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1930년대 서울에 첫 '아파트'… 지금은 10명 중 6명이 살죠
아파트
걸그룹 블랙핑크의 멤버 로제가 미국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함께 부른 신곡 ‘아파트’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미국 빌보드 ‘핫100′ 8위에 올랐다는 뉴스가 나왔어요. 이와 함께 42년 전에 나온 윤수일의 ‘아파트’도 덩달아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공동 주택인 아파트먼트(apartment)를 줄여 부르는 말인데요.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5층 이상의 건물을 층마다 여러 집으로 일정하게 구획하여 각각의 독립된 가구가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든 주거 형태’라 풀이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아파트가 처음 생긴 건 언제일까요?
“수세식 화장실은 불편해서 싫어요”
1930년 서울 중구 회현동에 ‘미쿠니(三國)아파트’라는 이름의 건물이 들어섰습니다. 일본인 직원의 숙소로 쓸 용도였는데, 놀랍게도 원형의 상당 부분이 보존된 채로 아직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한국 최초의 아파트였을까요? 이게 좀 애매합니다. 3층 건물이기 때문에 앞서 본 ‘5층 이상’이라는 정의에 맞지는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1932년 또는 1937년 세워진 서울 회현동의 5층 건물 ‘충정아파트’를 최초의 아파트로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금 보면 낡은 상가 같지만, 당시 최신 공법인 콘크리트로 모더니즘 양식에 따라 지어졌다고 합니다. 6·25전쟁 때 북한군이 인민재판소 건물로 썼고 서울이 수복된 이후엔 유엔군 숙소로 쓰였습니다.
광복 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좁은 국토를 감안해 ‘국민이 싫어하더라도 아파트를 많이 지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주거 생활을 근대화하는 동시에 주택의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이점이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1958년 우리 기술로 지은 최초의 아파트인 ‘종암아파트’가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 들어섰습니다. 대통령이 시공 현장을 직접 찾을 만큼 주목받는 건축물이었죠.
이때만 해도 집 건물 바깥에 재래식 화장실이 따로 있었던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종암아파트에선 집집마다 수세식 화장실을 뒀다고 해요. 하지만 아직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아 오히려 불편해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간다고?
1960년대엔 본격적인 아파트 건설이 시작됐습니다. 대한주택공사는 1962년부터 1964년까지 한국 최초의 대단위 단지 아파트라 할 수 있는 ‘마포아파트’를 건설했습니다. 아직 ‘뭐 그런 데서 사느냐’는 국민의 정서적 거부감이 있었지만 곧 마포아파트는 고급 아파트의 대명사가 됐고 이 아파트를 시작으로 서울 곳곳에 아파트가 건설됐습니다.
1967년에는 김현옥 전 서울시장의 주도로 주상복합 아파트인 세운상가와 낙원상가가 지어졌습니다. 같은 해 건설된 외국인용 아파트인 한남동 힐탑아파트는 고층 건물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죠. 하지만 서민의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무리하게 지어진 아파트들이 많았고, 1970년엔 와우 시민아파트가 붕괴하는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아파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커지자 정부는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고급·고층 아파트를 건설하는 정책을 썼습니다. 서울엔 1970년 동부이촌동, 1971년 여의도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는데, 여의도 시범 아파트는 지상 12층에 이르는 국내 첫 고층 아파트 단지였습니다. 이후 반포 주공아파트(1973), 압구정 현대아파트(1976), 대치동 은마아파트(1979) 등 강남권 아파트 단지가 속속 들어섰습니다. 서울 밖에선 부산의 대신문화아파트(1971), 대구의 동인시영아파트(1969) 등이 초기의 대표적 아파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별빛이 흐르고 갈대숲엔 바람도 불었으나…
바로 이 시점인 1982년에 발표돼 국민 애창곡이 된 노래가 ‘아파트’입니다. 가수 윤수일이 작사·작곡을 맡은 이 노래의 가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시 아파트의 사회적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화자는 서울 강북 구도심에 사는 것으로 추정되며, 그의 옛 연인이 살던 아파트는 한강과 인접한 잠실이나 강남쯤에 있지만 어딘가 외진 곳으로 묘사됩니다.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라고 했거든요.
지금은 한강 다리를 건너며 하늘을 올려봐도 주변이 밝아별빛이 잘 보이지 않고, 갈대숲을 지날 일도 없어요. 외곽이었던 강남이 중심지로 변모한 것입니다.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라는 가사에선 아파트 투기 붐이 불어 구입만 해놓고 실제로 살지는 않는 일이 많았던 당시 현실을 반영했다고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노래 속 여자 친구가 그 아파트를 떠나지 말고 머물러 있었더라면 집값이 올라 큰돈을 벌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있죠.
1982년만 해도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전체 국민의 5% 정도였지만, 2008년에는 절반을 넘어섰고 지난해엔 58.3%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국민 10명 중 6명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것이죠.
