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너무 어둡다"했던 영미 출판계… 10년 전부터 "노벨상감"
해외에 한강 처음 알린 두 주역
해외에서 아무도 소설가 한강을 모르던 시절, 한강을 발굴해 키운 문학 에이전트들이 있다. 이구용 KL매니지먼트 대표와 미국 뉴욕의 문학 에이전트 바버라 지트워. 둘은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흰’ 등을 처음 해외에 소개했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초기 주역들이다.
◇이구용 “韓 노벨문학상 받는다면 한강”
“올 것이 왔구나.” 14일 만난 이구용 KL매니지먼트 대표는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도 “담담했다”고 털어놨다. “한국에서 노벨문학상이 나온다면 한강 작가일 것이라고 오래전부터 이야기해왔거든요.” 이 대표가 한강을 처음 만난 건 2008년. 1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설 ‘채식주의자’가 출간된 이듬해였다. 한강에게 “책을 해외에 팔아보겠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이 대표는 1995년 저작권 에이전시 임프리마코리아에 입사해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한국 문학을 수출했다. 해외의 문학 에이전트에게 한국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엄밀히 말하면 출판·저작권 에이전트. 한국 문학에 뜨거운 관심을 가진 바버라 지트워라는 문학 에이전트를 찾아냈고, 지트워를 통해 김영하·조경란 작가를 해외에 알렸다. 이후 한국 문학 수출에 집중하기 위해 KL매니지먼트를 차렸다. 그가 다리를 놓은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가 미국 유명 순수 문학 출판사인 크노프(Knopf)에 팔리며 화제가 됐다.
한강 작가에겐 호언장담했지만, 영미 출판계의 벽은 높았다. ‘too literary, too heavy, too dark(너무 문학적이고, 너무 무겁고, 너무 어둡다)’ 같은 반응이 돌아오기 일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채식주의자’는 고전 반열에 오를 만한 작품입니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폭력과 악, 그것을 처절하게 거부하는 연약한 인간이 죽어가는 모습을 그렸죠.”
5년 만인 2013년 영국 출판사 포토벨로의 편집자 맥스 포터가 “이건 걸작”이라며 출판을 결정했다. 그 뒤로 물 흐르듯 진행됐다. 포토벨로는 ‘채식주의자’가 출간되기도 전에 ‘소년이 온다’를 계약하자는 제안을 보내왔다. “맥스 포터가 ‘’채식주의자’도 훌륭한 작품이지만 ‘소년이 온다’를 보니 한강은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손색이 없다’고 말하더군요. 적임자를 만났다 싶었어요.” 영국에서 2015년 1월에 출간됐고, 2016년 5월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당시 맨부커상)을 한국 최초로 거머쥐었다.
◇지트워 “인간성 그 자체, 소설계의 미켈란젤로”
“한강이 노벨문학상 받을 줄 알았어요. 부커상 수상 이후부터 조만간 받겠거니 확신했죠.” 13~14일 미국 뉴욕에 사는 바버라 지트워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봉준호가 ‘기생충’으로 오스카상을 받고, 코로나 록 다운 때문에 모두가 집에 갇혀 있을 때 ‘오징어 게임’이라는 K드라마가 나타나 모두를 미치게 했어요. ‘파친코’, BTS… 한류 열풍이 한국 문학을 향한 관심으로까지 이어졌네요!”
그는 ‘채식주의자’를 처음 읽었을 때를 떠올리며 “카프카의 ‘변신’ 같았지만, 여성·페미니스트로서는 더 흥미로운 이야기였다”고 했다. 한동안 ‘채식주의자’ 얘기밖에 안 해서 그의 지인들은 “바버라, 제발 그 얘기 좀 그만해!”라고 할 정도였다.
2010년대 초 영미 출판 시장은 19금(禁)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휩쓸고 있었다. 한강에겐 불리한 환경이었다. “모두가 굉장히 상업적인 작품을 원했어요. 출판사의 선택을 받기 쉽지 않았죠.” 표류하던 ‘채식주의자’는 번역가를 데버라 스미스로 바꾼 뒤 포토벨로의 선택을 받았다. 이후 미국 출판이 뒤따랐다.
‘채식주의자’ 영문판 출간 후 한강은 ‘희랍어 시간’을 내고 싶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트워는 “’소년이 온다’와 ‘흰’을 그다음에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년이 온다’는 인간성 그 자체다. 소설계의 미켈란젤로다. 내 판단이 맞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문학 에이전트와 편집자의 역할은 작가가 경력을 쌓는 것을 돕고, 언제 어떤 책을 내야하는지 아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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