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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편지

하늘과 땅과 구름과 바람 그리고 사람과 나무와 시(詩)를 생각합니다

장자이거나 나비이거나 2024. 5. 27. 16:39

[나무편지] 하늘과 땅과 구름과 바람 그리고 사람과 나무와 시(詩)를 생각합니다

  ★ 1,233번째 《나무편지》 ★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 무대/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농무(農舞)〉 중에서)
  생각지도 않았는데, 다시 또 시(詩)를 이야기하게 됐네요. 그럴 수밖에요. 지난 번 《나무편지》에서는 〈서산 해미읍성 느티나무〉를 이야기하려고 나희덕 시인의 시 〈해미읍성에 가시거든〉을 떠올려 “나무를 시로 배웠다”는 말씀을 올린 것뿐이었는데요. 엊그제 신경림 시인이 돌아가셨어요. 다시 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내 손이 비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내 마음은 더 가난하다는 것을 비로소 알면서./거리를 날아다니는 비닐 봉지가 되어서”(- 〈그 길은 아름답다〉 중에서)
  가슴을 울리는 좋은 시를 쓰고 싶었지만, 시의 서정을 느끼는 것 자체가 ‘사치’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대학에 들어간 70년대 말, 그때 말입니다. 스스로를 ‘국물도 없는 인간들’이라며 ‘국문과’를 ‘국물과’로 부르던 ‘문청’들의 가방에는 늘 시집이 들어 있었지요. ‘창비시선’ 시리즈의 첫번째 시집인 신경림 시인의 《농무》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신경림 시인의 시 몇 편을 외지 못하면 문청으로서는 좀 모자란 축으로 밀려내기까지 했더랬습니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파장(罷場)〉 중에서)
  학교를 나와 결혼하고, 아이 낳고, 소시민으로 찌들어 살면서 시를 잊은 듯 살아가면서, 안부가 궁금해 어쩌다 만나게 되는 그때의 그 문청들은 그래도 가끔은 잊었던 시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마에 얹히는 주름살 따라 예전에 줄줄 외던 그 많은 시들이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주식’ ‘부동산’ 이야기로 시간을 쓰지는 않는다는 정도이지만, 분명 시의 존재감은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까맣게 몰랐다.”(- 〈갈대〉 중에서)
  아마도 이 즈음 그때의 그 ‘국물도 없을 만큼’ 못났던 문청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면 분명 시인 신경림의 부고를 이야기할 겁니다. ‘못난 국물’ 가운데 누군가는 다 잊었던 그때의 그 싯구를 다시 소리내 외울 겁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신경림과 함께 지나온 날들을 씁쓸히 이야기하면서 앞으로 살아갈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을 쓸쓸하게 이야기할 겁니다. 시인 신경림은 그저 ‘하나의 시인’이 아니라, 필경 ‘우리 시대 시인’의 상징이었으니까요.

   “나이 쉰이 넘어야/비로소 여자를 안다고/나이 쉰이 넘어야 비로소/사랑을 안다고”(- 〈늙은 소나무〉 중에서)
  신경림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해서 달라질 건 없습니다. 그 동안 선생님의 시를 마음 깊이 간직했을지언정 자주 찾아뵈었던 건 아니니까요. 개인적으로 몇 차례 따로 뵈었던 적이 있긴 합니다. 서른 살이 채 되기 전에 지역에서 선생님의 강연회를 준비하고 진행했을 때였습니다. 강연 마치고 선생님이 따라주시는 쓴 소주 한잔 받았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리고 한참 뒤에 지하철 서울역에서 우연히 뵈었을 때에 반가이 맞아주신 일도 기억납니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너와 헤어져 돌아오는/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한 사랑노래〉 중에서)
  하지만 그 뒤로 자주 찾아뵈었던 건 아니니, 돌아가셨다 해서 달라질 게 뭐 있겠습니까. 여전히 선생님의 싯구들은 문청 시절의 가난한 마음에 그랬듯이 오래오래 마음 깊은 곳에서 사라질 리 없습니다. 시인 신경림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외레 지금 자신의 살아있음을 곰곰 돌아보고, 앞으로 살아야 할 남은 날들을 바라보며 온갖 생각들로 어수선해지는 게 전부이겠지요.

   “하늘에 별이 보이니/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고/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니/사람들 사이에 별이 보인다/반짝반짝 탁한 하늘에 별이 보인다/눈 밝아 보이지 않던 별이 보인다”(- 〈별〉 중에서)
  십이 년 동안의 직장 생활을 떠나 나무를 찾아다닐 때에도 시인 신경림의 시편은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지난 《나무편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나무 공부를 시작한 게 ‘식물도감’보다 먼저 ‘시집’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 많은 시집 가운데에 신경림 시인의 시집이 있었지요. 어쩌면 나이 들고 나무를 보게 되면서 시인의 이야기들을 더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청룡(靑龍) 흑룡(黑龍) 흩어져 비 개인 나루/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목계 장터〉 중에서)
  시인 신경림의 옛 시들을 꺼내 놓고, 가만가만 소리내 바라보게 됩니다. 이 시를 발표하던 시절의 선생님보다 훨씬 더 많이 나이 들어, 하늘과 땅과 구름과 바람 그리고 사람과 나무와 시를 생각합니다. 시집을 뒤적이며, 시편에 들어있는 나무를 찾아 떠돌아다닌 지 이십육 년 됐습니다. 떠돌이 장똘뱅이처럼 그리 편안한 길은 아니었습니다만, 가방 속에 늘 챙겨다니던 시집에 담긴 아름다운 시들은 언제나 큰 힘이었습니다.

   “우리는 협동조합 방앗간 뒷방에 모여/묵내기 화투를 치고/내일은 장날, 장꾼들은 왁자지껄/주막집 뜰에서 눈을 턴다.”(- 〈겨울밤〉 중에서)
  오늘은 스무 살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시인 신경림의 시를 하얀 종이 위에 오래 된 만년필로 꾹꾹 눌러 베껴 써서 ‘협동조합 방앗간 뒷방’처럼 누추한 내 방 벽에 한 장 한 장 걸어두겠습니다. 아마도 흰 종이가 누렇게 바랠 때까지 신경림 시인의 시는 남루한 벽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벽으로 빛나게 할 겁니다.

   《나무편지》에 담은 사진은 지난 봄 어느 날, 바다에서 밀려온 해무로 어둑신한 수목원의 아침 풍경입니다.

   고맙습니다.