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사람은 불 다 끄랑께!” 무주 반딧불이 축제에 생긴 일
카드 발행 일시2024.08.27
에디터
김영주
호모 트레커스
반딧불이를 찾아 나섰다. 전북 무주군 금강 상류에 자리 잡은 부남면 대소리 일원이다. 무주는 귀한 몸이 된 천연 반딧불이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으로 꼽힌다. 1982년 국내 최초로 설천면 일원 반딧불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했으며, 이후 서식지가 줄어들자 무주군 전체로 확대했다. 이때 먹이가 되는 다슬기 등도 함께 천연기념물이 됐다. 무주의 반딧불이와 다슬기는 잡아선 안 되는 귀한 몸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올해 28년째 반딧불축제가 열리고 있다.
축제위원회에 문의하니, 반딧불이 서식지를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을 염려해서다. 대신 “축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1만5000원(성인·아동)의 참가비를 내면, 체험 행사를 통해서만 서식지를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일 저녁 반딧불이가 나타나는 곳을 추적해 버스로 데려다준다고 하니, 못 볼 염려는 거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축제는 이달 31일부터 시작이라 마냥 기다릴 순 없었다.
전북 무주 부남면 대소리 앞 다리, 반딧불이 탐방 장소. 김영주 기자
무주 여기저기에 수소문한 결과, 금강 상류에 있는 용담댐 아래 부남면 대소리 일대에서 반딧불이를 볼 수 있다는 전갈이 왔다. 대소리 도소마을 이장을 했던 김길환(57)씨는 “요즘 한두 마리씩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했다. 다만 “아직은 반딧불 보기엔 이른 시기라 헛걸음할 수도 있다”고 했다. 마지막 말이 걸렸지만, 희망을 갖고 무주로 향했다. 부남면 일대는 비단 반딧불뿐만 아니라 걷기 좋은 길로도 잘 알려져 있다. 금강변 마실길은 수풀이 우거진 강변을 따라 걷는다. 한여름 밤 무더위를 피해 반딧불을 보며, ‘달빛 유람’을 즐길 요량이었다.
반딧불이는 왜 불을 밝힐까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 곤충은 전 세계에 걸쳐 2000종 넘게 서식하고 있다. 반딧불이가 지구에 나타난 것은 약 5000만~7000만 년 전, 신생대부터라고 한다. 반딧불은 반딧불이의 몸 안에 있는 발광 선에서 만들어지는데, 루시페린이라는 화학물질과 발광 효소인 루시펠라제 그리고 호흡기를 통해 들어온 산소가 화학반응을 일으켜 생성된다. 즉, 반딧불이가 호흡하면서 생긴 화학에너지가 빛에너지로 변환하는 결과가 반딧불이다.
풀 속에서 빛을 내고 있는 반딧불이. 사진 에버랜드
빛을 내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짝짓기 상대를 유인하기 위한 것, 적으로부터의 방어와 경계·경고, 상호 교신, 모방과 위장 등이다. 위장을 위한 발광은 길을 찾거나 먹이를 찾을 때라고 한다. 암컷과 수컷 모두 빛을 발하지만, 사람의 눈에 띄는 정도의 반딧불은 수컷일 확률이 높다. 보통 암컷은 짝짓기 후 알을 낳기 위해 온 힘을 쓰기 때문에 멀리 날지 않는다. 반면에 수컷은 암컷을 찾아 비행하며, ‘발광 댄스’를 계속한다. 반딧불이가 내는 불빛은 열을 내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그래서 ‘찬불(냉광)’이라고도 한다.
한국에서 발견된 반딧불이는 약 8종으로 기록돼 있다. 하지만 지금 남아 있는 반딧불이는 애반딧불이, 운문산반딧불이, 늦반딧불이 3종류다. 애반딧불이·운문산반딧불이는 주로 6~7월에 출현하며, 8월 말부터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는 모두 늦반딧불이에 해당한다. 늦반딧불이 알의 크기는 약 1.7㎜. 유충은 25~35㎜이며, 성충이 되면 15~19㎜로 다시 작아진다. 애반딧불이는 암수 모두 날 수 있지만, 운문산반딧불이·늦반딧불이는 수컷만 날아다닌다. 또 애반딧불이와 운문산반딧불이는 ‘깜박깜박’ 점멸광 형태를 보이지만, 늦반딧불이는 지속해서 빛을 내는 특징이 있다.
지난 20일, 도소마을회관 앞에서 김씨를 만났다. 그는 “어젯밤, 토마토 하우스에 물을 대느라 강둑에 나왔는데, 강변 수풀 속에서 한두 마리가 날아다녔다”고 했다. 오는 길에 택시기사도 “부남면과 설천면뿐만 아니라 적상면 강줄기에도 더러 날아다닌다”고 했다. 기대감은 더 부풀었다
부남면사무소가 있는 대소리의 한 민박집에 먼저 짐을 풀었다. 반딧불이가 출현하는 도소마을까진 약 1.5㎞ 떨어진 곳이다. 인근 마을에서 유일하게 문을 연 민박집이 있었는데, 피서철이지만 방이 비어 있었다. 평일엔 찾는 이가 거의 없다고 한다.
