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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여름을 슬기롭게 맞기 위해 마음 깊이 담아두어야 할 봄꽃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6. 3. 14:00

[나무편지]

여름을 슬기롭게 맞기 위해 마음 깊이 담아두어야 할 봄꽃들

  ★ 1,235번째 《나무편지》 ★

   5월 가고 6월, 봄 지나 여름입니다. 지난 주말에는 올 들어 두번째 태풍이 발달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아직 위협적인 세력은 아닙니다. 그 동안은 5월까지 대략 2개에서 3개의 태풍이 발생했다는데, 올해는 너무 적어 문제라고 합니다. 그게 안심할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굳이 덧붙일 일 없겠지요. 태풍뿐 아니라, 기록적 폭염과 집중 호우까지 벌써부터 여름을 맞이하는 조짐이 심상치 않습니다. 어쩌는 수 없지요. 모두가 우리가 지은 일인 걸요. 6월 들어서면서, 지난 봄 내내 《나무편지》에 담으려고 갈무리해두었던 봄꽃과 나무들의 이미지를 돌아보았습니다.

   이제 6월인데 봄꽃, 봄나무들에 더 붙들려 있을 일 아니겠지요. 사진 갈무리 폴더에 쌓아두었던 사진에서 딱 열 장 뽑아내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진달래를 담아야겠지, 봄이니까” “붉은 진달래보다는 흔치 않은 흰진달래 꽃이 더 좋겠지”에서 시작해 “산울타리가 아니라 길섶에 홀로 우뚝 서 있는 개나리를 담아야겠다” “노란 색의 얼레지는 특별하지 않은가” “산길에 낮게 웅크리고 피어난 순백의 노루귀 꽃은?” “나뭇가지펼침에 자연의 패턴이 또렷이 드러나는 삼지닥나무도 좋은데……” “언제나 ‘궁극의 조팝나무’라고 말해온 반호테조팝나무는 빼놓을 수 없지 않은가” “바다에서 조기가 잡힐 즈음에 피어난다는 팥꽃나무는?” 딱 열 장을 선택하기 위해 버려야 할 꽃들에 대한 생각이 쉬이 내려놓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무한정 길어질 수 없는 《나무편지》에 담을 딱 열 개의 나무와 꽃을 골라내며 지난 봄날의 기억들이 차분히 흘러갔습니다. 맨 위의 사진은 지난 목요일에 띄운 《나무편지》에서 보여드렸던 ‘무스카리’ 품종의 꽃입니다. 두 번째 사진은 최근에 ‘은방울수선’이라는 우리말 이름을 갖게 된 ‘레오코줌’입니다. 그리고 바로 위의 세 번째 사진은 멸종위기식물인 ‘깽깽이풀’의 꽃입니다. 무스카리와 레오코줌은 개체 수가 많아서 저절로 눈에 띄지만, 개체 수가 적은 우리 토종의 깽깽이풀은 일부러 찾아보아야 합니다. 그래도 봄이면 잊지 않고 찾아보게 되는 우리 풀꽃입니다.

   이 꽃은 ‘돌단풍’입니다. 우리의 중부 이북 지역의 아무데에서나 저절로 잘 자라는 풀꽃입니다. 돌단풍은 바위 틈처럼 척박한 곳에 아무렇게나 자리잡고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다섯 개에서 일곱 개로 갈라진 잎 모양이 단풍나무의 손모양 잎을 닮았는데, 대개는 바위 곁에서 피어나기 때문에 ‘돌단풍’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우리 풀이지요. 무더기로 모여서 피어나는 자잘한 꽃이 어지러워 사람의 눈길을 유혹하지는 않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처럼 작고 앙증맞은 꽃들이 대개 그런 것처럼 가까이에서 자세히 바라보면 예쁘기 그지없습니다.

   위의 꽃은 아주 특별한 꽃 ‘루스쿠스’입니다. 잎 한가운데에서 또 하나의 작은 잎이 불쑥 돋았고, 아래 쪽의 넓은 잎과 위쪽의 작은 잎 사이에서 연두빛 꽃이 피어난 특별한 꽃입니다. ‘잎 위의 잎’만으로도 신기한데, 그 사이에서 다섯 장의 가늣한 꽃잎으로 이루어진 앙증맞은 꽃을 피웠다는 건 더 신비롭습니다. 식물구조로 보아 잎 위에서 작은 잎이 돋아나고 거기에서 꽃이 필 수는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눈으로 분명히 잎으로 보이는 아래쪽의 넓은 잎을 식물학에서는 나뭇가지가 넓게 바뀐 것으로 해석합니다. 매우 특별한 식물인데, 최근에는 꽃꽂이의 재료로 많이 쓰는 듯합니다.

