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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의미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5. 16. 12:13

오월의 의미

 

나호열

 

오월이다. 계절의 여왕이라 부르는 오월의 달력에는 빼곡하게 기념일이 적혀 있다. 오월 초하루 근로자의 날부터 시작해서 어린이날 (5일), 어버이날(8일), 입양의 날(11일), 부처님 오신 날, 가정의 날, 스승의 날(15일), 5.18 민주운동기념일(18일), 성년의 날(20일), 부부의 날(21일), 방재의 날(25일), 바다의 날(31일) 까지 기념해야 하는 날들로 가득 차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날까지 지정해서 기념을 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개인을 떠나 사회구성원으로서 잊어서는 안되는 고급한 가치를 상기하고 그 가치를 실행에 옮기자는 뜻이 아니겠는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이상향 즉, 분쟁과 미움이 없는, 사람다움이 행해지는 사회를 일구어보자는 염원이 이렇게 수많은 기념일을 제정하게 만든 원인이라고 볼 때, 역설적이게도 불현 듯 우리가 불편하게 생각하는 유교의 이념을 떠올리게 되기도 한다.

 

충효를 기반으로 하는 우리나라 유교의 전통은 21세기 한국사회의 여러 시류와 충돌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수신修身과 제가齊家를 통해 건강한 국가를 실현해야 한다는 이념은, 집단보다는 개인의 이익과 자유를 우선시하는 현대사회에서는 고리타분한 허례허식에 불과하다는 저항에 부딪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자율성이 무너지게 되면 사회는 불안정해지는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혼의 급증으로 말미암은 가정의 붕괴, 지나친 경쟁과 절연絶緣으로 야기되는 자살의 급증,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 등이 만연해지는 일상 속에서 수신과 제가의 필요성을 무조건 거부할 수만은 없게 되는 것이다.

 

세계 최저의 출산율과 자살율은 우리가 일찍이 예견하지 못했던 현상들이다. 온통 상생相生을 외치면서도 개인의 이익을 위해 좌충우돌하는 사이에 상부상조의 미덕은 사라지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변해갈수록 충효와 수신제가의 실천은 밝고 맑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처방으로 조명 받을 수밖에 없다. 어른의 아버지라는 아이들이 사라지면 어버이가 사라지고 적막한 학교에 가르칠 학생이 없다면 스승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개인과 개인 간의, 계층과 계층 간의 존중과 존경이 사라진 사회는 그 어디에서도 역동적 발전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껍데기만 남은 의식을 과감히 버릴 때가 왔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을 우스개 소리로 들어서는 안된다. 건강한 의식을 가지지 않은 어버이로부터 바른 인성을 가진 아이가 자라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경쟁을 하되, 승패에 승복할 줄 아는 존재, 단순히 탐욕을 좇아 입신양명을 꿈꾸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삶의 목표와 재능을 발휘하는 것이 인생의 즐거움임을 깨닫는 존재는 건강한 가정에서 태어난다. 심심하지 않게 들려오는 패륜과 막장 드라마같은 사회 지도층의 행실을 볼 때 그들의 화려한 학식과 명예가 초라한 장식에 불과함을 안타깝게 여기게 된다.

 

조선조 이조판서를 지낸 이문원(李文源·1740~1794)의 아들들이 경기도 가평에서 말을 타고 한양에 왔을 때 크게 꾸짖으며 다시 돌아가 걸어서 오라고 했다. 자식을 아끼는 마음은 그 누구나 다름이 없을 것이나 젊음에도 불구하고 편함을 좇아서는 안된다는 가르침을 줌으로서 어버이의 참된 마음을 실현한 것으로 마음에 새길만 하다.

 

5월의 수많은 날들의 의미를 요약한다면 한 마디로 가정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것이다. 어린이가 성년이 되고 어버이가 되어 가정을 꾸리게 되는 것이다. 교육심리학자 에릭슨은 인간의 정신발달을 8단계로 나누고 각 단계마다 수행해야 할 발달과업을 제시했다. 한 예로 청소년기에 필요한 과업은 자신에 대한 통찰과 자아성을 찾기 위한 노력이라고 했다. 이 과업을 수행하지 못하면 자아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인생관과 가치관에 혼란이 온다는 것이다. 가정의 중심은 부모이다. 무조건 엄한 부모가 되려고 하기 보다 자식들과 함께 감정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부모가 된다면 우리에게 365일이 어버이날이 되고 어린이날이 되는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서천신문 2024.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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