대소리는 금강의 최상류로 이곳에서 금강 하구까지 300㎞ 물길이 이어진다. 상류에 있는 용담댐은 하루 약 50t의 물을 방류한다고 한다. 그래서 일대 강은 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다. 실제로 마을 앞을 관통하는 물길은 넓은 강폭을 펼치면서 유유히 흘렀다. 더러 물살 센 여울을 만나면 제법 큰 소리를 내기도 했다. 강물 옆으론 허리까지 차는 수풀이 우거져 반딧불이 유충이나 성충이 살기에 좋은 환경이었다.
‘개똥’처럼 흔해 개똥벌레로 불리기도 한 반딧불이가 사라진 원인은 많지만, 그중 하나가 살충제라고 한다. 농사에 해로운 곤충과 모기를 멸하기 위한 살충제가 풀잎이나 소똥·개똥에서 살던 반딧불이를 위협하게 된 것이다. 또 대소리 일대는 3년 전, 반딧불이에게 재앙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큰비가 내린 날 밤, 댐을 관리하는 곳에서 갑자기 물을 대량 방류하는 바람에 강변 작물을 물론 동식물까지 피해를 봤다. 김씨는 “하루 50t 방류하던 것을 그날 3000t을 방류하면서 강둑까지 물이 찰랑찰랑했다. 반딧불이 유충과 먹이인 다슬기 등이 다 쓸려 갔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이후 반딧불이 개체 수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반딧불이는 어둡고 습한 곳을 좋아한다. 개똥이나 소똥, 두엄 등이 반딧불이의 주요 안식처다. 그러다 보니 소똥구리처럼 소똥에 살면서 그것을 먹는 곤충으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반딧불이 유충은 맑은 개천에 살면서, 다슬기 등을 잡아먹고 자란다. 다 큰 다음에 수풀이 우거진 풀잎 등에서 서식한다. 다슬기만큼 깨끗한 곤충이다.
달밤 반딧불 마중…무더위에 숨었나
전북 무주 반딧불이가 나타난다는 대소리 도소마을 앞. 김영주 기자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반딧불이를 관찰할 수 있는 탐방로를 물색하는 게 중요했다. 헤드랜턴 등 불빛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미리 동선을 짜둬야 하기 때문이다. 민박집에서 도소마을 앞 개울까진 도보로 30분 거리다. 저녁을 먹고 금강변 마실길을 따라 마을로 간 후, 강변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반딧불이를 찾기로 했다. 어두울수록 반딧불이를 만날 가능성이 높다.
이날은 음력 17일이었지만, 달은 구름에 가려 있었다. 마침 이날 태풍 ‘종다리’가 북상하던 때라 사위는 검은 구름에 갇혀 있었다. 반딧불이를 보기엔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또 민박집에서 도소마을로 가는 길의 가로등은 많지 않았다. 다만, 강변에 세워둔 ‘홍수 경고판’의 불빛이 네온사인처럼 번뜩이는 게 눈에 거슬렸다.
오후 8시30이 되니 사위가 컴컴해졌다. 칠흑 같은 밤이었다. 구름 뒤에 보름달이 숨어 있었고, 마을 앞 가로등 불빛이 강둑까지 여릿하게 이어졌다. 김길환씨는 “예전 반딧불축제 차량으로 탐방객을 실어나르던 3년 전엔 마을의 가로등과 집 안의 불을 모두 껐었다”며 “마을에서 자원봉사를 나와 경광등을 비추면서 탐방객을 안내했다”고 했다.
마을 앞 금강 물살 위에 부교처럼 놓인 다리로 향했다. 비가 오면 물이 넘치는 작은 다리다. 네이버·카카오 맵에는 표시되지 않지만, 위쪽은 세월교 아래쪽은 유평교로 불린다고 김씨가 말했다. 그는 “이곳이 반딧불이를 관찰하기 좋은 곳”이라고 했다.
