼이 나는 휴지가 되”었어야 했다.

“더러운 것이나 훔치는 생을 살지는 않겠다”는 생각은 전생을 탓하는 일이다. 나를 깨닫지 못하고 남을 탓하는 일이다. 기꺼이 나의 현재를 직시할 때 나는 후생에서도 본생(本)이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문철수 시인]

 

문철수의 시로 보는 세상

 

서천신문 2021-06-28 10:58

'내 시와 시집에 대한 평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팽이  (0) 2024.12.12
말의 행방  (2) 2024.10.03
봄, 혼자 커가는 그리움  (1) 2024.04.18
소박한 개별자  (1) 2024.03.07
  (0) 2024.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