아파트가 키워낸 ‘근대화된 개인’
‘아파트가 많이 지어진 것은 국가가 대규모 인구를 통제하기 쉬웠기 때문’이란 부정적 인식도 있지만, 전상인 서울대 교수는 다른 견해를 내놓습니다. 아파트가 ‘진정한 개인의 탄생’을 가져왔다는 것이죠. 옛날 셋방살이엔 집주인도 세입자도 프라이버시 같은 건 없었습니다. 화장실도 순서가 있었고, 세입자 아들이 집주인 아들보다 공부를 잘해도 곤란했죠. 아파트가 대중화된 지금은 더 이상 그런 풍경을 볼 수 없게 됐다는 겁니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주거 문제가 상당 부분 해결됐다는 점, 집을 소유한 중산층이 형성됐다는 점, 치안·온수·위생 등의 측면에서 주거 생활의 근대화를 가져왔다는 점 역시 중요합니다. 물론 공동체 문화가 사라지고 도시 경관이 삭막해졌으며, 주택이 투기 대상이 되면서 주거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등 부정적 요소도 간과될 수는 없겠죠.
[임명묵의 90년대생 시선]
윤수일에서 로제까지… K아파트를 다시 볼 때다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꼽으라고 하면 아마 많은 이들이 ‘아파트 공화국’을 들 것 같다. 이 용어는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가 한국의 아파트 문화를 분석한 동명의 저서에서 유래했다. 그는 유럽에서 아파트가 서민 주택, 심지어 우범지구의 상징이 된 반면, 한국에서는 아파트가 중산층의 지위를 보여주는 피라미드형 계층화의 지표가 되었음을 지적한다.
줄레조의 저작이 출간된 이래로 한국의 도시 공간과 사회를 분석하는 많은 지식인들이 이 ‘아파트 공화국’의 폐해를 입을 모아 지적했다. 요컨대 아파트 비판론에 따르면, 아파트 열풍 때문에 한국의 도시 경관은 흉측해졌으며, 아파트에서의 생활이 공동체를 해체했고, 사람들은 고립됐다. 게다가 단지에 따른 계급의식이 생겨나고, 아파트만을 목적으로 삶의 시간표가 재편되며 부가 투기 영역에만 집중된다.
그런데 나는 5년 전에 카자흐스탄의 수도 아스타나에서 정반대의 경험을 했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가는 택시에서 기사와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며 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였다. 나를 한국인이라고 소개하자, 그 택시 기사는 갑자기 창문 너머를 가리키며 “저것도 한국 거야”라고 말해주었다. 그는 “한국 아파트! 아스타나에서도 부자들만 살 수 있어서 인기가 좋아”라며 웃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한국 건설사 동일토건이 카자흐스탄에 진출해 지은 한국식 프리미엄 아파트 단지였다. 몇 년 지나지 않아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도 한국 건설사들이 더 큰 스케일로 ‘몽탄신도시’를 짓고 있다는 소식이 언론에 소개됐다. 한국 기업 진출이 활발한 베트남도 예외는 아니다.
이 나라들과 한국이 공유하는 역사·문화적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 나라는 모두 소련식 공산주의를 따른 경험이 있는 나라였다. 소련 체제는 국가가 나서서 농촌 인구를 도시로 이주시키는 이촌향도를 장려했다. 소련이 보기에 가장 빠르게 직주근접과 복지까지 통합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주거 형태는 아파트였다. 소련인들은 아파트에서 직장으로 출근하고, 퇴근 후에는 입주민 모임을 가지는 삶에 익숙해졌다. 사회주의 사회에도 계층은 있었기 때문에, 배급받을 수 있는 아파트의 종류도 차등화되었다. 당에서 우대하는 인물들은 좋은 위치의 널찍한 고급 아파트에 살았고, 청년들은 방음이 안 좋은 비좁은 아파트도 배급받기 어렵다고 불평했다.
그러나 저가 아파트도 개인 공간을 보장받을 수 있는 도시 중산층의 상징이 되며 소련 청년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냉전 시대에 체제는 서로 달랐지만, 공산주의 세계의 일상은 우리 한국인들이 겪은 산업화와 도시화의 풍경과도 흡사한 면이 많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산권의 아파트 문화는 구 공산권 국민들이 한국식 아파트도 친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기초가 됐다.
사실 국가가 이끄는 압축적 근대화는 동구권과 한국만의 특성은 아니다. 넓게 보면 모든 아시아 국가들의 공통 경험에 가깝다. 이 ‘아시아적 특성’은 아파트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감정을 쏟아내는 ‘신파’와 멜로디가 돋보이는 ‘뽕끼’ 음악, 혹독하다는 아이돌 연습생 시스템까지. 서구권에서는 이를 ‘독특하다’고 평했다. 하지만 전통 문화를 마음속에 여전히 간직한 채 현대 도시로 빠르게 이주해야 했던 많은 아시아인들에게는 바로 그런 게 ‘정상’이었다. 한국 드라마와 대중가요는 아시아만의 감각을 시장에서 밀어붙이며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다.
물론 대중문화와 도시 공간의 문제를 같은 방법으로 풀어나갈 수는 없다. 아파트 공화국이 대한민국 전체의 지속 가능성도 위협하고 있다는 근래의 상황은 해결돼야만 하는 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 자신이 걸어온 길과 삶의 터전을 긍정하고 그곳에서 보편성을 발견해내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파트 공화국’을 척결의 대상으로 보기보다, 윤수일의 ‘아파트’부터 로제의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현대 한국인의 열망과 애수, 추억을 모두 담아내는 삶의 기반이자, 모든 아시아인의 보금자리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바로 그럴 때 아파트와 반(反)아파트를 넘어서는 새로운 길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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