강둑을 내려오니 인공의 불빛은 모두 차단되고 한 점도 없었다. 동쪽에서 올라온 보름달은 짙은 먹구름에 가려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잔잔한 강물은 바람처럼 고요하게 흘렀다. 그 와중에 풀벌레 소리만이 요란했다. 이제 어둠 속에서 반딧불이만 나타나면 모든 것이 완벽했다. 형설지공(螢雪之功)이 가능한 무더기 반딧불이는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다.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그리면서 나는 한두 마리의 반딧불이만 나타나도 그지없이 반가울 것 같았다. 그러나 밤 10시가 되도록 반딧불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올해가 확실히 예전만큼 없는 듯해요. 전엔 정말 흔했거든요. 아무래도 올여름 무더위가 계속되다 보니 반딧불이도 그런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무주 반딧불이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요즘에, 찬바람이 살짝 불면서 나오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날씨가 35도나 됐고, 지금 바람이 한 점도 안 불잖아요. 지금은 너무 여름 날씨라, 아마 축제가 시작되는 8월 말이나 9월 초가 되면 분명히 보일 겁니다.” 김씨가 실망하는 기자를 달래듯 말했다.
반딧불이는 종류에 따라 날아다니는 시간이 조금씩 다르다. 애반딧불이와 운문산반딧불이는 오후 9시부터 10시 사이에 가장 많이 활동하고, 늦반딧불이는 7시30분부터 8시30분이 가장 많다고 한다. 밤 10시, 늦반딧불이가 나타날 시간이 훨씬 지났으니 이제 포기하고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실망스러웠지만, 밤마실로 만족해야 했다. 강변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더없이 좋았다. 찻길로 걸어왔는데, 이 시간대에 지나는 차가 한 대도 없었다.
형설지공, 반딧불이로 책을 볼 수 있을까
중국 고사성어 형설지공(螢雪之功)처럼 반딧불을 이용해 책을 볼 수 있을까. 1998년 무주반딧불축제위원회에서 실제로 이런 실험을 해봤다고 한다. 그 결과 반딧불이 80마리를 모으니 한 페이지에 20자가 적힌 천자문을 읽을 수 있는 정도였다. 또 200마리를 모으니 책을 읽을 수 있고, 300마리 정도가 되니 신문의 작은 글씨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형설지공 고사의 주인공인 차윤이 살았던 중국 푸젠성(福建省)에 사는 반딧불이는 불빛이 강해 20마리 정도로도 책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형설지공(螢雪之功)을 연상하게 하는 반딧불. 사진 에버랜드
중남미의 반딧불이 중 한 종은 발광체의 지름이 4㎝나 되는 것도 있다. 이 반딧불이 한 마리만 있어도 책을 볼 수 있을 정도의 불빛을 발산한다고 한다. 파나마 운하 건설 때 위급한 환자가 발생해 수술할 때 반딧불을 이용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또 남미 해안에 사는 어부들은 반딧불이를 잡아 집어등(集魚燈)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집에서 반딧불이를 기르기도 했다.
그러나 반딧불이는 전 세계적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빛 공해와 살충제 사용 증가, 반딧불이의 먹이가 되는 달팽이·지렁이 등의 감소, 기후 변화, 외래종의 침입 등이 원인이다. 또 개체군이 줄어들면서 국부적 멸종 위험이 커지고 있다. 근친 교배로 인한 유전적 손실 등이 생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강 따라 절벽 따라…금강변 마실길
전북 무주 대소리 금강변 마실길 중, 벼룻길 초입의 숲.김영주 기자
이튿날 부남면사무소가 있는 대소리에서 시작해 금강변 마실길을 걸었다. 전날 걸었던 도소마을 반대 방향, 동쪽으로 향하면 벼룻길 가는 길이다. 일제강점기에 상류인 대소리에서 아랫마을인 굴암리의 대뜰까지 물을 끌어들이기 위한 농수로로 건설됐다고 한다. 금강변 절벽 아래를 지나는 길로 교량이 생기기 전까지 마을과 마을을 잇는 고샅길로도 쓰였다고 한다.
그러나 벼랑길은 임시 통제 중이다. 낙석 위험이 있어서다. 통제 지점에서 살짝 안으로 들어가 보니, 강 옆 절벽 아래로 트레일이 이어지고, 울창한 숲이 나왔다. ‘100년 전에 어떻게 바위를 깎아 길을 낼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찔했다.
출입금지 구간은 1㎞ 정도지만, 이 길을 우회하려면 대소리까지 되돌아 나가야 한다. 마을 앞 대소교를 건너 대티교까지 약 4㎞가 우회 구간. 이후 다시 마실길이 시작된다. 걷기 좋은 길은 잠두2교 지나 잠두마을(용포리)을 휘감아 도는 길이었다. 벚나무 가로수가 아름다운 길로 벌써 길바닥에 낙엽이 지기 시작했다. 약 1㎞의 이 길이 끝나면 용포교가 나온다. 이 지점에서 무주읍까진 약 8㎞ 거리다. 그러나 아스팔트 길이라 트레킹에 적합하지 않다.
김영희 디자이너
에디터
김영주 중앙일보 기자
kihttp://m.youngju1@joongang.co.kr
스포츠부 김영주 기자입니다. 산을 좋아합니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3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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