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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와 시집에 대한 평론

소박한 개별자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3. 7. 11:42

소박한 개별자

: 정병근 (시인)

 

나호열 시인은 1986월간문학신인상으로 등단 후 올해로 시력 38년째를 맞고 있다. 그간 20여 권의 시집을 상재하면서 쉼 없는 시 인생을 노정하고 있다. 그와 나는 중랑천을 사이에 둔 이웃이다. 나는 노원구에 살고 그는 도봉구에 산다. 우리는 가끔 만나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중랑천을 산책한다. 그는 만날 때마다 당신이 살아온 세월만큼 다채롭고 재미있는 경험담을 들려준다. 군대 이야기에서부터 전국의 지리와 인물에 대한 촌평에 더하여 지역별 부동산 시세까지 꿰뚫는 탁견에 혀를 내두르곤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물 반 물고기 반 시절의 낭만이 그립기도 하다.

나호열 시인의 시를 한 마디로 가벼이 말하는 것은 누가 될 듯하다. 칠순에 이른 인생의 깊이와 넓이를 담지하고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월에 따라 인심과 말법이 바뀌듯이 시도 끊임없이 자기 변화를 모색한다. 그의 시 또한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의 시에 흐르는 주요 정서는 고독과 슬픔이라고 생각한다. 고독과 슬픔을 품은 시적 자아상은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소외하고 격리하는 태도에서 비롯한다. 6.25 전쟁의 여파로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과도 무관치 않으리라 짐작한다. 그의 시는 불행한 현실에 던져진 존재로서의 자각과 함께 세속과 거리를 둔 채 자신만의 세계를 꿋꿋하게 지키며 저 너머를 향해 나아가려는 초월 의지를 보인다.

나호열 시인의 시는 삶을 성찰하고 문제를 발견하고 새로움을 찾고 상처를 보듬는 동일성의 세계관이 작동하고 있다. 사회정치적인 기여보다 개별자의 소박하고 자유로운 삶을 옹호하는 태도를 견지한다. 그의 시에서 보이는 고독과 슬픔의 정서는 실존의 생득적 쓸쓸함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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