   노란 색 ‘얼레지’를 보신 적 있나요? 바로 위의 꽃입니다. 6월 들어서면서 ‘설구화’ 꽃으로 바꾸었지만, 5월 내내 홈페이지 솔숲닷컴의 초기화면 팝업 이미지로 썼던 낯선 꽃입니다. 얼레지의 품종이지요. 지난 봄날을 보내면서 얼레지 꽃을 만나지 못해 아쉬워 했는데, 우리 수목원의 젊은 가드너가 얼레지 지고나면 뒤늦게 꽃 피우는 노란 얼레지 품종이 있으니 찾아보라 해서 만나게 된 꽃입니다. 처음 만난 특별한 꽃인데요. 아직은 낯설어요. 낯선 만큼 특별한 느낌이기는 해도 보라색의 우리 얼레지만큼 정겨운 느낌은 아직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얼레지 보지 못한 아쉬움만큼은 충분히 달랠 수 있게 했습니다.

   이번에는 ‘황철쭉’입니다. 철쭉 꽃은 진달래 꽃 진 뒤의 봄 내내 계속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꽃입니다. 품종도 엄청나게 많은 나무이지요. 하지만, 노란 색 꽃을 피우는 황철쭉은 흔하지 않습니다. 천리포수목원의 숲 속에 숨은 듯 고요히 자리잡고 서서 봄빛 깊어질 즈음이면 가지마다 노란 꽃송이를 피워 올리는 특별한 나무입니다. 숲길 안쪽에 다른 나무들로 둘러싸인 채 서 있어서, 자칫하면 스쳐 지나치기 십상이지만, 그나마 제법 우쭐하게 큰 키로 자라나서 조금만 신경을 쓰면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는 우리 수목원의 명품 나무 가운데 한 그루입니다.

   조롱조롱 알알이 피어난 위의 꽃은 ‘통조화’입니다. 우리 토종 나무가 아니어서 우리 산과 들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나무는 아닙니다. 우리나라 특산의 ‘히어리’를 떠올릴 수 있는 빛깔과 생김새입니다만, 가만가만 살펴보면 히어리와는 전혀 다른 모양의 꽃임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히어리의 꽃도 조롱조롱 맺히는 건 비슷하지만, 제가끔의 꽃송이들이 아래 쪽을 향해 벌어져서 꽃송이 안쪽을 자세히 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통조화의 줄지어 맺힌 꽃송이들은 옆을 향해 벌어져서 꽃송이 안쪽이 빤히 들여다보입니다. 사진만으로도 충분히 구별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아래에 ‘히어리’ 꽃을 보여드리니 비교해 보세요.

   ‘히어리’ 꽃입니다. 위쪽의 ‘통조화’ 꽃과 분명히 다르지요. 히어리는 우리나라에서만 사는 토종 나무로, 전남의 지리산과 수원의 광교산, 포천의 백운산 기슭에서 저절로 자라는 나무입니다. 사람 키 높이 정도로 자라는 나무여서 더 친근하게 여겨지는 나무이지요. 히어리라는 나무 이름이 참 특이하지 않은가요? 이름의 유래를 이야기하는 몇 가지 설이 있습니다만, 어느 쪽도 정확하달 수 없이 설왕설래할 뿐입니다. 한때 환경부의 멸종위기식물로 지정했던 적이 있지만, 개체수가 늘어나면서 2012년에는 멸종위기식물에서 해제되는 우여곡절을 거친 우리 나무입니다.

   오늘의 《나무편지》를 마무리하는 열 번째 봄꽃은 ‘붓순나무’의 꽃입니다. 우리나라의 남부지방에서 저절로 자라는 우리 토종 나무입니다. 앞의 히어리처럼 그리 큰 키로 자라는 나무는 아닙니다. 붓순나무는 ‘소교목’으로 분류합니다. 교목형, 즉 줄기가 일정한 높이까지 곧게 뻗어오른 뒤에 나뭇가지를 펼치는 큰나무(교목, 喬木)의 생김새로 자라기는 하지만, 소나무 은행나무처럼 아주 큰 키로 자라지는 않는 나무를 ‘소교목’으로 분류합니다. 다른 건 젖혀놓고라도 붓순나무의 꽃은 상큼해 좋습니다. 연두색으로 피어나는 특별한 생김새의 꽃은 목련 꽃 피어날 즈음에 함께 피어나는데요, 언제 보아도 상큼한 봄꽃의 백미 아닌가 싶습니다.

   모두가 다시, 그리고 오래 바라보고 싶은 나무 꽃, 풀 꽃들입니다. 하지만 이제 봄꽃 생각은 접어두고 차츰 다가오는 여름의 꽃들을 맞이할 채비에 나서야 할 유월입니다.

   고맙습니다.

2024년 6월 3일 아침에 1,235번째 《나무편지》 올립니다.

  - 고규홍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